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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공녀 강주룡 - 제23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박서련 지음 / 한겨레출판 / 2018년 7월
평점 :
이렇게 멋진 여성의 이야기라니 그저 놀랍다. 일생을 자기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해방을 위해 투쟁하다가 산화된 진취적인 여성. 우리나라 최초로 을밀대 위로 올라 시위를 했다는 강주룡씨의 이야기를 참 멋들어지게 극화했다. 오래전의 역사가 아니라 비교적 최근의 사건이고, 기록으로도 남아있는 그녀의 이야기를 이렇게 재미있게 극화했다니.
팩션소설의 묘미는 그 시대의 시대상을 비교적 비슷하게 느낄 수 있다는 것이 아닐까. 그럼에도 씁쓸한건 그녀의 이름을 이제서야 알게됐다는 것이다. 그것도 을밀대 위에서 인권운동을 하다 아사한 불운의 주인공으로만 말이다.
그녀의 삶은 한결같이 험난하다. 남들의 시선이 중요한 아버지, 독립군으로 살고 싶은 철부지 남편, 과부라는 이유로 무시하는 관리자까지. 그녀를 억누르는 남자들 사이에서도 주룡은 참 진취적인 여성이다. 자신의 삶에 대한 선택을 내 인생에 관여한 남자들이 아닌 자기 자신이 오롯이 결정한다.
그리고 그것은 머지않은 일이라고 나는 감히 예견합니다. 또한 우리가 만들어갈 투쟁 역시, 누군가의 해방을 앞당길 방아쇠가 될 것이라고.
-214p
주룡의 삶은 크게 두가지 사건으로 나뉜다. 독립운동을 꿈꾸던 남편을 만나 함께 만주벌판을 휘젓고 다니던 짧지만 행복했던 아내 주룡의 삶, 그리고 고무공장 노동자로 일했던 노동자 주룡의 삶.
자신의 뜻을 이루기 위해 만주벌판의 산기슭을 내달렸던 주룡은 이제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 위해 을밀대 위에 올랐다. 커피 한잔의 여유를 만끽하는 모던걸을 꿈꿧지만 그녀는 다른 이들의 마음 속에 우리가 왜 우리의 소리를 내야하는지 그 이유를 심어두고 산화했다.
그녀가 을밀대 위를 오르던 시절보다 거진 100년이나 흘렀지만, 이 이야기가 지금도 공감을 사고 눈물이 나는 이유는 모두 알것이다. 여전히 우리는 이름이 달라진 을밀대에 올라 투쟁하고, 요구하고, 쟁취하기 위해 노력한다.
모던걸이 되고 싶었지만 결국 다른 이들의 투쟁을 위해 산화된 그녀의 삶이 참 애달파서 슬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