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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에게는 손자가 없다 - 김경욱 소설집
김경욱 지음 / 창비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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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에서 “단편 소설의 매력”을 검색해보니 “이야기의 빠른 전개와 장황하지 않은 압축미(네이버 지식iN ID destinyend님 답변 인용)"라고 한다. 단편소설은 이처럼 짧은 호흡 안에 이야기의 전개와 결말을 압축해서 모두 맛볼 수 있는 재미가 있지만, 이야기의 결말이 분명치 않고 지나치게 생략된 전개 때문에 쉽게 몰입이 되지 않아 읽고 나서도 금세 이해되지 않고 뒷맛이 개운치 않은 경우가 종종 있다. 물론 행간(行間)에서 생략된 전개와 해설을 유추해보는 여운을 길게 가지며 곱씹어 보는 경우도 있겠지만 한 편에 너무 머물다 보면 오히려 장편보다 읽는 속도가 더뎌지기도 하며, 단편 소설집인 경우 다음으로 이어지는 또 단편의 이미지 때문에 전 편의 여운은 금세 희미해지는 경우도 종종 있게 된다. ”김경욱“의 소설집 <신에게는 손자가 없다(창비/2011년 9월)>이 나에게는 분명치 않은 결말에서의 모호함과 한 편 한 편 어둡기만 한 회색빛의 이미지로 느껴지는 그런 책이었다. 

 책에는 표제작이자 첫 수록 작품인 <신에게는 손자가 없다>를 비롯해서 총 9편이 실려 있다. <신에게는 손자가 없다>는 “이 도시에서만 수백 개의 수도 계량기가 동파된 월요일 아침”이란 문구로 부동산 중개소와 학교, 아파트 관리 사무소에서 일어난 도난 사고로 시작된다. 잠금장치가 풀려나가고 자물쇠가 뜯겼으며 열쇠구멍이 횅한 도난 사건이 분명한데 없어진 물건은 전혀 돈이 될 것 같지 않은 “아파트 단지 상세도”와 “학생 신상카드”, “주차스티커 발급대장” 들이다. 이런 의문은 역시 같은 문구로 시작하는 퀵서비스 사내 이야기에서부터 서서히 풀려진다. 같은 반 아이들에게 성추행을 당하고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를 앓아 시도 때도 없이 졸고 깨어 있을 때도 눈빛이 흐리멍덩해진 손녀가 안쓰러운 사내는 죄송하다고도 미안하다고 하지 않고 그저 돈으로 무마하려는 가해 아이들의 보호자들을 “심판”하기로 한다. 책 첫머리에서 없어진 물건들은 손녀를 그렇게 만든 아이들과 부모들을 확인하기 위한 일종의 단서들인 셈이다. 마침내 심판의 어둠이 밝아오고 사내는 그 아이들이 살고 있는 아파트 단지로 숨어 들어가 젊은 시절 열대의 정글을 누볐던 군인이었던 것처럼 작전을 수행한다. 다음날 아침 전기가 끊긴 통에 트랜지스터 라디오를 켰지만 아침 뉴스에는 어젯밤 자신이 벌인 작전의 결과가 등장하지 않았다. 결국 남은 건 불덩이처럼 열이 오른 손녀와 발이 붓고 눈이 더 침침해진 자신과 등유가 다 떨어져 불꽃이 시득시득해진 석유풍로뿐. 그런 그에게 손녀는 천진난만하게도 손녀가 울음을 터뜨릴 때마다 불러줬던 캐롤을 할아버지께 들려준다. 다 읽고 나서 일순 당황했다. 한편의 스릴러처럼 진행되던 이야기가 딱히 결말 없이 허무하게 막을 내렸기 때문이다. 제목처럼 신에게는 손자가 없기 때문에 이 가엾은 사내의 복수극을 용납하지 않았던 것일까? 아니면 복수가 처참한 현실까지 극복해낼 수 는 없다는 일종의 허무함이었을까? 물론 현실에서의 그 어떤 복수도 통쾌함은 찰나일뿐 감당하기 어려운 법적 제재가 뒤따를 수 밖에 없고 그런 복수를 해냈다고 하더라도 현실은 전혀 바뀔 게 없는 그런 것이라고 결말을 나름 짐작해볼 수 도 있겠지만 몇 번을 다시 읽어봐도 쉽게 이해되지 않은 이야기와 결말이었다. 어쩌면 작가는 자신이 들려주고 싶은 결말이 아니라 독자들의 각자의 해석에 결말을 맡겨놓는, 일종의 "열린 결말"을 의도한 것은 아닐까? 여러 생각을 해보다가 다시 읽기 시작했지만 이어지는 단편들도 모두 이런 식이다. <러닝 맨>에서는 도로 중앙을 달리며 방해하는 뱀 문신을 한 남자와 오토바이에 자신의 학생이자 애인을 실고 달리는 가난한 과외교사와의 막연한 불안감과 긴장감을 그리고 있지만 역시나 뱀 문신 남자의 정체는 라디오에서 들려오는 살인범으로 짐작될 뿐 주인공과의 “사건”은 채 일어나지 않고 마무리되고, <99%>에서도 주인공이 열등감을 느끼게 한 상사가 자신이 알던 동창생으로만 짐작될 뿐 그의 정체에 대해 분명한 결론을 들려주지 않으며, <허리케인 조의 파란만장한 삶>에서는 시합 직전 왜 체중이 갑자기 불어나 계체 테스트를 통과하지 못했는지에 대한 이유는 들려주지 않는다. 그 외 나머지 작품들도 이처럼 분명한 결말을 맺진 않고 그저 사회 곳곳에서 저마다의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는 군상들의 삶을 그저 담담하게 들려준다. 그렇다 보니 한 편 한 편 읽고 나도 쉽게 마무리가 되지 않고 여운이 길게 남아 꽤나 더디게 읽히고 만다.

출판사 소개글을 보니 이 작가의 경향이 “이야기의 핵심적인 지점마저 부러 절제하고 생략하고 비워놓음으로써 더 많은 의미로 스스로를 열어 놓아서 그것이 독자들로 하여금 더 큰 진실에 다가가게 만든다”고 해설하고 있는데, 어떤 독자들에게는 이런 “열린 결말”이 작가의 주입식 결말이 아니라 좀 더 다양한 면에서 사건(이야기)를 바라볼 수 있게 하고 각자의 상상대로 결말을 유추해 보는, 말 그대로 더 큰 진실에 다가서는 재미와 감동을 맛볼 수 있겠지만 나로서는 결말과 작가의 의도를 파악해내기 어려워 자꾸 곱씹게 되고, 그러다 보면 더 모호해지는 그런 느낌이 들었다. 다만 한 편 한 편 음울하기만 색감과 이미지만큼은 꽤나 강렬하게 느껴져 “모호함”과 함께 “음울한 회색빛” 때문에 여운이 더 짙고 더 길게 남게 만드는지 모르겠다.

과문(寡聞)한 탓에 이 책 올곧이 읽어내지 못했지만 이 작가, 이 단편집 한 권 만 읽고 끝낼 그런 작가는 아닌 듯 하다. 다음 번에는 좀 더 호흡이 긴 장편으로 그를 만나봐야 할 것 같다. 그때도 소개글처럼 명료한 해답이 아닌 모호함이 주는 열린 결말이 과연 또다른 진실을 발견케 하는 재미와 감동을 주는 지 아니면 다시 한번 쉽지 않은 이해 탓에 절망케 할 런지 두고 봐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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