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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들의 고군분투 생활기
제스 월터 지음, 오세원 옮김 / 바다출판사 / 2011년 1월
평점 :
절판
지금 다니고 있는 직장에서 짤리게 된다면? 당장 매월 갚아나가는 주택 대출금 원금과 이자는 어떻게 갚을지, 아직도 만기가 한참 남은 나와 아내 명의의 보험은 어떻게 해야 할지, 이제 전직(轉職)을 꿈꾸기 어려운 중년의 나이가 되어버린 내가, 변변한 손재주와 주변머리라고는 하나도 없는 내가 과연 뭘 하며 먹고 살아가야 할지 등등 이런 생각들을 떠올리다 보면 명치 끝이 답답해지고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게 된다. “삼팔육”, “사오정”, “오륙도” 등 정년(停年)은 커녕 한창 일할 나이인 30, 40대에 거리로 내몰리는 직장인들의 처지를 나타내는 신조어들을 들을 때마다 남의 이야기가 아닌 바로 내 이야기로 들려 가슴이 뜨끔 뜨끔거린다. 역시 서브프라임 사태로 몰락한 미국 중산층을 유머스럽게 그려낸 제스 윌터의 <시인들의 고군분투 생활기(원제 The Financial Lives of Poets / 바다출판사 / 2011년 1월)>을 읽으면서도 작가의 위트와 재치에 낄낄거리며 웃다가도 결코 미국이라는 먼나라 이야기가 아니라 언제든지 나에게도 일어날 수 있다는 일이라는 생각에 씁쓸함을 감출 수 가 없었다.
40대 가장인 “맷”은 치매에 걸린 아버지와 아름다운 아내, 초등학교에 다니는 두 아들을 두고 있는 전형적인 미국 중산층이다. 한때 잘나가던 신문 기자였던 그는 신문사를 그만두고 금융 정보를 시(詩)로 구성하여 제공하는 사이트 사업을 시작하지만 결국 실패하고 다시 신문사로 복귀한다. 그러나 신문사의 경영악화로 곧 해고되고, 설상가상으로 한때 두 배까지 치솟던 집값도 서브 프라임 모기지론 사태로 대폭락하고 대출 이자는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불어나 6일 이내에 갚지 못하면 쫓겨날 형편에 놓인다. 그런데 그런 그를 격려해도 시원찮을 판에 밤늦게까지 페이스 북으로 옛 애인과 밀담을 주고 받고, 친구와 오페라를 보러 간다고는 하지만 왠지 “그놈”과 바람을 피우는 것 같기만 한 아내가 영 수상쩍어 맷은 아내의 옛 애인이 운영하는 가게에 들러 일부러 말을 걸어보면서 그의 동정을 살피기도 한다. 그러던 어느날 밤 우유를 사러 세븐 일레븐에 갔다가 거기에서 만난 젊은이들이 권하는 마리화나를 피워본 맷은 소량의 마리화나를 구매해서 자신의 재정상담사와 신문사 동료에게 웃돈을 받고 팔게 되면서 지인(知人)들을 대상으로 마리화나 장사에 나서기로 결심하고, 편의점에서 만난 젊은 친구들을 통해 마리화나 밀매 조직에 접근하게 된다. 그런데 그런 맷에게 마리화나 밀매 조직은 자신들의 마리화나 사업 인수 제안을 해오고, 곧바로 마약 단속반의 정보망에 걸려든 맷은 수사관들의 끄나풀이 되면서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이 꼬여 버린다.
<타임>지가 선정한 2009년 10대 소설 중 2위를 했다는 이 책은 서브프라임 사태로 몰락해버린 미국 중산층을 다룬 일종의 세태고발 소설이라 할 수 있겠다. 그런데 작가는 중산층의 붕괴와 가정의 해체라는 결코 웃음의 대상이 될 수 없는, 오히려 처절한 비장미가 제격일 그런 심각한 소재를 웃음이라는 코드로 역설적으로 풀어낸다. 그래서인지 무거운 소재임에도 불구하고 읽는 내내 입가에 웃음이 떠나지 않을 정도로 유쾌하고 재미있으며 몰입감 또한 뛰어나다. 그러나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마냥 웃고 즐기기에는 가슴 한 켠에 묘한 앙금이 남는다. 미국이라는 먼 나라 이야기 같지만 지금 당장 나에게 벌어질 수 도 있는 바로 “나”의 이야기 - 그렇다고 마약 거래상으로 나서지는 않겠지만^^ - 일 수 도 있기 때문이다. 특히 맷이 우여곡절 끝에 결국 자신의 집을 내주고 작은 아파트로 옮겨와서 자신에게 묻는 질문, 지금보다 더 큰 집과 좋은 가구, 자가용을 가지고 살았을 때는 , 즉 초라해진 지금보다 더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었을 때는 왜 더 행복할 수 가 없었을 까 하는 묻는 장면에서는 씁쓸함마저 느껴졌다. 어쩌면 경제적 여유가 행복의 크기를 측정하는 잣대가 결코 될 수 없다는, 도덕교과서 맨 첫 장 첫 구절로 나올 법한 지극히 당연한 진리(眞理)임을 알면서도 애써 외면한 채 오늘도 남과 아파트 평수와 자동차 가격을 비교하며 아등바등 살고 있는 지금의 나의 모습이 소설 속의 맷의 모습과 너무나도 닮았다는 생각에 괜한 자괴감마저 들게 한다. 그래서인지 예전 같으면 돈으로도 취급하지 않았을 겨우(!) 20달러를 가지고 가족들과 티격태격하는 맷이 모습이 오히려 더 행복해 보이는 이유도, 또한 결국 행복의 참의미를 깨닫는다는 교훈적인 헤피 엔딩이 별로 억지스럽게 느껴지지 않는 이유도 결코 남 얘기 같지 않은 맷의 처지에 절로 감정 이입되는 나와 같은 중년의 독자들에게 희망의 일면을 제시해주는 것 같이 느껴졌기 때문일 것이다.
가끔씩 등장하는 얼토당토 않는 시(詩)들과 몇몇 장면에서의 미국식 유머의 허무함 - 원래 서양식 유머는 영 나하고는 코드가 맞지 않아 즐겨하지 않는데 그래도 이 책의 유머 코드는 꽤나 재미있고 유쾌하다 - 만 잘 견뎌낸다면 참 재미있는 책이라고 평가하고 싶다. 언제 쫓겨날지 모르는 직장에 대한 불안감으로 밤잠을 못 이루는 중년 남성들의 시름을 조금이나마 덜어주고 잠시나마 웃음 짓게 하는 유쾌한 책이 되어주길 바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