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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그러면 아비규환
닉 혼비 외 지음, 엄일녀 옮김 / 톨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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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르소설”을 즐겨 읽는다.

인터넷을 검색해보면 장르소설이란 “이전에는 ‘대중소설’로 통칭되던 소설의 하위 장르들을 두루 포함하는 말”로 장르로는 “SF·무협·판타지·추리·호러·로맨스 소설”(네이버 지식백과사전 발췌) 등이 있다고 한다. 순수 소설과 비교하여 너무 “흥미” 위주여서 문학성이 떨어진다고 경원시 - 원래 장르소설의 전(前) 명칭인 “대중소설(통속소설)”이 순수 소설과 구분하기 위해 만들어진 용어이며 이 말에는 “멸시”가 내포되어 있다고 한다 - 하는 분들도 있지만 특유의 장르적 흥미와 재미 때문에 베스트셀러 목록 상단을 늘 차지하며 큰 인기를 구가하고 있다. 이번에 읽은 <안 그러면 아비규환(원제 McSweeney's Mammoth Treasury of Thrilling Tales /2012년 7월)>은 장르소설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한번쯤 그 이름과 작품을 들어봤을 영미권의 장르소설 스타작가 20인의 단편들을 한데 모은 소설집이다. 이 책을 받아들고서 살짝 걱정이 먼저 앞섰다. 750 여 페이지에 달하는 분량이 부담스럽기도 했지만 무엇보다도 그동안 읽었던 여러 작가들의 작품 선집(選集)에서 큰 재미를 느끼지 못했었기 때문이다. 작품 하나하나만 보면 충분히 개성 넘치고 흥미로운 작품들이지만 한데 모아놓으면 서로의 강렬한 개성과 색깔이 잘 어우리지 못하고 그저 나열식 밖에 되지 않는, 차라리 한 작가만의 단편 모음집보다 못한 소설집들을 여럿 봐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소문난 잔치 먹을 것 없다”는 속담처럼 되지 않을까 하는 걱정과 함께 책 표지를 열었다.

 

 

영미권의 스타작가 20인을 한자리에 모은 사람은 누굴까? 바로 퓰리처상 수상 작가이자 여기에 모인 19인의 작가 못지않게 유명세를 날리고 있는 작가인 “마이클 셰이본” - 이 단편집의 마지막 수록 작품인 <화성에서 온 요원; 행성 로맨스>의 작가이기도 하다 - 이다. 저자 섭외부터 디자인 콘셉트까지 책의 기획을 총괄했다는 그는 책 말미에 실린 “제작노트”에서 앞서 말한 “장르소설”의 정의에서도 잠깐 언급했듯이 장르소설 작가에 대한 폄하를 꼬집는다. ‘문학’을 숭배하는 신성한 전통은 소위 ‘장르’ 작가들을 늘 홀대해왔고, 범죄·공포소설은 ‘펄프픽션’이라서 선정적이고 허섭스레기 같은 대중지에나 게재될 뿐, 자존심 강하고 명망 높은 잡지들에는 감히 실릴 수 없었다고 한다. 이처럼 ‘장르문학’과 ‘순문학’을 구분 지으려는 시도는 뚜렷한 근거와 이유가 없음에도 완강하게 이어지고 있고, 이 작품집은 이런 편 가르기와 선입견에 반대해 최고의 작가들이 던지는 도전장이며, “지금은 잊히고 만 단편소설의 초기 장르를 부활시키고, 위대한 작가들이 위대한 단편을 쓰던 전통을 복구하는 것”이이 책의 목표라고 분명하게 말한다. 나름 야심차지만 너무 큰 의미를 부여한 것은 아닌가 싶기도 한 포부이다. 사실 이 책을 선택한 대부분의 독자들은 작품을 수록한 작가들의 면면을 보고 선택하지 기획자의 의도 때문에 선택하지는 않았을 것 같기 때문이다. 아뭏튼 기획자의 의도는 충분히 알았으니 이제 속살을 들여다보자.

 

 

책에는 장르소설 모음집에 걸맞게 다양한 작가의 다양한 장르가 총망라되어 있는데, <안 그러면 아비규환>을 잠깐 소개해본다. 이 작품을 선택한 이유는 표제작(表題作)이자 첫 번째 수록 작품이기도 하지만 책 속 단편들 중에서 “데이브 에거스”의 <정상에서 천천히 내려오다>와 “셔먼 알렉시”의 <고스트 댄스>와 함께 가장 인상적인 작품이었기 때문이다. 이 작품의 작가는 “닉 혼비” 인데 영국에서는 베스트셀러 작가로 이름 높다고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이 단편으로 처음 만나는 작가이다. “SF"로 분류할 수 있는 이 작품은 열 다섯 살 소년이 우연히 중고 전자제품 가게에서 낡은 VCR를 구입하게 되면서 사건이 전개된다. 밴드 연습 때문에 좋아하는 NBA 플레이오프를 시청할 수 없었던 소년은 엄마를 졸라 낡은 VCR를 한 대 사게 된다. 그런데 주인이 가장 중요한 녹화와 재생이 안 된다는 것 아닌가. 계속 물어보면 가격을 올리겠다는 주인의 협박(?)에 서둘러 사가지고 나온 소년에게 주인은 신경 쓰지 말라는 알 수 없는 소리를 한다. 집으로 와서 설치하고 시험작동을 해보니 웬걸 작동이 잘된다. 안심한 소년은 농구 경기 예약 녹화를 해놓고 연습이 끝난 후 집으로 돌아와 녹화 테이프를 재생해보는데 아뿔싸 공 테이프를 넣어두지 않은 것이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일어난다. 테이프를 넣지 않았다는 것을 모르는 소년은 VCR 리모컨의 빨리 감기 버튼을 눌렀는데 현재 시청하고 있는 지상파 TV 프로그램이 빨리 감기가 되는 것이 아닌가. 녹화해 놓은 프로그램이 아니라 실시간으로 방송되고 있는 프로그램이 말이다. 이제 본격적으로 ”미래 방송“을 빨리 감기로 시청하던 소년은 지금으로부터 대략 6주가 지나면 모든 지상파 TV, 모든 채널에서 해주는 프로는 뉴스 하나 밖에 없는 상태가 되어 버린 것을 알게 된다. 마치 9/11이 일어난 직후 며칠간과 비슷한 상황 말이다. 그러더니 화면에 백악관 집무실에 앉아 있는 대통령이 비장한 모습으로 연설을 하고, 그 후에는 사람들이 보따리와 어린애를 안고 집집마다 빠져나와 지하로 피신하는 장면이 생방송으로 보여준다. 그러고는 몇 시간 더 뉴스를 하더니 그 다음엔 아무것도 나오지 않는다. 지상파 TV가 끊긴 것이다. 혹시나 해서 계속 빨리 감아 보지만 TV에는 검은 화면 외에는 나오지 않았다. 즉 6 주 후에 세상이 끝나 버리는 것이다. 소년은 평소에 눈여겨보았던 동급생 소녀 ”마사“에게 데이트를 신청하고 미래를 보여주는 TV 이야기를 한다. 이 단편은 세상이 끝난다는 것을 알게 된 소년이 세상이 끝나간다는 것을 알기에 용기를 내서 평소라면 절대 엄두도 못 냈을 제일 예쁜 여자애에게 데이트를 신청하고, 그녀와 자게 된 이유를 소개하는 어쩌면 응큼한 로맨스 소설이기도 하다.

 

 

처음부터 기발하고 재미있는 이야기로 시작해서 처음의 걱정을 잊게 만들지만 역시나 계속 읽다보니 각 편의 재미는 롤러코스터를 타는 것처럼 들쑥날쑥 편차가 있다. 그래서 몇 몇 작품은 읽고 나서 절로 감탄이 터져 나오기도 했지만 어떤 작품들은 작가의 명성(?)에 걸맞지 않게 조금은 지루한 작품들도 없지 않았다. 그런 작품들은 과감히 건너뛰고 - 작가에게는 미안하지만 - 첫 문장과 이야기가 구미를 당기는 작품들과 기존에 만났던 작가들 - 사실 이 책의 작가들 중 만나본 작가는 “닐 게이먼”, “스티븐 킹”, “마이클 크라이튼”, “로리 킹”, “마이클 셰이본” 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 전체 작가의 1/4 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 - 위주로 골라 읽었는데, 헤아려 보니 13편 정도는 읽은 것 같다. 어떤 작품이 그랬는지는 밝히지 않기로 한다. 개인 취향에 따라 선택이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스타작가들이라고는 하지만 알고 있는 작가들이 몇 되지 않았고, 작품마다 편차가 있어 모든 작품들의 재미를 올곧이 다 읽어내지 못한 점은 개인적으로 아쉬움으로 남지만 그래도 “소문난 잔치 먹을 것 없다”는 처음의 우려를 불식시킬 만한, "소문난 잔치에도 제법 먹을 것이 많다" - 물론 다 맛있는 것은 아니지만 - 라 할 수 있을 정도로 다채롭고 재미있는 작품들이 많아 즐거웠던 책읽기였다. 장르 소설, 특히 영미권 작품들을 좋아하는 독자들이라면 더할 나위 없는 “진수성찬”과도 같은 책일 테고, 다양한 장르소설들의 재미를 맛보고 싶은 독자들에게도 안성맞춤이 될 책으로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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