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러 오브 워터 - 흑인 아들이 백인 어머니에게 바치는 글
제임스 맥브라이드 지음, 황정아 옮김 / 올(사피엔스21)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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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흑인을 얼굴을 한 아들이 백인인 엄마에게 묻는다.
"엄마는 왜 나랑 안 닮았어요? 나는 흑인이에요, 백인이에요?"
"넌 그냥 인간이란다. ""그럼 하느님은요?""아들아, 하느님은 백인도 흑인도 아니야. 물빛이란다. 아무 색깔도 없는 물빛."
 
인종적인 차별과 편견을 딛고 자신만의 삶을 완성한 백인 어머니와 그 어머니의 삶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흑인 아들의 감동적인 이야기가 담긴 자전적 소설인 <컬러 오브 워터>의 제목은 바로 위의 내용에서 따온 것이다.
우리 연배에는 비교적 늦은 나이에 결혼해서 남매를 키우며 직장생활을 하고 있는 아주 평범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나같은 사람에게도 삶은 결코 녹록치가 않다. 더군다나 나는 내나라 내땅에서 같은 모습과 정서를 함께 하는 동족들속에서의 삶인데도 그렇다.
<컬러 오브 워터>에 나오는 '루스'라는 백인여성의 일생을 접하면서 난 얼마나 나약한 사람이었는가, 라는 자각과 함께 새로운 다짐을 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루스'는 폴란드에서 태어난 유대인으로서 미국으로 이민 온 가정에서 성장한 여성이다.
그녀는 랍비인 아버지 아래서 철저히 유대인으로 성장하지만, 모순된 가정환경을 벗어나고자 남부를 떠나 뉴욕으로 향한다.
그녀는 뉴욕에서 이 책의 지은이인 제임스의 아버지이자 첫 남편을 만나 진정한 가족애가 무엇인지를 배우고 깨달으며 새롭게 태어난다. 그는 흑인이었지만, 성실하고 강건하고 지혜로운 사람이었으며, 그녀는 유대교를 버리고 남편과 함께 침례교회를 개척하게 된다.
그와의 사이에 여덟 명의 아이를 얻고 비록 가난하나 매우 행복하고 단란한 가정을 꾸리지만, 불행히도 남편은 폐암으로 세상을 떠나게 된다. 뱃속의 아이까지 여덞명의 자식을 가진 엄마는 강할 수 밖에 없다. 그녀는 재혼을 통해 다시 네 아이를 얻게 되고 세상의 시선에는 아랑곳하지 않은 채, 자신만의 소신대로 아이들을 양육한다. 물론, 12명의 아이들은 모두 훌륭하게 자라서 각자 제 몫을 다해내고 있다. 두 명의 남편과 한 아이를 먼저 저세상으로 보내고 난 후에도 그녀는 뒤늦게 학구열을 불태워 사회복지행정으로 학위를 받고, 갈 곳 없는 십대미혼모들을 위한 쉼터, 필라델피아 응급센터에서 자원봉사활동을 하기도 하고 독서클럽을 운영하기도 하면 여전히 당당하고 씩씩하게 자신의 삶을 완성해 간다. 이번 책은 <컬러 오브 워터>출간 10주년을 기념하는 판으로 '루스'의 12명의 자녀에 대한 자세한 설명과 그녀의 평생이력이 나와 잇다. 각주를 보면, 루스 맥브라이드 조던은 2010년 1월에 88세의 나이로 사망했다고 한다. [뉴욕타임스]에서는 장문의 기사로 그녀의 죽음을 애도했으며, 기사는 루스의 생애를 단순히 역겨을 이겨낸 한 여성의 성공담이 아닌 미국 전체를 대표하는 상징적인 인물로 그녀를 표현하고 있다고 한다.
책의 구성은  그녀의 삶 전체에 대한 내용이 그녀와 그녀의 아들 제임스의 시각에서 교차되어 그려지고 있다.
책 속에는 그녀 가족의 삶을 통해 192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의 미국사회의 여러 모습들을 아주 다양한 시각에서 그려놓고 있어 미국사회에 대한 생활속에 연관된 그들의 의식과 문화를 접할 수 있는 아주 독특한 경험을 했다.
 
 한 개인의 삶을 들여다보는 작업은 언제나 깊은 감동을 수반한다. 더구나 그 삶이 평범하지 않고 많은 장애와 고난이 있었음에도 결코 굴하지 않고 자신의 삶을 완성한 사람을 접했을 때에는 '진실은 허구보다 더 낯선 것'이라는 제임스의 표현을 빌리지 않을 수 없다.
루스와 그녀의 아이들 이야기는 2백만 부 이상 팔렸으며, 스무 개 언어로 번역되었고, 매년 사회학, 문학, 역사, 그리고 문예창작을 전공하는 수천명의 학생들의 교재로 사용되고 있다고 한다. 이는 이 책에 담긴 내용이 비록 의도하지 않았느나 인종차별주의, 성차별주의, 계급차별주의, 사회경제에 관한 문제들에 대해 지나치지 못하고 한번쯤은 자신들의 삶속에서 깊이 성찰해봐야 할 문제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하나, 세상사에는 해답이 없는 질문들이 있기 마련이고, 또한, 질문이 없는 해답도 있는 것이다.
다양한 문제들에 그 누구가 이것이 정답이라고 자신있게 말해줄 수 있겠는가.
우리는 다만, 이 책을 통해 우리가 살아가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랑'이라는 것을 다시 깨닫는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에 승리하는 것도 바로 사랑이라는 것을 배우게 되는 것. 무엇보다도 각종 차별이나 편견에도 우리를 구원해 주는 것은 '가족간의 사랑'외에는 그 무엇도 아니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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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그림 수집가들 - 알면 사랑하게 되고 사랑하니 모으게 되더라
손영옥 지음 / 글항아리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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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일이다.

문화예술계에서 나름 인정받고 있는 후배가 메신저로 말을 걸어왔다.

미니홈피에 그림 몇 개를 걸어놓았으니 어떤 것이 좋은지 한번 봐달라는 요청이다.

말과 꽃과 페라리 자동차가 어우러진 신예작가의 그림 여럿이 걸려 있었는데, 무엇인가 모던한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그런 세련된 화풍이었다. 그러나, 사실 그 그림들은 내 취향은 아니었고 해서 그 중에서 가장 자연스런 그림을 선택했는데, 후배 왈,

고르신 그림이 가장 그림답지만, 훗날 돈이 될 그림은 페라리가 있는 그림이라는 설명을 곁들이며, 바로 그 그림을 구입했다고 한다. 근래 들어 가장 주목받고 있는 작가의 그림이기에 분명코 돈이 될 거라는 후배의 말을 경청하며, 혹시나 나도 하는 마음에 그림 가격을 물어 보니 당시의 내 주머니 사정으로는 생각도 못할 액수여서 마음을 접었었던 기억이 있다.

<조선의 그림 수집가들>에 소개되는 수장인들의 그 열정과 감식안에는 감히 미치지 못하지만, 나름 문화예술계 전반에 걸쳐 지속적인 관심을 갖고  있었다. 그 지식이 비록 깊지 못하고 수박 겉 핥듯이 그렇게 스스로 자족하는 수준에 그치지만, 무엇인가에 심미안을 가진 자에 대한 공감과 이해를 할 수 있는 소양은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

올 봄, <페기 구겐하임 자서전>을 통해 20세기 서양미술사의 전설적인 미술중독가에 대해서 알게 된 계기가 되었다.

한 권의 책으로 다 알 수는 없겠지만, 페기라는 한 여성이 어떻게 해서 미술이라는 분야에서 지대한 역할을 하게 되었는지, 그가 이룬 업적은 무엇인지에 대해서 살짝 들여다볼 수 있었던 의미있는 시간이었다.

그때는 몰랐었다. 우리 나라에도 서화수집가들이 있었다는 그 사실을 말이다.

그러나, 우리가 만나는 지난 시대의 역작들은 분명코 누군가가 그것의 가치를 알고 소중히 간직하고 보존해 왔기에 오늘날까지 전해내려오게 된 것이 아니었겠는가.

저자는 지금으로부터 가장 그 추적이 용이한 조선시대의 그림 수집가들에 대해서 이 책을 통해 우리에게 들려준다.

우선 서화 수장에 빠졌던 왕과 왕자들로 그 포문을 열고 있는데, 이 책이 아니어도 세종의 아들 안평대군이 시서화에 능하고 아꼈다는 사실 정도는 역사에 조금만 관심이 있는 자라면 누구나 알고 있을 것이다.

비운의 왕자로만 알고 있었던 월산대군, 또한 서화 애호의 삶을 [풍월정집]에 남길 정도로 즐겼다 하니, 아마도 시대를 비껴간 자신의 삶을 위로하고자 서화속의 세상에 빠진 것이 아닌가 한다.

성종은 예술 후원가로서의 공에 주목할 필요가 있고, 그의 유전자는 아들 연산군에게도 전수되었으니, 비록 패륜적 행위와 폭정은 마땅히 지탄받아야 하나 궁중 미술의 발전적인 측면에서 보았을 때, 파격적인 스타일의 서화를 즐길 수 있게 제도적인 벽을 부순 것은 그의 공이라고 할 만하다.


퐁속화가 만개한 것은 18세기 후반 정조시대였다. 웃음과 해학을 추구한 정조의 화원화가였던 김홍도, 김득신, 조영석 등의 해학과 골계미를 갖춘 작품들이 탄생될 수 있었던 것이다. 또한, 왕이 마음대로 부릴 수 있는 화원제도를 만들어 18세기 화단을 풍미했던 쟁쟁한 조선시대 화원들을 육성할 수 있었다.

그런가 하면, 양반층에서도 미술품 수집가들이 있었으니 그들은 탐욕과 자족의 기로에서 늘 시험받곤 했다.

과시적 컬렉션 문화를 꾸짖던 박지원, 벼슬 대신 예술품을 선택한 선비 김광수, 그림 수집에 탐닉하여 거지 신세가 되어 버린 이조묵, 그림의 투자가치를 알았던 시인 컬렉터 이병연, 조선의 매디치가 안동김씨 가문 등.

서양의 페기 구겐하임도 그렇고, 현대의 수집가들고 그러하지만 사실 그림수장가들은 막강한 재력이 뒷받침 되지 않고는 감히 생각하지도 못한 취미생활이다. 따라서, 왕족이나 권력과 재산을 가진 양반계층이 아니고서는 컬렉터로서의 호사를 누리기는 매우 어려울 터.

18세기부터 점점 신분제도의 경직성이 이완되고 중국으로부터 서양의 문물들이 유입되기 시작하면서부터 역관이나 의관의 직업을 가진 중인들의 역할이 중요해지기 시작했다.

그들은 중국 사행을 오가면서 약재 무역을 통해 엄청난 부를 축적하게 되었고, 이런 재력을 바탕으로 하여 한 시대를 풍미하는 수장가들이 탄생하게 되었다.

그중에서도 석농 김광국은 영,정조시대의 의관으로서 네널란드 동판화에서부터 일본의 우키요에까지. 18세기 최고의 컬렉터로서 그 이름을 날렸다. 중국화, 서양화, 일본화 뿐 만 아니라 조선시대 유명화가의 그림까지 그의 영역은 매우 폭넓었다고 한다.

현재 영국이 보유하고 있는 [여사잠도권]이라는 중국화에 건륭황제와 함께 나란히 수장인을 찍은 안기에 대한 내용은 역사의 엄중함과 기록의 위대함을 알게 해준다. 이 외에도 중인그림을 좋아했던 라기, 민족주의적 컬렉터였던 오세창 등 각각의 매력적인 수집가로서의 한삶은 입이 떡 벌어질 만큼 대단하면서도 마음을 숙연하게 하는 감흥을 준다. 

이렇듯, 한 시대를 풍미하고 시서화에 광인처럼 빠졌었던 수집가들에 대한 이야기는 비단 한 개인의 기록을 보는 재미도 있지만, 당시 문화예술을 즐기고 향유하면서 교류했던 시인묵객들의 모습들까지 함께 만날 수 있는 흥미로운 시간이었다.

유명그림 한점이 집 한 채값이었던 조선시대, 위작도 판쳤던 조선시대, 그림만이 아니라 제발도 같이 볼 줄 알아야 했던 감식안의 세계, 그림 속 인장도 제자리를 찾아야 한다 등 뒷부분에 담긴 '조선시대 그림 문화 속으로'는 상식으로 알아 두면 매우 유익할 내용으로 가득하다.

벗을 청해 차를 나누며 그림 완상을 함께 하던 조선의 집단문화가 오늘날에도 실현 가능하다면 종착지가 어딘지도 모른 채 한 줄로만 달려가는 현대인들에게 작은 위로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잠시 숨을 골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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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자의 유혹 - 열혈 여행자 12인의 짜릿한 가출 일기
김진아 외 글 사진 / 좋은생각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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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혈 여행자의 12인의 짜릿한 가출 일기-

 

참, 매혹적인 글귀다.

올 여름 들어 여행서들을 꽤나 많이 읽었다. 걷는 여행기, 캠핑기, 일본여행, 동유럽여행, 배낭여행, 등 개성적인 주제와 내용으로 나를 유혹했던 여행이야기들.

이번에는 한,두명도 아닌 무려 12명의 경험을 담아낸 다양한 세계 여행기다. 소개글만 봐도 가슴이 설렐 정도로 기대가 된다.

열혈 여행자라는 단순한 설명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12명의 여행자들은 그야말로 여행에 목숨 거는, 여행이 곧 생활이고 삶 자체로 느껴지는 사람들이다. 방송작가, 샐러리맨, 북칼럼리스트, 저술업자, 신문기자, 잡지사 편집장, 연구원, 싱어송라이터, 뮤지션등 그들이 생업으로 삼고 있는 혹은 여행자라는 이름을 갖기 전에 세상속에서 불렸던 그들의 직업은 이렇게 다양했다.

지리멸렬한 일상을 벗어던지지 못한 채 자유로운 여행가의 꿈은 그대로 꿈으로만 남겨둔 채 하루하루 쳇바퀴도는 삶을 딛고 살아가는 대다수의 사람들이 너무도 부러워하는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들인 것이다.

그것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유혹적일 수 밖에 없는 그들이 우리에게 들려주는 이야기는?

그 이야기가 바로 <여행자의 유혹> 한 권에 담겨 있다.

그러나, 우선 먼저 12명의 유혹의 손길을 감지하기에는 얇은 책 한권으로는 너무 약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하나의 주제를 두고 각자의 꼭지를 12명이 번갈하 가며 채우고 있는데, 우선 할당된 페이지의 량이 너무도 적다. 간접여행이라도 여행의 묘미를 제대로 느끼고 싶은데, 저자의 시선을 따라서 같이 여행지의 한 공간에 서고 싶지만, 스케치하듯이 지나가는 그들의 시선만으로는 깊이 빠져들기에는 아쉬움이 따른다.

또한, 한나라를 집중공략하는 것이 아닌 여러 나라에서 겪었던 각자의 추억들을 그들만의 언어로 다루고 있기에 비록 상상속이지만 저자를 따라서 여행지를 훑고 싶은데 그 맥이 자꾸만 끊기게 되어 여행기를 읽는 느낌보다는 그야말로 열혈여행자들의  추억에세이로 더 다가온다.

그래도 열혈여행자라는 이름이 무색지 않게 그들의 여행기는 곳곳에서 독자를 유혹한다.

그들의 발길이 닿지 않는 곳은 이 세상 어디에도 없다. 남극에서 펭귄이 사는 아프리카까지. 기차로 사막을 지나는 여행자들.

오로지 10달러짜리 랍스터를 먹기 위해 칠레를 길게 여행하는 그들. 해질 녘 바오밥나무를 만나는 여행자.한여름의 크리스마스축제를 즐기는 그들.

 

여행은 사람을 순수하게 그러나 강하게 만든다-서양 속담-

 

언젠가부터 해질녘 어스름한 시간대를 '개와 늑대 사이의 시간'이라는 용어가 많이 쓰이고 있는데, 원래 이 말은 해가 저물 무렵, 프랑스 사람들이 희미한 어둠 속에서 개와 늑대를 구분할 수 없다 하여 그렇게 이름붙였다고 이 책에서 소개해놓고 있다.

우리나라 단편소설 제목으로 <개의 늑대의 시간>이라는 제목을 붙인 작가도 있는 것으로 안다.

맨 처음 이 용어를 접했을 때, 그 유래를 알지 못했던 나는 개는 규범, 가정, 울타리, 이성등을 상징한다고 생각했고, 늑대는 자유로움, 방황, 야성, 본능,등을 상징한다고 생각하여 해가 지는 그 무렵에는 일테면 이성과 야성이 교차되는 시간쯤이라고 내 마음대로 그렇게 정의해 버렸었다. 그런 경험들이 있지 않은가. 어스름하게 해가 질 때 쯤이면 왠지 낯선 곳으로 떠나고 싶은 욕망이 스멀스멀 올라오던 기억. 있던 자리가 낯설게 다가오기도 하며, 역으로 밥짓는 냄새가 구수한 마을이 그리워지기도 하는 여행자의 기분이 되는 느낌.

이제 그 말의 유래를 알았지만, 난 내 마음대로 정의했던 그 의미가 더 마음에 든다.

우리 민족의 핏속에는 유목민의 피가 분명히 섞여 있을 터.

<여행자의 유혹>은 바로 그 유목민의 피를 잠깐이나마 소용돌이치게 하는 힘이 있다.

단, 독자들은 이 책을 읽을 때 명심해야 할 것 하나!

바로 '개와 늑대 사이의 시간'에 이 책을 읽기 바란다. 12인이 건네주는 유혹의 의미가 그대로 느껴질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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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의 독서처방 - 매혹적인 독서가 마녀의 아주 특별한 冊 처방전
김이경 지음 / 서해문집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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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학교를 다녀온 딸아이가 이렇게 말했다.

"엄마, 우리 반에서 마녀클럽을 조직했어. 그래서 각자이름의 끝자를 따서 린마녀, 빈마녀, 유마녀로 부르기로 했고, 일주일에 한번씩 모임을 갖기로 했어".

"마녀클럽? 뭐하는 것인데?""응, 여학생을 괴롭히는 남자애들을 혼내주는 클럽이야"

그러니까, 한마디로 성질 좀 있고, 체격 좀 있는 여자애들 셋이 모여서 철없는 남자애들을 응징하기 위한 모임을 조직했다는 내용이다.

우리 때와는 세태가 달라도 한참 다른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빗자루타고 밤하늘을 날아다니는 꼬깔모자의 요상한 모습을 한 마녀를 이렇게 긍정적인 의미로 재해석하다니.

<마녀의 독서처방>의 저자 김이경씨도 '마녀'에 대한 아주 독특한 시각을 보여 준다.

남에게 대접받기를 원하는 공주나, 남을 대접하기를 당연히 여기는 무수리는 둘 다 타인을 의식하고 의존한다는 점에서 옳은 모습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저자는 마녀를 자신의 지식과 능력에 의지해 제 방식대로 살아가는 자유롭고 독립적인 존재로 규정하고 있다. 그녀의 주장을 보면 일면 고개가 끄덕여지는 부분이 있는 걸 볼 때, 이제 마녀는 중세의 그 마녀가 아닌 아주 매력적인 캐릭터로 우리에게 재해석되고 있는 거 같다.

따라서, <마녀의 독서처방>에서 그녀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공주도 무수리도 아닌 마녀로서의 삶을 살겠다는 그녀의 삶의 자세이며, 그 자세는 남의 눈이 아닌 내 눈으로 세상을 보고, 내 생각대로 판단하며, 내 마음이 끌리는 대로 살겠다는 삶에 대한 자각의 표현에 다름이 아니다.

그러나, 그렇게 살아가고자 하는 삶이 쉽기만은 한 것이 아니라고 고백하는 저자는 그래서 책을 읽는다고 한다. 책에서 그녀는 내가 누구인지, 내 욕망은 무엇인지, 왜 그런 욕망을 갖게 되었는지 제대로 알기 위해서 책을 읽지만, 책이 그 모든 것을 가르쳐 주니는 않기에 때로는 길위에서, 때로는 사람에게서, 그리고 스스로의 깊은 사유를 통해서 배우기에 진정 그녀가 책에서 얻고자 하는 것은 가르침보다는 따뜻한 위로였다고 한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책에서 많은 가르침을 얻기도 했지만, 때로는 아주 힘든 순간, 곁에 아무도 없을 때 책을 통해서 얻은 위로가 더 큰 삶의 지혜로 이어졌던 경험이 있다.

<마녀의 독서처방>은 사소한 일상의 필요에서부터 깊은 마음의 상처까지, 책에서 해결책을 찾고 위로를 받아온 저자의 경험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설렘, 사랑, 치유, 희망, 위로, 이별이라는 소주제로 나누어 각각의 꼭지를 채우는 그녀가 소개해주는 다양한 책들.

시립도서관에서 오랜시간 살았다는(?) 그녀는 걸맞게도 책을 참 많이도 읽었다. 40평생을 살아오면서 책을 손에서 놓은 적이 거의 없는 나에게도 낯선 책들이 한 두권이 아니다.

그러나, 맞닥뜨리는 상황과 절묘하게 맞아떨어지는 책에 대한 정보가 비록 전무할지라도 그녀의 처방전은 해독하기에 그다지 어려움이 없다.그녀가 매우 친절하게 안내해주기 때문이다.

책 내용을 잠깐 들여다보면, 설렘 주제에 '은근히 잘난 척하고 싶을 때'라는 꼭지가 있다.

일테면 오랜만에 선배를 만났다. "가을이라 그런지 싱숭생숭해요","마음이 허전해서 그래. 하루하루가 소중하다고 생각해봐. 어느 계절이든 다 좋지". 말이 나오기 무섭게 다 안다며 해답을 내놓는 선배의 모습은 예전의 흉허물없던 그 모습이 아니다. 나라는 존재가 원한 건 조언이 아니라 공감인데..나라고 모를 것인가..

이 대목에서 가슴이 뜨끔해서 책을 덮고 싶을 정도였다. 많은 순간들에 저 선배처럼 무의식적인 잘난 체를 무수히 했기에.

저자는 요네하라 마리의 <대단한 책>을 소개해주며, 은근히 겸손에 대해서 가르쳐주는 식이다. 

 

가끔은 소주제와 소개해주는 책의 연관성이 억지스러운 부분도 보이지만, 대체적으로 책에 대한 에세이라도 읽는 듯 잔잔하게 울림이오는 맛이 있다. 책소개도 소개지만, 선행되는 상황에 대한 저자의 묘사가 더 정감어리면서도 맛깔스럽다.

비록 언급되는 책의 생소함으로 살짝 기는 눌렸지만, 그다지 어렵지 않게 다가오는 <마녀의 독서처방>은 쏠쏠한 처방전이 되기에 충분하기에 기꺼이 주변에 권할 수 있을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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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하성란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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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렴풋이 기억하기로는 당시 집단 자살의 원인이나 구체적인 경위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밝혀지지 않은 채 수사가 마무리됐고, 그러다 1991년 오대양 종교집단의 신도 몇 명이 경찰에 자수하면서 사건의 의문점이 파헤쳐지는 듯했으나 결국 논의만 무성했을 뿐 진상은 밝혀지지 않았던 걸로 기억한다. 매우 은밀하면서도 어두운 이미지로만 남은 채 이 사건은 내 기억속에서도 세인들의 기억속에서도 사라졌다.
저자는 개인적으로는 정확히 10년 만에 신작 장편을 약 10여년이 흐른 사건을 매개체로 하여 들고 나왔다.

소설속 신신양회는 서울에 관광상품을 만드는 공장과 지방에는 시멘트 공장을 운영하는 어머니라 불리는 사장을 중심으로 7명의 여성들이 주축이 되는 여성공동체 생활을 그 중심에 놓고 있다.

하성란, 작가의 이름이 익숙하여, 책의 제목이 주는 느낌이 강렬하여 선택했다.

받아본 책날개에 소개된 저자의 약력을 보니, 동인문학상, 현대문학상 등 5개의 상을 수상한 작가였다.

상당히 저력이 있는 작가였던 모양이다. 작가의 이름이 익숙한 것은 아마도 그래서였던 듯.

그녀의 여러권의 책 중에서 <삿뽀로 여인숙>이 버젓히 내 책장에 꽂혀 있는 것을 책을 다 읽고 난 이후에 알았다.

그만큼 그녀의 문체는 기억에도 없고, 내게는 아주 새로운 작가였던 것이다.

처음 대하는 듯한 작가의 책을 읽는 즐거움은 또 다른 재미다.

<A>는 1987년 8월29일 경기 용인 남사면에 있는 ㈜오대양의 공예품 공장 식당 천장에서 오대양 박순자 대표와 가족·종업원 등 32명이 집단 자살한 사건을 그 모티브로 취하고 있다.

사실 이 사건을 정확히 알지는 못하지만, 이 책의 소개내용을 보고 검색을 했다.
그 여성들은 아비가 누군지도 모르는 아이를 낳아 기르며 아마존강의 아마조네스처럼 여성들이 주축이 되는 화목하고 행복한 왕국을 당당하게 꿈꾸며 살아간다.

그러던 어느날, 어머니와 이들 여성들과 관련자들 24명은 집단 자살한다.(자의에 의한 타살). 언론은 어머니라는 여자의 정체를 의지가지할 데 없는 여성들의 노동력을 착취하여 부를 축적한 신흥교주라고, 이 사건은 광신도들의 집단 히스테리라고 규정한다.

그 당시에 눈이 멀어 살아남은 여성의 딸, 나의 시점에서 이 소설은 전개된다. 그 전개는 집단 자살사건의 의문점을 풀어가는 과정속에서 진행이 된다.

끊임없이 여성작가를 통해서 구현되는 여성공동체 사회, 즉 모계사회는 어쩌면 인간에 대한 원초적 그리움을 강하게 자극하는 것이기에 반복되는 것은 아닌지.

뒷부분으로 갈수록 소설의 내용이 반복되는 듯한 느낌은 더위탓인지, 몽롱한 나의 상태탓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리고 소설의 전반적인 짜임새를 무너뜨리지만, 저자가 말하는 형식을 배제한 그들만의 사랑법, 순수한 원초적 감성의 교류, 자족적인 당당한 삶등은 내게는 매우 매력적인 소재들이었다.

호기심을 자극한 소설의 제목 <A>는 천사, 아마조네스,간통 등. 다의적인 의미로 해석되지만, 그다지 큰 의미는 없어보인다. 저자도 소설속에서 굳이 규정해놓고 있지는 않다. 독자의 몫으로 남겨놓았을 뿐. 그러나, 나 또한 마지막 책장을 덮고 나서도 그 의미를 굳이 따지고 싶지는 않다. 올 여름 엄청난 더위속에서 상당히 빠른 호흡으로 쉽게 읽혔던 책으로 기억될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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