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겨둘 시간이 없답니다 - 중요한 것들에 대한 사색
어슐러 K. 르 귄 지음, 진서희 옮김 / 황금가지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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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말의 가장 물리적인 측면을 좋아한다. 마음속에서 들리든 귀로 목소리를 듣든 들리는 소리가 좋다. 그리고 소리와 떼려야 뗄 수 없는 의미의 춤사위가 좋다. 말이 서로 관계를 맺는 의미, 가상의 세계 속 문장이나 텍스트 안에서 서로 관계를 이루며 무한의 변주를 다양하게 만들고 공유하는 말들의 춤이 좋다. 글쓰기는 말의 이러한 두 가지 양상을 통해 무궁무진한 연주로 나를 사로잡는다. 그것이 내 필생의 업이다. _p.85

 

우리는 우리들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들이 하는 말을 믿어야 한다. 물론 자력으로 깨달을 수도 있지만 우리가 통찰력을 이용하는 방식은 아주 미미한 본능적 지식의 수준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방식은 앞에서 말했듯이 세상을 인식하고 우리가 나아갈 길을 찾는 기초적인 형태를 보여준다. _p.288

 

BOOK. 《남겨둘 시간이 없답니다》

 


 

어슐러 K. 르 귄을 처음 알게 된 것은 최근에 읽은 「오멜라스를 떠나는 사람들」을 읽으면서였다. 이 소설은 유토피아로 설정되는 '오멜라스'라는 공간이 전적으로 한 아이의 지독하리만치 비참한 희생에 의하여 성립하고 있다는 딜레마를 다루고 있다.

 

짧은 단편 소설인 이 작품은 가상의 조건을 배경으로 하지만 인간이 가지고 있는 근본적인 이기심과 딜레마를 다루고 있어, 작품을 읽고난 후 오랜시간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내가 딛고 서있는 이 행복은 누구의 희생에서 비롯되었을까. 나는 무엇을 외면하고, 잊었을까. (정말 좋은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남겨둘 시간이 없답니다』을 만나게 되어 무척 반가웠다. 나는 옛말에는 틀린 것이 없고, 지혜는 경험에서 나온다고 믿는 사람이라 한 평생을 판타지 소설을 써온 어슐러 K. 르 귄은 어떤 인물일까 궁금하기도 했다. 괴짜스럽지 않을까 생각했다.

 

여든을 넘긴 노년의 삶과 자신이 참여하고 있는 문학 산업, 그리고 젠더 갈등과 정치적 이슈에 대한 생각들 그리고 마지막 반려묘 파드와의 만남까지 다양한 생각들을 자연스럽게 공유하고 깊이있는 사색을 공유한다. 작가가 말했듯 우리는 '노년'에 대해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노년기의 사람들은 행동이 고리타분하고 생각은 보수적이며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한 평생 살아오며 겪고 느껴온 것들이 정답이라고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에 윌 듀런트의 마지막 에세이에서도 자신만의 신념을 강하게 내세우고 여전히 가부장적인 생각에 머무는 것이 아쉬웠는데, 르 귄의 생각은 여든에도 유연하다.

 

르 귄의 생각과 글이 흥미롭고 유연할 수 있는 이유는 그녀가 가진 '판타지 소설'에 대한 생각때문이 아닐까. 판타지 소설이 하고자 하는 말은 '꼭 그래야 할 필요 없다', '모든 일이 늘 하던 식으로 진행되지 않으면 어떨까?'라는 생각을 기본으로 쓰이기 때문에, 이러한 불확실성을 즐기는 작가로 한 평생을 살아왔기에 사고는 유연하되 지혜로운 통찰력이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요즘 '에세이'라고 하면 순간의 위로가 되어주는 짧은 글들이 떠오르지만, 나는 '에세이'라는 장르는 그 누군가의 통찰과 지혜가 녹아있는 글이라고 생각한다. 여든이 되어 돌아본 삶이라는 시간의 흐름과 나를 둘러싼 정치, 경제, 사회에 대한 그녀의 삶이 이 한 권에 담겨있다. 꼭 읽어보기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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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 기억의 예술관 - 도시의 풍경에 스며든 10가지 기념조형물
백종옥 지음 / 반비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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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의 환경에서 기념조형물은 어떤 존재인가?
흐르는 시간과 변화하는 삶 속에서 기념조형물은 도시의 역사를 어떤 형태로 담아내야 하는가?

프랑크 틸의 「빛상자들」이 던지는 질문이다. 작가가 도시 풍경을 대표하고 대중의 시선을 끄는 광고판의 형식을 차용했던 데에는 이런 고민들을 담아내려는 의도가 있지 않았을까. 역사를 상기시키는 기념조형물이 현대적인 광고기술의 형태를 취하며 진화하는 방식이다. _p.175

BOOK. 《베를린, 기억의 예술관》

 


역사를 가장 예술적으로 기억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나에게 어떠한 '기념 조형물'을 떠올려보라고 한다면, 학교 교단에 있던 흉상들과 견학 때 스쳐갔던 전쟁기념탑 정도가 아닐까? 그만큼 나에게 '기념 조형물'이라는 공공미술이 생소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생각해보면 스쳐가는 많은 것들 중에서 무언가를 기억하기 위해 설치된 것들이 분명 많았을텐데, 무심하게 지나쳐왔겠지.

'기념 조형물'들이 설치되고, 그것들을 통해 무엇인가를 '기억'하려 한다는 것은 익숙하지 않은 일 같다. 하지만, 근래 우리나라에서 많은 사건사고들을 경험하면서 '잊지 말아야할 것'이 생겨났고, 그 때의 '기억'을 보존하고 지켜가며 우리가 경험했던 아픔과 후회들이 되풀이 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것을 생각하게 되었다.

독일인들이 베를린에 세운 많은 기념 조형물 또한 마찬가지의 마음이었을 것이다. 두 번의 세계대전과 분단, 통일을 겪으며 독일인들은 '잊지 말아야 할 것'들을 지켜내기 위해 일상의 많은 장소에 '기념 조형물'을 세웠다. 그들이 세운 기념 조형물들은 광장의 지하, 광고판, 버스 정류장, 기차 승강장, 보도블록 등 역사의 기억을 품은 것들을 일상의 풍경과 단절되지 않도록 제작해왔다.

나에게 가장 인상적이었던 기념 조형물은 베벨 광장 지하에 설치된 '텅 빈 도서관'이었다. 1933년 5월 10일, 수많은 학생들이 베벨 광장 중앙에서 2만 권이 넘는 책들을 불태웠다. 수많은 유대인 작가들과 학자들, 그리고 나치를 비판한 사람들의 책까지 모조리 불태워졌다. 야만적인 책들의 화형식 직후 250명 이상의 작가와 학자, 예술가들이 시민권을 박탈당했다. 나치가 벌인 만행이었다.

베벨 광장의 '텅 빈 도서관'은 사라진 책들을 기억하기 위해 책들의 화형식이 벌어졌던 바로 그 장소의 지하에 설치되어있다. 사격형 투명 유리창 아래로 보이는 밀폐된 공간의 모든 벽은 콘크리트로 만들어진 하얀 책장들이 설치되어 있다. 하지만 모든 책장은 비어 있다. 이 공허한 공간은 2만여 권의 책들이 불타서 사라졌음을 암시한다. 이 곳의 동판에는 하인리히 하이네가 1820년에 쓴 다음과 같은 글귀가 있다.

그것은 단지 서막에 불과하다
책을 불태우는 곳에서는
결국 사람도 불태우게 된다

베를린의 기억을 품고있는 기념 조형물 10가지에는 많은 이들이 '잊지 않기위해', 망각에 맞서 공공미술을 설치해왔음을 알 수 있다. 광화문 광장에, 목포항에, 광주에, 제주도에 우리가 옳다고 믿는 가치들을 지키기 위해 지나온 역사들, 그 순간의 감정, 그 순간의 후회들을 담아서, 그리고 우리가 잊지 말아야할 것들을 새기며 망각에 맞서는 우리나라의 공공미술을 고민할 때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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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하는 마음 - 나를 키우며 일하는 법
제현주 지음 / 어크로스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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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 계획된 경로를 밟아 차근차근 전환이 이루어지는 경우는 드물다. 전환의 욕구나 필요가 닥쳤을 때, 대부분 먼저 ‘방황기’를 겪는다. 그 방황기에 우연히 만난 사람들, 우연히 마주친 기회들이 전환의 경로를 제시한다. 이미 존재하지만 아직 발견하지 못한 최적의 답을 찾는 것이 아니라, 일상의 경로 안에서 마주치는 경험과 관계망 안에서 자신의 선호와 기준에 따라 하나의 답을 만들어가는 것이 ‘어쩌다 전환의 기술’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_p.1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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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일을 해도 그 일의 경험을 통해 써내려갈 수 있는 이야기는 사람마다 다르다. 얼핏 보아 파편적이고 불연속적인 경험을 통해서도 일관되고 의미 있는 이야기를 써내려갈 수 있는 사람은 자기 기준을 가지고 있고, 그 기준에 맞춰 자기 일의 경험을 스스로 해석할 수 있는 사람이다. 그런 사람이 만들어내는 탁월성은 전문성으로 치환되지 않더라도 굳건한 디딤돌이 되어준다. _p.169


 

 

요즘 직장인들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최고의 덕담’은 '적게 일하고 많이 버세요!'라는 말이다. 얼마나 흥미로운 말인가, 적게 일하는데 심지어 많이 벌라니 최고의 덕담이 아닐 수 없다.

대학을 졸업하고 첫 직장에 입사해서 일을 배울 때는 선배들의 '칭찬' 한 마디에 자존감이 하늘까지 올라갔다가, 어떤 날은 실수 하나로 스스로에게 실망하고 시무룩해있기도 했다. 내가 준비한 이벤트가 성공적으로 진행되어 좋은 책이 많이 팔렸다고 느끼면 너무너무 신났고 기세등등했다. 나에게 '일'이란, 재미있는 놀이같았다.

경력이 차츰 쌓여가고 이직도 여러번 하게 되면서 나에게 '일'은 나의 자존감과 동의어가 되는 순간들이 많았다. 개인적으로 해본 적도 없는 SNS를 개설해 운영하기도 했고, 독자와의 만남이나 서포터즈를 통해 많은 사람들을 직접 만나기도 했다. 학교 선생님들과 함께 일하는 경우도 많았고, 새로운 브랜드를 런칭하기도 했다. 때때로 이게 내가 잘할 수 있는 최대치인 것 같아, 라고 느낄 때도 있었지만,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엄청난 '행운'이라는 사실을 잊지는 않았다. 그래서 더 열심히 했고 많은 일을 성공적으로 해내기도 했다. 나는 그게 진짜 내가 일을 잘해서 그런 줄 알았다(ㅋㅋㅋㅋ)

지금 생각해보면, 서툰 내가 스스로 깨달을 때까지 기다려주고 믿어주신 많은 선배님들덕에 많은 것들을 새롭게 도전해볼 수 있었고, 그 힘으로 즐거워하며 일을 했던 것 같다. 그땐 잘 몰랐지만, 좋은 분들이 늘 계셨고 내 실수는 모른 척 넘어가주고, 더 많은 격려와 칭찬으로 키워주어 잘 자랐다는 것을 깨달았다. (감사합니다)

그렇게 무럭무럭(?) 자라던 중, 딱 한 번 아무도 도와주지 않고 생각대로 아무것도 진행되지 않았던 적이 있다. 난 늘 일이란 잘 진행되는 건 줄 알았는데, '일'이라는 것 외에 여러 복잡한 관계와 이기심들로 인하여 상황이 어려워지는 것들이 안타까웠다. 그리고 그 후 나에게 '일'이라는 것이 주는 의미에 대해서 많이 생각하고 고민했었다. 그 전에는 더 잘하고, 더 인정받는 게 좋았고 만족감이 있었다면, 그 만족감이 일의 가치일까 고민해보게 되었다. 이제는 성취감만으로 달려가기에는 힘이 부족하다고 느꼈다. 그리고 돌아봤을 때, 나에게 남겨진 것은 무엇이었을까.

나에게는 '사람'이 남아있었다. 지금은 전부 서로 다른 회사에 있지만 지금도 여전히 모르는 것을 물어봤을 때 도움을 줄 수 있는 선배들, 이직을 준비할 때마다 추천해주고 도와주셨던 상사분들. 사실 일이라는 것이 한 회사에 내가 기여하여 '매출'을 올리는 행위지만, 나는 이 전에 너무 코 앞만 보고 달려갔던 것 같다. 그래서 곧잘 일욕심으로 다투기도 했고 내 의견을 우겨보기도 했지만, 이제는 서로 도와가며 함께 달려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여기게 되었다. 때때로 어린 후배들이 일로 서운해하고, 투정부리는 일이 생기면 '저 친구는 예전에 나처럼 아직 혈기왕성하구나;'이라고 생각한다. 많은 선배들이 날 기다려주었듯 나도 기다려줄 때인 것이다.

산다는 것이 무엇인가, 그 삶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차지하는 '일'을 할 때 어떤 마음으로 일을 해야 행복할 수 있을까 생각한다면 간단하다. 그것은 '적게 일하고 많이 버는 것'이라기 보다, 열심히 일하고 인정받는 것이라기 보다 서로가 함께 일하면서 일로 인하여 서로가 성장하고, 성취하고 그래서 행복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게 아닐까. 누군가의 도움없이 나혼자 잘나서 탁월하게 잘 할 수도 있겠지만, 많은 경우 함께 의견을 나누고 화합할 때 더 많은 시너지가 나기도 하니까.

지금은 아직 경력이 얼마 안되어 내 앞가림도 힘들지만, 나에게 '일하는 마음'은 여전히 탁월하게 잘하고 싶고 인정받고 싶은 것이기도 하고, 내 선배들이 나에게 해주었듯 누군가가 스스로 탁월하게 잘한다고 느끼고 즐겁게 일할 수 있도록 동행해주는 일도 하고싶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도 이런 고민했었지, 공감하는 부분도 있었고 개인적으로 동의하지 않는 부분도 있었지만, 그럼에도 좋았던 것은 '일하는 내 마음'을 점검해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처음 일했을 때부터 돌아보면 부끄러운 기억도 많고, 즐거웠던 기억도 많겠지만 내가 '어떤 마음'으로 일해왔는지를 돌아볼 수 있다. '일하는 마음'에 정답은 없지만, 스스로가 '일에 대한 철학'은 있어야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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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양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59
다자이 오사무 지음, 유숙자 옮김 / 민음사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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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어느 세상에서건 나처럼 생활력이 약하고 결함 있는 풀은, 사상이나 무엇도 없이 그저 스스로 소별해 갈 뿐인 운명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내게도 조금은 할 말이 있습니다. 도저히 내가 살아가기 힘든 사정을 느끼고 있습니다.

 

'인간은 모두 다 똑같다.'

이것이 도대체, 사상일까요? 나는 이 신기한 말을 발명한 사람은 종교인도 철학자도 예술가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민중의 주점에서 솟아난 말입니다. 구더기가 끓듯이 어느 틈엔가, 누가 먼저 말했다 할 것도 없이 부글부글 끓어올라 전 세계를 뒤덮고 세계를 불편하게 만들었습니다. _p.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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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 우리에게 죄가 있는 걸까요? 귀족으로 태어난 것은 우리의 죄일까요? 오직 그런 집안에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우리는 영원히, 이를테면 유다의 인척들처럼 굽실거리며 사죄하고 부끄러워하며 살아야 하다니. _p.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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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천박해지고 싶었습니다. 강인하게, 아니 난폭해지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소위 민중의 벗이 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술 정도로는 도저히 안 되겠더군요. 늘 어찔어찔 현기증을 느끼고 있어야만 했습니다. 그러자면 마약 외에는 없었습니다. 나는 집을 잊어야 한다. 아버지의 피에 반항해야 한다. 어머니의 상냥함을 거부해야 한다. 누나에게 차갑게 대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민중의 방에 들어갈 입장권을 얻을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_p.147

기우는 해. 사양.

지금은 '인간은 모두 다 똑같다', '인간은 평등하다'라는 말이 무척 익숙하지만, 과거 계급 사회에서 현대 사회로 넘어오는 과도기에는 기득권을 가지고 있던 귀족, 황족 계급의 몰락은 필연적이었다. 일본의 경우에는 제2차 세계대전 패망 이 후 급격하게 사회가 변하면서 귀족들은 자신의 신분을 부둥켜 안고 살아갈 것인가, 아니면 평민으로 어떻게든 적응하며 살아갈 것인가, 하는 현실적인 문제에 부딪혔을 것이다. 그래서 이 작품은 출간 후 많은 화제를 낳았고, 몰락해가는 상류층을 칭하는 '사양족'이라는 말이 유행을 할 정도로 많은 이들의 공감을 받았다고 한다. 일본판 『벚꽃 동산』이라고 볼 수 있겠으나 『사양』에는 다자이 오사무만의 특별한 지점이 있다.

얼마 전, 인스타그램을 보다가 『사양』의 소개 문구에 등장하는 '페미니즘'이라는 단어가 논란이 되는 것을 본 적이 있다. 어떤 분은 '반페미니즘'이라고 느끼기도 했다고 하여, 이 책을 읽기 전에 나는 어떻게 느끼게 될까 기대가 되기도 했다. 일본의 문화에 대해서 잘은 모르지만, 표면적으로 보여지는 '일본 여성'에 대한 이미지는 여전히 정형화되어 있는 것 같다. 각종 영화나 문학 작품에서 볼 때 여성의 모습이 여전히 얌전하고 순종적인 여성으로 그려지고, 속내를 알 수 없는 일본인의 성향과 더해져 내게는 이 작품 속 '최후의 귀부인'인 어머니의 모습이 여전히 남아있는 것 같다. 그런 문화를 미루어 짐작해보았을 때, 1947년에 출간된 이 작품 속 '가즈코'의 모습은 시대적으로 앞서간 주체적이고, 강인한 여성의 모습이라고 나는 느꼈다.

가즈코는 애정없는 결혼을 통해 한 번 아픔을 체험했고, 지금은 몰락해가는 집안에서 어머니를 모시고 근근이 살아가고 있다. 평생을 살아온 집을 팔아 지방 산 속의 별장에서 기거하며 해본 적 없는 밭일을 하고, 가진 옷들을 팔아 먹을 것과 바꾸어 살아간다. '최후의 귀부인'인 어머니는 고상하고 품위 있는 어머니지만, 경제력이라는 문제 앞에서는 전혀 무방비이며 전쟁에 참여했던 동생 나오지는 마약과 술에 기대어 살 뿐이다.

'귀족'이라는 계급만으로 살아갈 수 있던 시절이 지나 이제는 고귀한 척하는 '귀족'이라고 수근대는 사람들과 섞여 살아가는 것이 쉽지 않다. 그들은 사회의 갑작스러운 변화와 '사람은 모두 똑같다'고 하는 민중의 말에 자괴감을 느낄 뿐이다. 그렇게 가장 먼저 정신적으로 몰락해 간다. 해소되지 않는 정신적 갈등으로 마약과 방탄한 생활을 이어가고 문학과 예술을 사랑하는 섬세한 감수성은 오히려 더 절망에 이르게 한다. 그렇게 어머니는 귀족으로서 생을 마감하고, 동생 나오지는 현실을 견디지 못해 자살로 생을 마감하고 만다.

그러나 가즈오는 '살아야 한다'는 강한 의지가 있다. '가슴에 걸린 무지개'로 표현한 가즈오의 사랑은 사실 '사생아와 그 어머니'로 불리는 상황이지만 가즈오는 사랑을 이루는데에 낡은 도덕은 뛰어넘어야 할 벽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우에하라에게 기대어 남은 생을 살아가기 보다는 스스로 삶을 개척해 나가기로 마음먹 는다. 어머니의 죽음과 동생 나오지의 자살로 삶이 무너질 수 있는 상황에서도 가즈오가 가지는 삶을 향한 욕망과 생명력은 단연 돋보인다. 그래서 이 작품은 체호프의 『벚꽃 동산』과는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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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갈리아의 딸들
게르드 브란튼베르그 지음, 히스테리아 옮김 / 황금가지 / 199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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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트로니우스. 이건 어머니가 아들한테 주는 충고인데, 움은 움이라는 것, 그리고 움은 움이 필요로 하는 것을 요구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결국 모든 움은 맨움을 정부로만 볼 뿐이야. 움이 흥미를 갖는 것은 그것뿐이야. 움이 단지 이야기만 하는 것으로 만족할 것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돼.

입장을 바꿔서 생각해 봐라, 페트로니우스. 너의 가엾은 작은 막대가 그녀를 흥분시키는데, 더구나 어둠이 내리면 움이 단지 수다로 만족할 것이라고 기대할 수는 없는거야. _p.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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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네가되고 싶은 것이 될수없다고 했니? 내말은, 네가 현실적이어야 한다는 거야. 꿩도 먹고 알도 먹을 수는 없어. 네가 아이를 갖는다면 아이를 키우는 일밖에 할수 없는거야. 잘들어라, 페트로니우스. 어렸을 때 나도 뭐가 될 것인가에 대해 원대한 꿈을 갖고 있었단다. 바다의 낭만, 그것 때문에 네가 괴로워하는거지...'

여동생이 그를 비웃었다. 그녀는 페트로니우스보다 한살반 어렸지만 늘 그를 못살게 굴었다.

'하하하 맨움은 뱃사람이 될 수 없어. 너는 아마 선실 보이나 남자 선원, 아니면 남자 타수가 되겠다는거구나? 우스워죽겠다. 바다에 가는 맨움들은 창남이나 팔루리안 뿐이야.' _p.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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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는 아이와 놀아주고 보살펴주느라고 스물 네 시간 내내 붙어 있어야 한다는 것을 생각해보라. 그리고 어머니처럼 정해진 노동 시간이 없다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그런 일에 대해 임금을 지불받지도 않는다.

가사 노동에 대해 임금을 지불해야 한다는 제안은 실제로 커다란 파장을 일으켰다. 물론 맨움이 움과 아이들을 사랑하기 때문에 자발적으로 한 일에 대해 맨움이 돈을 받아야 한다고 심각하게 제안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렇다. 그러나 아버지가 아내와 아이들을 사랑하는 것과 상관없이 그것은 여전히 일이었다. _p.293


 

 


최근 한국 사회에서 '페미니즘'만큼 화두가 되는 주제도 없는 것 같다. 그 전부터 '페미니즘'에 대한 인식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문화적으로는 『82년생 김지영』이 흥행을 하면서 많은 사람들에게 '이제 변화해야 한다'는 인식을 가지게 되었던 것같다. 나는 개인적으로 『82년생 김지영』을 읽으면서 '자라오면서 이런 일도 있었지'하고 과거의 일을 다시 경험하는 책 정도로 생각했는데, 이 책이 페미니즘의 대명사가 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었다. 어쨋든 『82년생 김지영』을 읽으면서 내가 이 생을 살아오면서 지금까지 인지하지 못하고 어쩌면 당연하게 여기면서 지냈던 많은 상황들이 사실을 공평하지 않았음을 깨닫게 되었던 작품이었다.

이 전에 <SBS그것이 알고싶다>에서 한 남성이 모르는 여성에게 스토킹을 당하고, 끝내 그 여성을 포함한 무리에게 성폭행을 당했던 사건을 다룬 적이 있었다. 사실 그 재연 영상을 보고 있을 때는 '어떻게 저런 일이 있을 수 있지?'라고만 생각했는데, 사실 그 이야기는 여성이 일상적으로 겪는 공포 혹은 성폭력의 상황을 반대로 설정하여 보여주었던 사건이었다. 『이갈리아의 딸들』은 그 지점부터 이야기가 시작한다.

 『이갈리아의 딸들』은 남성과 여성의 성역할 체계가 완전히 뒤바뀐 가상의 세계 이갈리아의 모습을 그린 작품이다. 이 책으로 1977년 출간된 이후, 전 세계적인 반향을 일으켰다. 여성학 이론을 둘러싼 여러 가지 쟁점과 여성 운동의 역사를 담고 있는 훌륭한 여성학 교과서이기도 하다. 현재의 남성(Man)과 여성(Woman)을 여성(Wom), 남성(Manwom)이라는 단어로 설정하여 거울처럼 지금의 세계를 보여준다. 그리고 당연하게 여겼던 '여성'의 불편한 지점들을 바꾸어 여성들에게는 '인식'을 남성들에게는 '경험'을 줄 수 있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페트로니우스(Manwom)은 열 다섯살의 맨움으로 메이드맨 무도회에서 움의 선택을 받기 위해 한껏 꾸미고 참석한다. 맨움들은 그 곳에서 움의 선택을 받지 못해 '부성보호'를 받지 못하면 고된 노동에 혼자 살아남는 것이 무척 어렵기 때문이다. 이 때 맨움에게도 거절의 선택권이 있다고는 하나 현실적으로는 누군가에게든 선택받아 그 움의 아이를 키우고 싶어한다. 그리고 '메이도터'라는 움을 만나 하룻밤을 보낸다. 페트로니우스는 당연히 남은 생을 '메이도터'의 부성보호를 살며, 아이를 키우고 살 것에 꿈이 부풀어 있다. 하지만 교사 올모스를 통해 점점 '부당함'을 인식하게 되고, 움의 하우스바운드(남편)으로서 부성보호를 받으며 사는 것이 아니라, 주체적인 삶을 살고자 한다.

그 과정에서 페트로니우스는 여러 폭력적인 상황을 만나는데, 어두운 시간 숲을 걷다 여러 명의 움들에게 성폭행을 당한 것과 메이도터에게 부성보호를 받고싶지 않다고 했을 때 폭력(가정폭력)을 당하는 것이다. 페트로니우스는 이런 상황이 자신에게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에게도 있었고, 그 전에도 있었음을 서서히 인지하게 된다. 또한 자신들이 움의 그늘에서 아이를 키우는 일과 집안일에 노동력을 착취당하고, 그러는 사이 사회적인 활동은 전혀할 줄 모르는 사람이 되어간다는 것을 깨닫는다. 여전히 사회적으로 맨움이 직업을 가진다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이지만, 농장을 가꾸는 작은 일부터 움들이 스스로 해보려 노력하고, 많은 맨움들이 이러한 차별에서 벗어나기 위해 맨움 해방 운동을 진행한다.

물론 '현재'와 비교한다면, 조금 극단적으로 느낄 수 있지만 과거에는 분명 이러한 것들이 자연의 법칙처럼 당연시되었을 때가 있었다. 중요한 것은 '입장을 바꾸어 생각해보는 것'이 아닐까?

최근에 읽은  『사양』에서는 귀족의 계급이 몰락하면서 겪게되는 이야기로 지금 우리가 익숙하게 말하는 '평등'이라는 말이 사실은 아주 익숙하지 않은 것이었구나!라고 느꼈다면,  『이갈리아의 딸들』에서는 남녀의 평등이 사실은 아주 오랜 시간동안 이어져 온 불균형으로 인하여 '평등'이라는 말은 익숙해졌을지 몰라도 여전히 균형이 맞지 않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사람들은 (어떠한 형태로든) 왜 균형을 이루지 못할까, 여전히 우리 사회에도 계급이 있다는 것을 모두가 알고 있다. 그 계급은 눈에 보이지 않을 뿐 우리가 고개 숙이고, 차별을 감내하면서도 순종하게 되는 것이 무엇인가를 본다면 알 수 있다. '사람'은 절대 평등하지 않다. 그리고 영원히 완벽한 균형과 평등은 일어날 수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기대해볼 수 있는 것은 계급이건 남녀건 누군가 불균형 상태에 놓여있다면 그의 상태와 마음을 '헤아려 보는 것', '이해하려는 마음'이 아닐까. 그래서  『이갈리아의 딸들』은 여전히 고전처럼 읽히는 것 같다. 짐작할 뿐이지만, 상대가 겪었을 불편을 헤어려보게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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