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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는 그대 신을 벗어라
임광명 지음 / 클리어마인드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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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종교를 믿지 않는 무신론자이지만 고즈넉한 옛 사찰의 법당 앞에 서면 옷깃이 절로 여며진다. 보통은 법당 안으로 들어서지 않고, 대웅전 앞 마당의 탑이나 범종을 구경하곤 하지만 법당 안으로 들어가게 될 경우에는 법당 앞 댓돌에 놓은 신발을 비뚤어짐은 없는지 다시 한번 신발의 코를 가지런히 맞추고, 부처께 삼배(三拜)를 올리지는 않지만 두 손을 앞으로 모으고 두발을 가지런히 붙이고 서서 같이 간 분의 절이 끝날 때까지 기다린다. 종교에 대한 믿음(信心)과는 상관없이 불교의 성소(聖所)라는 사찰이 주는 그 경건함에 절로 경도되었기 때문일테다. 오스트리아 비엔나 시내에서 만났던 슈테판 대성당에서도 왠지 범접할 수 없는 그런 기분에 옷깃을 여미게 되고, 절로 두 손을 모아 절대자에게 기도를 올리고 싶은 그런 기분이 들었던 것도 비록 종교는 다르지만 마찬가지의 경험일 것이다. 이처럼 종교적 건축물들은 사람의 마음을 엄숙하게 하는 그런 무언가가 있다. 그래서 내가 아는 지인(知人)은 자신도 종교를 믿지는 않지만 삶에 지치고 힘들 때 가끔씩 동네 성당에 가서 신도석에 앉아 하염없이 정면 단상의 십자가를 바라보고 온다고 한다. 그러면 일상의 짜증과 스트레스가 눈 녹듯이 사라지고 마음에 무언가를 채워오는 그런 느낌을 받는다고 한다. 차라리 종교를 믿어보지 그러냐 물으면 자신은 성당의 그 경건함과 엄숙함에서 위안을 받는 것이지 종교의 말씀과 교리를 신봉하는 것은 아니라며 손사례친다. 신문사 종교 담당 기자로 몸담고 있는 임광명의 “여기서는 그대 신을 벗어라(클리어 마인드, 2010년 8월)”은 믿음의 장소로써 또는 마음의 위안을 얻게 하는 장소로써 우리나라 각 종교들의 종교적 건축물 총 38 곳을 소개하고 있다. 

 작가는 프롤로그에서 교회나 사찰 등 종교건축은 본질적으로 다른 건축들과 다른데, 거기에서는 거룩함과 세속적인 것, 영원함과 무상함이 서로 만나며, 신 혹은 절대자를 향한 공간일 뿐만 아니라 기쁨이나 슬픔, 고통과 환희 등 모든 인간적 관심사를 해소하는 안식의 공간이기도 하다고 말한다. 즉 종교인들에게는 절대자를 향한 성전으로, 일반인들에게는 희노애락을 해소하는 위안의 공간이라는 의미일테다. 종교기자이지만 출가한 종교인도 아니고, 건축학도 전공하지 않은 이로서 각 건축물에 대해 감식이나 비평은 불가능하지만, 순전히 개인적인 관심과 욕심에서 종교 건축물들을 답사했고, 감상대로 글을 풀었다는 작가는 기독교, 천주고, 불교 등 우리나라 3대 종교 뿐만 아니라 그 성전을 흔히 만나기는 어려운 이슬람교, 천도교, 원불교의 성전들, 그리고 특정 종교와는 연관이 없는 제주도 지니어스 로사이까지 총 38 곳의 종교적 건축물을 네 곳의 지역과 주제, 즉 “마음 쉴 곳을 찾아 헤매다(부산)”, “마음이 머무는 곳 발길이 머무는 곳(경남, 경북)”,“세상을 품은 아름다운 자비(전남, 전북)”, “가세 가세 함께 가세 저 피안의 세계로(기타 지역)”으로 나누어 소개한다. 각 건축물마다 5~6 페이지의 분량으로 건물의 외부 전경과 내부 전경을 담은 밝은 색 톤의 컬러 사진과 건축물 소개글을 싣고, 작가의 짧은 단상을 싣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예를 들어 부산 남천 성당에서는 그리스도교에서 빛은 진리와 지혜, 구원과 생면인 하느님의 상징이요 구세주 예수 그 자체이며 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가 그러한 빛의 의미를 극대화한 것이라고 설명하면서 글라스를 통해 여러 색의 빛이 들어오는 목회당 사진을 배치하고, 수학이나 기하학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도형인 삼각형 모양의 지붕이 이색적인 경남 고성군 천사의 집 성당에서는 세상에서 소외된 이들을 위해 지어진 성당의 내력을 설명한다. 팔상전, 나한전, 독성전 세 전각을 하나로 합쳐 놓은, 다른 불교 사찰에서는 볼수 없는 독특한 구조의 건축물인 부산 범어사 팔상독성나한전을 소개하면서 현실에서는 삶의 무게에 짓눌려 힘들어하지만 즐거이 불법을 믿고 따르면 언젠가는 복된 삶을 맞을 수 있을 것이라는 민중들의 소망을 이야기하고, 엄숙한 직선과 완만한 곡선으로 이뤄진 이슬람 부산성원에서는 초기에는 리비아 대사관으로부터 재정지원을 받았으나 이제는 신자라고 해봐야 150여 명에, 절대 다수가 형편이 어려운 외국인 노동자들인 어려운 형편을 이야기하면서 외국인 학생의 입을 빌어 문화, 언어가 다른 사람들이 서로 어울리는, 다문화의 가치를 존중하는 요즘 성원의 기능을 이야기한다. 또한 마치 절이나 향교가 아닌가 싶을 정도로 우리가 흔히 알던 교회의 모습이 아닌 우리나라 현존 최고(最古)의 성당 대한성공회 강화읍성당에서는 진정한 복음은 자신의 것을 강요하는 게 아니라 상대의 가치를 포용해 변화시키는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우리나라에도 이처럼 여느 유럽 국가에서 만났던 고색 창연한 성당이나 TV 다큐멘터리를 통해서나 보았던 인도, 중국 사찰 못지 않은 이색적이고 아름다운 이색적인 종교 건축물들이 이렇게 전국 곳곳에 산재해 있다니 절로 눈이 호사하는 그런 즐거움을 주는 책이었다. 다만 짧은 분량 안에 많은 건축물을 담으려다 보니 건축물들의 일반적 내력이나 또는 작가의 짧은 단상들을 소개하는 수준에 그친 것이 아쉽다. 차라리 소개하는 건축물의 숫자를 줄이고, 좀 더 내밀한 소개 글과 종교전문기자로서의 작가의 사색을 좀 더 담아냈으면 건축물과 함께 읽는 종교이야기로서 좀 더 가치 있지 않았을 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종교는 나에게 있어 앎의 대상이지 믿음의 대상은 아니라는 생각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 같다. 그래도 앞에서 소개했던 지인처럼 세속의 명리에, 인간관계에 지치고 힘들 때 가까운 곳의 절이나 교회, 성당에 가서 마음 속 무거운 짐을 그 건축물의 주인에게 털어놓고 한 줄기의 위안을 받고 돌아오는 것은 앞으로도 계속 될 것 같다. 요즘 들어 갈수록 대형화되고 왠만한 관공서나 기업체 본사 건물보다도 웅장하고 멋드러지는, 세상 때가 덕지덕지 묻은 그런 곳보다 비록 작고 초라하지만 절로 무릎 꿇고 두 손을 가지런히 모으게 하는 경건함이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충만한 그런 곳에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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