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종이달 - 제25회 시바타 렌자부로상 수상작 ㅣ 사건 3부작
가쿠타 미츠요 지음, 권남희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4년 12월
평점 :
학교를 졸업한지 오래되어서 학생증을 볼 기회가 없었던 나에게 얼마전에 본 학생증은 좀 충격으로 다가왔다.
예전의 그런 학생증이 아닌 크레디트 카드 겸용 학생증은 그만큼 생소하면서도 나에겐 문화적 충격으로 까지 여겨졌는데..그러면서 든 생각은 학생이 무슨 능력이 있어 카드를 쓰지? 하는 생각이었다.
사회적으로 사금융이나 카드대출로 인한 문제가 끊임없이 발생하는 가운데 누가 봐도 지불 능력이 안되는 학생들에게 버젓이 카드가 발급되고 또 학생들 역시 별다른 의식 없이 그 카드를 당연하다는 듯 사용하는걸 보면 솔직히 섬뜩한 생각이 들 정도였다.
나이를 먹으면서 느끼는 점은 자본주의의 비정함과 잔인함에 대한 것이다.
유전무죄 무전 유죄가 당연시 되다시피한 자본주의 세계에서 돈에 대한 어떤 교육도 제대로 받아본 적도 없고 돈의 무서움에 대한 면역성따윈 갖추지도 못한 어린 학생들에게 카드라는 플라스틱은 도깨비 방망이 같은게 아닐지.. 단지 차이라면 이 카드는 제대로 지불하지 못할경우 사회생활이 힘든 건 물론이고 자신뿐 아니라 그 주변사람들의 생활까지도 지옥으로 만들수 있다는걸 그 학생들은 알고나 있을까?
이 책 `종이달`은 돈에 자신의 인생이 먹혀버린 사람들의 이야기이다.자신도 모르는 새 자근자근...더 무서운건 이 사람들에겐 탈출구도 없을뿐 아니라 자신도 모르는 새 자신의 자식들에게까지 전염시켜버린다는 점이다.
자신의 공허함과 외로움 그리고 두려움으로 인해 자신도 모르는 새 돈에 잡혀버린 여자의 이야기는 실화이기때문에 더 현실적으로 다가오는것 같다.
몇년만에 열리는 동창회 소식을 전하는 친구의 음성에는 동창인 리카의 거액횡령사건 스캔들에 대해 말할수 있다는것에 대한 음습한 기대감과 은근한 기쁨이 배여있음을 느끼는 유코는 자신이 기억하는 한 청초하면서도 의로운 아이라고 생각했던 리카의 고객돈 횡령사건이 믿기질않는다.
그녀 리카를 기억하는 사람들 사이에선 그녀가 고객의 돈을 횡령하고 달아난 사건이 의외일뿐 아니라 평소 자신들이 기억하는 그녀의 성격과 맞지않다고 느껴져 그녀가 왜 그런 선택을 한 건지 궁금하다.
남들보기엔 부잣집딸로 태어나 평탄한 학창시절을 보내고 모범적인 생활을 하다 평범한 남편과 결혼생활을 하는..그저 아무런 근심걱정이 없는 평범하기 그지없어보이는 주부였던 그녀는 주간지의 말마따나 연인을 위해 그 돈이 필요했던것인지? 아니면 남들처럼 명품과 온갖 사치스런 물건을 사기 위해 그 돈이 필요했던건지 모두가 긍금해하는 가운데 의외의 장소에 나타나는데...
읽는 내내 가슴이 답답함을 느꼈다.
유복한 집안에서 태어나 평범한 일상을 사는것처럼 보이던 리카가 왜 이런 일을 벌였는지 그녀의 발자취를 더듬어가며 그런 일을 저지르게 되는 과정을 그리고 있는데 모든 중독을 가진 사람들 깊은속에는 외로움과 허무함으로 인한 일종의 반발로 쇼핑중독이든 알콜중독이든 중독에 걸리는것 같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이 이론은 그녀 리카의 삶을 들여다보면 어느정도 공감이 간다.
부유하진않지만 어렵지도 않은 살림이라 그녀가 굳이 일을 안해도 뭐라 할 사람도 없고 어려운 친정이 있어 돈을 벌어 도와줘야할 의무도 없는 그저 평온하기만 한 하루하루를 보내는 그녀지만 들여다보면 오랜세월 그녀의 곁에 있지만 그녀를 안아주지도 외로움을 덜어줄 노력조차 않는 남같은 남편과 그런 남편이 가지고 있는 그녀에 대한 경제력에 대한 우월감을 보면 부부가 아닌 남과 같이 생활하는것 같은 공허함이 느껴지고 그녀의 외로움이 손에 잡힐듯 하다.
그래서 리카가 자신보다 12살이나 어린 대학생 고타에게 빠져들어가 그와의 나이차를 극복하고자 미친듯이 쇼핑하고 옷을 사고 하는 모습을 보면서 그녀 역시 그 쇼핑에서 원한건 단순한 불륜의 스릴이나 즐거움이 아닌 자신도 누군가에겐 필요한 사람이라는 위안과 안도가 아닐지?
쇼핑을 하고 쓰는 돈의 단위가 커질수록 리카가 위태로움을 느끼면서도 스스로는 멈출수 없는 심정을 잘 표현하고 있는데 그녀가 마침내는 누군가가 자신을 멈춰주길 바라는 심정이 왠지 이해가 될것 같다.
이 책에 나오는 등장인물들...즉 리카와 어떤식으로든 과거에 연결되어 있는 사람들 모두가 직간접으로 돈에 어떤 문제가 있음을 알수 있는데..이런 사람들은 굳이 이 책을 읽지않아도 주변에서 흔히 볼수 있는 사람들이기에 몰입감이 상당하고 읽을수록 내용이 점점 무거워지고 마침내는 그녀 리카가 경찰에게 `나를 데려가줘요`라고 하는 부분에선 나조차 안도감이 들 정도다.
돈에 중독되고 마침내 그 돈에 의해 침몰해가는 과정이 잔인할 정도로 현실적이어서 두려움이 느껴지기도 할 뿐 아니라 리카의 외로움과 공허함이 손에 잡힐 것 같이 느껴졌다.그녀가 돈으로도 사고 싶어했던 건 과연 무엇일지? 과연 잠시라도 그것을 손에 넣기는 했는지 ..안타깝게 느껴진다.
소비가 미덕이고 자신이 갚을수 있는것보다 더 많은걸 소비하도록 유도하는 사회...어느새 필요해서 사는게 아니라 그저 가지고 싶어서 혹은 마음속의 채워지지않는 공허함을 물건으로 채울수 있다는 환상을 심어주는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현재의 모습인것 같아 우울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