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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을 위하여
미나토 가나에 지음, 김난주 옮김 / 재인 / 2012년 6월
평점 :
우리나라에서도 큰 인기를 얻고 있는 일본의 추리소설 작가인 “미나토 가나에”를 지난 6월 <왕복서간>에 이어 2개월 여 만에 다시 만났다. “위키백과”에서 그녀의 작품을 검색해 보니 일본 현지 출간일 기준으로 <왕복서간(현지 2010년 9월 출간, 6번째 장편)>보다 전인 2010년 1월에 출간된 그녀의 4번째 장편소설이다. 출간시기를 확인해 본 이유는 데뷔작이자 최고의 화제작이었던 <고백(2008년 8월 출간)>이 그녀 자신도 큰 부담을 느꼈었는지 어느 인터뷰에서 "오 년 후에는 <고백>이 대표작이 아니길 바란다" 라고 말했다고 하는데, 그녀가 말한 “5년”이 지난, <고백>을 뛰어 넘는 대표작이 될 수 있을 지 궁금해서였다. <고백> 이후 2년이 채 되지 않은 작품이니 이 작품은 아직은 <고백>의 멍에 - “2년차 징크스”라고도 불리는 “소포머 징크스(Sophomore Jinx)" - 를 벗지 못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러나 어느 책을 선택하든 평균 이상의 재미를 보장하는 작가이니 만큼 이번에는 추리소설로써 어떤 식의 재미를 선보일지 궁금함과 기대감으로 책을 읽기 시작했다.
도쿄 시내에 위치한 고급 빌라에서 회사원 “노구치 다카히로”와 부인 “나오코”씨가 사망했다는 신고가 경찰서에 접수된다. 경찰은 당시 현장에 있던 여 대학생 “스기시타 노조미”, 노구치의 부하 직원 “안도 노조미”, 사망사건이 있던 날 노구치 자택에서 출장 디너를 제공할 예정이었던 레스토랑 직원 “나루세 신지”, 아마추어 작가이자 나오코와 불륜관계였던 “니시자키 마사토”, 이렇게 네 명의 젊은이에게서 사건의 정황을 듣는다. 사건은 노구치가 아내 나오코를 칼로 살해하고, 이를 본 니시자키가 노구치를 금속 촛대로 머리를 가격하여 살해한 것으로 결론이 나고, 니시자키는 십년 형을 언도받아 수감된다. 그로부터 10년 후, 네 명은 서로간의 관계와 자신들의 과거사, 그리고 경찰 진술에서 밝히지 않은 이야기들을 독백(모놀로그) 형식으로 털어 놓게 되고, 마침내 사건의 숨겨진 진상이 하나 둘 씩 드러나게 된다.
2008년 등단 이후 4년 동안 9편의 작품을 발표해 이제 중견 작가 반열에 올라선 “미나토 가나에”는 데뷔작인 <고백>에서 일치감치 완성한 그녀만의 정형화된 틀을 계속해서 반복해오고 있다. 이렇게 판단하는 이유는 권수는 몇 권 되지 않지만 그동안 읽은 그녀의 작품들의 형식이나 글의 전개가 대동소이했기 때문이다. 즉 서두에 사건을 제시하고, 단순할 것 같은 사건이 관련 인물들이 사건에 대해 털어 놓으면서 사건의 진상이 조금씩 조금씩 그 얼굴을 들어내고, 결말에 이르러 예상을 뒤엎는 반전(反轉)으로 놀라움과 충격을 선사한 후 마무리하는 형식 말이다. 작가가 소설의 일반적 서술 경향인 “3인칭 시점”을 피하고 “1인칭 시점” - 주로 등장인물들의 고백 형식인데 <왕복서간>은 특이하게 서로 주고받는 “편지” 형식이지만 1인칭 시점 임에는 변함이 없다 - 을 고집하는 이유는 고백 형식이 등장인물의 내밀한 심리를 가장 잘 그려낼 수 있을뿐더러 사건의 진상을 전지적(全知的)인 입장에서 한 번에 다 드러내지 않고, 등장인물 각자의 상반된 시각과 심리를 통해서 블록을 끼워 넣듯 점증적으로 전체적인 얼개를 완성해 나가는데 용이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구성은 독자의 예상을 작가가 의도한 방향으로 몰아가기 위한, 그래서 결말에서 그렇게 의도된 예상을 뒤엎는 반전으로 놀라움과 충격을 선사하는 장치로써도 큰 역할을 하게 된다. 그런데 이런 그녀만의 경향은 양날의 검(劒)이 될 수 있어서 이런 경향 때문에 그녀의 신작들을 꾸준히 선택하는 충성스러운 독자들도 있겠지만 몇 권 만에 금세 식상함을 느껴 실망하게 되는 독자들도 분명 있을 것이다. 특히 마지막 반전에서 데뷔작인 <고백> 이상의 놀라움과 충격을 선보이지 못한다면 그런 실망감은 더욱 커지게 될 테고, 결국 “미나토 가나에”는 새로운 것이 전혀 없다는 혹평(酷評)으로 이어질 수 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 작품은 어떨까?
앞서 말한 등장 인물들의 심리에 대한 치밀하고 섬세한 묘사, 점증적으로 사건의 베일이 벗겨지는 구성은 여느 작품들 못지않게 탁월하지만 그녀의 장점인 반전의 충격은 영 밋밋하고 심심해서 솔직히 추리소설로써의 재미는 별로 느낄 수 가 없었다. 물론 작가 스스로가 “저는 러브 스토리를 썼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사랑하는 남녀가 서로의 손을 마주 잡는다, 그런 내용은 아닙니다.”라고 설명했듯이 작가가 들려주고자 하는 사랑의 진정한 의미에 대해서는 곱씹어 볼 만 하지만 - 그 의미에 대해서 충분히 언급할 만한 꺼리들이 많지만 개인적으로는 올곧이 공감할 수 가 없어 이 글에서는 생략한다 -, 이 책의 본령은 역시 추리소설이 아닐까? 노구치 부부 살인 사건 자체가 단순하고, 반전도 범인이 뒤바뀌거나 또는 숨겨진 살인 의도가 있겠거니 하고 쉽게 예측해볼 수 있는 수준에 그치고 있다. 차라리 전에 읽은 <왕복서간>처럼 감동 코드라도 있다면 공감을 이끌어 낼 수 있었을 텐데 추리소설도, 그렇다고 연애소설도 이도 저도 아닌 소설이 되고 말았다.
전문 문학평론가도 아닌 어쭙잖은 감상문이나 쓰는 주제에 감히 충고해 본다면 이제 그녀도 소재와 형식 면에서 <고백>의 틀을 과감히 깨는 “파격(破格)”이 필요한 시점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물론 작가가 자신 만의 문학적 경향을 고수하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그 틀 안에 갇혀 주제의식의 변화 만을 가지고는 <고백>을 뛰어넘는 성취와 재미를 선보이기에는 분명 한계가 있고, 그러기에 앞으로 그녀가 선보일 작품들은 가장 성공한 자신의 첫 작품에 계속해서 비교당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앞으로도 그녀의 작품을 계속해서 읽을 팬으로써 아쉬움과 안타까움에, <고백>을 뛰어 넘는 걸작을 다시 한번 만나보고 싶은 소망에 주제 넘는 충고로 이 글을 마무리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