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지내니
톤 텔레헨 지음, 김소라 그림, 정유정 옮김 / arte(아르테)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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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람쥐는 우울했다. 바람은 그저 스쳐 지나갈 뿐, 반가운 편지 같은 건 전해주지 않았다. 아무도 내 생각을 하지 않는구나. 다람쥐는 생각했다. 정적 나는 수많은 동물들을 생각하고 있는데.

별거 아닌 거에도 기뻐하는 너. 나에겐 별게 아니지만 너에겐 그것이 기쁜가 보다. 관계 안에서 서로의 마음을 모두 알기란 불가능하다. 네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너의 진짜 마음은 무엇인지. 나는 그저 짐작만 할 뿐이다. 내 짐작이 틀릴 수 있다. 좋든 나쁘든. 근데 그게 관계의 묘미 아닐까? 알지 못하기에 좀 더 애틋하게 다가오는. 그렇기에 더 기대하는?! 내가 너를 알기 위해 너와 나를 바꿔봤다. 하지만 그렇다고 너를 이해할 수 있는 건 아니다. 그냥 너는 너고 나는 나다. 나 자신을 이해하는 것도 힘든데 내가 누군가를 온전히 아는 것은 가능하지 않다. 욕심일 뿐이다. .

제가 생일 케이크를 굽다가 망쳤음을 전합니다.
그러니 제 생일에 오지 마세요.
그래도 생일선물을 주고 싶다면, 뭐가 용기를 북돋아 주는 것으로 부탁합니다.
제가 거의 절망 직전이거든요.
-큰개미할기가-

Carpe diem! Seize the day! 현재를 즐겨라!
지금, 현재. 그전, 예전도 아니라. 나중도 아닌. 우린 현재에 살고 있으며 현재는 반복되지 않는다. “가끔은 좋을 때도 있어! 지금처럼. 1년에 한 번이지만.” 현재는 일 년에 한 번뿐이다. 우린 현재에 살며 현재가 다시 반복되지 않는다는 걸 잊고 산다. 평생에 한번뿐인 현재에 오롯이 나에만 집중해보는 게 어떨까? “날 잊어줘.” 모든 사람들이 날 잊는다면 어떨까? 내가 잊어달라고 해서 잊히는 게 가능할까? 이 부탁이 유효한 걸까?
.
관계 속에서 ‘몰라’의 의미란. 모르니깐 관계에 빠지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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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지내니
톤 텔레헨 지음, 김소라 그림, 정유정 옮김 / arte(아르테)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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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람쥐는 우울했다. 바람은 그저 스쳐 지나갈 뿐, 반가운 편지 같은 건 전해주지 않았다. 아무도 내 생각을 하지 않는구나. 다람쥐는 생각했다. 정적 나는 수많은 동물들을 생각하고 있는데.

별거 아닌 거에도 기뻐하는 너. 나에겐 별게 아니지만 너에겐 그것이 기쁜가 보다. 관계 안에서 서로의 마음을 모두 알기란 불가능하다. 네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너의 진짜 마음은 무엇인지. 나는 그저 짐작만 할 뿐이다. 내 짐작이 틀릴 수 있다. 좋든 나쁘든. 근데 그게 관계의 묘미 아닐까? 알지 못하기에 좀 더 애틋하게 다가오는. 그렇기에 더 기대하는?! 내가 너를 알기 위해 너와 나를 바꿔봤다. 하지만 그렇다고 너를 이해할 수 있는 건 아니다. 그냥 너는 너고 나는 나다. 나 자신을 이해하는 것도 힘든데 내가 누군가를 온전히 아는 것은 가능하지 않다. 욕심일 뿐이다. .

제가 생일 케이크를 굽다가 망쳤음을 전합니다.
그러니 제 생일에 오지 마세요.
그래도 생일선물을 주고 싶다면, 뭐가 용기를 북돋아 주는 것으로 부탁합니다.
제가 거의 절망 직전이거든요.
-큰개미할기가-

Carpe diem! Seize the day! 현재를 즐겨라!
지금, 현재. 그전, 예전도 아니라. 나중도 아닌. 우린 현재에 살고 있으며 현재는 반복되지 않는다. “가끔은 좋을 때도 있어! 지금처럼. 1년에 한 번이지만.” 현재는 일 년에 한 번뿐이다. 우린 현재에 살며 현재가 다시 반복되지 않는다는 걸 잊고 산다. 평생에 한번뿐인 현재에 오롯이 나에만 집중해보는 게 어떨까? “날 잊어줘.” 모든 사람들이 날 잊는다면 어떨까? 내가 잊어달라고 해서 잊히는 게 가능할까? 이 부탁이 유효한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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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 속에서 ‘몰라’의 의미란. 모르니깐 관계에 빠지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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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다녀와
톤 텔레헨 지음, 김소라 그림, 정유정 옮김 / arte(아르테)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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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지의 세계에 대한 동경. 떠나고 싶다. 익숙한 이곳을 떠나 내가 알지 못하는, 또 나를 알지 못하는 곳으로 가고 싶다. 이곳이 싫어서가 아니다. 그냥 떠나보고 싶은 거다. 나도 이유를 모르고 너는 더욱이 모른다. 그냥 내 마음이 시키니 떠날 뿐이다.

우리는 여행이라는 이름으로 우리의 터전을 떠난다. 일상에서 나를 붙잡고 있는 것들을 훌훌 털고 그것들을 여행지에서만큼은 잊고 싶어 한다. 하지만 여행은 영영 떠나가는 것이 아니다. ‘언젠가 되돌아옴’을 내포한다. 완전히 떠나는 것이 아닌 다시 돌아옴을 염두에 두는 것이 여행이다.
돌아갈 수 있다는 걸 알기에 내가 떠나온 터전에 대해 더 그리울 때가 있다. 나 역시 종종 몸은 여행지에 있지만 마음이 나의 고향으로 향하기도 한다. 낯선 것이 신선함, 새로움이 아니라 불편함으로 다가올 때 나의 마음이 더욱 그러한 것 같다.

이 책은 동물들의 시선으로 떠난다는 것의 의미를 보여주고 있다. 각자만의 이유로 떠나는 동물들. 모두 다른 이유로 집을 나선다. 무엇을 바래서, 단지 이곳을 떠나고 싶어... 갖가지 생각들은 그들을 집에서 나서게 한다.

목적지에 도착했을 때, 동물들은 온전히 만족하지 못한다. 자신들의 기대와 완전히 일치하지 않는다. 자신이 구하던 것이 없다는 걸 알고 실망에 빠지기도 한다. 또 자신이 생각한 모습과 다른 그 세상이 낯설게 느껴지기도 한다. 분명히 원해서 온 곳인데 막상 와보니 완벽한 곳이 아니란 걸 깨닫는다.

이에 대한 동물들의 반응 역시 다양하다. 다시 내가 살던 터전으로 되돌아가거나 그냥 그곳에 적응해 살기도 한다. 또 새로운 곳을 찾아 떠나는 동물도 있다. 동물들의 모습이 다르듯이 다른 생각을 갖고 다른 길을 찾는 것이다.

우리가 삶이라는 여정을 우리의 색대로 살아가는 것처럼. 동물들은 우리에게 따뜻한 목소리로 말을 건다. “출발을 맞출 필요도, 똑같은 길을 갈 필요도 없어!” 마음이 맞을 땐 같이 가지만 그게 아니라면 서로의 길을 응원할 수 있다.

중요한 건 우리가 우리의 여정을 떠난다는 사실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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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러 심리학 입문 플러스 - 오늘을 살아가는 용기와 인간관계를 위한 모든 것
알프레드 아들러 지음, 김문성 옮김 / 스타북스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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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업을 통해 아들러에 대해 처음 알게 됐다. 그는 프로이트, 칼 융과 함께 현대 심리학의 주축이며 용기의 심리학자다. 나 역시 그에 관한 논문을 읽으며 용기를 얻었다. 그에 대해 더 공부하고 싶어 이 책을 선택했다. 이 책을 읽다 보니 아들러의 저작도 읽고 싶단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 들려주는 아들러의 이야기가 아니라 아들러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한번 찾아봐야겠다.

아들러는 인간 행동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 각자의 열등감에서 생기는 불만이나 불안감을 극복하는 권력의지로써 힘, 지배욕, 우월감을 본 것이다. 이 나약함을 극복하는 권력의지가 더 나아가게 되면 자아실현을 위한 완성 충동으로 개념이 확대된다. 이것이 사회 감정으로 발전하는 단계다. 아들러는 인간의 기본 동기로서 우월을 향한 의지를 말하였는데 여기에서의 우월감이란 다른 사람보다 뛰어나다는 뜻이 아니라 자신의 가능성을 더 많이 실현한다는 의미이다.

열등감은 그의 학문에 있어서 핵심적인 단어다. 인간은 모두 열등감을 가지며 이를 어떻게 바라보냐에 따라 상황은 달라진다. 우리는 완벽한 사람이 없다는 것을 잘 안다. 사람들 모두 개인적인 문제를 갖고 있으며 모든 것을 잘하지 못한다. 내가 갖고 있는 문제들, 잘하지 못하는 것들을 열등성이라 부른다. 열등성으로부터 나온 감정이 열등감이다.


우리가 마주한 객관적인 현실은 바꿀 수 없다. 바꿀 수 있더라도 많은 노력이 필요할 때가 많다. 하지만 우리의 시각과 생각은 바꿀 수 있다. 우리는 객관적인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현실에 대해 우리의 생각이 개입된다. 즉, 모든 행동의 밑바닥에는 세계 및 자기 자신에 대한 일정한 암묵적 평가 나는 이런 사람이고 세계는 이러이러하다는 판단을 한다. 우린 객관적인 현실 자체가 아니라 해석된 무엇으로써 경험하는 것이다. 또한 자신이 인생에 부여한 의미가 놓여 있다. 어떠한 인간도 의미 없이 살아가지 못한다. 우리는 항상 우리가 부여한 의미를 통해서 현실을 경험하며, 이런 수많은 의미 속에서 좋은 대답과 그렇지 않은 대답을 구별할 수 있다. 그렇기에 우리는 이를 바라보는 시야에 변화를 줄 수 있다. 경험들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이것을 부정적인 틀로써 해석하는 것을 지양하면 된다. 우리의 관점만 조금 바꾸면 우리의 부족한 것은 우리의 열등감이 아닌 우리의 성장의 토대가 될 수 있다. 듀이가 말한 것처럼 미성숙이 부정적인 의미가 아니라 성장의 가능성을 의미한다는 것을 염두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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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신교육 존 듀이에게 묻다 - 듀이 실험학교와 우리 혁신학교의 이론적 연결 뿌리
서용선 지음 / 살림터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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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학도라면 듀이, 피아제는 수도 없이 강의에서 들어봤을 것이다. 이는 그들의 학문적 영향력이 교육학에서 중요하다는 걸 의미한다. 하지만 아쉽게도 나에게는 그들의 학문적 깊이와 폭을 제대로 느낄 수 있는 기회가 없었다. 강의에선 그들의 대표적인 이론만 반복·변형해서 다룰 뿐이다. 처음엔 새로웠던 그들의 대표적인 이론들은 “또, 그 소리야?”의 반응을 부른다.

우리나라 교육은 미국만큼이나 미국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한국 교육의 핵심 인물인 이홍우 교수를 필두로 대부분의 교육학자들이 미국에서 공부를 했다. 우리 대학교수님들만 해도 미국에서 수학은 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렇기에 미국의 교육학자인 듀이가 우리나라 교육 전반에 영향을 미친 것은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경험 중심의 교육과정. 학습 참여 중심. 학생들의 흥미를 고려하는 수업. 듀이의 교육을 떠올리면 생각나는 말들이다. 우리나라 교육과정에서 빠지지 않는 말들일 것이다. 나 역시 이것들이 가능해야 배움이 일어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런 생각은 듀이 이외에도 많은 교육자가 했을 것이다. 교사 중심의 수업에서 염증을 느낀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를 지적하고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한 의견을 낼 수 있다. 그렇기에 이것 이외에도 듀이를 위대한 교육학자로 만든 다른 요소가 있을 거라 생각했다. 우리가 강의에선 중요하게 다루지 않지만 그의 중요한 생각들을 배워보고 싶어 이 책을 선택했다.

이 책을 읽으며 듀이의 학문이 단순히 교육학에 한정돼 있지 않다는 것을 배웠다. 그는 정치, 심리학, 철학, 윤리학, 사회학을 막론하고 다양한 학문에 다가갔다. 더 나아가 그것들을 독립적인 학문으로만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그들 간의 관계를 파악하고 연결 짓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그를 보며 나 역시 다양한 학문을 바라볼 수 있는 눈을 길러야겠다고 생각했다. 과거엔 하나의 전문 영역을 정해 연구하는 것을 꿈꿨다면 요즘은 내가 원하는 분야들을 공부하고 이를 연결 짓고 싶다.

또한 하나의 학문 안에서도 대립되는 생각 역시도 모두 유념해야 할 필요를 느꼈다. 독일 학파와 시카고학파의 대립은 부정을 위한 부정을 의미하지 않는다. 독일 학파는 시카고학파에 비해 더욱 긴 역사를 갖고 있다. 그렇기에 시카고학파는 독일 학파의 영향을 받으며 그들로부터 배우고 자랐을 것이다. 또한 독일 학파 역시 시카고학파의 비판과 논쟁을 통해 자신들의 생각을 더욱 견고히 하는 과정을 거쳤을 것이다. 이렇게 대립돼 보이지만 큰 틀에서 보면 이 둘은 모두 학문의 구성 요소이며 학문의 발전을 꾀한다.

듀이는 다양한 학문의 영향을 받고, 학문 안에서도 대립과 논쟁을 통해 성장한 인물이다. 그는 교류를 통해 형성된 인간이다. 우리가 우리 자신에게만 함몰되면 안 되는 이유를 듀이를 통해 할 수 있다. 교류는 배움과 성장의 원동력이다. 우리가 이를 멈춘다면, 우리의 성장 역시 멈출 것이다.

관계 안에서 성장한 그는 교육에서 관계의 중요성을 역설한다. 개인이 개인적 자아를 넘어 사회적 자아로 성장하는 것을 교육의 목적으로 보고 있다. 사회적 자아란 개인이 공동체를 형성하며 그 속에서 서로 상호작용하며 각자의 역할을 수행하는 것을 의미한다. 즉 개인의 목표를 넘어서 공동체의 목표를 바라볼 수 있는 시아를 갖춰야만 한다.

그가 강조한 민주주의 역시 이와 일맥상통하다. 단순히 정치적 차원으로서의 민주주의가 아닌 생활양식으로의 민주주의는 민주주의 정신의 내재화를 의미한다. 이는 단순한 정부형태가 아닌 보다 근본적으로 공동생활의 양식이고, 경험을 전달하고 공유하는 방식이다. 그는 흔히 알고 있는 선거를 통한 정부의 구성이나 법을 제정하고 정부가 행정을 집행하는 방식보다 민주주의에 대해 훨씬 광범위하고 깊게 접근하고 있다.

우리가 사는 일상은 개인이 모인 공동체이다. 그 공동체 안에서 개인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것은 공동체 정신에 위배되는 것이다. 즉 주인으로서 공동체에 기여하지 못하게 된다. 이는 생활양식으로 민주주의를 실현하지 못한 모습이다. 우리는 공동체 주인이 우리이며 우리는 서로 영향을 주고받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이 관계가 유지돼야 공동체는 발전하고 개인 역시 성장할 수 있다. 이는 개인이 관계 내에서 어떤 역할을 취할 수 있고, 긍정적인 상호작용을 위해 어떤 행위를 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을 전제로 한다. 우리가 살아감에 있어서 관계를 의식하는 것이 생활양식으로서의 민주주의가 아닐까 생각한다.

“A person is a person through other persons.”
개인은 관계를 통해서만 개인이 된다. 개인은 관계 안에 있으며, 이를 벗어날 수 없다. 우리는 관계 안에서 성장하며 상호작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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