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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바이 동물원 - 제17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강태식 지음 / 한겨레출판 / 2012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이상한 동물원 "세렝게티 동물원"

 

여기 "이상한“ 동물원이 있다. 이름은 TV 다큐 <동물의 왕국>의 단골 무대인 “세렝게티 동물원”이라는 거창한 이름을 달았다. 겉모습만 보면 고릴라, 코끼리, 곰, 악어, 호랑이 등 여느 동물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각종 동물들을 빠짐없이 구비(?)해놨고, 편의시설이나 유락시설도 그다지 특별할 것 없이 평범한 모습들인데 뭐가 이상한 걸까? 이 동물원의 인기 동물인 “고릴라” 우리에 가보면 금방 알 수 있다. 우리가 고릴라하면 떠올리는 것이 바로 “킹콩”일 것이다. 송곳니를 드러내고 으르렁거리며, 가슴을 쳐대는 그 모습 말이다. 그런데 실제 고릴라들은 으르렁대거나 가슴을 치는 일이 거의 없다고 한다. 그리고 꼭 필요할 때가 아니면 잘 움직이지도 않고, 한 자리에 앉아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다 보니, 전혀 구경꺼리가 없는 심심한 곳이 바로 “고릴라” 사육장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 동물원에서는 고릴라들이 마치 연기(演技)라도 하듯이 구경꾼들을 향해 수시로 으르렁대고 가슴을 쳐대며, 구경꾼들이 던져 주는 바나나를 척척 받아먹는다고 한다. 심지어 한 시간에 한번은 우리 가운데 있는 높이 12m 짜리 철제 탑 - 이름도 킹콩이 기어 올라갔던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이다 - 을 기어 올라가 포효하는 진기한 장면을 연출한다고 하니 말만 들어도 당장 달려가 구경하고 싶게 만드는 그런 이야기가 아닌가. 그런데 고릴라 뿐만이 아니다. 이 동물원의 곰들은 비닐 공을 수시로 몸으로 터뜨리고, 하마는 시키지도 않았는데 기둥에, 그것도 철제 기둥에 머리를 시시때때로 쳐박곤 한단다. 거기에 구경꾼들이 뜨문뜨문해지면 으르렁대던 동물들이 끼리끼리 모여 자기들끼리 소곤소곤 이야기를 나누는데, 가만히 들어보면 아니 이건 동물의 으르렁거리는 소리가 아니라 사람의 소리가 들리지 않는가! 그것도 앵무새나 구관조가 사람을 따라하는 그런 부자연스러운 소리가 아니고 또박또박 단어를 발음하고, 적절하게 감탄사나 추임새도 섞어서 말이다! 이 무슨 판타지 소설에나 나올 법한 말도 되지 않는 소리인가? 제17회 한겨레 문학상 수상작인 “강태식”의 <굿바이 동물원(한겨레 출판/2012년 7월)>은 바로 이 “세렝게티 동물원”에서 벌어지는 유쾌하고 즐거우면서도 한 편으로는 가슴이 찡해지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스포일러가 있으니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세렝게티 동물원의 정체와 그곳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각각의 사연들

 

중소기업에서 과장으로 재직하던 “나(김영수)”는 몇 달 전 회사에 불어 닥친 구조조정 바람에 그만 실직하고는 집에 들어 앉아 마늘 까기 알바를 하는 신세가 되고 만다. 종이학과 공룡알 접기, 인형 눈깔 붙이기를 하다가 본드를 불기까지 하는 등 소소한 재택 알바를 전전하던 나는 부업 브로커 “돼지 엄마”의 소개로 혹독한 체력시험을 거쳐 “세렝게티 동물원”에 취직하게 된다. 부푼 꿈을 안고 첫 출근하던 날, 엉뚱하게도 나에게 주어진 것은 고릴라 탈과 털옷이었다. 고릴라 옷을 입고 고릴라 우리에 들어간 나는 고릴라 세 마리를 만나게 된다. 긴장과 두려움으로 안절부절하는 나에게 고릴라 한 마리가 다가와서는 어깨를 툭 치면서 말을 건네는 게 아닌가. 그것도 사람 말을 말이다! 나는 그 순간 기절하고야 만다. 앞서 말한 이상한 동물원 “세렝게티 동물원”의 정체가 바로 이것이었다. 사람들이 동물 옷을 입고 동물 연기를 하는 것, 그렇다 보니 여느 동물원의 동물들보다 더 관객들의 기호에 맞는 그런 행동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어느새 고릴라 연기(?)에 적응한 나는 고릴라 동료들과 친해지면서 퇴근 후 술자리를 기울이는데, 그들이 터놓는 사연들 또한 나 못지않게 기가 막히고 기구하기 짝이 없다. 먼저 대장 만딩고는 남파 간첩이었지만 동료의 배신으로 경찰과 자신을 배신한 동료에게 쫓기고 있는 그런 신세이고, 대기업에서 오물처리반 - 동료와 부하직원들을 자진 사직하게 만드는 - 에 있다가 같은 신세가 되어 퇴직하고 동물원에 온 “조풍년” 과장, 이름만 들으면 누구나 다 아는 명문대를 졸업했지만 취업을 하지 못하고 결국 9급 공무원 시험을 준비해보지만 그것도 뜻대로 되지 않아 몇 년 째 공부 중인 “암컷” 고릴라 “앤”이 그들이다. 서로의 상처를 보듬어 주고 서로를 격려하며 하루하루를 보내던 어느날, 고릴라 우리에 한 남자가 찾아온다. “소생”이라는 이상한 말투를 쓰며 자신도 이 동물원에서 동물로 근무했다는 여행사 직원인 그는 고릴라들에게 이상한 제안을 한다. 동물원을 탈출하여 대자연(大自然)의 품으로 돌아가 실제 동물로 살아가라는 것이다. 이 무슨 말도 안되는 이야기인가 싶은데 벌써 몇 몇 동물들이 그의 제안에 따라 자연에서 동물로 행복한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이다. 대장 만딩고가 그 제안을 받아들인다. 자신을 어떻게 찾아냈는지 동물원 우리로 찾아오는 옛 간첩 동료의 눈을 피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아프리카 케냐로 떠난 대장 만딩고는 매일 밤 고릴라 동료들과 다른 동물들에게 전화를 해온다. 너무나 행복하다고 말이다. 그러자 동물원 동물들이 동요를 하기 시작한다. 하루에도 몇 몇 동물들이 출근을 하지 않는 것이다! 동물원에 비상이 걸리고, 사육사 - 동물 탈을 쓴 사람을 관리하는 이상한 사육사들이지만 - 들이 나서 보지만 동물들의 “탈출”은 계속 늘어만 간다. 제목 그대로 “굿바이 동물원” 하면서 말이다.

 

이 책, 참 재미있다.

 

동물원 동물들이 사람이 동물 탈을 쓰고 연기를 하는 것이라니 이런 기발한 상상이 또 어디 있을까? 요즘이야 분장술과 SF 효과가 워낙 발달해서 최근 개봉한 <혹성탈출; 진화의 시작(2011)>을 보면 도저히 사람과 침팬지를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정교하지만 영화가 아닌 실제 동물원이라면 표가 나는 게 당연할 텐데 작가는 시치미를 뚝 뗀다. 그렇다면 고릴라, 곰은 사람 체형과 비슷해서 그렇다 하더라도 개미핥기나 하마, 기린, 악어는 어쩔건가. 역시나 작가는 아무런 부연 설명이 없다. 하긴 이 책을 읽으면서 실제로 사람이 동물 연기를 가능한지 안한지를 따질 독자가 누가 있을까. 동물원은 작품의 장소적 배경이자 “루저(looser)"의 삶을 살고 있는 주인공과 등장인물들에게 있어 “사람답게 살고 싶다”라는 소망을 역설적으로 표현하는 장치이니 말이다. 그래서 “사람 동물” - 표현이 맞나 모르겠다 - 들이 초원과 밀림으로 가서 동물들과 어울려 산다는 것도 실현가능성을 전혀 염두에 두지 않고 그냥 참 기발하다고만 느끼게 만든다. 이처럼 동물원에 대한 설정과 그곳에서 살아가는 “사람 동물”간의 소소한 에피소드들은 참 재미있고 기발하다.

 

그런데 이 책, 한편으로는 참 슬프다.

 

주인공인 김영수는 마늘을 까면서 눈물을 흘린다. 마늘의 매운 알리신 성분 때문이기도 하지만 자신의 초라하고 처량한 신세에 대한 한탄이 눈물로 터져 나오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울고 싶을 때는 마늘만한 게 없다고 생각한다. 남자는 평생 세 번 우는데, 태어날 때, 부모님이 돌아가셨을 때. 그리고 마늘을 깔 때란다. 그는 마늘도 맵지만 사는 건 더 맵다고 말한다. 실직하고 집에 앉아 마늘을 까는 지난 몇 달을 돌아보면 코끝이 찡해지고, 화장실 같은 곳에 숨어서 남몰래 울고 싶던 적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고 말한다. 사실 그는 정리해고 소식을 부장에게서 듣던 날 울고 싶은 마음에 숨어서 울고 싶어 회사 화장실을 갔었다. 그런데 화장실에는 이미 자신처럼 숨어서 울고 있는 사람으로 꽉 차 있어서 울지 못하고 나왔던 경험이 있었다. 그래서 마늘은 울고 싶은 그를 울리는 참 좋은 수단인 셈이다. 그런데 이런 슬픔은 주인공 뿐만이 아니다. 그의 아내는 남편의 실직 때문에 통장을 하나 둘씩 깨먹었고, 마지막 하나 남은 통장 만큼은 지키기 위해 남편처럼 마늘을 까고 봉투를 붙이는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가 그만 본드에 중독되고 만다. 그런 아내를 바라보는 남편의 심정은 오죽할까? 고릴라 동료 조풍년씨 사연 또한 서글프다. 살아남기 위해 동료와 후배들을 사직케 하는 “오물처리반” 활동을 하던 그를 아내와 딸은 무섭다며 곁을 떠나버린다. 그런 아내와 딸을 붙잡지 못하고 집에 남겨진 그의 어깨는 슬픔에 영 처량하고 무겁기만 하다. 대장 만딩고는 자신을 배신한 선배 간첩에게 복수를 하기 위해 회 칼을 들고 찾아가지만 이 선배 간첩은 칼침을 여러번 맞았는 데도 죽기는 커녕 그에게 달려든다. 그러면서 그에게 자네의 칼은 전혀 무섭지 않다고, 가장 무서운 것은 바로 돈이라고 말한다. 북(北)에서의 공작금이 끊기고 남한에 정착하여 아이를 낳고 살아가는 그 선배 간첩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바로 “돈”이었던 것이다. 결국 그를 죽이지 못하고, 거꾸로 그에게 쫓겨 숨어 살아야 하는 만딩고의 삶은 생각만 해도 슬프기 짝이 없다.

 

그러면서도 이 책, 가슴 찡하게 만드는 감동이 있다.

 

고릴라들이 위험천만한 12m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을 오르는 이유는 꼭대기에 설치된 부저를 누르기 위해서다. 그 부저를 눌러야만 수당이 지급되기 때문이다. 조풍년 씨는 그 빌딩을 오르다가 그만 떨어져 허리를 다친다. 그런데 고릴라 동료들인 만딩고, 앤, 그리고 주인공은 번갈아 가면서 조풍년씨에게 할당된 부저를 대신 눌러준다. 자신들도 수당을 받아야 하는 근근한 처지이지만 다친 동료를 위해 기꺼이 동료의 부저를 눌러주는 것이다. 모두가 다 떠난 텅빈 고릴라 우리에 나는 남아 있다. 그래도 이 동물원은 가족의 생계 수단임과 동시에 내가 살아있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그런 나에게 본드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다가 뱃속에 있는 3개월 된 애기 때문에 본드를 과감히 끊어버린 아내가 찾아온다. 고릴라 우리로 다가온 그녀에게 고릴라 탈을 쓰고 있던 나는 손을 내밀고, 평소에 고릴라 구경을 좋아했던 아내는 그 손을 만지며 즐거워한다. 그 고릴라가 사실은 남편이라는 것은 꿈에도 모른 채 말이다. 부부의 그런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는 옛 고릴라 동료들은 내색하지 않고 박수를 쳐준다. 그리고 세렝게티 초원에서 고릴라들과 어울려 살며 행복한 삶을 살아가는 만딩고, 그처럼 동물원을 탈출하여 대자연에서 동물들과 함께 살아가는 사람 동물들, 그리고 미처 다 소개 못하는 여러 감동 코드들을 떠올리면 저절로 가슴 한 켠에 찡한 울림과 함께 입가에는 웃음이 절로 지어지게 된다.

 

그래서 이 책, 낄낄거리고 웃다가도 감동으로 가슴이 먹먹해지는 그런 책이다.

 

오랜만에 웃기면서도 슬프고, 감동적인, 책 한 권으로 여러 감정들을 느낄 수 있는 “우리” 책을 만났다. 이 책과 비슷한 외국 소설을 꼽아보자면 “오쿠다 히데오”의 <공중그네>가 떠오르는데, 나는 <공중 그네>보다 <굿바이 동물원>에 훨씬 더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이 책의 등장인물들이 비록 소설 속 허구의 인물들이긴 하지만 주변을 돌아보면 어디서나 쉽게 만날 수 있는 우리들 이웃, 아니 바로 우리들 자신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읽는 내내 감정이입되어 주인공과 등장인물들의 이야기에 따라 때론 웃다가도 때론 눈물 한 방울 흘리게 되고, 마지막에는 가슴에 아련한 슬픔과 함께 감동이 차오르는 느낌이 들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이 책, 이 시대를 함께 살아가는 수많은 소시민들 - 1%의 최상위 계급들에게는 영 찌질하고 못난 사람들 이야기겠지만 - 이라면 한번쯤은 꼭 읽어봤으면 하는 책으로 추천하고 싶다. 그들에게 이 책은 즐거움과 함께 가슴 깊이 새겨진 생채기를 어루만져주는 작은 위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을 읽은 분들은 <굿바이 동물원>이라는 제목이 무색하게 모두들 동물원에 가고 싶을 것이다. 그리고 동물원의 그 많은 동물 우리 중에서 제일 먼저 고릴라 우리를 찾아갈 것이다. 예전에는 바나나나 던져 주고 말았겠지만 이제는 철망에 바짝 다가가서 말 한마디를 건넬 것이다. 당신이 사람 동물인 것 안다고, 힘내라고 말이다. 그리고는 고릴라가 움찔하는지, 즉 자신의 말을 알아들었는지 유심히 지켜볼 것이다. 그러나 고릴라가 움찔하지 않으면 어떠랴. 어쩌면 그 말은 고릴라에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에게 하는 말일 수 도 있기 때문이다. 이 험하고 고달프기만 현실에서 결코 쓰러지지 말고 힘을 내라는 자신들에 대한 격려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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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0-16 00:3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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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0-18 15:16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