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딴방
신경숙 지음 / 문학동네 / 199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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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형제들로 인해 언제나 한 걸음 물러나야 했던 아이 오빠 공부시키고 나면 너도 꼭 고등학교 보내주마 하며 미안해하시던 어머니의 표정 지킬 수 없는 약속 줄줄이 태어나 입을 벌리던 동생들 어린 나이에 타지로 가 돈을 벌 수 밖에 없던 운명
그렇게 살 수 밖에 없던 시절이 있었다.

10분의 휴식시간에서만 쏘일 수 있던 한낮의 햇살 줄지어 공장으로 돌아가는 발걸음들 끊임없이 돌아가던 미싱 분주한 손길 앳된 얼굴들
그렇게 살 수 밖에 없던 시절이 있었다.

손바닥만한 방에 끼어 자던 여섯 명의 사람들 더운 여름날엔 땀으로 목욕하고 추운 겨울날엔 연탄 값이 아까워 서로의 팔을 붙잡고 온기를 나눴던 그들 적은 월급에서 입을 것 먹을 것 아껴 시골집으로 보내던 돈 딸을 잘 부탁한다는 숙모의 편지 한 통 늘어나는 식구들
그렇게 살 수 밖에 없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난 그런 시절을 겪지 않고 살아왔다. 작가의 나이는 나보다 어머니와 가깝다. 그녀가 열여섯 서울 가는 기차에 올라 직업훈련원에 들어갔을 무렵 어머니는 이미 결혼을 해 언니를 낳았다. 내 주위에 그녀와 같은 연령으로 그녀와 비슷한 인생을 살아온 사람을 찾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난 계속해서 자문해 본다. 너는 어떻게 할래? 서른일곱 개의 방 서른일곱 개의 인생들 꿈들 그 속에서 너는 어떻게 할래? 고된 일터 나사를 박느라 분주해진 손 적은 월급 피로에 찌든 얼굴들 그들을 사람이 아닌 기계 취급하는 회사의 높으신 분들 그 안에서 넌 어떻게 할래? 라고.

외딴방을 구입한 건 몇 해 전이지만 지금껏 펼쳐 보지 못한 이유는 사실 내가 그녀의 작품을 피했기 때문이다. 자전적 소설이라니 그건 마치 타인의 방에 허락 없이 들어가 예상치 못한 것을 보리라는 예감과도 같았다. 책상 한켠에 놓여 있던 외딴방은 고개를 돌릴 때마다 내 시선을 한동안 붙들어 놓았다. 이젠 읽을 때가 되었을까. 난 언니가 먼저 읽고 갖다 놓은 외딴방을 들고, 언니의 표정을 확인하고 나서야 책을 읽을 결심을 했다. 이번 책은 후유증이 심하지 않나보다 하는 안일한 생각을 하면서.

어서 이 무료한 고장을 떠나 도시의 큰 오빠에게 가는 상상을 하는 열여섯의 소녀. 아직은 어리고 부모님 품안에서, 그래도 굶지 않고 자라온 한 소녀가 있었다. 꿈에 그리던 상경을 했지만 조직의 생산부 라인에 들어가 지금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적은 월급을 가지고 서른일곱개 중에 하나의 외딴방에서 큰오빠와 외사촌과 살림을 꾸려 나가게 된 소녀. 책은 열여섯에서 열아홉까지의 그녀의 성장과정과 어른이 된 현재 서른둘의 그녀 이야기가 함께 진행 된다. 하지만 읽으면 읽을수록 전 세대 이야기라 하기엔 너무나 생생한 느낌. 크나큰 아픔. 아마도 지금 우리가 딛고 있는 이 세상이 그 이야기의 연장선상에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또 누가 이 이야기들을 남의 이야기라고 외면할 수 있을까. 이것은 나의 어머니 이야기이며 나의 언니 이야기이며 나의 친구이야기이기도 하고 나의 이야기와도 같았다.

벗어나지 못한 아픔을 향해 빙빙 돌아가는 동안 깊은 물에 잠겨 있는 것처럼 숨이 막혔다. 책을 읽는 그 짧은 시간 동안 이런 기분을 느꼈는데 십육 년 동안 그 일들을 마음에만 담아 놓았던 작가는 어땠을까. 언제라도 툭 터질 듯, 어설프게 봉합해버린 그녀의 상처가 수면 위로 올라오기 까지 참 긴 시간이 흘렀다. 하지만 그 시간 동안 나이 열아홉에 멈춰버린 어린 그녀가 있었다. 세상은 너무나 빠르게 그녀에게 어른이 되기를 요구했고 어른이 된 그녀는 외딴방의 4년이라는 시간을 잃어버린 채 살아왔다. 계기는 희재 언니의 죽음. 그로 인한 관계 맺기의 두려움. 책임감. 죄책감들이 그녀 내부에서 회오리 졌지만 그 모든 감정을 묻어둔 채 잊으려고 노력한 채 그녀는 서른을 넘겨버렸다. 하지만 그녀는 말해버렸다. 그리고 글은 완성 됐다. 가슴 속에 살아온 희재 언니를 보내고 자신의 아픔을 어루만지고 이제는 앞으로 나아갈 때가 왔다고 말하고 있다. 
작가는 이제 알았을까? 그녀에게 글쓰기가 무엇인지를.

이제 내 가슴을 떠나 그녀가 어디로 가는 지. 그곳이 어디인지는 모르지만 소용돌이나 퇴적물이나 정적 속은 아닐 것이다. 내 가슴에 소망스런 다른 이야기들이 이렇게 솟아나고 있으니. (p.405)                                          

읊조리는 듯 때로는 절절하게 외치는 듯 흐르는 그녀의 랩소디를 들으며 나는 생각한다. <엄마를 부탁해>를 읽고 나서 며칠 잠을 설치던 날들 그런 날이 반복되는 건 아닌가 하고. 그리고 작가로서 신경숙은 행복한 사람이라고. 그 이유는 그녀의 소설을 읽고 이리도 자신의 아픔처럼 앓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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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증후군 - 상 증후군 시리즈 3
누쿠이 도쿠로 지음, 노재명 옮김 / 다산책방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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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요즘 TV뉴스나 인터넷 뉴스를 보다보면 어김없이 등장하는 살인. 살인. 살인이라는 글자들. 대중매체에 드러나지 않은 살인사건도 합친다면 우리 주위에 얼마나 많은 살인사건이 일어나고 있는 것일까? 연쇄 살인이나 끔찍한 살인수법으로 일어난 살인사건들은 대대적으로 언론에 노출되어 사람들의 관심을 받지만 짤막한 기사로 쓰인 살인사건은 클릭 한번으로 덤덤하게 넘길 때가 있어 나조차 흠칫 놀라곤 한다. 또 어느새 이런 살인사건에 익숙해져 버린 건 아닌지 두려운 마음도 든다. 

1997년에서 2007년까지의 우리나라 흉악 범죄 건수는 그 이전 10년에 비해 2배가량 늘었다고 한다. 검거율도 96%에서 90%까지 떨어졌다고 하는데 기소율은 더욱 떨어진 30%정도라고 한다. 범죄의 증가와 검거율의 하락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90년대 까지 흉악범죄가 일어나면 거의 원한 관계였다는 게 기억난다. 물론 화성연쇄살인이나 해결되지 않은 다른 사건들을 제외하고 말이다. 하지만 요즘은 그렇지 않은 사건들이 참 많다. 피해자와 일면 안식도 없고 이유도 없는 살인들이 많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이유도 다양하다. 길을 가다 짜증나서, 돈을 뺏기 위해서, 아니면 그저 죽이고 싶어서.

길을 걷고 있었을 뿐인데, 그 일이 일상이었을 뿐인데 갑자기 살해당한 피해자는 무슨 잘못이 있단 말인가. 그리고 피해자의 남은 가족들은 왜 가슴 찢기는 고통 속에 살아야 한단 말인가. 남의 일이라고 치부할 수 없어 피해자와 그 가족들에게 더 공감 할 수밖에 없다. 상상만 할뿐 이지만 그 고통도 만약 가해자가 경찰에 붙잡혀 죗값을 치른다면 조금은 위안이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가해자가 전혀 죗값을 치르지 않는다면 어떨까? 미성년자이기 때문에, 심신상실 같은 이유로 감옥에 가지 않고 잠깐의 수용기간으로 세상에 풀려난다면. 또 그것이 법으로 정해져 있기 때문에 손 쓸 수 없는 상황이라면 피해자와 그 가족들의 상처는 어떻게 치유하고 그들의 울분은 무엇으로 풀어줄 수 있을까?

<살인증후군>은 이런 의문에서 시작한다. 책엔 다양한 살인이 등장하지만 내용은 피해자와 그 가족에게 초점이 맞춰져 있다.

살인엔 예고가 없다. 흉흉한 뉴스가 하루에도 몇 개씩 쏟아져 나오는 요즈음 우리는 살인의 공포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평범하고 행복한 삶을 살고 있던 가지와라의 인생이 한 순간에 바뀌어 버린 이유는 아들의 죽음이었다. 정의로운 성격을 가지고 있던 아들은 불량동급생들에게 소위 찍혀 버렸고 집단구타를 당해 살해당한 것이다. 가해자들은 중학생이라 소년법에 의해 보호 받았다. 그들은 ‘보호’라는 명목아래 소년원에 1년 정도 있다가 퇴원했다. 그 동안 가지와라와 가해자 부모와의 힘겨운 소송이 있었다. 오랜 싸움에 몸도 마음도 피폐해진 그는 의문을 품을 수밖에 없었다. 왜 세상은 가해자를 보호하는가? 그리고 그들은 과연 죄를 뉘우치고 갱생했을까? 하는 의문들이다.
간호사인 가즈코가 살인을 저지르는 이유는 아들 츠구하루를 위해서이다. 심장이 좋지 않은 츠구하루는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다. 아들을 살리려면 뇌사환자들의 건강한 심장이 필요하다. 아들을 위한 모정은 왜곡된다. 가즈코는 사람을 생명을 보호하는 직업을 갖고 있지만 뇌사환자를 직접 만들기로 결심한다. 그리고 시체기증을 약속한 건강한 남자를 살해한다. 교통사고를 위장해서.
참혹한 과거를 지니고 있는 교코는 ‘소년범죄를 생각하는 모임’에 자원봉사를 나가고 있다. 모임의 운영을 돕고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 피해자 가족들을 위한 ‘진정한 일’을 하고 있다. 아직 그 일은 들키지 않고 진행됐으며, 그것이 피해자 가족들의 마음 풀어줬으리라는 걸 교코는 전혀 의심하지 않는다.

<살인증후군>은 이렇듯 다양한 각도에서 이야기가 진행된다. 사랑하는 가족이 살해당한 사람, 아들을 위해 살인을 저지르는 어머니, 청부살인까지 책엔 온통 살인이야기이다. 자극적인 소재지만 피해자의 입장에 더 몰입하기 때문에 뼈가 아플 만큼 공감됐다. 또 사건에 경찰과 비밀리에 사건을 조사하는 집단이 교묘하게 얽혀 있어 긴장감으로 조마조마했다.

아직 <상>권만 읽어 결말은 모르는 상태다. 여기가지 읽고 느낀 점은 살인은 분명 용서 받지 못할 죄라는 것, 하지만 그렇게 해서라고 자신의 울분을 풀고 싶어 하는 피해자 가족들이 있다는 것, 끔찍한 상상이지만 나라도 그런 마음을 품을지 모른다는 생각들이다. 책엔 안타까운 사람들이 잔뜩 나온다. 그리고 가해자들은 용서받지 못할 악인으로 묘사된다. <하>권에서 이런 구도를 유지할 것인가? 그리고 작가는 이 이야기들을 어떻게 한 곳으로 몰아넣고 완성 지을지 궁금해진다. 역시 <하>권을 읽을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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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로 만나는 치유의 심리학 - 상처에서 치유까지, 트라우마에 관한 24가지 이야기
김준기 지음 / 시그마북스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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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오면서 어떤 상황을 맞닥뜨리게 됐을 때 갑자기 몸이 움직이지 않는다거나 두려웠던 경험이 있는가? 그것이 큰일이었든 작은 일이었든 우리는 끔찍했거나 창피했던 기억으로 인해 다시는 경험하고 싶지 않은 일들 하나씩은 갖고 있을 것이다. 이렇듯 우리 모두는 자신만의 트라우마를 갖고 있다.

외상 후 스트레스장애[post traumatic stress disorder]라고도 불리는 트라우마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고 하는데 전쟁이나 재난, 성폭행 등 일상을 벗어나는 범주의 큰 사건이 주는 경험인 ‘빅 트라우마’와 각 개인의 삶에서 자신감 혹은 자존감을 잃게 만드는 ‘스몰 트라우마’ 가 그것이다. 개인에게는 극적인 경험이었을 사건들을 ‘빅’과 ‘스몰’ 로 나눈 것은 일상에서 자주 벌어지는 일인가 아닌가에 대한 구분이라고 책은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두 경험 모두 그 사람에게는 스트레스가 되고 자신과 세상을 멀리하게 되거나 불안감, 초조함, 공포심 같은 증상으로 나타날 수 있다. 정신적 충격은 외상과는 달리 눈에 표출되지 않는 다는 것이 문제가 되는데 주위 사람 뿐 아니라 자신마저 그 상처에 대해 눈치 채지 못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그 상처는 아물지 못한 채 곪아 우리 삶을 천천히 잠식해 나가기도 한다.

<영화로 만나는 치유의 심리학>은 영화에서 등장한 트라우마에 대해 소개하고 있다. 영화를 보면서도 자칫 트라우마인지 모르고 지나간 영화도 있었는데 이 책은 적절한 사례와 함께 자세한 설명을 해주어서 트라우마에 대한 전반적인 지식을 넓혀준 책이라 할 수 있겠다.  

책은 심리학이라는 어찌 보면 어려운 학문을 다루고 있지만 <밀양>이나 <굿 윌 헌팅>,<포레스트 검프> 등 여러 친숙한 영화로 심리학에 대해 쉽게 접근 할 수 있게 하였다. 그래서 인지 내가 영화를 보며 느꼈던 감정, 혹은 놓쳤던 장면들을 생각하며 즐겁게 읽을 수 있었다. 하지만 세상에 이렇게 여러 종류의 트라우마가 있다는 사실에 놀라기도 했는데 어렸을 적 경험들을 되새겨 보니 나에게도 분명 트라우마가 존재했다. 예를 들어 난 개고기를 입에 대지 못한다. 개고기 반대론자들의 거창한 이론 때문이 아니라 어렸을 때 어른들이 개를 잡는 것을 목격한 이후부터 개고기를 먹지 못하게 됐다. (그 이전에는 잘 먹었다고 한다.) 너무나 잔인하고 폭력적이었던 그 장면은 이후 내 꿈에 종종 등장했고 ‘개고기’ 하면 20여년이 흐른 지금에도 생각나는 끔찍한 기억이다. 이런 것도 트라우마가 맞는 건가?

‘세월이 약이다’라는 말은 상처 입은 사람들을 위로 할 때 종종 하는 말이다. 하지만 세월로도 치유되지 않는 상처는 어떻게 될까? 상처 입은 사람들이 그 어떤 위로의 말도 거부한 채 자신만의 공간에 틀어박혀 있는 일도 있는데 그것은 아직 자신이 고통 받는 사건과 그로 인한 상처를 받아들일 수 없기 때문이다. 즉, 주위에서 아무리 현실을 직시하고 그것을 뛰어넘으라고 주문해 봤자 안정을 찾지 못한 사람들에겐 고통스러울 뿐이라는 것이다. 진정으로 그에 대해 이해하고 포용하고 사랑하는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다면 그를 고통의 수렁에서 하루 바삐 벗어나게 할 수 있을 것이다.

책이 흥미로워서 그런지 24편의 영화들을 다시 찬찬히 볼 기회를 가졌으면 했다. 이미 본 영화도, 못 본 영화도 있었지만 책을 읽고 난 후의 영화감상은 좀 다를 것 같다. 또 내 자신의 상처 뿐 아닌 다른 사람의 상처에 대해서도 생각할 기회가 되었다. 그들에게 섣불리 다가갈 수 없겠지만 함께 좋은 방향으로 얼마든지 나아갈 수 있다는 사실도 알았다. 치유는 혼자 하는 것이 아닌 함께 하는 것이니까 함께 어루만져 주며 나아간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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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웨슬리
스테이시 오브라이언 지음, 김정희 옮김 / 은행나무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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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 새를 좋아하셨던 부모님 덕분에 우리 집은 카나리아, 잉꼬, 십자매, 백문조 같은 새들로 넘쳐났었다. 그 중에서 날 가장 사로잡았던 새는 백문조인데 깨끗이 하얀 몸과 선명한 붉은 부리 등 외적인 이유 말고도, 오랜 기간 동안 우리 가족과 함께 했던 새였기 때문이다. 우리 가족의 사랑을 듬뿍 받아서 인지 백문조 한 쌍은 알도 무척 많이 낳고 많은 새끼들을 부화시켰다. 또 사람을 피하지 않아서 내가 새장 문을 열고 손을 집어넣으면 날아와 내 손가락에 사뿐히 내려앉기도 했다. 어렸던 때지만 백문조와 나는 말은 통하지 않아도 분명 서로 다른 것으로 통하고 있다고 믿게 되었다.

웨슬리는 내 인생을 바꾸었다. 그는 나의 스승이요, 동반자요, 자식이자 친구였고, 신을 일깨워 주는 존재였다.                    P. 313

<안녕, 웨슬리> 라는 책은 조금은 생소한 새, 가면올빼미와 작가의 19년 동안의 우정이야기를 담고 있다. 얼핏 보면 관찰일기나 기록장 같기도 하지만 대부분 종이 다른 두 영혼의 아름다운 이야기가 지면을 장식하고 있다. 

 태어난 지 나흘 밖에 안 되었던 작은 생명을 보고 작가는 그렇게 오랜 기간 동안 함께 하리라는 걸 예상할 수 있었을까. 아마 처음엔 작가도 펜필드 박사가 한  “자네가 저 녀석을 길들이면, 저 녀석이 자네를 구해줄 거야” 라는 말을 이해할 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세월이 흘러 웨슬리와 교감이 깊어지고, 떨어질 수 없는 관계가 되고, 또 극적인 상황에 웨슬리가 작가의 희망이 되어주면서 그 말을 뼛속 깊이 새기게 되었을 지도 모른다.

책엔 올빼미들의 여러 습성과 생태에 대한 설명을 자세히 해주고 있다. 그래서 야생에서 살아야 할 새를 사람이 키우려면 어미 노릇을 톡톡히 해야 한다는 것을 배웠다. 작가는 웨슬리가 크는 동안 직접 쥐를 잡아 먹였다. 가면올빼미가 쥐만을 먹기 때문이었는데 하루에 많게는 7~8마리까지 먹어치우니 그 쥐들을 살 수 없다면 직접 잡을 수밖에 없었다. 또 작가는 직접 횃대를 제작하고 웨슬리가 다른 사람들을 공격하지 못하도록 주의 하면서 집안에서 비행연습도 시킨다. 비행연습에 방해가 되는 물건들을 몽땅 치우면서 까지! 

가면올빼미는 분명 다른 길들이는 동물들과는 다르다. 또 아이를 가르치는 방법으로도 대할 수 없다고 한다. 웨슬리에겐 친구, 아니면 적이 있을 뿐이다. 작가가 만약 큰 소리를 내면서 잘못했을 때 화를 내며 길들이려 했다면 웨슬리는 작가를 적으로 간주했을 것이다. 그것이 바로 일생동안 한 배우자와 살아가는 ‘올빼미의 길’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작가는 웨슬리에게 한없는 다정함만을 주었다. 웨슬리만의 ‘올빼미의 길’을 동참하고 이해해 줬기 때문이다. 그리고 웨슬리도 사람인 작가의 생활을 이해하고 함께한다. 

 결말은 예상했지만 흐르는 눈물을 막을 순 없었다. 그렇게 오래 살았던 것이 기적이라는 19년, 책을 통해 웨슬리와 작가의 생활을 봐왔기 때문인지 웨슬리의 죽음이 너무 가슴 아팠다. 마치 내가 키우던 동물이 죽기라도 한 것처럼. 그리고 예전에 떠나간 내가 키우던 동물들 생각이 났다. 나를 바라보던 신뢰가 담긴 눈, 따뜻한 몸짓, 친밀한 행위까지. 
 

 지금도 내 곁엔 8년을 함께한 강아지가 곁에 있다. 성견이지만 워낙 어렸을 때부터 키워 내 강아지라고 밖에 할 수 없는 사랑스러운 아이가. 언젠가 다가올 이별도 두렵지만 그의 마지막 순간에 내가 곁에 없을까봐 무섭다. 작가가 웨슬리의 마지막을 함께한 것이 행운이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그들의 마음을 다 알 순 없겠지만 눈을 마주 보고 몸을 부대끼면서 우리는 서로를 알아간다. 그리고 우리는 서로의 영역을 존중하고 함께 할 수 있는 일을 하며 오늘도 살아간다. 그것이 ‘우리의 길’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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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오토바이
조두진 지음 / 예담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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꽤 오래전의 일이다. 나는 그때 집을 떠나 친구 세 명과 함께 자취를 하고 있었다. 집 떠나면 고생이라는 말이 딱 들어맞을 정도로 나와 친구들은 바쁜 시간과 게으름을 핑계로 밥을 못 챙겨 먹을 때가 많았다. 그날도 점심부터 부실하게 먹고 들어와 쌀독을 열었는데 쌀이 한 톨도 남아있질 않았다. 주머니엔 ‘식권’만 들어있어 우리는 다음 날 식권으로 밥을 먹기로 하고 그날은 굶을 작정이었다. 그리고 부모님과 전화통화를 할 때 우스갯소리로 “쌀이 없어서 굶고 있어요” 라고 말해버렸다. 
 

안개가 유난히 심한 날이었다. 살다 살다 처음 볼 정도의 그날 안개는 자동차의 헤드라이트 불빛이 바로 앞에 다가와서야 보일정도로 짙게 깔려있었다. 그런 날에 아버지는 밤 11시가 넘은 시간에 차를 타고 딸에게 달려오셨다. 쌀 반가마니를 싣고서 말이다. 다음 날까지 12시간 정도만 굶어도 되었을 때에 아버지는 그 정도의 시간도 굶게 하지 않게 하시려고 먼 길을 달려온 것이다. 내 손에 쌀을 쥐어주시고 바로 집으로 돌아가신 아버지의 뒷모습을 보며 얼마나 내 가슴이 쿵쿵 내려앉았는지 모른다. 
 

아버지, 당신은 누구십니까?

나는 얼마나 아버지에 대해 알고 있을까? 나는 다른 사람에게 아버지는 이런 삶을 살아오셨다 하고 말할 만큼 아버지에 대해 잘 알고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렇지 않다. 내가 봐온 아버지의 모습은 가족 안에서의 모습일 뿐 결혼 전엔 어떻게 살아오셨는지 우리가 학교를 다니면서 집을 떠나 있는 시간이 많아졌을 때엔 어떻게 지내셨는지 지금도 잘 알지 못한다. 사실 내 일이 바쁘다는 핑계로 알아보지 않으려 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확실히 알 수 있는 건 아버지의 희생이 나를 만들었다는 사실이다.

<아버지의 오토바이>에 나오는 아버지도 그런 사람이다. 아내와 아들들을 위해 돈을 벌면서 집을 떠나 있으면서 자기 입을 것, 먹을 것 아낀 돈을 모두 집으로 보내는 그런 아버지. 
엄밀히 말해 이야기 속에 엄시헌은 나쁜 사람이다. 그는 돈을 모으기 위해 다른 사람의 주머니를 터는 나쁜 짓도 서슴지 않는다. 하지만 그런 억척스러움 뒤엔 그의 가족이 있었다. 아내와 아픈 첫째 아들, 자라나는 둘째 아들을 키우려면 돈이 필요했다. 설령 이렇게 돈을 모으다 자신이 일을 당하더라도 가족들을 굶기지 않으려는 절실함이 엄시헌에겐 있었다. 그런 아버지를 아들이 비난할 수 있을까? 모든 타인이 비난하더라도 아들은 아버지의 편이 되어야한다. 그 희생과 노력이 자식을 완성시켰으므로. 그래서 엄시헌의 말년이 가슴 아팠다. 아들이 자신을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묵묵히 자신의 뒷일을 준비하는 엄시헌의 모습이 너무나 외로워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아들도 아버지가 됐다. 살아온 방식은 전혀 다르겠지만 자신의 자식을 위한 마음은 같을 것이다. 다른 삶을 살아도 아버지가 걸어온 길을 이해하는 것, 그것이 자식 된 도리가 아닐까. 그리고 그것이 아버지가 희생한 일들에 조금이나마 보상이 된다면 정말 다행스러운 일일 것이다. 
 

난 아버지는 절대 늙지 않을 실 줄 알았다. 하지만 이제 다른 곳에서 할아버지 소리를 듣는 아버지를 보며 세월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 또 검버섯이 피어난 아버지의 손을 보면서도 많은 생각이 넘쳐흐른다. 워낙 무뚝뚝한 딸이라 아버지에게 따뜻하고 정감 있는 말 한마디 하지 못했지만 세월이 더 가기 전에 그 손을 붙잡고 마음속에 담아놨던 말씀을 드려야겠다. 고맙다고, 정말 사랑한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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