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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의는 아니지만 - 구병모 소설
구병모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1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구병모” 작가의 전작 <아가미(자음과 모음/2011년 3월)>에서 신비롭고 애처로운 이야기의 흐름에 취해 금세 읽어 버렸지만 작가가 주인공 “곤”을 통해 이야기 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명확하게 이해되지 않아 다소 아쉬워서 그녀의 다른 작품들을 읽어보고 싶었는데, 첫 소설집인 <고의는 아니지만(자음과 모음/2011년 8월)>로 드디어 다시 만나게 되었다. 이번만큼은 그녀의 메시지를 올곧이 이해해보자 하는 마음으로 일부러 읽는 속도를 조절하면서 천천히 읽었다. 그런데 오히려 전작 <아가미>보다 더 이해하기 힘든 메시지에 다시 한번 좌절감을 느껴야 했다.
이번 책은 그녀의 첫 등단작품이자 성공적인 데뷔로 평가받고 있는 2009년 <위저드 베이커리(창비/2009년 3월)> 이후로 각종 지면에 발표한 단편 5편과 새롭게 집필한 2편을 함께 묶은 단편 소설집이다. 제일 먼저 내전으로 인하여 인명과 물자 손실 뿐만 아니라 무역 관계망도 훼손되는 극심한 피해를 입은 한 도시가 신임 시장이 급속도의 경제 회복 기조로 여러 정책을 펼치면서 화려하고 웅장한 수식을 덜어낸 명료하고 단도직입적인 말, 정확한 수치로만 보고하게 하는, 즉 문자로 표현할 수 있는 모든 매체에 대해 직유와 은유 등 “비유(譬喩)”를 금지하게 된 이야기를 그린 <마치 ……같은 이야기> 를 싣고 있다. 이어 6년째 공무원 고시를 준비하고 있던 한 남자가 만취(漫醉)하여 필름이 끊겼다가 눈을 떠보니 땅 속 주물에 갇혀 버리고, 구조대, 기차, 경찰, 금속 전문가가 연이어 오지만 구출 기미는 커녕 온 세상의 구경꺼리가 되어버린 이야기 <타자의 탄생>, 아이들을 차별하지 않으려고 애쓰지만 어쩔 수 없이 기준으로 분류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한 유치원 교사가 치명적인 말실수를 하는 바람에 살인을 당하는 이야기 <고의는 아니지만>,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의 “새”처럼 어느날 새떼들이 돌연 사람을 공격하여 뜯어먹는 엽기적인 사건들이 일어나고, 이런 끔찍한 일의 원인이 절망의 에너지와 관련이 있다는 설에 죽지 않기 위해 ‘긍정운동’에 나선 한 여자 이야기 <조장기>, 밤이 되도 자지 않는 아이를 억지로 재우려고 하지만 끝내 말을 듣지 않자 아이를 세탁기와 냉장고에 넣고 오븐에 구워버리는 엄마 이야기 <어떤 자장가>, 담임선생님에게 운다고 더 두들겨 맞은 소년이 재봉틀 가게에서 감각을 느끼게 하는 모든 세포들을 꿰맨 후 벌어지는 이야기 <재봉틀 여인>, 나를 강간한 남자가 성호르몬이 분비되는 순간 몸 속 곤충이 급성장하여 숙주인 남자의 몸을 찢고 나오는 새로운 형벌을 받게 되고, 이제 성인이 된 내 앞에 다시 나타난다는 이야기 <곤충도감> 등 총 7편의 단편들을 차례로 선보인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아가미>에서는 처연하고 아름다운 사랑이야기로 잔잔한 감동 - 물론 메시지는 명확하게 이해를 못했지만 - 을 불러 일으켰는데 이 작품에서는 색다른 재미라고 정의내리기에는 영 낯설게만 느껴지는, “기괴(奇怪)”함마저 느껴지는 상상들을 선보여 상당히 당황스러웠다. 물론 일견 이해하려고 들고자 한다면 <마치 ……같은 이야기>에서는 경제적 가치에 의해 “실질적”이고 “실용적”인 것만 집착하는 현대 사회에 대한 냉소적인 비난으로 볼 수 도 있겠고, <고의는 아니지만>은 현 사회의 본령이 공평하고 평등한 세상을 추구한다고 하지만 어떤 식으로든 특정된 범주의 기준으로 차별할 수 밖에 없는 모순을 꼬집는 것으로 이해할 수 도 있겠다. 그러나 이런 이해가 작가가 이야기하려는 의도에 부합하는지 도 모르겠고, 단편들을 읽고 금세 느껴지는 그런 것들이 아니라 굳이 이 책에서 뭔가 의미를 찾으려는 시도, 즉 “억지 춘향” 식 해석일 수 밖에 없다고 느껴진다. 그녀 스스로가 굉장히 현실주의자여서, 현재를 제일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말하는 것을 보면 이 책에서 보여주는 기괴한 상상들이 베르나르 베르베르처럼 말 그대로 “공상(空想)”이 아니라 현실성에 기반을 둔 사회 비판적 그런 상상이 맞을 텐데 이 7편의 이야기에서 그런 현실 비판적 느낌보다는 섬뜩함과 공포스러움, 그리고 다시 쳐다보기 힘든 기괴스러움만 느껴지는 것을 보면 작가의 필력을 탓하기 보다는 나의 이해력과 문학적 소양의 부족을 다시 한번 탓하는 것이 맞을 듯 싶다.
작품마다 신선한 충격과 매력을 선보였다는 작가이지만 나에게는 영 어렵기만 한 - 정확히는 내 취향에는 맞지 않는 이라는 표현이 맞겠지만 - 작가로 기억될 것 같다. 그녀가 앞으로 선보이게 될 날이 시퍼렇게 선 상상력에 내 마음이 다시 베어질 때, 그런 베임이 기분 좋은 그런 것이 될지 아니면 다시 한번 낯설기만 하고 당황스러울지 모르겠지만 앞으로 그녀의 작품들을 만날 때는 미리 마음의 준비가 필요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