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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레빌라 연애소동
미우라 시온 지음, 김주영 옮김 / 은행나무 / 2011년 11월
평점 :
절판


<고구레 빌라 연애 소동(원제 木暮莊物語/은행나무/2011년 11월)>을 받아들고서 저자 “미우라 시온(三浦しをん)”의 이름이 낯설지 않아 검색해 보니 역시나 재작년 봄에 재미있게 읽었던 <마호로역 다다 심부름 집>의 작가였다. 전작이 큰 재미와 감동보다는 읽는 내내 가벼운 미소가 절로 지어지고 다 읽고 나서 잔잔한 감동을 맛볼 수 있었던, 특히 작가의 삶에 대한 따뜻한 시선과 애정에 공감하게 되는 유쾌하고 즐거운 책이었던 터라 이 작가의 다른 작품도 마나봐야겠다 했었는데 이 년 여 만에 그의 신작으로 다시 만나게 된 셈이다. 익살맞은 만화풍의 표지 그림이 전작 못지않은 재미와 감동을 선보이겠구나 하는 기대를 절로 품게 하는 이 책, 가벼운 마음으로 하드 커버 표지를 열어 읽기 시작했다.

 

 

도쿄 도심에서 다소 떨어진 한적한 주택가에 자리 잡고 있는 2층 목조 건물인 “고구레 빌라”. 건물 외벽은 갈색 페인트로, 나무 창틀은 하얀색 페인트를 칠했고, 멀리서 보면 초콜릿 바탕에 생크림으로 장식한 초콜릿 케이크가 떠오르는 그런 집으로 겨우 방 여섯 개가 고작인데, 그나마 주인 할아버지 “고구레” 씨를 포함해 네 가구만 사는 집이다. 그런데 이곳에 사는 네 가구의 사람들은 영 “이상한” 사람들이다. 먼저 고구레 빌라에서 10분 정도 떨어진 “사에키 플라워숍”에 근무하고 있는 203호에 살고 있는 아가씨 “마유”는 전(前)애인인 “나미키”와 현(現) 애인인 “아키오”와 비록 잠시지만 한 집에서 기묘한 동거 생활을 하게 된다. 집주인이자 일흔을 넘긴 할아버지인 “고구레” 씨는 죽을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친구의 병문안을 갔다가 자신의 마누라가 자신과 섹스하기 싫다고 투정대는 친구의 말에 흠칫 놀라면서도 자신 또한 죽기 전에 섹스를 하고 싶다는 생각에 고민을 거듭하던 중 “도우미” 여성을 불렀다가 다른 집에 살고 있던 아내가 들이 닥치는 바람에 도우미 여성을 숨기는 일대 소동을 벌이기도 한다. 인근 애견 미용실에서 일하는 20대 여성 “미네”는 고구레 빌라를 지나칠 때마다 마당에 묶여 있는 회색 중형견 “존”을 볼 때 마다 깨끗하게 목욕시켜 주고 싶다는 생각을 하지만 좀처럼 기회를 얻지 못하다가 전철역 기둥에 돋아난 남성 성기 모양의 이상한 물건 때문에 인연을 맺게 된 “마에다 고로” 덕분에 어찌어찌해서 그 바람을 이루게 되고, 미네가 근무하는 꽃집 여사장인 “사에키”는 같은 장소에서 함께 운영하는 찻집 주인인 남편이 내오는 커피에서 흙탕물 같은 맛을 느끼고는 남편의 부정(不貞)을 의심하고는 밤마다 외출하는 남편의 뒤를 밟아 결국 부정의 현장을 덮치게 된다. 고구레 빌라 201호에 사는, 세무사자격증 취득을 준비 중인 20대 청년 “간자키”는 비어 있는 옆 집 202호를 수시로 드나들면서 방바닥에 구멍을 내어 아래층 102호 여대생이자 이 남자 저 남자와 잠자리를 갈아치우는 문란한 “미쓰코”를 일년 채 훔쳐 보다가 결국 들키게 되지만 미쓰코의 묵인하에 훔쳐 보기를 계속하게 된다. 난소 이상으로 생리를 하지 않은, 결국 아이를 낳을 수 없는 몸인 미쓰코는 친구가 맡기고 간 아이를 돌보다가 그만 아이에게 흠뻑 정이 들어 일주일만에 다시 돌려주고는 온몸이, 마음이 갈기갈기 찢어진 것 같은 그런 느낌이 든다. 마유의 전애인이었던 나미키는 이대로 단념할 수 가 없어 마유의 곁을 맴돌며 그녀를 “스토킹”하듯이 지켜보다가 꽃 집 단골인 낯선 여인인 “니지코”를 만나게 되어 그녀의 집에 머물게 된다.

 

 

이처럼 이상하기만 한 사람들의 이야기인데다가 입에 담기에는 민망한 “섹스”가 주된 주제이지만 왠지 그들이 혐오스럽지만은 않다. 말없이 떠났다가 훌쩍 돌아와 있을 곳이 없다며 집에 머물게 해달라는 옛 애인을 그녀와 현 애인은 집안으로 불러 들여 전혀 변태스럽지 않은 따뜻한 마음으로 보듬어 주며, 부정의 현장을 들킨 남편을 포악스럽게 다그치기 보다는 함께 가자며 손을 내밀기도 한다. 엉겁결에 맡게 된 아이에게 정이 들어 아이를 떠나보내고 힘들어하는 여대생에게 처음에는 훔쳐보기 변태 성욕자에 지나지 않았지만 어느새 그녀의 삶을 진심으로 이해하게 된 위층 청년은 그녀를 위로하며 그녀의 추억의 맛인 흑사탕을 건넨다. 전 애인을 스토커하다가 요리에서 거짓말을 할 때는 모래 맛을, 바람을 피우면 흙탕물 맛을 느끼는 이상한 능력을 가진 여인과 동거하게 된 남자는 그 집을 떠나면서 그녀에게 두 번 다시 모래 맛과 흙탕물 맛이 나는 요리를 만들거나 먹지 않도록 자신의 마음을 담은 신호를 보내기로 결심한다. 이처럼 모두 남들에게는 털어놓을 수 없는 저마다의 상처들을 하나씩 간직하고 있지만 그 상처 때문에 사랑을 거부하거나 또는 멀리하지 않고 저마다의 방식으로 사랑을 풀어나가는 이들의 이야기 하나하나에 절로 고개를 끄덕이게 하고 가슴 한 켠에 따뜻함을 느끼게 하는 미우라 시온의 글 솜씨에 “현재 일본에서 ‘인간’을 묘사하는 능력이 가장 뛰어난 젊은 작가”라는 평가가 결코 과장된 것이 아니었음을 다시 한번 여실히 증명해준다고 할 수 있겠다. 역시 사람들은 겉만 보고는 판단할 수 없다는 어른들의 말씀이 옳은 걸까? 겉으로 보여지는 모습은 영 이상할 것만 같은 고구레 빌라 주민들이지만 어쩌면 그 어느 누구보다도 속 깊고 따뜻한 마음을 가진, “제대로” 사랑할 줄 아는 그들이야 말로 정말 “좋은” 이웃들이 아니었을까?

 

 

요란스럽거나 기발하지는 않지만 전작처럼 소소하면서도 잔잔한 재미와 감동을 주는 책이었다. 두 권 밖에 만나보지 못했지만 미우라 시온, 참 유쾌하면서도 따뜻한 글을 쓸 줄 아는 작가인 것 같다. 이번에 다시 확인하게 된 그의 이름은 앞으로는 쉽게 잊어버리지 않을 것 같은, 나에게는 자주 만나보고 싶은 그런 작가로 기억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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