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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너 매드 픽션 클럽
헤르만 코흐 지음, 강명순 옮김 / 은행나무 / 2012년 5월
평점 :
절판


“고슴도치도 제 새끼는 함함하다”고 하물며 사람의 자식 사랑은 두 말이 필요 없을 것이다. 그런데 요즈음 이런 부모의 자식 사랑이 도를 넘어 아이를 아예 망치는 사례가 허다한데 특히 학교에서 그 예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아내가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다 보니 학교에 관한 이런 저런 이야기를 종종 듣게 되는데, 최근 충격적인 이야기를 들었다. 사연인즉슨 학교에서 문제아로 소문났던 한 학생이 수업 중에 선생님이 말리는 데도 반 친구를 의자에 묶어 놓고 우산으로 때려 학교가 발칵 뒤집혔다고 한다. 결국 선생님들 회의가 열려 그 학생에게 최고 수준의 벌점을 부여하자 아이의 아버지가 득달같이 달려와 담임인 여선생님 멱살을 잡고 당신 때문에 아이 인생이 망쳤다며 폭언을 퍼부어 교무실을 난장판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학교에서는 이 사실을 알려질까 봐 쉬쉬하고 아이를 전학하는 정도로 마무리했다는 데, 그 일을 당한 선생님은 며칠을 학교에 나오지 못하고, 정신과 치료까지 받을 정도로 큰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아내에게 사실이냐고 몇 번을 되물었을 정도로 도저히 믿기지 않았다. 그런데 이런 이야기들이 신문이나 방송을 통해 심심찮게 들리는 것을 보면 하루 이틀 일은 아닌 것 같다. 도대체 왜 이렇게 되었을까? 이유를 찾자면 열 페이지가 부족할 정도로 복잡다단 - 신문과 방송에서 단골 소재로 등장할 정도로 분석 기사들이 넘쳐난다 - 할 텐 데 부모의 그릇된 자식 사랑 - 엄밀하게는 아이에 대한 지나친 보호와 관심을 사랑이라고 착각하는 인식의 문제 - 이 가장 큰 원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런 그릇된 자식 사랑 세태 또한 그 이유를 따지자면 마찬가지로 차고 넘칠 테니 이 글에서는 생략하기로 하자. 그런데 이런 일이 비단 우리나라 문제만은 아닌가 보다. 2009년 한 해 네덜란드에서만 42만 부가 판매되었고 네덜란드 독자들이 선정한 ‘2009년 가장 좋은 책’에 선정되었다는 “헤르만 코흐”의 소설 <디너(원제 Het Diner / 은행나무 / 2012년 5월)>을 보니 말이다.

 

 

(이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자식의 잘못을 덮으려는 부모의 그릇된 선택

 

 

차기 유력한 수상 후보인 정치인 “세르게” 부부와 세르게의 동생이자 전직 학교 선생님인 “나(話者)”의 부부는 고급 레스토랑에서 저녁 식사를 한다. 최고급 요리들이 계속해서 들어오고, 두 부부는 영화 이야기와 휴가 계획 등 담소를 나누며 식사를 한다. 그런데 어딘가 분위기가 이상하다. 그들은 단순한 가족 모임을 위한 것이 아니라 뭔가 끔찍한 일이 그들 아이들에게 벌어졌기 때문에 그 대책을 논의하기 위해 이 레스토랑에 모인 것이다. 그건 바로 두 부부의 아들이자 열다섯 동갑내기 사촌 형제들이 은행 현금 인출기에 잠들어 있던 여자 노숙자를 구타하고 불을 질러 끔찍하게 살해한 일 때문이다. 이들이 저지른 이 끔찍한 사건의 동영상이 TV 고발 프로그램에 소개되고, 그 방송을 시청하던 나의 부부는 비록 인상착의가 들어나지 않았지만 한 눈에 자신의 아들인 “미헬” 임을 알아본다. 동영상은 인터넷에까지 퍼져 사건은 일파만파로 커지고, 두 아이들은 세르게 부부가 입양한 아프리카 출신 아이에게 협박당해 돈을 갈취당하는 사건까지 발생한다. 이런 상황을 논의하기 위해 모인 두 부부, 드디어 입을 연다. 형인 세르게는 모든 사실을 밝히고 정계 은퇴를 하겠다고 선언 - 언제고 자신의 발목을 붙잡을 이 사건을 사전에 털고 가려는 정치적 의도가 다분한- 하지만 세르게의 아내와 내 아내는 그런 형을 극렬하게 말린다. 하잘 것 없는 노숙자 하나 죽인 일로 아이의 장래를 망칠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과연 무엇이 아이를 위한 최선의 선택일까? 과연 부모의 사랑은 도덕이나 양심보다 우선일까? 두 부부는 절대 해서는 안될 “선택”을 한다.

 

 

이 책, 지루하다.

 

 

1인칭 시점에서 이야기를 들려주는 설정인데다가 주인공이 속 시원히 터놓기 어려운 “사건”이라 말끝을 흐리고 주저주저하게 되는 상황임은 이해하지만 주인공의 이야기를 통해서만 한정된 정보를 얻을 수 있고 레스토랑 상황이나 등장인물의 과거 이야기 등 군더더기의 상황 묘사가 많아 이야기 전개가 영 답답할 수 밖에 없었다. 그래서 이런 지루함에 레스토랑 장면이 길게 이어지는 중반까지는 쉽게 몰입할 수 가 없었는데, 중후반 이후 두 부부가 만나게 된 이유가 비로소 불거지면서 이야기가 점점 흥미로워지고 책 첫머리에서 주인공이 자신보다 현명하고 지적이라고 평가했던 아내가 아들의 죄를 덮으려고 자기합리화 - 결국 그릇된 현명함과 지적임인 셈이다 - 하는 대목에서는 의외의 재미가 느껴지기도 했지만 쉽게 예측 가능한 과정과 결말은 역시 지루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불편하다

 

 

열 다섯 살 나이의 아이들이 은행 현금 인출기 부스에서 잠들어 있는 여자 노숙자를 악취나고 더럽다는 이유로 구타하고, 기름까지 끼얹어 불태워 죽인다는 사건을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독자들은 없을 것이다. 물론 현실에서는 그보다 더 끔찍하고 잔인한 사건들이 하루에도 열 두 번씩 일어난다고 해도 말이다. 또한 거리를 떠도는 하잘 것 없는 노숙자의 생명보다 유력 정치인의 아들, 그리고 중산층인 자신의 아들의 미래가 더 가치 있고 소중하다며 아들의 죄를 덮어 버리는, 심지어 자신들의 두 아들을 협박한 입양아의 실종을 나몰라라 하는 두 부모의 파렴치한 행동도 영 불편하고 역겹기까지 하다. 이런 주 사건의 불편함 외에도 레스토랑에서 새끼손가락으로 음식을 가리키며 설명해대는 지배인이나 유명 정치인과 사진을 찍기 위해 주변을 맴도는 이웃 테이블 손님들도 불편하기는 매한가지이다. 이처럼 책에는 불편한 사건과 인물들로 가득 차 있다.

 

 

그러면서도 이 책, 다 읽고 나서도 여운이 쉽게 가시지 않는다.

 

 

 

내가 책속의 두 부부였다면 어떡했을까? 남의 일로만 여긴다면 두 부부를 비난하는 게 당연할 텐데 내 일이라면 하는 생각에 머뭇해진다. 이성적으로야 결코 할 수 없겠지만 나에게 이런 일이 닥친다면 나 또한 두 부부처럼 “선택”할 수 밖에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경우는 다르지만 최근 모 드라마에서 뺑소니 사고를 저지른 사람이 자신이 가진 권력과 부를 총동원해서 사건을 무마시키는 장면을 보면서 저게 바로 사회 현실이라고 비난하지만 나라도 그런 위치에 있다면 그런 유혹을 쉽게 떨치지 못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하물며 목숨보다 더 사랑하는 자식의 일에 사회 도덕과 규범을 앞세울 부모가 과연 몇이나 될까? 그런 사랑이 분명 그릇되고 결코 그렇게 행동해서는 안 되는 것임에는 분명하지만 그게 나라면 이라는 질문에는 쉽게 답을 할 수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두 부부의 가족들은 그 후로 행복했을까? 결말에서 세르게는 선거에서 떨어지긴 했지만 사건은 특별한 문제 - 입양 아들이 모종의 이유로 실종되긴 했지만 그다지 슬퍼하진 않는다 - 없이 마무리된 걸로 그려진다. 사건의 앙금 때문에 당분간은 심적으로 괴로울지 모르지만 어차피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라고 처음의 죄의식과 자책감은 시간은 갈수록 옅어지고 언젠가는 그 흔적조차 사라지고 말테니 말이다.

 

 

하지만 세상일이란 게 늘 그렇듯이 그 사건에 대한 기억도 시간이 지나면 우리한테서 멀어질 것이다. 하지만 정말로 우리가 잊어버려야 할 것은 바로 그 비밀이었다. 둘이서만 알고 있는 비밀. 망각은 일찍 시작할수록 효과가 큰 법이다. - P.179

 

 

이렇게 책에서처럼 나중에라도 아무 문제가 발생하지만 않는다는 믿음 또는 보장만 있다면 어떻게든 덮어두려는 마음을 결코 거스르기가 어려울 것이다. 자동차 뺑소니 사고처럼 머리(이성)로는 분명 옳지 않다는 것을 알지만 가슴(심정)으로는 아무도 본 사람이 없으니 이 자리만 모면하면 된다는 잘못된 선택을 하게 되는, 참 이율배반적인 상황 말이다. 그러기에 책을 다 읽고 나서도 과연 무엇이 옳은가 하는 생각을 쉽게 떨쳐지지가 않았다. 아마 작가의 의도가 바로 이것이었을 것이다. 논란꺼리, 즉 화제성과 쉽게 가시지 않는 여운 말이다.

 

 

그래서 이 책, 지루하고 불편했지만 꽤나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그런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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