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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설계도
이인화 지음 / 해냄 / 2012년 1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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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책읽기의 시작은 “오랜만의 만남”이라고 부를 수 있겠다. 올해 들어 처음 읽은 “황석영” 소설과 두 번째이자 이 감상글의 대상 소설인 “이인화”의 <지옥설계도(해냄/2012년 11월)> 모두 대학 시절 이후 정말 오랜만에 신작 소설로 다시 만났기 때문이다. 너무 오랜만의 만남이다 보니 처음에는 둘 다 “낯섦”과 “반가움”이라는 상반된 감정이 동시에 느끼면서 읽기 시작할 수 밖에 없었는데, 읽고 나서의 감상은 서로 확연하게 달랐다. “황석영”은 초반 몇 십 페이지 만에 낯섦을 싹 잊고 오래전 그를 만났던 기억들이 새록새록 떠오르면서 금세 책에 몰입할 수 있었는데 이 책은 흥미롭고 신선한 소재와 장르소설적인 재미를 한껏 담고 있었음에도 마지막 페이지까지 낯섦이 가시지 않았고 복잡하고 어려운 설정과 설명에 읽어내기가 영 어려웠던 것이다. 이 책의 어떤 점이 나를 이렇게 곤혹(?)스럽게 했을까?

 

 

백 년 만의 큰 폭우가 내렸다는 7월 어느날, 대구의 시내 한복판에 있는 “리젠트” 호텔에서 살인 사건이 일어난다. 피살자는 “이유진”이라는 청년으로 등 뒤에서 총을 맞아 살해되었고, 피의자는 “자오얼”이라는 중국인 청년으로 서울역에서 긴급 체포된다. 일반 경찰이 아닌 모 “기관”에 근무하고 있는 수사관 “김호”는 이 살인 사건을 담당하게 되는데, 살해 현장에서 이해할 수 없는 부자연스러움을 느꼈다. 왜 그런지는 말할 수 없었지만 뭔가 이상했다. 이런 그의 직감은 수사가 진행되면서도 결코 뇌리에서 가시지 않는다. 이렇다 할 증거를 발견하지 못해 수사가 지지부진한 가운데, 기관의 상관은 김호에게 살인 사건의 배경에 관한 놀랄만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피살자 이유진과 피의자 자오얼은 보통 사람보다 10 배 이상의 지능을 가진 “강화인간”들이고 이들은 “더불어 사는 행성당(공생당)”이라는 비밀 조직원이라면서 전 세계적으로 연쇄 테러가 발생하여 강화인간들이 죽거나 혹은 최면 상태에 빠졌다는 것이다. 이런 와중에 김호의 딸이 납치되는 사건이 발생한다. 또 다른 강화 인간이자 이유진을 사랑했던 여인인 "새라 워튼“이 연쇄 테러 사건의 배후를 밝혀내고, 최면 상태에 빠진 강화 인간들의 의식이 갇혀 있는 가상 세계이자 이유진이 창조해낸 세계이기도 한 ”인페르노 나인“의 설계도를 얻기 위해서였다. 김호는 새라의 요구대로 이유진이 남겼다는 설계도를 찾아 나서고, 그 과정에서 이유진 살인 사건의 전모를 밝혀내고, 강화 인간들에게 가해진 연쇄 테러의 실체 또한 그 베일을 벗게 된다.

 

 

줄거리는 책 도입부부터 등장하는 이유진의 살인사건을 중심으로 요약했지만 이야기는 강화인간의 탄생 비화(秘話)와 그들이 조직한 공생당과 각국 첩보기관들 간의 암투와 배신, 그리고 이유진이 만들어 낸 가상 최면의 세계 “인페르노 나인”, 이렇게 세가지 축으로 전개된다. 이처럼 “추리(스릴러)”, “첩보”, “SF", ”판타지“ 등 내가 즐겨 읽는 장르들이 총망라되어 있는데다가, 여러 소설이나 영화에서 익히 다루어진 소재 - 영화로도 제작된 “앨런 글린”의 <리미트리스>가 대표적인 예라 할 수 있겠다 - 이긴 하지만 “강화 인간”이라는 설정이 꽤나 흥미롭고 재미있어 읽는데 탄력이 붙어 도입부와 중반 초입까지는 빠르게 페이지가 넘어갔다. 그런데 중반부터 강화인간들에 대해 본격적으로 그려지고, 가상 최면 세계인 “인페르노 나인”이 등장하면서는 너무 복잡한 설정과 설명이 이어지면서 처음의 흥미와 재미는 이내 반감되고야 말았다. 즉 강화인간들의 비밀결사조직인 “공생당”이 꾸미고 있다는 전세계적인 음모(陰謀)의 불명확성, 최면술로 사람을 죽이고 코마(koma) 상태에 빠뜨리는 장면들에서의 개연성 부족과 비현실성, MMORPG 게임이나 또는 이차원(異次元)의 판타지 세계를 연상케 하는 가상 세계인 “인페르노(Inferno, 지옥) 나인”과 책의 제목이자 책 후반부에서 사건 해결의 결정적인 열쇠로 등장하는 인페르노 나인의 설계도라는 이야기의 난해함 등이 바로 그것이다. 결국 여러 장르의 장점들만을 끌어다 잘 혼합하려 했던 작가의 시도는 제대로 어우러지지 않고 영 성글게만 느껴졌고, 작가가 하고자 싶었던 이야기였을 인간 사회의 모순과 병폐에 대한 신랄한 비판 또한 텍스트로는 읽어낼 수 있지만 가슴에는 영 공감이 되지 않는 피상적인 주제로만 느껴졌다. 복잡하고 난해하기만 한 설정과 이야기 구조가 소재의 신선함과 흥미로움을 반감시켰고, 그 때문인지 결말에서의 반전 또한 그 충격과 강도가 영 밋밋하게만 느껴졌다.

 

 

서두에서 던진 질문인 나를 곤혹스럽게 만든 이 책의 요소는 이렇게 복잡하고 난해하기만 한 설정과 세 가지 축으로 전개되는 이야기 구조의 성글기만 한 구성들이라고 할 수 있겠다. 물론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감상일 뿐이며, 그 이유도 중견 작가이자 문학적 성취를 인정받고 있는 작가의 글솜씨 탓이 아니라 책의 설정과 구성, 그리고 주제를 올곧이 이해해내지 못한 내 이해력 부족 탓일 것이다, 여기에 유일하게 읽어본 그의 작품인 역사 소설 <영원한 제국>에서의 익숙함을 이 소설에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계속 투영하려고 했던 탓일 것이다. 결국 마음 속 깊은 곳에서는 오랜만에 만난 작가에게서 예전 모습들과 익숙함만을 찾으려고 했었지 그의 새롭게 변화된 모습은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는지도 모르겠다. 언젠가 그의 변화를 제대로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가 되었을 때 이 책을 다시 읽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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