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줌마 X
이민아 지음 / 씨네21북스 / 2010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남성중심의 가부장적 사회 분위기속에서 살아가는 이 땅의 여자들은,

그리고 최소한 가족관계 속에서 한민족의 가치관을 갖고 있는 사람이 직계가족의 구성원으로 존재한다면, 여자로서의 삶을 굴레로 재인식하지 않은 사람은 드물 것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살아온 날을 책으로 쓴다면 족히 열권을 넘을 것이여" 라는 말은 드라마틱한 삶을 살아온 여자들이 흔히 하는 말이다. 그리고 문제는 그런 여자들이 참 많다는 현실이다.

이 책에 소개된  여자들의 삶을 들여다보니 우리보다 앞선 세대, 즉 어머니나 할머니 세대만의 용어라고 생각했던 위의 표현이 비단 지난 세대에 그치는 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재삼 확인하게 된다.

아무리 여성들의 사회적 위치가 예전에 비해 높아지고 있다고는 해도 개인적인 영역으로 들어가서 보면, 과연 남녀평등이라는 명제가 실현될 수 있는 것인가에 대해 깊이 회의하게 된다.

일반적으로 관계지향적인 여자의 덕목으로 보더라도 남녀가 대립구조일 때, 상대편을 더 이해하고 품어안는 것은 늘 여자라는 성이다.

해서 수치로 드러나는 남녀평등은 의미가 없다. 각자 성의 개별성과 그 차이점을 인정하고 더 이상 대립구조로 가지 않는 열린 사고를 지향해야 할 뿐.

여자들은 여성으로 자라오면서 '난 결코 아줌마로 살진 않을 거야, 엄마의 인생처럼은 안 살아. 고유의 인격체를 가진 멋진 여자의 삶을 살아야지.' 라고 다짐한번 안해본 사람은 없다.

그러나, 그 다짐은 적어도 미혼의 시절에는 어느정도 유효하지만, 결혼이라는 제도속으로 편입되고 시댁이라는 또 하나의 가정과 슬하에 자녀를 갖게 되면서부터 달라진다. 이건 본인의 의지와는 별개의 문제다. 그리고, 이 땅에서 살아갈려면 어느 정도 각오해야 하는 문제이기도 하다.

누군가의 아내, 누군가의 딸, 며느리, 엄마, 사회속에서의 역할등, 다양한 역할을 충실히 해내고자 바쁘게 살다 보니, 어느날 문득 그토록이나 되고 싶지 않았던 '아줌마'라는 실체가 바로 자신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곤 흠칫 놀라는 순간을 우리는 경험한다. 작가는 그 경험을 어느 순간 '휙'하고 아줌마가 되었다,라고 말한다.

받아들일까, 부정할까. 갈등의 시간을 지나면서 결국은 아줌마라는 이름이 매우 아름답고 건강하고 더 나아가 실존이라는 것을 인정하면서 기쁘게 받아들이게 된다.

 

바로 그 아줌마들의 억척스런 이야기가 이 한 권의 책에 담겨 있다.

작가는 결혼전에는 한국의 기자로 활동하다가 결혼 후 미국에서 수학한 후 한 대학교의 교수로 재직하고 있는데, 치열하게 살아오면서 만나게 된 다양한 여성들의 삶을 보면서 이 책을 구상하게 되었다고 한다. 현실과 허구의 세계 경계에 있는 아줌마들의 이야기를 생각하고, 세상 사람들이 겪는 부산스러운 일상을 수습하고 살려내는 우리들의 엄마, 이모, 아줌마들의 힘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었다고 한다.

총 52편의 아줌마 시리즈는 작가의 이야기, 선배의 이야기, 친구의 이야기, 엄마의 이야기, 를 정말, 과연 진짜일까 싶을 정도로 솔직하고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힘든 시집살이에 한이 맺힌 여자, 질투하고 후회하고 허영심으로 한 순간에 삶이 엉크러져 버린 여자, 살림만 한 여자, 외로워하는 여자, 제2삶을 꿈꾸는 여자들의 이야기가 라디오 프로그램의 사연처럼 맛깔나게 소개되어 같이 한숨쉬고, 웃고, 가슴쓸어내리게 한다.

어쩌면 지금 이 순간에도 나만 억울해, 나는 왜 이렇게 불행할까. 자책하고 괴로워하는 사람에게 힘든 인생을 사는 사람은 당신만이 아니야. 당신처럼 힘들게 살지만 그래도 희망을 잃지 않고 다시 일어서는 당신의 동료가 바로 여기 있어, 하고 위로해 준다.

 

미디어에서 보여주는 여성들의 삶은 사실 진짜가 아니다. 조금만 시선을 기울여 깊이 들여다 보면 누구나 알 수 있는 것이다. 다만, 제대로 보지 않는 것은 고단한 일상은 나와 상관없는 양 , 외면하고 싶은 마음에서이다. 그러나, 우리 삶에 용기를 주고, 위로가 되어주고 연대가 가능한 삶은 바로 우리 주변의 진짜 아줌마들의 이야기다.

그리고, 바로 일상을 성실히 살아가는, '아줌마' 라는 이름을 자랑스레 걸치고 살아가는 우리 삶의 모습, 그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대가의 식탁을 탐하다
박은주 지음 / 미래인(미래M&B,미래엠앤비) / 2010년 12월
평점 :
절판


요즘 인터넷 동네에서는 일명 '맥도날드 할머니'얘기로 시끄럽다.

요는 과거 이력과 경력이 화려한 한 할머니가 이제는 오갈데없이 맥도날드 매장에서 새우잠을 자며 하루 커피 한 잔으로 예전의 품위를 지키는 이야기로 압축할 수 있는데, 이 할머니에 대한 누리꾼들의 반응이 설왕설래다.

이 일화를 통해 우리가 느낄 수 있는 것은 비단 음식이란 먹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닌, 그 사람이 속한 사회, 계층, 문화 등을 대변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개개의 음식이 갖고 있는 고유한 이미지는 인간사회처럼 다양하게 분류되어 있다. 해서 어떤 음식을 먹는다는 이유 하나로 한 사람에 대한 호감이 급상승하기도 하고, 때로는 가식적인 음식애호의 모습을 통해 위선을 감지하기도 한다. 가족이라는 말은 식구라는 말로 대체되기도 하는데, 식구의 뜻이 바로 밥을 같이 먹는다는 의미이기도 한데, 한 식탁에서 요리를 함께 한다는 것은 많은 의미를 내포한다.

단순히 음식이 배고픔을 달래기 위한 것이라면, 그 많은 음식에 관한 담론은 존재하지 않았을 터.

장소와 상황에 적절한 요리는 그 상태를 최상의 것으로 업그레이드 시켜주는 주요한 위치를 차지하기도 한다.

흔히, 오감과 함께 각인된 기억은 오랜 시간 깊은 추억으로 자리매김하는 경우를 우리를 경험한다.

그 중에서도 후각으로 기억되는 것들을 얘기하자면, 향기로운 차, 달달한 코코아, 과즙이 넘치는 달콤한 딸기, 구수한 숯불구이고기, 상황과 함께 거론해 보자면, 이른 아침 깊은숲과 함께 깨어나 마시는 커피, 그 커피향과 함께 각인된 산풍경....이와 같이 음식을 매개로 하여 기억 속에서 튀어나오는 풍경들은 훨씬 더 선명하고 직접적이다.

 

"당신이 먹는 것을 말해주시오. 그러면 당신이 누구인지 말해주리다" - 브리야 샤바랭

 

브리야 샤바랭의 말에 기대어 <대가의 식탁을 탐하다>는 역사 속 유명한 사람들과 그들의 '소울푸드' 요리와의 얽혀 있는 여러가지 이야기를 담고 있다.

저자가 기자출신인 관계로 책 속 내용은 저자 자신이  유명인과 직접 인터뷰하듯이 각색하여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는데, 단순히 음식이야기에 그치지 않고, 유명인의 일생 전체를 핵심적인 부분만 거론해주고 있어 우리가 익히 알고 있던 사람들이라도 새로운 목소리로 듣는 듯 흥미롭다.

많은 것을 담아 내다 보니 다소 번잡스럽게 느껴지는 부분도 없진 않지만, 지인들과의 식탁에서 소소하게 화제거리로 이용해볼 만한 내용이 심심찮게 있어 유익했다.(유식한 척, 잘난 체를 해볼 참이다.)

일테면, 와인따개, 스파게티를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발명했다든가, 쿠바의 대표적인 음료인 모히토는 럼주에 민트향이 가미되고 라임과 설탕이 들어간 것으로 헤밍웨이가 좋아했던 것이란다, 동파육은 중국의 동파 소식과 관련된 음식이다, 등.

이 책에 거론된 유명인들은 특정음식을 좋아했던 것도 있지만, 다빈치의 경우처럼 직접 자신이 창조한 대표요리가 있기도 하다.

발자크의 커피사랑은 그야말로 상상을 초월했고, 송이버섯이 비싼 줄로만 알았지, 송로버섯이 그리 귀하다는 사실은 오페라 작곡가 로시니 덕분이었다. 

로시니는 미식가여서 자신의 이름이 붙은 투네도스 로시니 스테이크라는 송로버섯이 들어간 음식을 즐겨 먹었을 정도다.

음식은 마치 고향같아서 어린 시절에 각인된 미각의 기억은 쉽게 떨치질 못한다. 가장 단적인 예로 입덧을 하는 여성들이 가장 즐겨 찾는 요리가 바로 엄마가 해주신 요리인 것을 보면 알 수가 있다.

정크푸드를 사랑했던 엘비스 프레슬리는 성공한 이후에도 만들기 쉽고 양이 많고 푸짐한 남부 스타일 음식을 좋아했다.

엘비스의 이야기를 전하며, 저자는 '소울 푸드'란, 뭔가 거창한 것이 아닌 자기의 가장 비참한 인생이 아름답게 녹아 있는 음식이라고 정의내리기도 한다.

이 외에도 카베이용 멜론과 책 500권을 맞바꿨던 뒤마, 사랑과 이별의 무형문화재 카사노바가 즐겨먹던 굴과 구더기치즈 "카스 마르주", 괴테의 감자, 샴페인을 통해서 엿본 마릴린 먼로의 삶, 등 총 13명의 명사와 요리이야기들은 매우 재미있다. 각 단락마다 대표요리 레시피가 실려 있으며, 명언이나, 음식과 관련된 간략한 상식시리즈, 등은 꽤 유용하다. (물론, 실생활에서 이용해야만 하지만..책을 덮는 순간 까맣게 잊을지도 모른다)

 

그리 심하지 않은 수술을 하고 일주일간의 회복기간동안 외출이 부자유스러웠던 나는 돌봐줄 누군가도 없었는데, 그 시간을 바게트 빵조각으로 견뎌내었던 기억이 있다.

일주일의 시간만 지나면, 나는 다시 세상속으로 자유롭게 어디든지 갈 수가 있어, 라는 명제 하나를 붙들고 오로지 그 시간을 지나왔었던 기억.

지금도 빵집을 지나다가 바게트 빵을 보게 되면, 그때의 기억이 주마등처럼 생생하게 스쳐 지나간다.

'당신이 먹은 것을 말해보라. 당신의 꿈을 말해주겠다.' 음식에 담긴 건 맛이 아니라, 어쩌면 꿈인지로 모르겠다는 저자의 말이다.

과연 그런가...그럴지도 모른다. 배고픔이라는 1차적인 본능을 해결하고 나면, 우리는 요리에 기대어 꿈을 꾸는지도...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조벽 교수의 인재 혁명 - 대한민국 인재 교육을 위한 희망선언 희망의 교육 5부작 3
조벽 지음 / 해냄 / 2010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교육계의 마이클 조던', '교수를 가르치는 교수'로 불리는 세계적인 교수법의 권위자 조벽 교수의 인재혁명은 한국의 인재 교육이 나아가야 할 방향과 희망선언을 담아내고 있다.

21세기 교육에는 주목해야 할 것은, 학습자 중심의 교육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기존의 주입식 교육으로는 21세기를 이끌어갈 인재를 결코 육성할 수 없다는 것은 교육의 3주체, 즉 학부모, 교사, 학생은 누구나 어렴풋하지만 알고 있는 사실이다. 다만, 굳건한 현실에서 인정한다는 것이 어렵고 새로운 방법에 대한 확신이 어렵기 때문에 더 정확하게는 그 방법을 알지 못하기에 기존의 학습법을 .흐르는 물살에 몸을 내맡기듯이 그렇게 답습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거대한 강물의 도도한 흐름을 막을 수 없는 것처럼 이제는 21세기를 대비해서 새로운 교육시스템을 받아들여야 하는 시점에 우리는 와 있다.

 

교육계에 근무한 지 올 해로 꼭 20년째다. 개교기념일에 20년 근속 표창장을 금반지 세돈의 부상과 함께 수상하게 될 것이다(3월 7일)

관심의 유무와 관계없이 저절로 습득하게 되는 교육의 흐름, 방향, 전망 등이 정보가 내게는 축적되어 있다.

글로벌화, 세계화에 걸맞는 인재 양성, 평생교육의 시대, 창의력이 이제는 관건이다. 등은 어제 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그러나, 정작 슬로건은 다양하게 바뀌어 왔어도 교육의 혹은 학습의 방법은 예나 지금이나 별반 다르지가 않다.

우리나라 교육현실의 문제점 또한 누구나 알고 있고, 바꾸어야 할 필요성 또한 절실하지만,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하는지 알지 못한다.

그저 남보다 상대적으로 지식정보를 하나라도 더 알고 있어야 안심이 되기에 고개를 갸웃거리면서도 오늘도 사교육현장으로 아이를 내몰 뿐이다.

안의 문제는 안에서 보면 절대로 그 해결책을 찾을 수가 없다. 밖에서 볼 때 객관적인 시선이 가능하고 해답을 도출해낼 수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전적으로 외국의 교육현장을 다양하게 경험한 저자의 의견은 많은 공감을 불러일으키고 그만큼 설득력도 지니고 있다.

12년 교육으로 평생 살아갈 지혜를 얻었다고 하기에는 세상은 너무 빨리 변한다. 저자는 말한다. 이제는 단거리 선수가 아닌 마라톤 선수로서의 자세를 학생, 학부모, 교사가 갖추어야 한다고 말이다.

글로벌 시대의 인재에게 요구되는 세 가지는 천,지,인 세 가지 실력이라고 압축한다.

천이 의미하는 것은 바로 창의성, 하늘같이 활짝 열린 사고력을 말함이며, 즉 새로운 일을 개척하거나, 같은 일이라도 새로운 방법으로 풀어 나갈 줄 아는 능력이다.

지가 의미하는 것은 전문성, 땅같이 단단한 전문적 기반을 의미하는 것으로서 풀어 말하면 정보 홍수 시대에서 일컫는 전문성이란 평생학습을 추구할 수 있는 능력을 뜻한다.

인이 의미하는 것은 인성이다. 사회가 고도로 발전하고 복잡해서 혼자 해결할 수 없는 일이 많아짐으로 다양한 능력과 지식을 지닌 사람들이 함께 팀워크와 네트쿼크를 이루어 일해야 한다. 따라서, 인성이란 바로 '남과 더불어 일할 수 있는 능력'을 의미한다. 이 능력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사회생활을 해 본 사람은 누구나 알 것이며, 또한 쉽게 만들어지는 능력이 아니라는 사실도 알고 있다.

 

이와 같은 실력을 키우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교수자 중심이 아닌 학습자 중심이 교육이 이루어져야 하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는 선행과제이다.

해서, 그 동안 학습자 위주의 교육이라고 새롭게 시도된 교수법이 고작 '수준별로 설명하는 교수법'이었다. 그러나, 이 교수법 또한 교수자가 주도하는 교수자 중심 교수법이기에 학습자 중심 교육의 본질에는 미치지 못한다. 따라서 '스스로 배우도록 도와주는 교수법'은 학생이 수업의 주체자가 되도록 유도하는 학습자 중심 교수법이라고 저자는 주장한다. 평생교육 시대의 교육자는 '경험이 풍부한 학습자'로서 지식전달에 치중하지 않고 학생에게 '학습의 멘토'가 되어 펴생 학습의 구체적인 모델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교수학습법에 대한 연구는 약 5년 전부터 전국의 대학에서 주목했던 분야였다.

각 대학마다 이와 관련된 부서를 신설하고 인적, 물적 자원을 집중 투자했지만, 아직까지는 괄목할 만한 성과를 내지 못한 것으로 알고 있다.

그에 대한 중요성은 진즉에 깨닫고 있었으나, 여러 조직간의 이해요구로 인해 실천적인 방안을 만들어내지 못햤고, 현 우리학교의 교수학습법 분야는 답보 상태에 머물러 있다.

학생들에게 가르쳐야 할 것은 단순한 지식이 아닌, 미래에 대한 비젼, 희망을 갖는 것, 삶을 왜 살아야 하는지를 아는 것, 바로 그것이다.

쉽게 풀이하자면 물고기를 잡아서 줄 것이 아니라, 물고기를 잡는 방법을 가르치는 것.

그러나, 대학 줄서기, 학벌중심주의, 스펙쌓기에만 매달리는 우리나라의 교육환경 속에서는 알면서도 실천하기가 요원한 문제이기도 하다.

초,중,고를 주입식 교육에만 오로지 매달려온 아이들은 학문탐구에 열을 올려야 하는 대학에서도 모든 것을 누군가가 떠먹여주기를 원하는 실정이다.

2월에 우리 학교에서는 2011학년도 신입생들을 위한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있다. 단순한 오리엔테이션이 아닌 대학에서 그들이 꿈꾸고 계획하고 진정 인생에서 얻어야 할 것이 무엇인지 그 출발점을 인지시키기 위한 프로그램이다. 일명 2011년 신입생 희망디자인 프로그램. 이미 유수의 대학에서는 몇년전부터 많은 예산을 투입하여 실시하고 있지만, 지방의 작은 국립대로서는 2억원의 예산을 투입한다는 것은 그만큼 절실한 이유가 있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이 책 속에는 놀라운 말이 숨어 있었다. 이 책을 만나본 적이 없었던 우리 부서원은 신입생들을 위한 프로그램 제목을 '희망 디자인'이라고 명명하였다.

그런데, 이 책의 107페이지에는 이런 말이 있었다.

"성취를 많이 한 사람은 희망을 갖고 태어난 게 아니라 희망을 배우고 선택한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은 자신의 고유한 장점을 발견해 발전시킬 때 가장 즐거워합니다"

바로 이 것이 우리가 이 프로그램을 야심차게 기획하면서 생각했던 바다.

시입생 각자에게 맞는 비젼을 가지고 희망을 디자인하라. 그 디자인을 바탕으로 대학 4년을 설계하라. 그리고 사회에 나가서 네 삶을 펼쳐라.

멋지지 않은가. 현재 나에게 가장 필요했던 책이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대장경 - 개정판
조정래 지음 / 해냄 / 2010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작가정신의 승리라 불리는 조정래님을 맨처음 알게 된 것은 대하소설 <태백산맥>을 통해서였다.

10권의 책이 나란히 꽂혀 있던 책장을 보며 낯선 책을 읽을까, 말까 망설이다가 대하소설을 좋아했던 나는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완독하리라는 각오로

드디어 1권의 첫장을 넘겼을 때, 나를 강하게 흡입했던 그 마력을 오랜 시간이 흘렀어도 잊을 수가 없다.

이후 <아리랑>, <한강>을 연달아 읽으면서도 이상하게도 작가의 대하소설이 아닌 다른 책들을 만나봐야겠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는데,

우연한 기회에 이렇게 <불놀이>에 이어  <대장경>을 접하게 되면서 다시 한번 작가의 소설세계에 대한 깊은 외경의 마음을 갖게 되었다.

참으로 대단하시단 말씀 외에는 그 어떤 말씀을 할 수 있겠는가.

표지속 작가의 모습은 내 눈에는 민족정신을 대표하는 지사의 모습이 이러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까지 품게 한다.

 

'시공을 초월한 예술혼'이 담겨 있는 <대장경>은 작가의 처녀 장편소설이다.

우리는 지금도 불법의 힘으로 외적을 물리칠 수 있다는 마음을 담아 팔만대장경이 완성되었다고 역사시간에 배우고 있다. 하나, 작가는 32살에 해인사의 팔만대장경이 민족의 거대하고 거룩한 문화유산일 수는 있으나, 불법의 힘으로 제작 당시 몽고의 난을 물리칠 수 있다는 당시 집권세력의 정치술수를 정면으로 부정하여 이 소설을 쓰게 되었다고 한다.

따라서, <대장경>은 저자의 표현을 빌리면 위대하고 칼칼하고 싱싱한 예술품의 가치를 담아낸 것이다.

중,고등학교 시절 대부분 학생들은 수학여행을 통해서 합천 해인사의 팔만대장경을 처음 만난다. 그리고 그 안에 담긴 호국정신에 대해서, 더 나아가 경판제작과정에 따른 과학적인 방법을 이용한 조상들의 놀라운 지혜에 대해서 배우게 된다.

경판전 안에 마치 서고처럼 일렬로 겹겹히 나열되어 있는 경판들은 그 과정이나 배경에 대해서 제대로 알지 못하면 그냥 스치는 보물에 지나지 않는다.

금관처럼 화려해서 눈을 끄는 것도 아니고, 탑신이나 시대양식을 드러내는 건축물처럼 쉽게 와 닿는 이미지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다만, 그 많은 수천만 개의 글자 하나 하나가 오자·탈자없이 모두 고르고 정밀하게 판각했다는 사실이 놀랍고 경이로와서 오히려 현실감이 떨어지기에 믿기지 않을 뿐. 그러나,  오랜 시간 고스란히 형태의 변형도 없이 보관해올 수 있었던 지혜, 경판전 주위에 숯을 묻은 이유, 창문을 위쪽과 아래쪽의 방향을 달리 내어 습도와 외부의 빛으로부터 보호했다는 사실, 제작에 소요되었던 시간, 인원, 신심, 합심, 등등에 대해서 조금이라도 알고 마주 대하면 팔만대장경은 예술품에 대해서 문외한이었던 사람에게도 매우 놀라운 그래서 더 귀중한 문화유산으로 다가오게 된다.

 

역사적 사실을 살펴 보면, 고려 현종 때 의천이 만든 초조대장경이 몽고의 침략으로 불타 없어지자 다시 대장경을 만들었으며, 재조대장경이라고도 하며,  또한 판수가 8만여 개에 달하고 8만4천 번뇌에 해당하는 8만4천 법문을 실었다고 하여 '8만대장경'이라고도 부른다.  몽고군의 침입을 불교의 힘으로 막아보고자 하는 뜻으로 국가적인 차원에서 대장도감이라는 임시기구를 설치하여 새긴 것이다. 원래 강화도 성 서문 밖의 대장경판당에 보관되었던 것을 선원사를 거쳐 태조 7년(1398) 5월에 해인사로 옮겨 오늘날까지 이어오고 있다.

 

저자는 <대장경>에서 그 줄거리는 역사적 사실을 기본으로 하여 국난 중에도 책임회피로 일관하는 부패한 정치권력 앞에 순수한 불심과 뜨거운 애국심으로 무장한 민초들의 피와 땀, 그리고 의지를 그야말로 감동스럽게 그려내고 있다. 위대한 예술품은 결코 그냥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온 몸으로 배우게 해주는 작품이다.


생명의 업을 인식한 한 인간이 스스로의 생명을 불살라 가며 한 가지 일에 몰두할 때 또 하나 새로운 신앙은 만들어지는 것이라 싶었다.(307p)

 

소설 첫줄을 쓰고, 28일 만에 끝줄을 썼다는 저자는 경판전을 지은 목수 근필처럼 혼을 담아 이 소설을 써낸 것이라 짐작할 수 있다.

소설 속에 담긴 작가의 뜨겁고도 절실한 예술혼을 느끼다 보면 작가에게 있어 소설은

스스로의 생명을 불살라 쓰는 신앙이라는 것을 ,

그래서 그가 얼마나 위대한 작가인가를 우리는 저절로 깨닫게 될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곰스크로 가는 기차 (양장)
프리츠 오르트만 지음, 안병률 옮김, 최규석 그림 / 북인더갭 / 2010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단막극이나 연극으로 자주 상영되었었다는 <곰스크로 가는 기차>. 그러나 난 한번도 들어본 적이 없었다.

낯설은 작가와 낯설지만 왠지 마음을 끄는 제목. 두 손에 받아든 책은 꽤 구미를 당겼다.

반복되는 일상속에서 허덕이며 살아가는 사람들..사이사이 한번씩 먼 데 시선을 주기도 하고, 때로는 내가 살고자 했던 삶의 모습은 어떤 모습이었지, 하며 회한에 젖어보기도 하지만, 다시 쳇바퀴처럼 굴러오는 주어진 삶에 무게에 성실히 몸을 던지고 만다. 바로 현실이 우리가 꾸려가는 삶의 모습인 것이다.

<곰스크로 가는 기차>에는 총 8편의 단편이 실려 있고, 그 중에서도 표지 제목으로  선택된 <곰스크로 가는 기차>가 대표성을 띨 만큼 담고 있는 주제가 나머지 단편의 내용을 아우른다.

<곰스크로 가는 기차>는 이제 막 결혼식을 마친 신혼부부는 곰스크로 가는 기차에 오른다. 남편은 어린시절부터 아버지에게서 들었던 곰스크를 꼭 가야만 했고, 이제 인생의 출발점에 선 시점에서 곰스크는 아주 중요한 곳이었다. 그러나, 아내는 남편과는 달리 곰스크를 꼭 가야만 할 이유가 없었다. 다만, 남편이 원하니까 같이 가는 것일뿐. 마음 한켠에는 가고 싶지 않은 마음이 자리하고 있어 결국 기차가 중간에 쉬는 역에서 잠시 내리게 된다. 남편은 다시 곰스크를 향해 기차를 타려 하지만 아내의 손길에 이끌려 마을풍경을 보다가 그만 기차를 놓쳐버리고 만다. 기차표는 매우 비싸 남편은 두 장의 기차표를 구입하기 위해 마을에서 일거리를 구하게 된다. 일시적인 삶이라 생각하는 남편과는 달리 아내는 마을을 사랑하고 그 곳의 삶을 즐거워한다. 살림살이를 사들이고, 안락의자도 산다. 간신히 기차표를 구하지만, 안락의자를 갖고 가려는 아내의 주장으로 안락의자에 대한 비용이 없어 다시 기차를 타지 못하는 남편. 그리고 알게 된다. 아내가 자신의 아이를 가졌다는 것을. 그 이후의 이야기는 우리의 예상대로다. 결국 그들은 곰스크로 가지 못한 채 그 마을에 정착해서 살아간다. 정원이 딸린 아늑한 집을 얻고, 안락한 삶이 보장되는 선생직을 물려받아 마을의 구성원으로 살게 되지만, 그러나 남편은 단 한번도 곰스크를 잊은 적이 없다.

그런 남편에게 그와 비슷한 인생을 살아온 나이든 선생은 말한다. '당신은 이미 당신이 원하는 삶을 살았다'라고. 어쩌면 유토피아는 저 멀리 피안의 세상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지금 여기, 우리가 서 있는 자리에 있는 것이라고 저자는 역설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을 가만히 읊어 본다.

 



가지 않은 길



노란 숲 속에 길이 두 갈래로 났었습니다.

나는 두 길을 다 가지 못하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하면서,

오랫동안 서서 한 길이 굽어 꺾여 내려간 데까지,

바라다볼 수 있는 데까지 멀리 바라다보았습니다.

 

그리고, 똑같이 아름다운 다른 길을 택했습니다.

그 길에는 풀이 더 있고 사람이 걸은 자취가 적어,

아마 더 걸어야 될 길이라고 나는 생각했었던 게지요.

그 길을 걸으므로, 그 길도 거의 같아질 것이지만.

 

그 날 아침 두 길에는

낙엽을 밟은 자취는 없었습니다.

아, 나는 다음 날을 위하여 한 길은 남겨 두었습니다.

길은 길에 연하여 끝없으므로

내가 다시 돌아올 것을 의심하면서…….

 

훗날에 훗날에 나는 어디선가

한숨을 쉬며 이야기할 것입니다.

숲 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다고,

나는 사람이 적게 간 길을 택하였다고,

그리고 그것 때문에 모든 것이 달라졌다고.

 


누구나 기나긴 인생의 행로에서 선택이라는 기로에 서게 된다. 비록 피치 못할 이유로 선택하지 못한 길에 대한 많은 회한이 따르겠지만, 이 또한 자신의 삶에 대한 선택이고 그것이 바로 자신인 것은 부인할 수가 없는 일.

<곰스크로 가는 기차>에 소개되는 단편들은 다양하면서도 세련된 비유와 상징적인 표현이 독자로 하여금 여러가지 해석이 가능하게 하는 열린 구조의 형식을 갖고 있어 읽고 난 후에도 여운이 길게 남는 책이다. 스스로에게 던지는 인생에 대한 날카로운 질문과 생에 대한 깊은 성찰이 안개향처럼 스며드는 책향.

<곰스크로 가는 기차>가 갖고 있는 매력이다.

 

<곰스크로 가는 기차>를 상상하며 작년초에 읽었던 '1Q84'를 떠올렸다. 덴고가 아버지가 계시는 요양병원으로 가는 기차, 그 기차가 머무는 마을, 그 마을의 풍경 등이 마치 스케치라도 하는 것처럼 눈 앞을 스쳐 지나갔다. 물론,  두 책속의 기차가 머무는 마을이 상징하는 의미는 다르지만,  덴고의 마음속 풍경이나, 기차를 타야 하는 배경 등이 비슷하게 다가왔다. (어디까지나 사견임).

 

이 책을 읽는 내내, 나에게 가지 않은 길은 무엇일까. 나의 곰스크는 어디일까..라는 물음이 머리속을 휘젓는 기차바퀴소리와 함께 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