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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틸 라이프 아르망 가마슈 경감 시리즈
루이즈 페니 지음, 박웅희 옮김 / 피니스아프리카에 / 2011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영국추리작가협회상, 캐나다추리작가협회상, 영미서점협회 딜리스상, 앤서니상, 배리상 등 각종 문학상을 휩쓸었다는 “루이즈 페니”의 데뷔작 <스틸 라이프(원제 Still Life/피니스아프리카에/2011년 6월)>의 출판사 소개글 중 “영국 정통 후더닛 미스터리의 거장 애거서 크리스티의 계보를 이었다”는 문구에서 추리소설 매니아를 자처하는 나로서도 “후더닛”이라는 단어가 영 낯설었다. 인터넷을 검색해보니 “후더닛(whodunit)”란 “내용과 줄거리가 범죄와 그 해결에 주력하는 유형의 미스터리 영화나 프로그램, 소설 등에 대한 속칭. ‘Who has done it?’에서 나옴(네이버에서 발췌)”라는 뜻이라고 한다. 탐정이나 형사가 범인을 추리해내는 것이 고전 추리소설의 원형(原形) - 범인을 먼저 독자에게 밝히고 이야기를 전개하는 <콜롬보 형사>나 작품 내에 또 다른 작품을 교차 배치하거나 시간 순서를 바꾸거나 해서 오인시키는 방법인 “서술 트릭”은 일종의 변형(變形), 심지어 추리 소설의 규칙을 위반한 반칙(反則)으로 부르는 사람도 있다 - 이라고 할 수 있으니 고전 스타일의 추리소설이라는 설명 정도로 볼 수 있겠다. “독자의 뒤통수를 치는 데에만 급급해서 진상의 추적 과정이나 심지어 범인의 동기마저도 납득이 가지 않으면서 반전만을 추구하는 추리소설”이 아닌 정통 고전파 추리소설을 지향한다는 이 책, 오랜만에 애거서 크리스티류의 추리소설을 읽어보겠구나 하는 기대감에 책장을 펼쳐 들었다. 

큰 도로는 물론 작은 도로에서도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 캐나다 어떤 관광지도에도 나오지 않는 마을 “스리 파인스”는 지난 25년 동안 단 한 번도 범죄 소식을 들어본 적이 없는, 현관문을 잠근다면 기껏해야 수확 철에 이웃 사람들이 주키니(오이 비슷한 서양 호박)를 몰래 가져다 놓지 못하게 하려는 것 정도로 범죄가 없는 그런 한적한 마을이다. 그런데 추수 감사절 하루 전인 일요일 이른 아침 마을 단풍나무 숲에서 네 활개를 펴고 누워 있는 76세의 노부인 “제인 닐”의 변사체가 발견된다. 사인은 사냥용 화살의 관통에 의한 죽음으로 밝혀지는데 수사를 맡게 된 퀘벡 경찰청의 아르망 가마슈 경감은 무성한 숲인지라 사슴으로 오인한 실수인지 아니면 계획 살인인지에 대한 판단을 유보하고 수사에 나선다. 그러던 중 사건 발생 며칠 전 오리똥 거름을 뿌려대는 세 사내아이들을 제인이 혼을 냈다는 사실을 듣고 한 아이 집을 방문하여 조사를 하던 중 화살과 피 묻은 옷을 불태우려는 아이 부모들의 수상쩍은 행동과 아버지가 제인을 죽였다는 아이의 증언을 듣고 아이의 아버지를 체포한다. 그러나 제인을 죽인 화살이 숲에서 발견되면서 아이의 아버지는 풀려나게 되고, 사건은 단순 오인사가 아닌 계획적인 살인사건으로 전환되어 수사를 계속한다. 사건 발생일로부터 일주일 후 미술 전시회에 제인 닐의 그림인 <박람회의 날>이 전시되는데, 사전에 그 그림을 심사했던 심사위원이자 제인 닐의 절친한 이웃인 "클라라“와 남편 ”피터“는 그림이 어딘가 달라졌음을 감지하게 된다. 그날 밤 범인의 정체를 짐작한 클라라는 범인의 집을 방문했다가 위험에 처하게 되고, 일촉즉발의 순간 가마슈 경감 일행이 범인의 집에 들이닥치게 된다. 

내가 그동안 너무 자극적인 추리소설에 입맛이 길들여진 탓일까? 홍보문구 말대로 “애거서 크리스티” 소설을 읽는 듯한 고전 추리소설 재미를 맛볼 수 는 있지만 그 맛이 너무 밋밋하게 느껴졌다. 이 책에서의 살인사건은 책 첫 페이지부터 등장하는 제인 닐 살인사건이 전부 - 물론 마지막에서 범인이 제인 닐을 살해하기 이전에 다른 살인사건을 저지른 것이 밝혀지지만 읽는 동안 두 살인사건의 연관성을 전혀 느낄 수 가 없었다 - 이다. 그렇다고 살인 사건을 은폐하기 위한 절묘한 트릭을 통한 독자들과의 두뇌싸움이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이 책에서 탐정격인 가마슈 경감 또한 천재적인 두뇌 솜씨를 발휘하는 것이 아니라 탐문과 증거 수집을 통해서 범인을 밝혀내는 “형사물”의 전형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는데, 그 수사 과정이 못내 지루해서 읽는 데 꽤나 곤혹스러웠다. 몇 몇 설정에서는 억지스러운 면도 없지 않은데, 처음에는 제인 닐을 죽게 한 화살을 범인이 의도적으로 감춘 것으로 오인했다가 나중에야 사건 현장 근처에서 발견하여 사건이 급반전하는 점이나 살인 사건 해결의 결정적인 증거가 되었던 제인 닐의 그림인 <박람회의 날>도 그림 속의 등장인물이 마을 실제 인물들을 그렸다는 단서를 미리 제공하지 않고 나중에 이르러서야 그게 결정적인 단서로 등장하는 점- 그렇다 보니 독자들이 범인을 미리 예측해볼 여지가 전혀 없다 - , 또한 자신의 얼굴을 바꿔 그린다는 설정 - 이미 클라라나 피터, 다른 심사위원들이 그림을 먼저 봤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도 납득이 가지 않았다. 그림을 없애거나 불태우는 것이 좀더 상식적인 대응이 아니었을까? 물론 그렇게 한다면 범인의 존재를 명확하게 인지시키는 위험이 있었지만 어차피 그림을 변경해서 정체가 노출되는 것과 무슨 차이인지 잘 이해가 되지 않는 대목이었다.

밋밋하게까지 느껴지는 정적인 추리소설에는 그다지 감흥을 못 느끼는 것은 책 자체의 문제라기보다는 워낙 극한 재미와 반전을 선보이는 “자극적인” 추리소설에 길들여져 섬세한 미각을 잃어버린 내 입맛, 즉 독서 취향을 탓해야 할 것 같다. 그래도 오랜만에 고전 추리소설의 풍취를 맘껏 맛볼 수 있었던 점만큼은 좋았다고 평가하고 싶다. 가마슈 경감 시리즈가 7권까지 나왔다니 이 시리즈에 대한 평가는 다른 책들에서의 활약을 좀 더 지켜본 후로 미뤄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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