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대학>을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
-
청춘대학 - 대한민국 청춘, 무엇을 할 것인가?
이인 지음 / 동녘 / 2010년 7월
평점 :
서울 지역 풍습에 “천자문(千字文)”에 씌인 천 개의 글자를 지인(知人)들에게 한 자씩 써달라고 부탁하여 완성하는 “걸자집(乞字集; 글자를 구걸하여 책을 만들다)”이라는 풍습이 있다고 한다. 주로 할아버지께서 손자의 학업과 건강을 위해 선물하던 풍습이라고 하는데, 글자를 써주게 되는 사람들도 아무나가 아닌 학문적 성취로 이름을 높은 사람이거나 무병다복한 사람들로 고르고, 글자와 함께 손자를 위한 덕담 한마디를 같이 받아 기록해둔다고 한다. 최근에는 연극배우 출신 영화배우 오지혜씨가 자신과 인연이 있는 사람들을 기억하기 위한 특별한 방법으로 천자문(千字文)을 갖고 다니며 사람들을 만날 때 이들에게 천자문에 쓰인 한자를 한 글자씩 받는 방법으로 “걸자집”을 만들고 있다고 한 기사를 어떤 인터넷 신문에서 본 적이 있다. 이렇듯 이인의 “청춘대학”(도서출판 동녘, 2010년 7월)을 읽으면서 나는 그 옛날 금쪽같은 손자를 위해 스승님들을 찾아가 귀한 글씨를 받아내던 할아버지와 자신의 인연을 기억하기 위해 한 글자씩 모은다는 배우 오지혜의 걸자집이 계속 연상되었다. 20대 후반, 이제 사회에 발을 내딛을 나이의 젊은 청년이 이 시대의 참 선생님들을 한 분씩 찾아뵙고 자신과 같은 또래의 젊은이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따뜻하면서도 호된 가르침을 듣고 이렇게 책으로 엮어 방황하는 자신의 친구들에게 들려주는 것에서 일맥상통하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나이가 먹어가는 데 예전과 별로 다를 바 없다는 데서 오는 조급함과 실망감이 컸던 작가는 자신의 깜냥으로는 도저히 어떻게 해볼 수 없다는 일들 앞에서 더욱 움츠려감을 느끼고는 선생님이 그리웠다고 한다. 휘청대는 젊음에게 토닥여주면서도 매섭게 호통도 쳐주시고, 어깨동무를 하면서도 같이 콧노래를 부르지만 헤맬 때는 이리로 오라고 손짓을 해주시는 그런 선생님을 말이다. 진짜 행복이 뭔지. 가장 아름다운 시기라는 젊음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고민하던 작가는 죽비처럼 어리석음을 꾸짖어주고 봄바람처럼 마음을 설레게 하는 선생님들을 만나기 위한 “사람여행”을 떠나기로 마음먹는다. 자신의 알을 깨고 나올 수 있게 밖에서 도와줄, 즉 “줄탁동시(啐啄同同時)” 역할을 해주실 그런 선생님들을 찾기 위해 신문이나 뉴스를 꼼꼼히 보면서 젊은이들에게 애정 어린 말을 하거나 관심을 보인 분들을 찾아 “하루 제자”를 청하게 된다. 그렇게 1년 동안 찾아가서 만난 선생님들의 말씀들을 묶어 낸 것이 바로 이 책 “청춘대학”이며 작가 가슴 깊숙한 곳을 묵직하게 건드렸듯, 이 책이 시대를 고민하며 좀 더 줏대 있게 살아가고자 하는 모든 젊은이들에게 따뜻한 위로와 따끔한 회초리가 되어주길 바라며, 나이가 20대인 사람들이라는 생물학 나이를 떠나 모든 “청춘”들에게 이 책을 전한다고 서문인 “들어가며”에서 밝히고 있다.
책의 구성은 마치 대학 한 학년 커리큘럼처럼 1학기와 방학 2학기로 나누고 작가가 만난 선생님들의 “수업” 전에 선생님들에 대한 이력과 소개를 간략하게 하고 선생님들과의 대화를 다룬 후에 자신이 느낀 감상과 이해를 “집으로 가는 길”이라는 제목으로 소개하는 형식을 띠고 있다. 이 책에서 소개하는 선생님들은 작가가 말한 것처럼 신문이나 방송 등 언론 매체 뿐만 아니라 그분들의 책을 통해서도 한번 씩은 들어봤을 유명한 분들이다. 시인이자 소설 “캔들 플라워”의 저자인 김선우는 젊은이들이 싸우는 것을 무서워한다고 하지만 촛불을 거피면서 싸우는 방식이 다양할 수 있고, 문화적일 수 도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는 생각이 들며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개개인의 행복에 대해서 충분히 사유하고 연대해서 싸워야만 얻을 수 있다고 이야기하고, 고전 평론가이자 “열하일기, 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의 저자 고미숙은 20대들이 자신의 몸과 정신을 어떻게 회복할 수 있을까라는 물음에 자기가 길들여져 있는 조건, 가족과 제도, 학교를 포함해 모든 것에 대해서 근본적으로 질문을 하고 일상을 재배치하라고 충고한다. 철학 아카데미 공동대표인 박남희는 철학을 삶에 녹여내는 방법으로 삶의 가장 기본인 정직성이 필요하고 이런 정직함이란 너나 할 것 없이 사라이 모든 것을 다 알 수 없다는 자기 겸손함에서 출발하는 것으로 겸손과 맞물린 정직에서 출발해야 철학사회가 될 수 있다고 이야기 한다. 문화비평가인 이택광은 인문학의 위기는 현실 문제에 개입하는 인문학자들이 별로 없다는 데서 오는 것이며, 삶에 개입하기 위해 들어온 우리나 인문학이 지금은 사라져버리고 이른바 “인문학 오타쿠”들만 남아 있는 암담한 현실이라고 비판하면서, 인문학은 현실문제에 개입할 때 의미가 있으며. 살아가는 것 자체가 인문ㄹ학이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시사프로그램 진행자인 김미화는 요즘 젊은 세대에게는 “아자!”하는 게, 즉 뭔가 자기 스스로 개척하고 찾아내야 하는 것이 부족하며 부모님이나 친구나 친척 눈치 보지 말고, 자신의 인생, 자신이 주인공인 삶에서 자신의 꿈을 위해서 자신이 간다는 생각을 하라고, 몇 번을 실패해도 젊으니까 괜찮으니 아자 하는 정신으로 도전해보라고 충고한다. “나는 빠리의 택시 운전사”의 저자이자 진보 지식인으로 유명한 홍세화는 젊은이들이 연대와 단결, ‘함께 하자’는 정신이 중요하게 제기되어야 하며, 같은 사회 구성원으로서, 같은 세대로서 느끼는 세대 감각이 필요하고 그런 점에서 기성세대에 편입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나만 계층 상승하겠다는 게 아니라 젊은 세대가 함께 사는 구조로 변화해야 한다고 충고한다. 변화경영사상가인 구본형은 취직해야 한다는 압박감으로 꿈을 얘기하는 것을 사치라고 생각하는 젊은이들에게 인생을 너무 짧게만 생각하지 말고, 밥과 자기조재(영혼), 이 두가지를 화해시키기 위해 애를 서야 하며, 현실적인 문제에만 치중하게 되면 밥은 건질지 모르지만 끊임없이 공허할 것이라고 충고하며, 다양하게 살아가는 삶과 사는 방법에 대한 그림을 그려보라고 이야기한다. 교육 부총리를 역임한 학자 한완상은 요즘 섦은 세대들은 소시민적인 자족감에 빠져 있으며, 조그마한 자유, 자유롭게 연애할 수 있는 자유, 보고 싶은 영화를 보는 자유 등 이런 작은 자유에 매몰되지 말고 패러다임의 근본적 변화가 오는 시점인 이때야말로 젊은이들이 보다 근본적인 문제를 고민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현대사학자 한홍구는 20대들이 국회의원도 나가고 정치 사회에 참여하여 청년실업 등 과 같은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한, 즉 자신들을 위한 정책을 만들고 동참하여 아래에서부터 바람을 일으키라고 이야기한다.
작가는 맺음말 “나가며”에서 선생님들을 만난 시간은 큰 축복이었으며, 그들과 나눈 시간은 자신의 삶에 굵은 마디로 자리 잡았다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아직 아무에게도 이야기한 적은 없지만 시인이 되고 싶다는 꿈이 생겼으며 모두 함께 자신의 필명처럼 “까르르” 웃을 수 있을 때를 꿈꾸며, 지금은 사회의 그늘을 조금이라도 밝히고 싶어 조금은 날이 선 글을 세상에 던지고 있다고 이야기한다. 그리고는 자신보다는 덜 아프게 자신만의 길들을 찾기 바라며 사람들과의 귀한 인연도 놓지 않았으면 한다고 당부하며 이 책이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소중한 씨앗이 가슴에 뿌려지길 바라고 용기를 내서 같이 세상을 향해 걸어가자고 말하며 끝을 맺는다.
작가가 전문 인터뷰어가 아니어서 선생님들의 인생과 철학, 주장들을 올곧이 끌어내지 못하고 주로 젊은이들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라는 교훈적인 주제에 한정되어 있어 읽는 맛은 떨어지긴 하지만 그래도 다양한 목소리로 들어보는 젊음에 대한 이야기는 한번쯤은 새겨볼 만한 그런 이야기들이다. 그중에서도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었던 이택광 선생과 조정환 선생의 촛불 논쟁을 다시 다룬 부분은 그당시 그 분들의 글들을 읽으면서 때론 동조하고 때론 너무 편협하다고 비판했던 그 당시 느낌들을 다시 상기시켜주는 즐거움을 느끼게 해주었다. 인터뷰집의 장점인 다양한 목소리를 재미있고 의미있게 담아낸 이 책 - 사실 이 책이 작가의 말대로 순수한 마음에 선생님들을 찾아 그들에게 가르침을 받은 것인지. 아니면 출판사 기획으로 진행된 인터뷰 책인지는 판단하기가 솔직히 어렵다 - 은 작가 또래인 20대 젊은이들이 우선 읽어보길 권하고 작가의 말대로 생물학의 나이를 떠나 아직도 가슴 한 켠에 무언가를 새롭게 해보고 싶은 열정을 가진 “청춘”들과, 갈 수 록 편안한 생활에 안주하고 변화하기를 두려워하는 “마음이 늙은 분”들에게도 신선한 자극이 될 수 있는 그런 책으로 추천해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