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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 - 김열규 교수의 지식 탐닉기
김열규 지음 / 비아북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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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동안 국문학자로서, 민속학자로서 널리 알려지신 김열규 교수님는 명성이야 익히 들어 알고 있었지만 그분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메멘토 모리, 죽음을 기억하라>, <한국인의 자서전>, <독서> 등의 책은 아쉽게도 읽어보지 못했고 신문이나 잡지 기고 글 몇 편을 읽어본 게 전부였다. 이번에 읽은, 교수님의 공부에 대한 생각과 후학들에 대한 당부말씀을 담으신 “공부; 김열규 교수의 지식탐닉기”(비아북, 2010년 7월)이 사실상 첫 책인 셈이다. 

 교수님은 서문에서 공부의 열풍이 온 나라를 휩쓸고 있는 대한민국의 현실에서 한번쯤 공부가 무엇이고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지 머리를 맞대고 생각해보아야 하며 공부에 대한 정의와 “캐기”,“짓기”로 나눌 수 있는 공부의 방법들과 “읽기”와 “쓰기”의 글 공부와 살면서 끊임없이 해야 하는 인생 공부, 21세기 IT와 글로벌리즘 시대가 공부에 끼치는 영향에 이르기까지 공부에 대한 전반적인 것을 살펴보겠다고 책을 소개하면서 이 책이 요즘같이 어려운 시대에 주저앉지 않고 새로운 꿈을 꾸면서 공부를 시작하는 이들에게 도움이 되기를, 그들의 글 동부 인생 공부에 작은 버팀목이 되기를 희망한다고 말한다. 책은 공부에 대한 인문학적인 고찰보다는 인생의 황혼기에 들어선 노 교수의 공부에 대한 단상들을 담은 일종의 에세이로 볼 수 있을 정도로 부담 없이 쉽게 읽힌다. “이바구 떼바구 강떼바구”라는 자신의 할머니가 옛날 이야기를 들려주실 때 첫 마디로 하셨다는 일종의 추임새인 이 단어가 자신의 공부의 첫 장이라는 교수님의 공부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자.

 어렸을 때부터 귀에 딱지가 앉도록 지겹게 들어온 “공부”라는 단어의 정확한 뜻은 무엇일까? 교수님은 한자로 工夫 라고 쓰는 이 말을 한자 한자 풀이하여 설명하고 있는데, 공(工)은 원래 물건 만드는 연장을 의미하는 한편 사람이 연장을 들고 있는 모습을 의미하는 뜻으로 도구와 연장으로 무엇인가를 만들고 손질하고 짓는 것을 의미하기도 하는데, 우리가 말하는 글 공부니 학교 공부니 하는 뜻으로 쓰게 되면 그때는 손이 아닌 머리를 도구처럼 써서 좋은 생각을 익히고 빚어내는 것이야말로 공(工)의 의미가 될 것이다. 부(夫)는 두건, 관, 모자를 쓰고 있는 남자를 가리키는 말이니 공(工)과 어울려 써서 공부란 ‘머리를 써서 일하는 위대한 사람이 되도록 애를 쓰는 것’으로 풀이할 수 있다. 또한 머리를 싸매고 짜면서 머리를 쓰는 것으로도 정의할 수 있는 공부의 원칙에는 노력과 땀으로만 성취를 얻을 수 있다는 점에서 “공짜는 없다”와 꼭 노력한 만큼을 얻을 수 있게 한다는 점에서 “배신은 없다”를 들 수 있고, 고통과의 싸움이 될 수 밖에 없는 공부는 그 고통을 견뎌내고 즐겨야먄 보람의 결실을 맺을 수 있으므로 “카르페 파시오 carpe passio, 고통과 함께 살면서 고통을 즐기라”를 명심하라고 당부한다. 이러한 공부의 정의를 시작으로 책에서는 머리, 가슴, 손, 몸과 다리 등 신체기관 및 책가방, 책꽂이, 책상, 책 등 공부의 도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공부의 모습을 소개하고 글 읽기와 글쓰기의 방법 및 단상들, 공부하는 직장인이라는 신조어인 “샐러던트saladent(샐러리맨salaryman 과 스튜던트student의 합성어)”의 시대에서 마이스터를 꿈꾸는 사람들에 대한 소개와 21세기 정보화시대에서의 공부법에 대해 이야기한다. 

교수님의 여러 글 중 어릴 적 나도 자주 들었던 “소설 읽지 말고 공부나 해!”라고 말하는 ‘ 설을 못 읽게 하는 어른들에게’ 편에서 어른들의 눈을 피해 자신이 개발한 숨어 읽기의 비법, 즉 ‘몰래 읽기’, ‘바깥 읽기’, ‘도둑 읽기’ 세가지 비법 - 누구나 다 한번쯤은 사용했던 방법이라 비법이라 하기는 좀 그렇다. 다만 대상이 소설만이 아니라 만화책일 수 도, 성인 잡지일수도 있었던 것이 다르지만^^ - 을 소개하고 재미를 곁들여서 문리(文理)를 터득하는 데는 소설만 한 것이 없으며 소설을 읽지 말라는 건 글 공부를 하지 말라는 것과 같다는 말씀이 가장 인상 깊었다. 또한 교수님이 바라는 삶인 “책만장자” 삶, 즉 돈이 많은 억만장자가 아니라 책읽기로 살아가는 한평생, 서가 앞에, 거기 꽂인 책들 앞에 다리를 펴고 편하게 앉아서 그 하고 많은 낯익은 구면들이 던지는 정겨운 눈짓을 즐거이 받아내는 삶, 이렇게 또 저렇게 10년, 20년, 아니 40~50년에 걸쳐서 책이라는 지기지우(知己之友)들, 이를테면 나를 알아주는 친구들과의 사귐이 지켜지는 삶을 다함께 누리기를 바라는 교수님의 바램은 바로 내가 꿈꾸는 바로 그런 삶인지라 꽤나 인상 깊었다.

학문적 성취를 이루신 노학자(老學者)의 공부에 대한 철학적, 인문학적인 묵직한 사유(事由)를 기대했다면 실망스러울 수 있는 이 책은 쉽고 재밌게 풀어쓴 교수님의 공부에 대한 생각들을 엿볼 수 있어서 개인적으로는 부담없이 읽을 수 있었던 좋았던 책이었다. 한참 공부에 중압감을 느끼고 있는 청소년들이 공부의 의미와 방법에 대해 알아보는 계기로서, 이제는 더 이상 공부해라 라는 말을 듣고 있지는 않지만 평생 공부라는 말의 의미를 다시금 새겨보는 계기로서, 그렇다고 너무 딱딱하지 않고 공부라는 말에 정색을 하지 않고 가볍게 읽어보는 수필집으로 읽어본다면 좋을 그런 책이다.

지난 91년 이순(耳順)의 나이로 고향으로 내려가신 후에도 해마다 한 권 이상 책을 집필하고 계속 강연을 해오시던 교수님이 고향 인근 고등학교에서 지난 3년 동안 논술 및 글짓기 강의를 하신다는 근황을 전하는 최근 뉴스((MBN TV 2010.7.31.) 인터뷰에서 
 

“소년의 동심으로 돌아가서 내 나이를 깜빡 잊어버리니까, 78살의 고등학교 교사는 나밖에 없을 거예요. 그게 큰 자랑거리죠."

라고 하시는 말씀을 듣고 이제는 편히 쉬셔도 좋을 연세이신데도 교단에서 아이들을 가르치시는 것을 진심으로 즐거워하시는 교수님의 마음을 느낄 수 가 있었다. 에필로그에서 

내게 공부란 그런 것이다. 불완전한 존재로, ‘타자’의 보호없이는 생존조차 위태로운 존재로 이 세상에 태어나서 하나하나 나의 불완전한 부분을 채워가는 것, 그렇게 자연과 세계와 사물들을 이해하며 전인(全人)적인 존재가 되어가는 과정, 그것이 나의 공부이다.

라는 교수님의 말씀을 다시 한번 새겨본다, 죽는 날까지도 끝나지 않을 것 같다는 공부를 멈추지 않으실, 죽음마저도 다시없는 공부의 기회가 되어주지 않을까 생각하신다는 교수님의 공부하는 삶이 감히 참 아름답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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