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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렌체, 시간에 잠기다 - 한 인문주의자의 피렌체 역사.문화 기행 ㅣ 깊은 여행 시리즈 2
고형욱 지음 / 사월의책 / 2010년 8월
평점 :
절판
이탈리아 피렌체. 세 명의 교황을 배출했던 중세 이탈리아의 유력 가문이자 르네상스 예술의 후원자였던 “메디치”가의 본거지였다는, 고등학교 세계사 시간에 배운 상식이 전부인 나에게는 낯선 곳이다. ‘주마 간산 보고 다니는 여행에서 깊이 있는 여행으로!’라는 시리즈의 두 번째 권 <피렌체, 시간에 잠기다>(사월의 책, 2010년 8월)의 저자 고형욱은 많은 이들이가장 좋아하는 도시가 어디냐는 질문에 주저하지 않고 문화가 살아 있는 두 도시, 즉 작은 도시는 피렌체, 대도시는 파리라고 대답한다고 한다. 반나절에 다 둘러볼 수 있는 도시이지만 오랫동안 머무르면서 도시의 세부와 깊이를 들여다 볼 수 있는 도시이기도 하며, 소처럼 느린 걸음으로 이미 본 풍경을 다시 되새김질하면서 중세의 정취를 느낄 수 있다는 것이 묘미라는 피렌체를 그의 책으로나마 간접적으로 둘러보니 제목 그대로 중세 암흑기에서 벗어나 문화적 혁명을 가져왔던 르네상스의 아름다움과 풍취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시간이 멈춰진 도시로 다가온다.
작가는 길 안내를 제일 먼저 우피치 미술관에 있는 보니첼리의 "비너스의 탄생"에서부터 시작한다. 어린 시절 이원복 교수가 유학생 시절 어린이 잡지 <새소년>에 연재했던 <시관이와 병호의 모험> - 먼나라 이웃나라의 원조격인 이 만화는 나도 참 재밌게 봤었다. 세계 여행이라는 것은 정말 꿈같던 그 시절 유럽에 대한 환상을 심어줬었다. 나폴레옹을 "나풀대용"이라고 불렀던 것이 기억난다.- 에서 소개된 흑백 부분화로 제일 처음 대했던 "비너스의 탄생"을 고등학교 미술부 시절 컬러로 다시 만나고, 1992년 실물로 처음 만난 후에 지난 십여년 동안 적어도 열 번 넘게 만났다는 작가는 2003년 12월 겨울 비가 부슬부슬 내리던 날 아침 우피치 미술관으로 향한다. 언제나 관광객의 행력이 길게 늘어서 있던 것과 달리 그날은 사람들이 보이지 않았고, 그는 미술관 개관과 동시에 서둘러 올라가 보니첼리 방에 가서 “비너스의 탄셍”을 처음으로 혼자 대면하게 된다. 어린 시절 느꼈던 감동을 넘어서기 어렵다지만, 그리고 나이가 들면 들수록 점점 무뎌지는 것이 감동이라지만 이렇게 그 그림을 혼자 대하면서 모든 추억과 꿈이 현실이 되었고, 그래서 더 크게 다가온 감흥 때문에 꼼짝도 하지 못한 채 그림 앞에 20분 가량 서서 그저 그림만을 바라보았다고 한다. 굳이 움직여야 할 이유를 찾지도 못하고 그저 그림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모든 걸 얻었다는 느낌을 받았다는 자신의 감상을 먼저 털어놓은 작가는 피렌체 하면 가장 먼저 연상되는 화가라는 보티첼리의 그림들에 대한 미술사적 배경을 설명하고, 우리가 중고등학교 시절 미술 교과서에서 한번 쯤은 봤었을 그림들인 우피치 미술관에 있는 르네상스 시절의 유명화가들의 그림들, 즉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수태고지”, 미켈란젤로의 “성가족”, 라파엘로의 “검은 방울새의 성모”, 티치아노의 “우르비노의 비너스”, 카라비조의 “메두사” 등을 소개한다. 작가는 파리의 루브르와 오르세보다 우피치가 느끼는 감동이 덜할지도 모르고, 우피치의 그림들은 고전적이고, 진부하고, 낯설어 보여 무슨 그림을 봐야할 지도 애매한 경우가 있을 수 도 있지만, 우피치에는 거장들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작품들이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아 먼 세월만큼이나 이 그림들을 통한 시간 여행이 쉽지 않을 뿐이지, 누구에게나 장대하든 소박하든 감동을 안겨주는 곳이라고 소개한다. 또한 미술관 감상법으로 느려지고, 홀로가 돼서, 사람들과의 대화가 아니라 시대를 넘어선 걸작과의 대화를 시도해보라고 충고한다. 그림을 천천히, 반복해서 들여 보고 있으면 언제부턴가 그림이 말을 건네 오기 시작할 것이며, 멀리서 가까이서, 다시 뒷걸음쳐 반복해서 보다 보면 그림이 서서히 자신을 드러내기 시작할 것이며, 시대를 넘어서 공간을 넘어서 그들의 진실된 세계를 공감할 수 있다는 건 그 자체로 행복한 일이라고 말한다.
우피치 미술관을 나와서는 “피렌체의 속살”들을 하나하나 소개한다. 메디치의 궁전에서는 베노초 고촐리의 “동방박사들의 여행”을, 시뇨리아 광장과 궁전에서는 도니텔로의 청동조각과 카라바저의 회화로 만나보는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자르는 유디트”를, 갈레리아 델라카데미아에서는 그 유명한 미켈란젤로의 “다비드”를, 도시와 건물이 완벽하게 어우러져 같은 이미지를 드러내는 대표적인 예이자 피렌체의 완성이라 일컬어진다는 산타마리아 델 피오레 대성당의 “두오모(Duomo,돔)”를 올려다보고 성당안의 기베르티의 “천국의 문”을 감상하라고 일러주며, 한 때 감옥이었다가 1865년 이탈리아 최초의 국립박물관으로 재탄생한, 교회 건물을 재외하면 피렌체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이라는 바르젤로 미술관에서는 도나텔로의 “다비드”와 미켈란젤로의 “바쿠스”를 놓치지 말라고 이야기한다.
1300년대 단테가 <신곡>을 쓴 이래, 르네상스라고 불린 1400년대와 1500년대의 약 200년 동안 그토록 많은 예술가, 학자들이 피렌체에 모인 건 인류 역사상 보기 드문 일이었다는, 아직도 르네상스의 숨결이 살아있는 피렌체를 비록 이렇게 책 속의 사진들과 글들로 간접 체험해봤지만 참으로 아름다운, 그리고 한번쯤 꼭 가보고 싶은 그런 도시로 느껴진다. 어쩌면 이탈리아의 유명 도시인 로마나 베니스, 나폴리 때문에 발걸음이 잘 닿지 않는 소도시이겠지만 작가의 말대로 소걸음처럼 느릿느릿 미술관과 고궁, 궁전, 성당 들을 거닐면서 그저 책이나 영화 속에서만 보았던 르네상스를 직접 체험해보는 그런 휴식이 될 수 있는 매력적인 도시라고 생각된다. 대학생 때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를 들고 전국 일주 여행을 했던 것처럼 언제가 될 지는 모르겠지만 다시 유럽에 간다면 - 첫 번째 유럽여행은 신혼 여행 때 9박 10일 일정으로 비엔나, 런던, 파리를 그야말로 속전속결로 다녀왔었다. - 이번에는 이 책에서 나오는 시뇨리아 광장 벤치에 앉아 수 백년 전 과거 속 르네상스 시대로 떠나보는 특별한 시간여행을 해보고 싶다.
피렌체, 참 매력적인 도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