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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기의 간주곡
J.M.G. 르 클레지오 지음, 윤미연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12월
평점 :
“어린 시절엔 배고픔을 이기려고 맛있는 음식 먹는 상상을 자주 했다. 그렇다고 배가 불러지는 건 아니지만, 그것은 꽤 즐거운 일이었고, 그래서 배고픔이 잊히는 경우도 있었다. 이런 상상은 나도 모르게 현실의 결핍을 상상력으로 충족시키는 훈련을 하게 해주었던 것 같다. 이것이 시적 상상력으로 발전하고 그래서 시인이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김기택 시인. “[ESSAY] '배고픔'에도 맛이 있었던 것 같다” - 조선일보 2010.10.07.)
종종 보릿고개를 겪은 어르신들의 추억담을 듣곤 한다. 먹을 것이 없어 풀뿌리와 나무껍질까지 벗겨 먹던 그 시대를 겪어왔던 그분들에게 그 당시에는 배고픔이 지극히 고통스러웠지만 오늘날 돌이켜보면 배고픔(虛飢)의 고통이 오히려 자신을 더 단단하게 만들었던 계기가 되었다고 말씀들을 하신다. 배고픔이 시적 상상력으로 발전하고 자신을 시인이 되게 하였다는 김기택 시인의 말처럼 말이다. 지금이야 먹을 것이 너무 흔해 배고픔은 옛말이 되었다고 하지만 방학 중 굶는 결식아동이 한 해 22 만 명이 넘는다는 것을 보면 아직도 적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배고픔이 아직도 현재진행형의 고통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최근 무상급식 논쟁을 보면서 어처구니없던 것이 그러한 자신의 처지를 순응하고 받아들여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교육이라고 강변하는 “무상급식” 반대론자들의 주장이었다. 가난과 배고픔을 겪어온 어른들이 그렇게 열심히 일했던 이유가 바로 자신들의 자식들에게만은 그런 고통을 대물림하지 않겠다는 그런 마음에서였지 않은가. 그러니 지금 자라나는 너희들도 어른들을 본받아 더 열심히 노력하라는 말은 배고픔 때문에 미래에 대한 희망까지 잃어버리는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는 그 아이들에게 전혀 해서는 안 되는 그런 말일 것이다. 서두부터 배고픔을 장황하게 늘어놓는 이유는 2008년 노벨 문학상 수상자인 “르 클레지오(Jean Marie Gustave Le Clezio)”의 <허기의 간주곡(원제 Ritournelle De La Faim /문학동네/2010년 12월)>을 읽고 책에서 말하는 “허기”의 의미가 분명치 않아 인터넷을 검색했다가 “결식아동”과 “무상급식”에 관한 기사들을 읽으면서 괜한 감상(感想)에 빠졌기 때문이다. 이제 책 이야기를 하자.
이 책은 시대적 격변기였던 1930년대 초에서 1940년대 중반까지 한 소녀의 성장과정을 그려낸 일종의 “성장소설”이라 할 수 있다. 파리의 부유한 상류층의 소녀였던 “에텔”은 부모의 불화로 결코 화목한 가정은 아니었지만 누구보다도 그녀를 사랑했던 종조부 “솔리망”의 보살핌으로 평범한 유년 시절을 보낸다. 그런 그녀에게 러시아 망명자의 딸이었던 “제니아”를 만나게 되면서 우정의 소중함과 함께 제니아가 겪는 배고픔의 의미를 어렴풋이 알게 되고, 열세 살이 되던 해 종조부 솔리망의 죽음을 겪으면서 큰 상실감을 느끼게 된다. 아버지가 에텔에게 남겨진 종조부의 유산을 탕진해버리면서 에텔의 삶 또한 평온함을 점차 상실해 간다. 한편 어린 시절 자신의 집 “살롱”모임에 드나들던 영국 청년 “로랑 펠드”와 사랑에 빠지면서 에텔은 점점 어른이 되어 간다.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고 파리로 진군한 나치를 피해 에텔과 그의 부모는 “니스”로 피난을 가게 되고, 그곳에서 전쟁의 상흔과 곤궁을 몸소 겪어나가게 된다. 그런 그녀에게 피난처에서 다시 만난 아버지의 정부(情婦)이자 불화의 근원이었던 “모드”는 더 이상 증오의 대상이 아니라 보살핌의 대상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관계가 되고, 연인 로랑과는 서신을 주고 받으면서 만남을 이어간다. 어느덧 긴 전쟁은 끝이 나고 로랑과 결혼한 에텔은 파리에서의 신혼생활을 보내던 중 니스에 머물러 있던 아버지의 부음(訃音)을 듣게 된다. 에텔은 홀로 남은 어머니에게 파리에서 같이 살자고 권유하지만 어머니는 니스에 남기로 한다. 전쟁이라는 격변의 시기를 온 몸으로 견뎌온 에텔은 이제 온전한 어른이 되어 시대를 살아간다.
작가가 자신의 어머니를 모델로 해 썼다는 이 소설은 첫 느낌이 소년 “싱클레어”가 “데미안”이라는 친구를 통해 어른으로 성장해나가는 과정을 그린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을 연상시켰다. 그래서 에텔의 친구 제니아의 등장이 “데미안”처럼 에텔의 삶을 이끌어나갈 계기가 되겠거니 했는데 제니아는 유년시절 잠시 잠깐의 우정으로만 남게 되면서 <데미안>과는 다른 전개를 보여준다. 그렇다면 에텔의 성장을 이끈 것은 과연 무엇일까? 그건 바로 1930년대에서 1940년대까지 전 유럽에 몰아닥친 시대 상황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평온했던 삶이 종조부의 죽음과 아버지의 파산, 그리고 전쟁에 휩싸이면서 급변하게 되고, 결국 에텔은 이러한 시대 상황의 변화에 휩쓸려 어쩔 수 없이 고난의 삶의 한가운데 놓이게 된다. 그렇지만 그런 그녀에게 그녀가 겪은 온갖 역경 -여기에서는 “허기”로 표현된다 - 들은 그저 고통으로만 남아있는 것은 아니다.
"그런 허기를 겪지 않았더라면 아마도 그 시절, 모든 것이 부족했던 그 기나긴 세월에 대한 기억을 간직하지 못 했을 것이다. - P. 312
즉 에텔에게 “허기”는 과거를 잊지 않을 수 있게 해주는 일종의 장치이자 앞으로 계속 살아갈 수 있는 힘이 되어준 셈이다. 서두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배고픔의 고통을 자신을 지탱하는 힘으로 승화시킨 어르신들이나 시적 상상력의 밑거름으로 활용했던 김기택 시인처럼 말이다. 그래서 이 책에는 기술되지 않았지만 그 후 에텔의 삶 속에서 그녀가 겪게 될 또 다른 아픔과 슬픔의 시간들도 그녀가 겪어온 “허기”의 기억으로 잘 이겨냈을 거라는 희망을 엿볼 수 있게 해준다. 어찌 보면 2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한 그동안의 소설이나 영화들과 크게 다를 바 없는 평범한 이야기일 수 도 있지만 한 여인의 성장 과정을 통해 그 시대 의 아픔을 담담하게 그려내어 잔잔한 감동을 불러일으키는 작가의 글 솜씨가 역시나 예사롭지 않다는 것을 느끼게 해준다. 다만 2차 세계 대전 전후 유럽 역사에 대한 지식이 부족해서 책에서 언급하고 있는 인명이나 지명, 사건들이 낯설게만 느껴지다 보니 주인공이 겪게 되는 온갖 고난과 심적 변화에 대해 충분한 공감을 하지 못한 점은 아쉬웠다. 추후 당시 역사적 배경에 대한 지식을 좀 더 쌓고서 이 책을 다시 읽게 된다면 좀 더 깊은 공감을 하게 될 것으로 생각된다.
책 얘기는 여기까지만 하고 다시 처음 이야기로 돌아와 지금 가난과 배고픔에 시달리는 아이들에 대한 내 생각은 그들이 스스로 이겨내기를 바랄 것 - 스스로 이겨내고 싶어도 이겨낼 수 없는 그런 상황이다 - 이 아니라 이겨낼 수 있도록 보살피고 지원하는 것이 맞는 정책이라고 생각한다. 소유하고 있는 경제적 부(富)의 크기에 따라 계급이 극명하게 나뉘는 이런 사회에서, 이제 더 이상 “개천에서 용(龍)난다”라는 속담이 유효할 수 없는 작금의 현실에서 가난과 배고픔 때문에 어린 아이들이 꿈마저 잃어 버리는 그런 참담한 상황은 결코 일어나지 않게 해야 하지 않을까? "허기"라는 책 제목 때문에 괜한 생각까지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