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살아보니까 그럴 수 있어
요적 지음 / 마음의숲 / 2018년 1월
평점 :
품절




"처음 살아보니까 그럴 수 있어"

이 책의 제목을 보니 몇 년전에 방송했던 tvN <꽃보다 누나>라는 방송에서 인터뷰 중에 윤여정이 했던 말이 생각난다. 한 시대의 문화를 읽으려면, 그 시기의 '베스트 셀러'를 보면 안다고 했다. 요즘처럼 '자기 위로', '위안'이 필요한 시대도 없었을 것이다. 최선을 다하면 뭐든 되는 줄 알고 최선을 다했는데, 그 결과는 아무 것도 없었다. 그 절망감을 우리 모두가 안고 있다.


그래서 이 책은 '제목'만으로도 큰 위안을 준다. 우리는 들어도 들어도 듣고 싶다. 괜찮다는 말을. 더구나 처음이니까. 처음 말을 배울 때, 처음 피아노를 칠 때, 처음 연애를 시작했을 때, 처음 친구와 싸웠을 때, 처음 비행기를 타봤을 때처럼. 처음은 늘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처음’은 처음이라 용서 받기 쉽고, ‘처음’은 처음이라 더 관대해질 수 있다. 


이 책 속에 등장하는 펭귄의 말처럼 우리는 모두 오늘을 처음 살고 있다. 우리는 단 한 번뿐인 우리의 삶을 위해 아무런 연습도 하지 못하고 매일매일을 살다간다. 모두 오늘을 처음 살고 있으니까, 모두 지금 이 나이를 처음 겪고 있으니까, 당연히 서툴고 잘 못할 수밖에 없다.


처음이니까 당연하다고, 처음이니까 실수도 많다고, 처음이니까 잘 못하는 거라고.


어느 덧 나도 서른을 훌쩍 넘어 중반으로 향하고 있다. 마음은 이팔 청춘이라는 어른들의 말이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마음은 물러 터졌는데 나이는 먹고, 경력은 쌓여가며 하루하루는 쏜살같이 지나가는 것이 놀랍기만 했다.

나와 비슷한 또래 혹은 이 나이를 지나는 대부분은  이 나이가 되면 인생에 대해 그럴 듯한 가치관을 스스로 가지고 성숙해져있을 줄 알았는데, 스무 살에 나와 스물다섯 살의 나보다 더 성숙해졌는가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다.


너는 네 삶이 얼마나 가치있다고 생각해?

책 중 한 에피소드에 나오는 질문에 나는 숨이 턱 막혔다. 사실 나는 최근 내 삶이 그닥 가치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내 삶 뿐 아니라 그냥 산다는 것 자체가 가치있다는 것에 의문이 들었다.)


V 과연 이렇게 살아가는 것이 의미가 있을까?

V 산다는 것은 실제적으로 어떤 의미를 일까? 


이런 사춘기스러운 고민을 (여전히) 굉장히 진지하게 하고 있었다. 사실 나는 서른 살을 꽤 호되게 맞이한 편이다. 내 안에 내가 통제하지 못하는 내면의 많은 문제들과 분노, 그리고 다스릴 수 없는 나의 기질까지. 알고 있지만 나조차 어쩌지 못하는 많은 것들이 결국 나를 아프게했다. 그리고 결국 견디다 못해서 정신과에 상담을 받기도 했다. (도움이 필요하실 땐 어디든 서둘러 손내미시는 게 좋습니다!)


감사하게도 삼십 년을 살아오면서 크게 '실패'하고 좌절했던 경험이 없던 탓에, 온 힘을 다해 최선을 다해도 구조적, 상황적으로 겉잡을 수 없이 다가오는 실패(내 기준의 실패)와 계획대로 되지 않으면 견디지 못하는 완벽주의 기질이 부딪히면서 엄청난 심적인 타격을 받았었다.


원래 모든 일에 명확하고 예민하고 정확했던 나는 사실 그 전부터 이러한 나의 기질에 대해 고민해왔는지도 몰랐다. 그저 실패없이 그 때마다 계획대로 진행되었고, 엄청난 스트레스를 견뎌야했지만 나름대로 스스로 위로해가며 버텨왔던 것이다.


그 사건이 나에게는 매우 힘들고, 충격적인 사건이었지만 많은 시간이 지난 지금은 참 고마운 사건이기도하다. 그렇지 않았다면 나는 여전히 지금도 무엇이 중요한 지 고민하지 못한 채 내 좁은 시선에서 옳다고 믿는대로 달려가고, 실패하기 싫어서 누군가에게 상처주며 스스로의 예민함을 견디고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지금은 많은 것들을 내려놓고 나 스스로의 행복을 위해 바라보는 눈을 가지게 되었다. 사실 내가 가지고 싶고, 하고 싶고, 얻고 싶은 것들이 얼마나 부질없는 것인지. 내가 하찮게 놓았던 것들이 사실은 생에 얼마나 가치있는 것이었는지를 깨닫게 되는 시간들이었다.


아플 수 밖에 없다. 우리 모두 처음 살아보니까.

배우는 모든 순간은 고통스러울 수밖에 없고, 또 나처럼 기질적으로 까다로운 사람이라면 더욱 스스로를 만져가는 과정이 괴로울 것이다.


그렇지만, 어쩌겠어. 이미 시작된 초행길.

서로 손내밀어주고 위로 받으며 함께 견뎌보는 수밖에.

- 저는 제가 부끄러워요.남들은 별 거 아닌듯 넘기는 그런 말들에 너무 아파하는 제가요.

상처주는 이도 왜 그런 걸로 상처 입냐고 하는데. 정말 제가 순두부처럼 물러 터져서 상처 입는 것 같아요. 이 약한 면이 잘못된 것 같고, 그게 너무 부끄러워요.

- 저번에 웃는 가면을 봤는데, 그게 더 편하지 않을까?

- 저도 그거 있어요. 이걸 쓰고 다녔던 적도 있어요. 근데 가면을 쓰고 웃고 있었는데 간신히 올렸던 가면의 입꼬리마저 와르르 무너졌을 때 너무 비참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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