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과 쓸개>를 읽고 리뷰를 남겨주세요
간과 쓸개
김숨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1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김숨”이라는 이름부터 독특한 이 여성 작가는 자주 다니는 “인터넷 북카페(Bookcafe)” 등에서 그녀의 전작인 <철(문학과지성사/2008년 11월)>과 <물(자음과 모음/2010년 3월)>에 대한 리뷰들은 읽어봤지만 사물을 의인화(擬人化)한 소재만 독특하다 싶었을 뿐 그렇게 인상적으로 느껴지지 않았고, 특히 여성작가에 대해 인색한 나로서는 그다지 눈길을 끄는 그런 작가는 아니었다. 그런데 이번에 최근작 <간과 쓸개(문학과 지성사/2011년 2월)>를 통해 처음 그녀를 만났다. 인터넷 검색을 통해 본 그녀의 앳되고 선해 보이는, 그래서 아름다우면서도 가슴 절절한 사랑 이야기만을 쓸 것 같은 사진 속의 모습과는 달리 읽는 내내 불편하기만 했던 그런 책이었다. 

책에는 표제작인 <간과 쓸개>를 포함하여 9편의 단편이 실려 있다. 30~40 페이지 분량의 짤막한 분량 임에도 한 편 한 편이 쉽게 읽혀지지 않는, 절로 가슴이 묵직해지는 그런 불편함이 느껴지는 내용들이어서 읽는 내내 긴장감을 놓을 수 가 없었다. <간과 쓸개>에서는 간암 투병 중인 노인과 아흔 살 누이가 주인공이다. 넉 달 전 30년도 전에 빚까지 져가며 산 평택 땅을 팔아 자식들에게 나눠주고는 천안에서 혼자 살면서 간암 투병 중인 올해 예순 일곱 살의 “나” 에게 큰조카로부터 한 분 밖에 남지 않은 아흔 살 큰누님이 담석이 담낭관을 막아 복부에 구멍을 뚫고 호스를 끼워 쓸개즙을 빼내고는 꼼짝없이 누워계신다는 소식을 듣는다. 사정이 여의치 않아 아들네며 딸네 집으로 전전하는 누님을 죽기 전에 찾아뵈려고 하지만 자신 또한 병세가 악화되면서 만남이 차일피일 자꾸만 늦어진다. 수술 후 찾아간 누님과 어린 시절 이야기를 나누던 “나”는 그동안 큰누님인줄 만 알고 있었던 어릴 적 자신의 손을 붙잡고 저수지를 데려간 누님이 일찍이 돌아가신 셋째 누님이었다는 걸 알고는 까맣게 잊고 있던 셋째 누님을 떠올리며 눈물을 왈칵 쏟아내고, 큰누님도 그런 동생의 우는 모습을 보면서 같이 눈물을 흘린다. 늙은 누님의 손을 붙잡고 과거를 회상하며 터뜨리는 노인의 울음 소리가 귓가에 생생하게 느껴져 읽고 있던 책을 덮고야 말았다.  

이제 30대 중반인 작가는 어떻게 이렇게 인생의 황혼녘의 그늘에서 쓸쓸히 죽어가는 노인들의 모습과 심리를 사실적으로 묘사할 수 있었을까? 이 책 발간 즈음 지방 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작가는 이렇게 말한다.  

쓸쓸하고 희노애락이 담겨있는, 많은 시간을 견뎌낸 노인들의 모습이 더 눈에 들어오고 감정이 더 잘 읽히는 것 같아요. 소설을 쓰기 전에도 또래의 일들보다는 어른들의 세계에 관심이 더 많았어요. 그들이 어떻게 살아가나, 어떤 말들을 하나 귀 기울였죠. 

(대전일보. 2011-3-19 “작가 김숨, 세번째 소설집 ‘간과 쓸개’ 를 말하다”)
 

즉 인생의 풍파를 견뎌온 노인들의 삶에 대한 세심한 관찰이 이렇게 사실적이고 생생한 묘사를 할 수 있었던 이유로 가늠된다. 그러나 과연 관찰만으로 가능할까? 왠지 작가가 곁에서 지켜본 지인들의 삶이 녹아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지만 어떤 사연이 숨어 있을 지는 짐작하기가 어려웠다. 여하튼 첫 시작 작품이 이럴진대 나머지 8편의 단편은 또 얼마나 마음을 불편할까 하는 생각에 쉽게 다시 책을 다시 읽기가 어려웠지만 호흡을 가다듬고 다시 책을 열었다. 

 역시나 다른 작품들도 <간과 쓸개>와 마찬가지로 삶이 지극히 고단한 사람들의 이야기, 즉 한평생 지구과학 교사로 재직했다가 정년 퇴임 후 햇볕조차 들지 않는 북쪽 방에서 유배와 같은 삶을 살고 있는 노인(<북쪽 방>), 뇌수술을 받아야 하는 아들 수술비를 충당하기 위해 전세값을 올려달라는 주인 노파 때문에 쫓겨날 입장에 처한 부부(<내 비밀스런 이웃들>), 수 십 년 된 좁은 빌라에서 한때 고시생이었지만 이제는 폐인이 된 동생과 살고 있는 노부부와 그런 집이 싫어 빨리 서울에 올라가고 싶은 딸(<모일, 저녁)>, 연일 집 앞 가파른 계단을 없애자는 이웃집 남자의 성화와 빚으로 어렵게 마련한 집의 보일러가 고장나면서 물이 새는 배관을 찾기 위해 여기저기 파헤쳐지면서 평온했던 삶이 엉망이 되어 버린 아내(<흑문조>), 근처에 생긴 번듯한 슈퍼 때문에 아무도 찾지 않아 유통기한을 넘겨버린 물건들만 진열되어 있는 구멍가게에서 살아가는 가족(<럭키슈퍼>) 등 한 편 한 편이 가볍게 읽을 수 없는 그런 작품들이 이어진다. 

 한편 현실과 환상의 경계가 불분명한, “그로테스크한 환상”이라는 작가의 경향을 엿볼 수 있는 작품들도 몇 편 등장한다. 좁디 좁은 버스 정류장 간이 매표소에서 평생을 살면서 ‘나’와 동생들을 매표소에서 길러 길바닥으로 내보냈던, 홍수에 잠겨도 상가주민들의 철거 시위에도 매표소를 떠나지 않고 결국 그곳에서 죽은 엄마의 이야기인 <사막여우 우리 앞으로>, 자동차 뒷좌석에서 잠들고 있는 아이들이 깰까봐 차 룸미러를 연신 쳐다보는 남편과 함께 잘 알지도 못하는 친척 장례식을 향하는 아내가 극심한 교통 체증을 일으키는 “그 어떤 사건”을 목격하게 되는 이야기인 <룸미러>, 어느날 남편이 데려온, 남편보다도 수천 년은 더 늙어 보이지만 외모는 20대 안팎의 모습을 한, 남편이 근무하는 박물관에서 훔쳐온 미이라로 짐작되는 기묘한 여인과의 동거를 그린 <육의 시간> 등은 모호한 결말 때문에 읽고 나서도 금세 이해되기 어려워 다시금 읽게 만드는 그런 작품들이었다. 

 죽음과도 같은 고단한 삶에 대한 지극히 사실적인 묘사가 주는 불편함에, 현실과 상상의 경계가 모호한 결말 때문에 330 여 페이지의 짧은 분량의 이 책을 나는 몇 번을 읽다가 멈추고 다시 읽었는지 모르겠다. 읽고 나서도 쉽게 가시지 않는 무거운 여운 때문에 몇 번을 다시 펼쳐 들게 만드는 이 책, 참 불편하고 어려운 책이다. 어렸을 때는 소외되고 어려운 우리 이웃들의 삶을 담아낸 “인간극장”과 같은 방송을 보면서 눈물 흘리곤 했었는데, 나이가 들면서는 내 삶의 무게에 힘들고 지쳐 이웃들의 고단한 삶을 애써 챙겨볼 여유가 없는, 그래서 유쾌하고 재미있는 코미디나 예능 프로그램만 찾게 되는 그런 마음에서 이 책을 불편하게 느끼는 것일 수 도 있을 것이다. 외면한다고 해서 피할 수 없는 삶의 신산(辛酸)스러움을 작가는 이제는 외면하지 말고 바로 쳐다보라고 이야기한다. 이제 몇 십 년 후 당신또한 이렇게 될 수 도 있다는 무서운 경고가 책을 덮고 나서도 귓가에서 영 떠나지 않는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