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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밤의 궁전 안개 3부작 3
카를로스 루이스 사폰 지음, 김수진 옮김 / 살림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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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타지 소설을 좋아하는 지라 소설 <바람의 그림자(La Sombra del Viento)>로 2001년 스페인에서 무려 101주 동안 베스트셀러 상위에 머물렀고, 세계 30여 개 국에서 20개 언어로 번역되면서 독자들의 폭발적인 반응을 불러일으켰다는, 현존하는 스페인 작가 중에서 가장 유명한 작가라는 “카를로스 루이스 사폰(Carlos Ruiz Zafon)”의 명성만큼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지만 좀처럼 그의 책들을 만나 볼 기회가 없어 아쉬웠는데, 드디어 그의 신작인 <한밤의 궁전(원제 EL PALACIO DE LA MEDIANOCHE/살림출판사/2011년 2월)>을 통해서 처음 만나게 되었다. 첫 도입부부터 시선을 확 잡아끄는 이 책은 마지막 페이지까지 결코 긴장을 늦출 수 없게 만드는 스릴과 긴장감으로 단숨에 읽게 만드는 탁월한 재미를 주는 판타지 스릴러 소설이었다. 

1916년 5월 인도 캘커타, 갓 태어난 쌍둥이 아이를 가슴에 품은 영국군 군인 마이클 피크 중위는 폭풍우가 몰아치는 한 밤의 어둠과 집요하게 쫓아오는 추격자들을 간신히 따돌리고 아이들의 외할머니인 “아르야미 보세”에게 아이들을 맡기고는 추격자들을 멀리 유인하지만 총알로 머리에 구멍이 났음에도 피한방울 흘리지 않고 금세 아물어 버리는 초자연적인 존재인 “자와할”의 손에 죽음을 맞는다. 다음날 새벽, 아르야미 보세는 두 아이 중 남자 아이를 바구니에 담아 밀봉된 편지와 함께 “토마스 카터”가 운영하는 “세인트 패트릭스 보육원” 문 앞에 놓아두고, 보육원을 방문한 자와할은 아이의 존재를 부인하는 토마스 카터에게 16년 후 아이들이 성인이 될 때 찬조금을 내려오겠다고 말하고 사라진다. 그로부터 16년 후인 1932년 5월 24일 보육원에 맡겨졌던 쌍둥이 남자 아이 “벤”은 자신의 친구들인 “차우바 소사이어티” 멤버들과 함께 성인 축하파티를 치루게 된다. 그날 밤 아르야미 보세와 손녀" 쉬어"가 원장 카터를 찾아와 아이들 맡기게 된 사연을 털어놓고, 카터 원장은 “벤”이 바로 16년 전 맡겼던 아이라고 일러준다. 그날 새벽녘 카터 원장에게 자와힐이 찾아오고, 원장실이 폭발하는 사고가 발생하면서 카터원장은 크게 다친다. 병원에 호송되기 전 원장은 벤에게 아르야미 보세만을 찾아가라고 말한다. 다음날 벤은 친구들과 함께 아르야미 보세를 찾아가고 자신의 출생의 비밀, 즉 아버지 "찬드라 차테르기"와 어머니 "킬리안"의 이야기와 "자와할", 그리고 이제는 폐허가 되어 버린 지터스 게이트 역사의 끔찍했던 화재 사고에 얽힌 이야기를 듣게 된다. 차우바 소사이터티 멤버 아이들은 각자 과거의 사건을 조사하기로 하고 뿔뿔이 흩어지는데, 그중 한 아이가 지터스 게이트 역사를 조사하던 중 실종되고 만다. 아이들의 조사로 과거 사건에 뭔가 석연치 않음이 있음을 알게 된 벤과 쉬어는 아버지가 남겼다는 집을 찾아가게 되는데, 그곳에서 쉬어가 자와할에게 납치를 당하고, 아르야미 보세의 집 또한 불타게 된다. 진실을 알기 위해 할머니인 “아르야미 보세”를 다시 찾은 벤과 일행은 숨겨진 진실을 다시 듣게 되고, 모든 사건이 시작된 곳이자 쉬어와 친구가 잡혀 있는 지터스 게이트 역 폐허 현장으로 향한다.

 이 책은 판타지 스릴러 형식을 띠고 있지만 엄밀히 말하자면 청소년 성장 소설로 분류하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다. 태어나자마자 닥친 위기, 시간이 흘러 성인이 되자 다시 반복되는 위기와 충격적인 진실에 맞서 싸우는 아이들의 모험은 그동안 성장소설에서 흔히 볼 수 접할 수 있었던 이야기 구조라고 할 수 있다. 사폰은 이런 익숙한 성장 소설 서사 구조에 그동안 자신의 전작들에서 보여준 판타지적 장치를 배치하여 독자로 하여금 읽는 내내 눈길을 뗄 수 없는 재미와 스릴을 선사하면서 성장소설 특유의 잔잔한 감동마저 불러일으킨다. 그렇다면 작가가 말하는 성인이 되기 위한 고통스러운 통과의례는 과연 무엇일까? 벤과 마주친 자와할은 벤에게 어른이 된다는 것을 이렇게 이야기 한다. 

"어른이 된다는 건, 어린 시절에 믿어 왔던 모든 것이 거짓이었음을 깨닫고, 대신 믿지 않으려 거부해 왔던 모든 것들이 진실임을 발견하게 되는 거다. 넌 언제쯤 어른이 될 생각이지, 벤?" -P.303

또한 미치광이라고 말하는 벤에게 이렇게 답한다. 

"누가 정말 미치광이일까? 사람들 가슴 속에는 공포심을 심어 주고, 무슨 짓을 해서라도 저만 잘살겠다고 하는 사람들? 아니면 주변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못 본 체하고 눈 감아 버리는 사람들? 이봐 벤! 세상은 온통 미치광이거나 위선자들의 것이란다. 이 세상 어디를 봐도 미치광이거나 위선자가 아닌 사람은 없어. 그러니 너 역시 그 둘 중 무엇이 될 것인지 결정해야 한다는 거지."-P.332
 

이미 어른의 삶을 살고 있는 나와 같은 사람들이라면 거짓이 진실이 되어 버리고, 이 세상은 온통 미치광이와 위선자들만 가득하다는 자와할의 외침을 간단히 부정하기는 어려웠을 저런 물음에 말문이 막혀 그대로 주저앉을 수 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벤과 쉬어, 그리고 차우바 소사이어티의 아이들은 때 묻지 않은 순수한 마음과 서로에 대한 굳건한 우정과 신뢰로 절대 이겨낼 수 없을 것만 같은 초자연적인 공포와 어쩔 수 없는 희생에서 비롯된 깊은 슬픔마저 극복해내고 진정한 성인 통과의례를 의연히 치뤄낸다. 어쩌면 사폰은 이 책에서 아무리 진실이 충격적이거나 무섭더라도 결코 회피하거나 또는 그대로 순응하려 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 직시(直視)하고 극복해내는 용기야 말로 어른이 되기 위한 진정한 덕목이라는 것을 우리들에게 말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전세계 1200 만 명의 독자가 인증하는 판타지 스릴러의 대가라는 명성을 확인하기에는 다소 부족하지만 판타지 스릴러라는 장르적 재미와 성장소설의 감동을 자유자재로 변주해내는 사폰의 글솜씨만큼은 충분히 확인할 수 있었던 매력적인 작품임에는 틀림없었다고 평하고 싶다. 그에게 명성을 안겨준 출세작인 <바람의 그림자>와 <천사의 게임>이 절로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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