바람을 길들인 풍차소년
윌리엄 캄쾀바, 브라이언 밀러 지음, 김흥숙 옮김 / 서해문집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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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어렸을 적엔 동네마다 비디오테이프를 대여해주는 가게가 여럿 있었다. 지금이야 컴퓨터가 있으니 영화를 쉽게 볼 수 있었지만 그때만 해도 신작비디오가 나왔다는 소식이 들리면 수시로 비디오가게에 가서 확인하고 기다려야했다. 간발의 차이로 놓치기도 여러 번, 며칠을 기다려야 했기 때문에 가게 주인과 친분을 쌓는 것은 필수였다. 하지만 그렇게 힘들게 빌려온 비디오테이프가 보는 도중 기계에 의해 씹힘을 당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는데 잘못하면 끊어질 수도 있어 자칫하면 비디오테이프 값을 물어줘야 할 상황까지 갈 때가 있었다. 잘 돌아가다가도 필름 구겨지는 소리와 함께 기계가 정지해버리는 일이 그때 나에게는 참 무서운 일이었다. 그 날도 그랬다. 언니와 비디오를 감상하던 중 어김없이 필름 구겨지는 소리와 함께 기계가 멈춰버렸다. 아무리 버튼을 눌러봐도 테이프는 반만 나왔다 들어가기를 반복했다. 난감한 상황에서 언니가 드라이버를 들고 나타났다. 아예 기계를 뜯어내서 테이프를 꺼내자는 것이었다. 그렇게 뜯어낸 기계는 참 신기한 모양을 하고 있었다. 테이프가 어떻게 재생되는지 궁금하지도 않았고 관심도 없었지만 기계 뚜껑을 열어내자 신기한 세상이 펼쳐져 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기계 뚜껑을 열어둔 채 비디오를 재생하고 멈추고를 반복했다. 반짝이는 은색 원형모양의 부속품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도 알아냈다. 기계에 대한 호기심은 더 나아가지 못했지만 그때 열어본 비디오 내부의 모습은 아직도 내 기억에 선명히 남아있다. 이 책 <바람을 길들인 풍차소년>의 주인공 윌리엄 캄쾀바의 호기심도 처음엔 소형 라디오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캄쾀바는 아프리카의 말라위라는 나라에서 살고 있다. 추수를 막 끝내고 몇 개월은 제대로 된 식사를 하지만 그 시기가 끝나면 다음 추수 때까지 굶주림의 시간을 보내고 자연재해가 일어나서 농작물을 망치게 되면 굶어죽는 사람들이 생기는 나라, 하지만 대통령도 정치인들도 그런 상황을 신경 쓰지 않는 나라다. 캄쾀바는 열 세 살 밖에 되지 않았지만 형제 중 유일한 남자아이라 새벽에 나가 밭일도 돕고 학교도 다닌다. 수업료를 내지 못해 중학교에 다니지 못하지만 그가 다녔던 초등학교의 도서관에서 <에너지 이용>이라는 책을 발견하면서 캄쾀바의 인생은 바뀌어버렸다. 

말라위는 전기를 생산하기 어려운 나라다. 말라위 인구의 겨우 2퍼센트만이 전기를 사용하지만 그마저도 비싸고 단전의 위험이 있어 부자라도 이용하기가 어렵다고 한다. 해가지면 하던 일을 내려놔야 하고 저녁 일곱 시 밖에 안됐어도 잠자리에 들어야한다. 하지만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전기가 있다면? 아이들은 밤늦게까지 공부를 할 수 있을 것이고 어른들도 밤까지 일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더 나아가 전기가 생산된다면, 땔감을 하느라 나무가 베어져 매년 홍수의 위험이 있던 숲이 다시 나무로 채워질지도 모른다. 캄쾀바의 희망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하지만 쉽지 않은 길이었다.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아 책 한권에 의지해야 했고 재료 살 돈이 없어 발품을 팔아 버려진 고물을 모아야했다. 주위의 많은 사람들이 그를 비웃었다. 쓰레기장을 뒤지고 다니며 괴상한 것을 만드는 캄쾀바를 미친 사람 취급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하지만 결국 그는 풍차를 만들어냈다. 주위 사람들의 시각도 바뀌고 마침내 캄쾀바의 집에도 불을 밝힐 수 있게 되었다. 중학교 중퇴 소년이 만들어낸 기적이었다.

책을 읽으면서 내 자신이 참 창피하게 느껴졌다. 태어나면서 자연스럽게 누리고 있던 전기나 물, 음식들이 다른 나라에서는 생존과 직결되어 있다는 걸 잊고 살아왔기 때문이었다. 또 한 소년이 기적을 만들어 주위를 조금씩 변화시키고 전 세계를 감동시킬 때 나는 나 자신이라도 바꾼 적이 있었을까하고 생각하니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다.

지금 캄쾀바는 다시 학교에 다니고 많은 나라들을 다니며 연설을 한다고 한다. 그가 해낸 일로 인해 가족들은 좀 더 편안한 생활을 하고 있고 그동안 도움을 받았던 친구에게도 보답했다고도 한다. 환경에 관계없이 재능 있는 사람들은 어디나 존재한다. 그 재능을 자신이 할 수 있는 일로 바꾸고 실행해 나간 캄쾀바가 대견하다. 또 왜? 라는 물음을 갖고 결과를 얻으려 노력할 때 답이라는 보상이 찾아온다는 걸 이 책을 통해 다시금 깨닫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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