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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폴 오스터 지음, 이종인 옮김 / 열린책들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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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다 보면 명성(名聲)은 익히 들어 알고 있는데 좀처럼 만날 기회가 없어 아쉬운 작가들이 있게 된다. “긴다이치 코스케(金田一 耕助)” 시리즈로 유명한 일본 추리소설 작가 “요코미조 세이시” - 다행히 최근에 <삼수탑>이라는 작품으로 그를 만날 수 있었다 - 와 <뉴욕 3부작>, <달의 궁전>으로 유명한 “폴 오스터(Paul Auster)”가 그들이다. 특히 폴 오스터는 이미 국내에 많은 작품들이 소개되어 있고, 그의 책이라면 빠짐없이 다 본다는, 즉 전작주의(全作主義) 작가로 삼는다는 팬들이 있을 정도로 유명 작가인데도 좀처럼 만날 기회가 없었다. 엄밀히 말하자면 기회 - 집 근처 도서관 서고(書庫)에도 그의 작품들을 쉽게 만나볼 수 있다 - 가 없었다기 보다는 나의 고질병이라 할 수 있는 유명 작가에 대한 괜한 거부감 - 종종 참 좋다더라 하는 평을 주변에서 듣게 되면 괜히 거부감부터 갖고 처음에는 멀리하게 된다. 드라마나 영화에 가장 큰데 어릴 적 스티븐 스필버그의 “인디애나 존스”를 보고 온 친구가 입에 거품을 물면서 안보면 후회할 거라고 떠들어대는데 그 꼴(?)이 보기 싫어서 TV에서 방영할 때도 일부러 보지 않았었다. 결국 나중에 봤는데 정말 재미있어 일찍 볼 걸 하고 후회하긴 했다 - 이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그런데 드디어 이번에 <보이지 않는(원제 Invisible/열린책들/2011년 1월)>를 통해 그를 처음 만나게 되었다. 

 책은 1967년 봄 컬럼비아 대학 2년생이자 책만 좋아할 뿐 아무것도 모르던 숙맥인 “나” - 애덤 워커 -가 가게 된 이유와 장소도 기억이 잘 나지 않는 어느 파티에서 같은 대학 정경학부 대학원에서 국제 정치학을 가르치는 방문 교수인 프랑스 사람 “루돌프 보른”과 그의 여자친구 “마고”를 만나는 장면에서 시작한다. 파티 한 구석에 멍하니 서 있는 “나”를 발견한 보른과 마고는 나에게 다가와 말을 건네고 단테의 <신곡> 지옥편 제 28 곡의 마지막 시행에 나오는, 12세기 프로방스 시인 “베르트랑 드 보른”과 친척이 아니냐는 나의 질문으로부터 말문을 트게 된 서로는 깊은 인상을 받은 채 헤어진다, 파티에 참석한 지 이틀째 되던 날, 학교 근처 “바”에서 나와 보른은 우연히 재회하고, 보른은 “마고”가 나를 도와주라고 했다면서 문학잡지 출판 사업을 제의해오고, 나는 그의 제안을 선뜻 받아들이고 보른과 마고의 집에까지 방문하게 된다. 보른이 파리에 다녀오는 사이 마고와 잠자리를 하게 된 나는 술자리에서 만난 보른이 파리에서 결혼 상대를 만났다며 마고를 내쫓았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게 되고, 술자리가 끝난 후 공원을 거닐다가 권총을 든 흑인 소년 강도를 만나게 된다. 보른은 주머니에서 칼을 꺼내 소년을 찌르게 되고, “나”가 응급센터에 신고를 한 사이 보른은 피흘리는 소년을 데리고 사라져 버린다. 결국 다음날 그 소년은 열군데 칼을 찔린 채 시신으로 발견되고, 보른은 나에게 협박편지를 보내온다. 갈등하던 나는 며칠 후 경찰에 신고를 하지만 보른은 이미 뉴욕을 떠나 파리로 돌아간 후였다. 1부는 이처럼 “나”의 회고록 형식으로 끝을 맺고, 2부에서는 그로부터 40년 후인 2007년 애덤이 <봄>이라 이름 붙인 1부를 친구 “짐”에게 보내면서 시작된다. 1부를 읽은 친구는 1부 이후의 회고록을 집필하는데 애를 먹고 있는 애덤에게 친구는  

 "나는 나의 접근 방법이 틀렸음을 알았다. 나 자신을 1인칭으로 서술함으로써, 나는 나 자신을 질식시켰고 <보이지 않는> 존재로 만들었다. 그리하여 내가 찾고 있던 것을 찾는 게 불가능해졌다. 나를 나 자신으로부터 떨어뜨릴 필요가 있었고 한 걸음 뒤로 물러서서 나 자신과 나의 주제(바로 나 자신) 사이에 약간의 공간을 두는 것이 필요했다." - P.96

면서 그에게 시점을 바꿔 집필하는 것이 좋겠다고 충고한다. 애덤은 친구의 충고대로 2인칭 시점으로 보른과의 만남 이후 1967년 여름에 있었던 자신의 친누나 “그윈”과의 금지된 동거 생활을 담아 친구에게 보내온다. 3부 <가을>에서는 친구가 애덤을 만나러 런던에 오지만 이미 애덤은 죽은 후였고, 친구는 애덤이 죽기 전 남긴 글을 재구성하여 3인칭 시점으로 파리에서 보른과 그의 결혼 상대자인 “엘렌 쥐앵”과 그녀의 딸 “세실 쥐앵”을 만난 이야기를 구성해낸다. 마지막 4부에서는 애덤의 누나인 “그윈”이 동생과의 금지된 사랑을 전면 부인하고, 이제 예순을 바라보는 세실 쥐앵이 외딴 섬에서 살고 있는 보른을 방문하면서 겪은 이야기를 일기로 적은 글을 소개하며 끝을 맺는다. 

1967년 봄에서 가을로 이어지는 기간 동안 21세의 젊은 남자가 겪은 이야기를 담아낸 이 책은 “이야기” 자체만 보면 그다지 새로울 것이 없는 평범한 이야기라 할 수 있다. 이 책의 장점은 시점이 1인칭에서 2인칭, 3인칭으로 변화하면서 “애덤 워커”라는 인물이 주관적인 존재에서 점점 객관화되는 전개가 전혀 어색함이 없이 매끄럽게 이어지는 작가의 탁월한 글솜씨에 있다고 하겠다. 주관적일 수 밖에 없는 “나”라는 존재로는 도저히 입에 담을 수 없는 추악한 친누나와의 금지된 사랑 - 근친상간(近親相姦) -을 “너”라는 관찰자 시점, 즉 친구의 충고대로 나 자신과 나의 주제 사이에 약간의 공간을 두게 되자 비로소 고백이 가능해지는 방법 - 종종 자신이 겪은 일을 남의 일인 것처럼 친구에게 털어놓는 것도 이와 같지 않을까? -으로 활용하게 되고, 죽음 직전 써놓은 미완성 원고를 친구는 3인칭 시점으로 재구성하여 애덤의 경험은 “그”라는 인물로 객관화되게 된다. 그런데 그 객관성이 마지막에 이르러서는 누나인 “그윈”에게 전면 부정당하고, 친구인 “짐” 또한 여기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자신을 포함하여 다 가명이라고 밝히면서 이야기가 과연 실재인지 아니면 허구인지를 가늠하기 힘들게 만들어 버리며, 마지막 세실 쥐앵이 보른과의 만남을 그린 일기에서도 보른의 비밀스러운 과거 - 구 소련 이중첩자 - 를 들어내지만 다시 비밀 속으로 감춰지는 명확하지 않는 결말로 끝을 맺는다. 결국 이 책은 자신에게 매몰되어 버려 자신의 실체를 드러내지 못하는 “나”가 자신과의 간극을 통해 “보이는” 상황으로 이끌어 내려 하지만, 오히려 자신이 객관화되면서 오히려 실재와 허구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보이지 않는” 상태가 되어 버리는 모순을 그려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지루함 없이 단숨에 읽어낼 수 있을 정도로 몰입감은 뛰어나지만 다 읽고 나서도 손에 딱 잡히지 않는 모호한 결말에 다시금 책을 펼쳐보게 만들고 그 여운이 쉽게 가시지 않는 책이었다. 

 기승전결이 명확하지 않은 서사 구조, 대화부분과 서술을 구별하기 힘든 형식 -개인적으로 대화와 서술이 명확하게 구분되지 않는 형식을 즐겨하지 않는다 -, 친누나와의 사랑 장면 - 물론 그다지 혐오스럽거나 눈살을 찌푸리게 할 정도는 아니지만 - 등 내 취향과는 잘 맞지 않는 작품이긴 하지만 읽고 나서도 가시지 않는 묘한 매력이 느껴지는 책이었다. 폴 오스터를 이 책 한 권만으로 온전히 평가하긴 힘들어 그에 대한 평은 다음으로 미뤄야 할 것 같다. 다만 그의 다른 작품이 절로 궁금하게 만드는 그런 작가로 기억될 것 같다. 

서평을 쓴답시고 몇 번을 썼다 지웠는데도 감상(感想)이 결국 횡설수설로 끝을 맺고야 말았다. 작품이 어렵다기 보다는 순전히 나 자신의 이해력 부족을 탓하는 것이 맞을 듯 싶다. 다음에 이 책을 다시 읽게 된다면 좀 더 다른 이해와 감상을 담아낼 수 있기를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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