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료되었습니다 - 영화 [희생부활자] 원작 소설
박하익 지음 / 황금가지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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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운 미래, 어느 날부터인가 눈빛이 흐릿하고 말이 느린 사람들이 나타난다. 소매치기에게 찔려 죽은 뒤 7년만에 돌아온 주부, 실종된 날의 차림새 그대로 10년 만에 돌아온 아이 등 이들은 모두 억울하게 죽은 살인 사건의 피해자들이다. 살아생전의 모습 그대로 돌아온 피해자들은 자신을 살해한 가해자를 찾아 직접 죽인 후에 소멸한다. 사람들은 이들을 ‘환세자(RV, Resurrected Victim)’라고 부르고, 설명할 수 없는 이 괴현상에 두려워하는 한편 억울한 죽음의 진실이 밝혀진다는 점에서 희망을 갖는다. 


하지만 7년 전 소매치기의 칼에 찔려 죽은 어머니 명숙은 다른 RV들과는 다르다. 그녀는 자신을 죽인 소매치기가 아닌 자신의 아들을 향해 공격 반응을 보인다. RV 현상을 연구하기 위해 소멸하지 않은 RV를 실험체로 얻으려는 국정원과 CIA는 자신을 죽인 자에게만 반응을 보이는 명숙이 진홍을 공격한다는 점에서 서진홍을 사건의 진범으로 의심한다. 그들은 서진홍과 최명숙을 구속하고 두 사람에게 각종 심리 검사와 대질 심문을 행한다. 한편 명숙을 찌른 진범이 그 과정에서 잡혀 들어오고, 마침내 세 사람은 한 자리에서 마주한다.


살인범이게 내릴 수 있는

가장 완전한 심판은 무엇일까?


'죄와 벌'에 대한 생각은 평소 해보지 않았던 것 같다. 때때로 조두순 사건이나 수십 명을 살해한 것이 분명한데 그것에 비해 형량을 비교적 적게 받는다고 생각할 때 울분이 터지고 분노하게 되는 경우는 종종 있었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그들에게 어떤 댓가를 치르게 하는 것이 정당한가에 대한 고민을 하게 만들었다.


최근 들었던 팟캐스트 '크라임'에서 베트남전에서 전쟁 후유증을 앓는 사람이 망상에 시달리다 연대장의 어머니를 죽였는데 국가가 그를 보살피지 않아서 이런 일이 야기되었고, 그래서 그에게 내려진 7-10년형이 적절하다는 멘트를 들었다.


우린 무엇을 위하여 '처벌'을 하는 것일까?


과연, 피해자 유족들은 그렇게 생각할까? 최고 형벌의 선, 그것이 무엇일까?


이 책은 그 부분에서 시작한다. 어린아들을 살해당한 박종호박사는 찢어지는 가슴을 안고 고통스러워하다가 결론을 내렸다.


"괴로워 할 건 내가 아니잖아. 죄를 지은 장본인이지. 최고의 형벌은 죄인에게 사랑을 깨닫게 하는거야. 피해자를 향한 불타는 사랑 말이야."


가족을 잃은 사람들이 어떤 상처를 입었는지, 피해자라 얼마나 고통스러워했는지 피해자의 입장에서 똑같이 겪어내는 것. 완벽한 징벌이자 잔혹판 징벌을 동시에 만족시키는 시스템.


그래서 살인범에게 피해자와 유족의 기억을 심어주는 것.

참신한 아이디어이고, 기발한 스토리. 하지만 실제로 가능할까?


정말 피해자의 고통을 이식해주었을 때, 범죄자들은 공감하고 교화될 수 있을까? 그 상실된 죄책감이 모든 상황을 돌이킬 수 있을까?

괴로워 할 건 내가 아니잖아. 죄를 지은 장본인이지. 최고의 형벌은 죄인에게 사랑을 깨닫게 하는거야. 피해자를 향한 불타는 사랑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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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쇄 살인마 개구리 남자 스토리콜렉터 59
나카야마 시치리 지음, 김윤수 옮김 / 북로드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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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겨울 아침, 쇠갈고리에 얼굴이 꿰뚫린 알몸의 여자 시체가 발견돼 모두를 경악하게 한다. 그런데 더욱 충격적인 것은 그 옆에 남겨진 쪽지였다. 쪽지에는 마치 어린아이가 쓴 듯 삐뚤빼뚤한 글씨로 이렇게 적혀 있었다.

접힌 부분 펼치기 ▼

 

오늘 개구리를 잡았다. 상자에 넣어 이리저리 가지고 놀았지만 점점 싫증이 났다. 좋은 생각이 났다. 도롱이벌레 모양으로 만들어 보자. 입에 바늘을 꿰어 아주아주 높은 곳에 매달아 보자.

 

펼친 부분 접기 ▲


피해자의 신원은 곧바로 밝혀지지만 수사본부는 목격자도, 현장 감식 증거도, 그럴듯한 용의자도 찾아내지 못해 난감할 뿐이다. 게다가 시민들 반응이 여느 엽기 살인 사건과 전혀 다르다. 이성적인 어른의 범죄가 아니라 아이가 장난감 대신 시체를 가지고 논 듯한 충격적인 사건에 모두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보통의 사건이면 여기저기 뉴스에 나오고 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지만, 이 사건은 공포감으로 서로 두려움에 떨게 만든다.


“어린아이는 싫증 나거나 혼나지 않는 한 한번 마음에 든 놀이를 절대 그만두려 하지 않죠.”


분명 정신 이상자의 소행일거라 생각한 경찰은 정신 의학계 중진의 의견까지 참고하며 수사를 진행하지만 이를 비웃듯 살인마는 두 번째 살인을 저지른다. 압축기 사이에 놓여있는 폐차에 시체를 두어 완전히 짓눌린 채 발견된 두 번째 시체. 언론은 폐차 압축기에 짓눌린 충격적인 시체 사진을 신문 1면에 싣고, 범인에게 ‘개구리 남자’라는 이름까지 붙여 준다. 사람들 사이에 떠돌던 막연한 불안감은 극심한 공포로 변모한다.


그리고 세 번째 살인, 한 아이가 시체를 해부하듯 내장을 다 진열해놓은 채 발견되면서 사람들은 패닉에 빠진다. 그리고 이 살인 사건이 <아,이,우,에,오- > 50음순 순서의 이름을 가진 사람이 살인 당한다는 살인의 패턴을 발견하게 된다. 이로써 다음 대상이 되는 음순의 이름을 가진 사람들이 몰려들고, 정신 이상자의 명단을 내놓으라고 싸우며 서로를 의심하게 되는데, 도시 전체를 패닉으로 빠뜨린 개구리 남자의 정체는 과연 모두의 짐작처럼 정신 이상자일까?


그렇다면 형법 39조(우리나라 10조 1항)에 따라 심신 상실자에게는 책임 능력이 없어 범죄가 성립되지 않는다. 라는 조항에 따라 연쇄 살인마 '개구리남자'에게 죄를 물을 수 없는 것일까?


과연 이 조항은 옳은 것일까?


이 책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점은 ‘심신 미약자의 법적 책임 능력’에 관한 질문일 것이다. 사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많은 사람들간에 이견 차가 존재할 수 밖에 없다.


등장인물 중 한 명인 '오마에자키'는 어린 시절 범죄를 저질렀지만 심신 미약으로 처벌받지 못한 사람들을 교화하고 가르치는 의사이지만, 3년 전 정신 질환자에게 가족을 살해당한 아픔을 가지고 있다. 피해자는 범인을 용서하지 못해도 국가와 시민들은 그에게 면죄부를 허용한다. 과연 그것이 옳은 판단일까?


개인적으로 고민을 많이해봤지만, 사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명확하게 '내 생각은 이래'라고 말하기 어렵다. 다만, 우리나라에서는 <심신 미약>이라는 용어의 범위가 꽤 넓게 적용되는데, 예를 들어 말하기는 조심스럽지만 수 년전에 일어난 조두순 사건 또한 전국민이 분노하며 강력한 처벌을 원했지만, '술에 취해 범죄를 저질렀다.'라는 심신 미약을 받아들여 법원은 7년형을 선고하였다. 그렇게 어린 아이에게 잔혹하고 무차별한 성폭행을 저지르고, 평생 씻을 수 없는 고통을 주었는데도 말이다. 그래서 그는 2년 후 출소하고 고작 대학생밖에 안된 나영이는 사회에서 그를 다시 만날 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겪어야 한다.


그리고 작년쯤 일어났던 강남역 살인사건 또한 조현병에 의한 망상으로 살인을 저질렀는데, 당시 피해자는 사망하고 수많은 여성들은 두려움에 떨며 여전히 공용화장실은 사용하지 못한 채 여성 혐오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게 되었다. 하지만 사회적 논란을 고려하여 1심에서 30년형이 선고되었고, 피해자에게 5억을 배상하라는 판결을 받게 되었다.


막연하게 '심신 미약심신 상실자에게는 책임 능력이 없어 범죄가 성립되지 않는다.'라고 생각하면 너무 타당하고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지만, 실제 내 주위에 혹은 나에게 일어난 일이라고 생각해보면 아마 타당하지 않다고 분노하게 될 것이다.


무엇이 옳은지는 내 지혜로 판단하긴 어렵다. 다만, 우리 나라에서 인정되는 '음주'에 대한 심신 미약은 정당하다고 보기 어렵다. 음주 운전, 음주 폭행, 음주 살인 등 음주에 대한 것은 자기 조절 능력이 있는 사람이라면 심신 미약을 적용하지 말아야한다고 생각한다. 


이 책은 가독성도 좋아서 금방 읽고, 현존하는 법 조항에 대해 고민해볼 수 있어서 좋은 책이었지만 스릴러답게 반전의 반전의 반전을 거듭한다. 조금 잔인한 부분도 있지만, 스릴러를 좋아하는 분이라면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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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살아보니까 그럴 수 있어
요적 지음 / 마음의숲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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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살아보니까 그럴 수 있어"

이 책의 제목을 보니 몇 년전에 방송했던 tvN <꽃보다 누나>라는 방송에서 인터뷰 중에 윤여정이 했던 말이 생각난다. 한 시대의 문화를 읽으려면, 그 시기의 '베스트 셀러'를 보면 안다고 했다. 요즘처럼 '자기 위로', '위안'이 필요한 시대도 없었을 것이다. 최선을 다하면 뭐든 되는 줄 알고 최선을 다했는데, 그 결과는 아무 것도 없었다. 그 절망감을 우리 모두가 안고 있다.


그래서 이 책은 '제목'만으로도 큰 위안을 준다. 우리는 들어도 들어도 듣고 싶다. 괜찮다는 말을. 더구나 처음이니까. 처음 말을 배울 때, 처음 피아노를 칠 때, 처음 연애를 시작했을 때, 처음 친구와 싸웠을 때, 처음 비행기를 타봤을 때처럼. 처음은 늘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처음’은 처음이라 용서 받기 쉽고, ‘처음’은 처음이라 더 관대해질 수 있다. 


이 책 속에 등장하는 펭귄의 말처럼 우리는 모두 오늘을 처음 살고 있다. 우리는 단 한 번뿐인 우리의 삶을 위해 아무런 연습도 하지 못하고 매일매일을 살다간다. 모두 오늘을 처음 살고 있으니까, 모두 지금 이 나이를 처음 겪고 있으니까, 당연히 서툴고 잘 못할 수밖에 없다.


처음이니까 당연하다고, 처음이니까 실수도 많다고, 처음이니까 잘 못하는 거라고.


어느 덧 나도 서른을 훌쩍 넘어 중반으로 향하고 있다. 마음은 이팔 청춘이라는 어른들의 말이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마음은 물러 터졌는데 나이는 먹고, 경력은 쌓여가며 하루하루는 쏜살같이 지나가는 것이 놀랍기만 했다.

나와 비슷한 또래 혹은 이 나이를 지나는 대부분은  이 나이가 되면 인생에 대해 그럴 듯한 가치관을 스스로 가지고 성숙해져있을 줄 알았는데, 스무 살에 나와 스물다섯 살의 나보다 더 성숙해졌는가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다.


너는 네 삶이 얼마나 가치있다고 생각해?

책 중 한 에피소드에 나오는 질문에 나는 숨이 턱 막혔다. 사실 나는 최근 내 삶이 그닥 가치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내 삶 뿐 아니라 그냥 산다는 것 자체가 가치있다는 것에 의문이 들었다.)


V 과연 이렇게 살아가는 것이 의미가 있을까?

V 산다는 것은 실제적으로 어떤 의미를 일까? 


이런 사춘기스러운 고민을 (여전히) 굉장히 진지하게 하고 있었다. 사실 나는 서른 살을 꽤 호되게 맞이한 편이다. 내 안에 내가 통제하지 못하는 내면의 많은 문제들과 분노, 그리고 다스릴 수 없는 나의 기질까지. 알고 있지만 나조차 어쩌지 못하는 많은 것들이 결국 나를 아프게했다. 그리고 결국 견디다 못해서 정신과에 상담을 받기도 했다. (도움이 필요하실 땐 어디든 서둘러 손내미시는 게 좋습니다!)


감사하게도 삼십 년을 살아오면서 크게 '실패'하고 좌절했던 경험이 없던 탓에, 온 힘을 다해 최선을 다해도 구조적, 상황적으로 겉잡을 수 없이 다가오는 실패(내 기준의 실패)와 계획대로 되지 않으면 견디지 못하는 완벽주의 기질이 부딪히면서 엄청난 심적인 타격을 받았었다.


원래 모든 일에 명확하고 예민하고 정확했던 나는 사실 그 전부터 이러한 나의 기질에 대해 고민해왔는지도 몰랐다. 그저 실패없이 그 때마다 계획대로 진행되었고, 엄청난 스트레스를 견뎌야했지만 나름대로 스스로 위로해가며 버텨왔던 것이다.


그 사건이 나에게는 매우 힘들고, 충격적인 사건이었지만 많은 시간이 지난 지금은 참 고마운 사건이기도하다. 그렇지 않았다면 나는 여전히 지금도 무엇이 중요한 지 고민하지 못한 채 내 좁은 시선에서 옳다고 믿는대로 달려가고, 실패하기 싫어서 누군가에게 상처주며 스스로의 예민함을 견디고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지금은 많은 것들을 내려놓고 나 스스로의 행복을 위해 바라보는 눈을 가지게 되었다. 사실 내가 가지고 싶고, 하고 싶고, 얻고 싶은 것들이 얼마나 부질없는 것인지. 내가 하찮게 놓았던 것들이 사실은 생에 얼마나 가치있는 것이었는지를 깨닫게 되는 시간들이었다.


아플 수 밖에 없다. 우리 모두 처음 살아보니까.

배우는 모든 순간은 고통스러울 수밖에 없고, 또 나처럼 기질적으로 까다로운 사람이라면 더욱 스스로를 만져가는 과정이 괴로울 것이다.


그렇지만, 어쩌겠어. 이미 시작된 초행길.

서로 손내밀어주고 위로 받으며 함께 견뎌보는 수밖에.

- 저는 제가 부끄러워요.남들은 별 거 아닌듯 넘기는 그런 말들에 너무 아파하는 제가요.

상처주는 이도 왜 그런 걸로 상처 입냐고 하는데. 정말 제가 순두부처럼 물러 터져서 상처 입는 것 같아요. 이 약한 면이 잘못된 것 같고, 그게 너무 부끄러워요.

- 저번에 웃는 가면을 봤는데, 그게 더 편하지 않을까?

- 저도 그거 있어요. 이걸 쓰고 다녔던 적도 있어요. 근데 가면을 쓰고 웃고 있었는데 간신히 올렸던 가면의 입꼬리마저 와르르 무너졌을 때 너무 비참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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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고 광장의 자유 - 2017년 칼데콧 아너 상 수상작 밝은미래 그림책 34
캐럴 보스턴 위더포드 지음, R. 그레고리 크리스티 그림, 김서정 옮김 / 밝은미래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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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그림책'하면, '아이들이 읽는 책'이라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생각하지만 사실 어른들에게도 묵직한 메세지를 던져주는 좋은 그림책이 참 많다. 이 전에 어린이출판사에서 근무할 때는 좋은 그림책을 많이 접할 수 있어서 좋았는데, 요즘은 칼데콧 수상작같은 그림책 정도만 보는 정도.


이번에 보게된 그림책은 《콩고 광장의 자유》

사실 이 책의 이야기를 읽고 조금은 슬프고, 또 마지막에는 약간의 쾌감이 느껴지기도 했다.


과연 진정한 '자유'라는 건 무엇일까?

너무 익숙한 단어여서 깊이있게 생각해보지 않았지만 분명 이 그림책의 노예들에게는 간절한 것이었다. 일주일에 하루, 일요일 반나절에만 만끽할 수 있는 그들의 '자유'와 '해방감'은 주말만 애타게 기다리다가 금요일 저녁부터 폭발하는 우리의 모습과 비슷하다는 생각에 조금 슬퍼졌다.


그들은 견딜 수 없는 상황에서도 기쁠 수 없는 상황에서도 주어진 작은 '자유'를 만끽하며 즐거워할 줄 아는 것, 몸 뿐만이 아닌 그들의 영혼이 진정 자유로워지는 것. 그래서 그들의 삶과 문화 유산은 우리 시대에 <재즈>라는 이름으로 남겨졌다. 하루하루를 기다리며 노동을 하다 다가온 <콩고 광장의 자유>는 두근두근 묘한 흥분감을 주는데..


글쎄, 그게 진짜 '자유'인가를 논하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자유'를 향한 그들의 마음 그리고 어떤 순간에도 자유를 소중히 여기고 즐기는 마음.

그런 마음에 공감해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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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중서부의 부엌들
J. 라이언 스트라돌 지음, 이경아 옮김 / 열린책들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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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사실 이 책은 '표지'가 너무 예뻐서 꼭 읽어보고 싶던 책 중에 하나였다. (어떻게 내용이 아니라 표지를 보고 골랐냐고 하면 할 말이 없지만, 가끔 그런 경우가 있다.)


이 사랑스러운 책을 집어들게 된 경위가 어찌되었든 나는 이 책을 읽는 동안 무척 행복했고, 맛있는 인물들의 삶을 맛보았다. 각 8개의 챕터로 구성되어있는 그 이야기는 각 주어진 <미국 중서부>의 음식 메뉴와 연관된 각 주인공의 발자취를 따라간다.


이 전에 작가를 꿈꾸던 아마추어 문예창작과 학생 시절(먼.. 옛날)에 서툰 실력으로 글을 쓰다보면, 내가 만들어낸 주인공들이 살아 움직이는 것 같은 느낌이 들 때가 있다. 그런 경우들이 꽤 있었는데, 아마 내 실력이 부족해서였겠지만 내가 계획하고 설계한 스토리텔링이 있지만 글을 쓰며 주인공의 뒤를 따라가다보면 (내 시선은 늘 주인공의 등이었다.) 늘 내가 생각한 곳이 아닌 주인공이 가고 싶은 종착지를 휘젓고 다니고 감정을 표현하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난 그게 좋았다.


이 작품을 읽으면서 그 순간들이 떠올랐다. 엄청난 행운과 엄청난 사건이 일어나는 것은 아니지만, 각자가 자기 주어진 삶에서 생동감있게 살아 움직이고 감정을 표현하고 휘젓고 다니는 것. 작가가 의도했다면 너무 존경스럽고, 의도하지 않았다하더라도 사랑스러운 인물들을 또 만나고 싶다.


이 소설의 주인공 에바는 천재적인 미각을 지닌 여성으로, 레스토랑의 셰프인 아버지와 소믈리에를 꿈꾸는 웨이트리스인 어머니 사이의 외동딸로 태어난다. 에바가 아직 갓난아이였을 적, 에바의 어머니 신시아는 자신의 자유로운 삶을 찾아 어린 에바와 남편 라르스를 두고 집을 떠나 버리고, 라르스는 홀로 남겨진 채 지극정성으로 에바를 돌본다.


직업이 셰프인 그는 마치 음악을 하는 부모가 특정한 곡들을 자식에게 계속 접하게 해주듯이 아직 갓난아이인 에바에게 맛있는 음식들을 잔뜩 해주면서 그녀를 기른다. 그러나 라르스 역시 얼마 안 가 심장마비로 갑작스레 숨을 거두고, 에바는 라르스의 동생인 삼촌 가족의 손에서 자라게 된다.


10대 소녀로 자란 에바는 남들보다 덩치가 크고 다른 아이들에 비해 조숙하다는 이유로 학교에서 괴롭힘과 따돌림을 당한다. (에바가 친부모로 알고 자란) 삼촌 부부는 에바를 친자식처럼 사랑해 주지만, 다른 가족들과 달리 엉뚱한 발상을 잘 하고 요리에 관심이 많은 에바의 성향을 깊이 이해해 주지는 못한다. 고된 파트타임 업무로 생계를 지탱해야 하는 어려운 집안 사정 때문에 부모로서 에바를 세심하게 돌봐 주지도 못하는 형편이다.


열한 살 때 자기 방 벽장 안에 수경 재배 도구와 성장 촉진 램프를 설치하여 살인적으로 매운 칠리 고추들을 취미 삼아 재배하는가 하면, 그 고추를 이용한 계략을 꾸며서 자신을 괴롭히던 못된 남자아이들을 당차게 혼내 주기도 한다. 청양 고추의 20배에 달하는 극도로 매운 고추들을 기르고 맛보며 실험을 거듭해 온 탓에 내성이 생긴 혀로 어른들도 먹기 힘든 매운 음식 먹기 대회에서 우승을 거머쥐기도 한다.


미국 최고의 디너파티를 주관하는 전설적인 셰프가 되기까지, 이 작품은 천재 셰프 에바의 흥미로운 성장담무엇보다 에바는 한 세대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놀라운 미각을 지닌 소녀다. (3개월 된 아기에게 항정살 퓌레를 먹인 아버지의 정성을 생각하면 그렇게 자랄 수 밖에 없지 않았을까?) 


유명 레스토랑의 셰프의 눈에 들게 된 그녀는, 그곳에서 인턴으로 일하게 되면서 본격적으로 요리의 세계에 입문하고 차츰차츰 셰프의 꿈을 키워 나가며 미국 최고의 디너파티를 주관하는 전설적인 셰프가 되기까지, 이 작품은 천재 셰프 에바의 흥미로운 성장담이다.


하지만 이 작품에서는 '에바'만이 주인공은 아니다. 국가대표로 꿈 앞에 다가간 순간 잠깐의 방심으로 임신해버린 브라크(에바의 사촌), 에바에게 한 눈에 반한 밴드소년 윌 (윌은 나중에 더 디너에 참석해 에바와 데이트를 한 적이 있다고 자랑한다.)


에바를 경쟁자로 생각하고 사사건건 질투하는 부유한 여성 옥타비아(후에 에바가 더 디너 사업을 제안하지만 거절하고 후회한다), 의붓 자녀들의 차디찬 무시와 남편의 무관심, 친자식의 마약 재배와 방탕을 자신의 속으로 감내하며 자신만의 캐러멜 바를 만들어가는 팻, 그리고 마지막 이 작품에서 잊혀졌던 인물.


친 자식을 멀리서라도 한 번 만나고 싶어하는 에바의 친 어머니 신디아까지 이 작품 안에서는 모두가 스스로 움직이고, 생동하며 각자 자신의 삶을 달려가고 있다. 난 이 이야기에서 가장 매력적이라고 생각한 포인트는 각 스토리마다 명확한 결말을 보여주지 않는다는 점이다. 긍정도 부정도 아닌 멈춤으로 끝나는 열린 결말의 이야기.


근데, 산다는 게 그렇지 않나- 예전에는 산다는 것이 '명확한' 그 무엇이라고 생각한 적이 있었는데, 지금은 삶에 있어 명확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생각이 든다.


잠깐의 방심으로 임신을 한 브라크의 인생이 그 시점으로부터 망한 것은 아니다. 에바에게 한 눈에 반해 고급 레스토랑으로 에바를 처음 데려갔던 윌과 헤어졌다고 해서 그들의 삶이 끝난 것이 아니며, 자신의 자부심이자 자기 자신과 같던 자신의 캐러멜 바가 무시당하고, 아들의 마약이 경찰에게 단속되는 위기에서도 그녀의 이야기를 작가가 지속해서 들려주지 않을 뿐 그녀의 삶은 종료되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상상해본다.

지금 그들은 무엇을 하고 있을까,


에바에게 새로운 사랑이 찾아왔을까?

신시아와 에바는 그 후에도 만남을 이어갔을까? 옥타비아와 조디 또한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인생은 무조건 낙관하지 말자, 그들에게 또 다른 시련이 왔을지도 모르고 상상할 수 없는 고통 가운데 휘말릴지라도 지금도 나처럼 생생하게 살아갈 그들의 삶을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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