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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의 고치 작가 아리스 시리즈
아리스가와 아리스 지음, 최고은 옮김 / 북홀릭(bookholic) / 2012년 1월
평점 :
품절


“일본의 엘러리 퀸”이라 불린다는 “아리스가와 아리스”를 지난 1월 <주홍색 연구>에 이어 두 달 여 만에 <달리의 고치(원제 ダリの繭/북홀릭/2012년 1월)>로 다시 만났다. 책을 받아들고서 제목의 “달리”라는 단어가 낯설어 검색을 해보니 초현실주의 화가인 “살바도르 달리( Salvador Dali; 1904~1989)”라고 한다. 20세기 가장 독창적인 화가이며, 특히 연인이었던 “갈라(Gala Eluard; 1894~1982)”와의 지독한 사랑으로 유명했다고 하는데 그림에 문외한이다 보니 이름을 알았더라도 생소하기는 마찬가지이다. 거기에 벌레가 실을 내어 지은 집을 의미하는 “고치(Cocoon,繭)”이라니 이해가 되지 않기는 마찬가지이다. 제목에 대한 의문은 뒤로 한 채, 읽기 시작했고 다 읽고 나니 그 의문은 저절로 풀려졌다.

 

 

40대 남성인 “도죠 슈이치”는 전국에 스물여덟 군데의 지점을 가지고 있는 연 매출 100억 엔대의 주얼리 체인의 경영자로, 그 성장세 뿐만 아니라 쉬르레알리슴의 거장인 살바도르 달리를 따라 하는 자신의 독특한 캐릭터로 수차례 언론에 소개된 적이 있는 유명인이다. 그는 달리처럼 밀랍으로 고정시켜 양끝이 삐죽 올라간 콧수염을 기르고, 자신의 사업장과 집을 달리의 미술품들로 도배해놓을 정도로 열광적인 달리 마니아이다. 그의 별장에는 마치 번데기 고치를 연상시키는 캡슐 형태의 기계인 “프로트 캡슐”이 설치되어 있는데, 생체성분과 유사한 액체로 채워진 그 캡슐에 들어가면 40분 만에 서너 시간의 숙면 효과를 얻을 수 있다고 한다. 화가 달리는 자신이 태어났을 때를 기억한다고 큰소리쳤다고 하는데, 달리가 자서전에서 그 안 - 어머니의 자궁(子宮) -이 어땠냐는 물음에 “더없이 편안한 낙원이었다”라고 대답하겠다고 밝히고 있는 것처럼 달리 마니아인 도죠에게는 바로 달리가 말한 어머니의 자궁처럼 가장 편안하고 안락한 휴식처이자 낙원이었던 것이다. 즉 제목에서의 달리의 고치가 바로 이 캡슐을 가리키는 말이다. 그런 도죠가 그 캡슐 안에서 시체로 발견된다. 그의 트레이드 마크인 달리 수염은 깔끔히 잘려진 채로 말이다. 대학 법학과 교수이자 때때로 경찰 수사에 가담해 눈부신 탐정의 재능을 발휘하는 “필드워크”를 해온 “히무라 히데오”는 과거 사건을 해결하면서 알게 된 경찰의 요청으로 자신의 친구이자 추리소설 작가인 “아리스가와 아리스”와 함께 이 기묘한 살인사건 수사에 참여하게 된다. 수사가 진행되면서 새로운 증거가 드러나고, 살인이 벌어지던 그 시간에 도죠 사장과 같이 있었던 이복 동생, 살해 흉기에 찍힌 지문의 주인공으로 드러난 회사 임원, 아름다운 여비서를 사이에 두고 도죠와 삼각관계였던 회사 디자이너 등이 차례로 유력한 용의자로 거론되지만 모두 이렇다 할 결정적인 알리바이의 허점이나 증거물을 찾지 못하면서 수사는 갈수록 혼선을 거듭한다. 이런 혼선 속에서 일본판 셜록 홈스인 히무라 히데오의 번뜩이는 두뇌는 사건의 진상을 마침내 밝혀내고야 만다.

 

 

“작가 아리스 시리즈” 두 번째 작품- 아리스의 작품에는 자신이 학생으로 등장하는 “학생 아리스”와 성인 작가로 등장하는 “작가 아리스” 시리즈가 있다고 하는데, 재미있는 것은 학생 아리스가 “작가 아리스” 시리즈를, 작가 아리스는 “학생 아리스” 시리즈를 집필하는 것으로 설정하고 있다고 한다. 일종의 “평행 우주” 개념이라고 할까? 아뭏튼 엘러리 퀸 보다 더 기발하고 복잡한 설정이다. 참고로 <주홍색 연구>는 작가 아리스 시리즈 여덟 번째 작품이라고 한다 - 인 이 소설은 추리소설로서의 정형화된 공식, 즉 기묘한 살인 현장과 살해 방법, 시간 순에 따라 하나씩 드러나는 증거들과 그에 따라 의심 받게 되는 용의자들, 마지막에 이르러 명탐정에 의해 해결이 불가능할 것 같은 트릭이 철저하게 깨져버리고 사건 이면에 숨겨져 있는 사연들이 밝혀진다는 결말 등 추리소설, 특히 정교한 트릭과 범인 찾기라는 추리소설의 전통을 계승한 “신(新) 본격 추리소설”의 전형을 고스란히 보여 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특히 용의자나 주변 인물들이 무심코 던지는 한 마디 말에서 결정적인 힌트를 얻는 장면이 이 책에서도 어김없이 등장하는데, 역시나 이런 단서들과 증언들을 제시하여 독자를 수수께끼 풀이에 동참하게 하는, 작가와 독자 간의 “두뇌 싸움”이라는 추리 소설의 전통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고 할 수 있겠다. 그런데, 작가와의 두뇌 싸움에서 승리하는 독자가 과연 얼마나 될까? 이런 두뇌싸움은 여지없이 독자의 패배로 끝을 맺지만 그렇다고 억울하거나 불쾌하기 보다는 트릭의 절묘함과 기발함에 오히려 기분 좋은 패배가 되어 버려 독자들이 추리소설에 그렇게 열광하는지도 모르겠다. 이 작품에서 사용된 트릭도 결말을 알고 나면 시시하게 느껴지지만 추리하는 과정에서는 과연 트릭에 숨겨진 비밀이 무엇일까 하는 궁금증에 책에서 눈길을 뗄 수 없게 만드는 그런 묘미를 맛볼 수 있는 꽤나 정교하고 멋진 트릭이었다고 할 수 있겠다.

 

다만 위화감이 느껴지는 대목들이 눈에 띄는 데, 도죠를 죽인 살인 무기에 찍혀 있는 지문(指紋)이 범인이 전혀 의도하지 않은, 즉 우연(偶然)에 불과하다는 점은 억지스럽기까지 느껴졌다. 특히 결말에서 히무라의 추리는 명확한 물적 증거에 의한 것이 아니라 범인이 실수로 내뱉은 말과 정황상의 증거에 의한 것이어서 범인이 부인(否認)한다면 증거 불충분이 될 수 도 있는 그런 추리라고 할 수 있다. 이 대목은 전편인 <주홍색 연구>에서도 마찬가지였는데, 한 올의 보푸라기나 미세한 먼지, 땀과 침과 같은 체액, 심지어 피부 각질 조각 등과 같은 깨알 같은 증거에서 범인을 밝혀내는 오늘날의 “과학 수사” 현장에서 아무리 소설 속에서는 기발하고 정교한 트릭이라 하더라도 결국 현실에서는 허구(虛構)일 수 밖에 없다는, 어쩌면 오늘날 본격 추리 소설을 표방하는 작품들에서 공통적으로 드러나는 일종의 한계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일까? 일본 추리소설이 이런 본격 추리 외에 “사회파”, “서술 트릭”, “코지 미스터리”, 공포·SF·판타지 등 다른 장르와의 “혼합형 추리” 등 다양한 추리 소설 장르들로 분화(分化)되고 있는 이유가.

 

 

추리 소설의 재미와 한계, 모두를 가지고 있는 작품이지만 개인적으로는 전편 - 시리즈 순서가 아니라 읽은 순서의 의미로 - 인 <주홍색 연구> 보다는 추리 소설적 재미는 이 작품에 더 점수를 주고 싶다. 저번 작품을 읽고 그를 앞으로도 자주 만나게 될 것 같은 예감이 든다고 말했었는데, 국내 출판된 그의 작품들이 내가 읽은 두 작품 이외에도 여러 편이 되고, 새로운 작품 출간 소식도 계속 들려오는 것을 보면 그 예감은 앞으로도 계속 유효할 것 같다. 다음 번에는 “학생 아리스” 시리즈로 그를 만나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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