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적으로 왜곡된 과학 엿보기
톰 베델 지음, 박종일 옮김 / 인간사랑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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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몸 겨우 올라갈 만한 빙하 위에서 카메라를 응시하고 있는 북극곰의 사진은 너무나 유명하다. 이 사진은 지구 온난화의 비극을 매우 효과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그 외에도 빙하가 녹고 있어 북극곰이 익사하고 있다는 소식이나 서식지가 없어진 펭귄들이 멸종위기에 놓였다는 이야기도 같이 들려온다. 극지방에는 많은 동물들이 살고 있지만 언론에서 대표적으로 언급하는 동물들은 이 펭귄과 북극곰이다. 펭귄이나 북극곰을 싫어하는 사람들은 찾아보기 힘들기 때문인데 그들의 사진을 싣는 것은 지구 온난화의 심각성을 알리기에 매우 효과적이다. (사나운 수컷 북극곰이 북극곰 새끼를 죽이는 사진이 어느 샌가 지구 온난화로 먹이가 없어 동족을 잡아먹는 사진으로 둔갑하는 경우도 있지만) 하지만 요즈음 들어 상황이 조금 달라졌다. 지구 온난화라는 것이 그 원인이 된 화석연료가 쓰이지 않았던 오래전부터 반복되어온 현상이라는 설에도 힘이 실리고 있는 것이다. 긍정설과 부정설 중 무엇이 진실이며, 우리는 어떤 것을 믿어야 할까?

사실 이 주장들 중 어떤 것을 딱 집어 믿기란 어려운 일이다. 우리 같은 일반사람들은 전문가가 아닐뿐더러 전문가들의 주장도 언론이라는 여과지에 걸러 나와 우리에게 전달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번에 읽은 <정치적으로 왜곡된 과학 엿보기>란 책이 더 흥미로웠는지도 모른다. 이 책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사실들에 반대편에 서있다. 지구 온난화, 핵, 방사능, DDT, 다이옥신 등 우리에게 유해하다고 알려진 것들과 황우석 박사 사태로 유명해진 줄기세포까지 우리가 갖고 있는 상식들을 모두 뒤엎고 있다. 저자인 톰 베델은 우리가 알고 있는 거의 모든  과학적 상식들은 정치화 되어있다고 주장한다. 돈과 명성을 쫓는 과학자와 연구의 자금제공원인 정부와 기업들(무언가 목적이 있는)이 만났을 때 과학이 얼마나 정치적으로 왜곡될 수 있는지도 설명한다.

몇 가지 살펴보자면, 우선 핵발전소를 들 수 있다. 핵은 지금까지 인간이 만들어 낸 것 중 가장 강력한 살상무기로 알려져 있다. 내가 핵에 대해 알게 된 건 영화 터미네이터를 보고나서였다. 놀이터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과 평화롭게 일상생활을 즐기던 사람들이 강력한 빛과 함께 한순간에 사라져버리는 장면은 어린 나에게 핵의 위험성을 확실하게 각인시켜 준 계기였다. 핵은 존재해서도, 만들어내서도 안 되는 살상무기라는 것이 지금까지 핵에 대해 변하지 않는 내 생각이었다. 하지만 이 책의 주장은 조금 달랐다. 핵은 단연코 가장 깨끗하고 안전한 에너지원이라는 것이다. 핵이 위험물질로 분류된 데에는 영화와 언론의 힘이 가장 컸고 핵에 관한한 가장 유명한 사고인 체르노빌 핵반응로 폭발은 건물 내부에서만 사망자가 발생했을 뿐 외부에서의 사망자는 확인되지 않았다고 한다. 또한 핵발전소가 1년 동안 배출하는 오염물질은 석탄발전소에 비하면 없거나 현저히 낮았다. 미 해군이 핵 동력을 계속 사용하면서 한 건의 사고도 일으키지 않고 사병들의 발병사례도 없었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을 뒷받침한다. 즉, 가장 안전하고 효율적이며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에너지가 핵무기와 혼동되면서 가장 두려운 것으로 변모해버린 것이다.

다음으론 에이즈가 있다. 에이즈가 우리에게 알려진 지는 채 몇 십 년 되지 않았지만 체감으로는 암보다도 무서운 질병처럼 느껴진다. 둘 다 정복할 수 없는 질병임에도 말이다. 그렇게 느껴지는 이유로 에이즈가 ‘전염’된다는 사실, 아프리카에 수 백 만 명의 에이즈 환자가 존재한다는 언론보도를 들 수 있을 것이다.
정확한 통계를 위해, 검사장비가 미미한 아프리카에서는 에이즈 환자를 구별해내기 위한 새로운 기준이 마련되었는데 그 기준엔 HIV에 관한 언급이 없다고 한다. 서구와는 다른 기준이 적용된 것이다. 기침, 설사, 발열, 체중감소 등 간단한 증세만으로 아프리카에서는 하룻밤 새에 수 백 만 명이 에이즈 환자로 구분되었다. 병원을 찾아오는 대부분의 환자들의 증세가 그러했던 것이다. 근본적으로 정확하지도 않고 적용될 수도 없는 정의로 아프리카는 에이즈로 가득한 죽음의 나라로 묘사되었다. 서구 특유의 우위에 선 관점으로 아프리카의 ‘성관계’나 ‘미신’, ‘사회적 태도’ 등을 꾸짖는 칼럼도 등장했다고 한다. 하지만 문제는 그들이 추정한 만큼의 환자들도 사망자들도 없다는 사실이다. 대재앙을 겪고 있을 거라는 우려와는 달리 아프리카의 인구수는 늘고 있다.          

에이즈로 인해 고통 받고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기에 함부로 말할 수 없지만 아프리카에서의 에이즈 감염자와 사망자 숫자를 뻥튀기한 자들이 감추려한 사실이 무엇인지도 언론에서 다뤄야 할 것이다. 아프리카 대륙이 필요로 하는 것은 사망선고가 아닌 깨끗한 물과 위생체계의 개선일 테니 말이다.

그 외에 그동안 내가 알지 못했던 호메로스 현상이나 다윈의 진화론 뒤의 흥미로운 이야기들, 온난화의 하키스틱이론 등을 새로이 알게 되어 머리가 뿌듯이 차오르는 느낌마저 들었다. 처음엔 과학을 다루는 책이라 어렵지 않을까 걱정했었는데 이해하기 쉬운 설명과 문체에 섞여 나오는 재치까지 종종 등장해 과학 생각만 하면 골치가 아파오는 나도 책을 읽는 내내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마이클 무어의 영화 <화씨 911>에서는 대중을 통제하는데 가장 좋은 방법은 공포심을 이용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개인적으로 음모론을 좋아하진 않지만 자신의 목적을 위해 조작과 통제를 일삼는 무리들이 있다는 건 믿는다. 보여주고 싶은 것만 보여주고 알리고 싶은 것만 알린다. 가장 효율적인 수단, 공포심을 통해서 말이다. 책을 읽고 나서 내가 알고 있던 사실과 책에서 말하는 사실 사이에서 혼란을 느꼈다. 그래서 어떤 것이 옳은 것인지 진실을 파악할 수 있는 눈이 내게 있길 진심으로 바랐다. 또 언론의 자극적인 제목만 보고 속 내용을 성급히 판단한 것에 대한 반성의 기회도 되었다. 하나의 주장만을 맹신한다면 자연스레 우리의 시야가 좁아질 수밖에 .없는데 아마 다른 독자들에게도 이 책이 다양한 관점에서 식견을 넓힐 수 있는 장이 되지 않을까, 조심스레 추측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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