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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사냥꾼을 위한 안내서 - 제2회 중앙 장편문학상 수상작
오수완 지음 / 뿔(웅진) / 2010년 11월
평점 :
품절


  오컬트(Occult) 용어 중에 “아카샤 기록(Akashasic Record)"라는 말이 있다. 아카샤(Akasha)란 공간에 가득 차 있는 대기 중의 영기(靈氣), 또는 유광체(幽光體)를 나타내는 말로 전 우주에서 과거에 발생했거나 현재에 일어나고 있는, 그리고 앞으로 일어날 모든 현상과 사건들이 이 아카샤에 고스란히 기록되어 있어 이 기록을 읽는 방법을 배운다면 전 시공간의 비밀을 알 수 있다고 한다. 노스트라다무스나 진 딕슨 등 유명한 예언가들이 바로 이 기록을 읽고서 과거를 맞추거나 미래의 일들을 알아맞힐 수 있었다고 하며, 히브리 신학자들은 아카샤 기록을 “신의 기록을 담은 책”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뜬금없이 아카샤 기록을 언급하는 이유는 제2회 중앙장편문학상을 수상한 오수완 작가의 <책 사냥꾼을 위한 안내서(뿔(웅진문학에디션)/2010년 11월)>에서 이야기하는 신과 자연, 우주의 비밀 등 이 세상 모든 비밀이 적혀 있다는 완전한 책인 <세계의 책>이 바로 이 아카샤 기록을 연상시켰기 때문이다. 물론 작가가 의도했는지 아니면 전혀 무관한지는 알 수 가 없지만.

 앞에서 언급한 대로 이 책은 <세계의 책>을 추적하는 “책 사냥꾼”들의 이야기이다. 그런데 책에 대한 이야기이긴 한데 설정이며 배경들이 낯설어 사전지식이 좀 필요한 책이기도 하다. 먼저 완전한 책으로 설정한 <세계의 책>에 대해 작가의 말을 인용해본다. 

<세계의 책>은 모든 책의 참고 문헌이었다. 만약 당신이 아주 아름다운 책을 읽었다면 그 책의 모든 것이 <세계의 책>에 있다. 만약 당신이 가장 지극한 비밀을 어딘가에 적었다면 그 모든 것이 <세계의 책>에 적혀 있다. 당신이 이 우주에서 가장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찾는다면 그 이야기는 <세계의 책> 속에 있다. 당신이 신과 자연과 우주의 비밀에 대해 알고 싶고 당신의 운명과 인간의 본질에 대해 알고 싶다면 그건 <세계의 책>에 나와 있다. 당신은 언젠가 모든 책이 파괴되고 불태워지고 사라져도 단 한 권의 책이 남아 불타 사라진 모든 책들을 다시 부활케 하리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것이 <세계의 책>이다. - P.36. 

책 사냥꾼들은 바로 이 세상에 단 한 권 밖에 없다는, 그 실존 여부마저 전설로 취급되는 <세계의 책>을 추적하는 사람들이다. 작가는 책 사냥꾼에 대해서

아주 오래전에 아주 훌륭한 책이 한 권 있었다. 그 책은 『세계의 책』이라고 불렸다. 그 책은 없어졌고 그래서 어떤 사람들이 그 책을 다시 찾기로 했다. 그들은 책 사냥꾼이라고 불렸다 (중략). 책 사냥꾼은 밤에 걷고 낮에 머물며 눈길이 머무는 곳을 피해 다니다 벽 뒤에 이르러 한숨을 쉰다. 도둑과 강도와 칼잡이 들이 책 사냥꾼의 친구이며, 도둑과 강도와 칼잡이들과, 그리고 책 사냥꾼과 경찰이 책 사냥꾼의 적이다. 

라고 설명하는데, 마치 영화 <인디아나 존스>나 <내셔널 트래저>로 익숙한 "보물사냥꾼(Treasure Hunter)"가 연상된다. 책 사냥꾼들의 궁극적인 목표는 물론 <세계의 책>을 찾아내는 것이겠지만 책에서는 주로 의뢰를 받아 고가(高價)의 희귀 장서들과 고서(古書)들을 찾아내는 - 때로는 도둑질과 폭력 같은 강압적인 방법을 동원해서 - 일을 한다. 그리고 시대적 배경은 현재로 설정하고 있는데, 지금 그대로의 현실이 아니라 정부의 강압적인 사전검열과 통제로 많은 책들이 금서(禁書)로 지정되고 - 대표적인 책이 생땍쥐베리의 <어린왕자>다 - 출판사들이 줄줄이 망한 <책의 암흑기>라 부를만한 그런 상황을 설정하고 있다. 책에서는 책 도입부에 이 책의 주인공이자 저자이기도 한 "반디(螢)"가 이러한 <세계의 책>과 "책 사냥꾼"에 대해 이야기하고, 말더듬이에 소극적이었던 자신의 유년시절, 그리고 대학 시절과 책 사냥꾼으로서의 경험, 시대적 상황들에 대해 간략히 들려주고는  본격적인 이야기를 들려주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반디(螢)”라는 닉네임으로 유명했던 전설적인 책 사냥꾼이었지만 지금은 은퇴해서 조그마한 헌책방을 운영하며 조용히 살고 있는 “나”에게 어느 날 희귀서적 거래업자이자 정재계에게까지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의문의 조직인 “미도당” 총수인 윤선생이 찾아온다. 윤선생은 나에게 또 다른 유명 책 사냥꾼이자 악명 높은 ‘검은별’에게 빼앗긴 <베니의 모험>이라는 책을 찾아달라는 의뢰를 한다. 나는 찾아달라는 책이 바로 <세계의 책>을 찾기 위한 일종의 안내서임을 직감하고 의뢰를 수락하고 책 사냥에 나서게 된다. 검은별의 흔적을 찾아 첫 번째 책을 손에 넣게 되지만 그만 검은별에게 납치된 나는 검은별이 바로 자신과 대학시절 절친했던 친구이자 또 다른 친구 “소리”를 가운데 두고 서로 연적(戀敵)이었던 “제롬”임을 알게 된다. 검은별이 협박해오기도 했지만 자신 또한 책 사냥꾼으로서의 강렬한 본능에 이끌려 계속 책을 찾아 나선 “나”는 책들이 제시하는 단서들을 토대로 9권의 책을 차례로 찾아내고, 결국 9권의 책이 미도당 지하에 있다는 거대한 서고(書庫)를 안내하는 일종의 지도임을 알아낸다. 그 과정에서 또다른 대학 친구인 “고박사”가 사실은 국가기관에서 책에 대한 단속을 맡고 있는 공무원이고, 혼자 짝사랑했던 “소리” 또한 고박사가 파견한 일종의 간첩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고박사”의 도움으로 검은별의 마수에서 잠시 벗어나지만 검은별은 나와 사랑을 나눴던 미도당 실장을 협박하여 나를 미도당으로 불러들이고 나는 미도당 지하에 있는 비밀 서고에 들어가게 된다. 미도당의 비밀서고는 일제 시대 원주인이었던 일본인이 비밀리에 건설한 가로 세로 9칸씩 총 81칸에 이르는 엄청난 규모의 비밀 서고로 온갖 희귀서적과 고서들이 잔뜩 진열되어 있었다. 나는 그곳에서 미도당 윤선생의 아버지를 만나 미도당의 주인이 되어달라는 제안을 받지만 거절하고, 뒤이어 들어온 윤선생이 이에 격분하여 들고 온 휘발유통에 불을 지르면서 순식간에 비밀서고는 불에 휩싸이고 나는 간신히 탈출하게 된다. 부상을 입고 집으로 돌아온 나에게 남은 거라고는 보유하고 있던 책을 몽땅 도둑 맞아 휑한 책장과 화재 중에도 들고 나온 책인 <또 다른 찰리 이야기>라는 책사냥꾼에 대한 책과 가물거리는 기억을 되살려 자신이 겪은 일들을 두서없이 기록한 이 책 <책 사냥꾼을 위한 안내서> 두 권 만 남게 된다. 즉 이 책은 전직 책사냥꾼이었던 “나”의 일종의 회고록이자 자서전인 셈이다. 

 참 독특한 재미가 느껴지는 그런 책을 만났다. 작가 약력을 보니 오수완 작가는 사실상 이 책이 첫 등단 작품인데 신인작가라는 것이 전혀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만만치 않은 내공을 선보이고 있다. “뭔가 이야기하고 싶다면 첫 번째 문장을 제대로 적어야 한다...... 훌륭한 이야기는 모두 훌륭한 시작을 갖고 있다”라고 시작하는 이 책은 먼저 책에 대한 설정을 미리 설명하거나 또는 시간 순으로 사건을 전개하는 일반적인 방식이 아니라, 주인공 반디가 모든 사건을 겪은 후 과거의 경험을 돌이켜 보며 하나 하나 기록해나가는 그런 형식을 취하고 있는데, 두서없이 자신의 어린 시절과 경험을 뒤죽박죽 섞기도 하고, 명확하지 않은 주인공의 기억에만 의존해서 가상의 책을 소개하기도 하며, 계속적으로 문구를 반복하는 등 전문 작가가 아닌 아마추어가 적은 글이라고 저절로 알 수 있게 하는 그런 구성을 취하고 있어 마치 실재하는 책을 편집하지 않고 그대로 활자화한 것 같은 착각이 들게 한다. 물론 이러한 구성이 일반 소설 전개에 익숙한 독자들에게는 책 초반에 몰입하기가 영 힘들게 하는 약점으로도 작용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나 어느 정도 구성에 익숙해지고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되는 미도당 윤 선생이 찾아오는 장면부터는 읽는 데 재미와 탄력이 붙기 시작해 중반 이후부터 책 읽는 속도가 빨라지고 점점 책에 몰입하게 되는 것을 느낄 수 가 있었다. 이 책에서 보여주는 작가의 상상력 또한 놀라운데, 책 속에 등장하는 각종 책들이 실재하는 책들이 아니라 모두 작가의 상상력으로 만들어 낸 허구의 책 - 책 속에 등장하는 몇 몇 책들은 실재하는 책인가 싶어 인터넷으로 검색을 해보기도 했다 - 이라니, 그리고 시치미 뚝 떼고 책에 대한 소개와 문구를 꼼꼼히 실어놓은 것을 보면 상당한 공과 시간을 들여 이 책을 준비했다는 것을 절로 알 수 있게 한다 - 실제로 이 책을 쓰는데 4년 여 가까이 걸렸다고 한다 -. 문학상 수상 여부를 차치하고 이 책만 놓고 보더라도 작가의 기상천외한 상상력이 돋보이는, 쉽게 만나기 어려운 독특하고 색다른 재미를 보여주는 수작(秀作)임에는 분명하다고 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는 <세계의 책>과 “책 사냥꾼”이라는 설정이 이번 한 작품에만 등장하는 일회성으로 끝나지 말고 후속편들로 계속 이어졌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본다. 책 속에 잠깐 잠깐 소개하고 있는 <세계의 책>의 구체적인 전설과 조금은 명확하지 않은 <안내서>들에 대한 개념들, 과거 세계 유명 책 사냥꾼들의 영웅담들과 주인공 반디의 과거 책 사냥꾼 시절 활약들을 다시 한번 만나보고 싶기 때문이다. 작가의 다음 작품이 내 바램처럼 책 사냥꾼의 후속편이 될지 아니면 전혀 다른 설정과 세계관이 될지 알 수 는 없지만 나에게는 후속 작품이 기대되는 그런 작가로 기억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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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1-22 02: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1-23 21:13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