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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 기억의 예술관 - 도시의 풍경에 스며든 10가지 기념조형물
백종옥 지음 / 반비 / 2018년 12월
평점 :

도시의 환경에서 기념조형물은 어떤 존재인가?
흐르는 시간과 변화하는
삶 속에서 기념조형물은 도시의 역사를 어떤 형태로 담아내야 하는가?
프랑크 틸의 「빛상자들」이 던지는 질문이다. 작가가 도시 풍경을 대표하고 대중의 시선을 끄는 광고판의
형식을 차용했던 데에는 이런 고민들을 담아내려는 의도가 있지 않았을까. 역사를 상기시키는 기념조형물이 현대적인 광고기술의 형태를 취하며 진화하는
방식이다. _p.175
BOOK. 《베를린,
기억의 예술관》
역사를
가장 예술적으로 기억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나에게 어떠한 '기념
조형물'을 떠올려보라고 한다면, 학교 교단에 있던 흉상들과 견학 때 스쳐갔던 전쟁기념탑 정도가 아닐까? 그만큼 나에게 '기념 조형물'이라는
공공미술이 생소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생각해보면 스쳐가는 많은 것들 중에서 무언가를 기억하기 위해 설치된 것들이 분명 많았을텐데, 무심하게
지나쳐왔겠지.
'기념 조형물'들이
설치되고, 그것들을 통해 무엇인가를 '기억'하려 한다는 것은 익숙하지 않은 일 같다. 하지만, 근래 우리나라에서 많은 사건사고들을 경험하면서
'잊지 말아야할 것'이 생겨났고, 그 때의 '기억'을 보존하고 지켜가며 우리가 경험했던 아픔과 후회들이 되풀이 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것을
생각하게 되었다.
독일인들이 베를린에
세운 많은 기념 조형물 또한 마찬가지의 마음이었을 것이다. 두 번의 세계대전과 분단, 통일을 겪으며 독일인들은 '잊지 말아야 할 것'들을
지켜내기 위해 일상의 많은 장소에 '기념 조형물'을 세웠다. 그들이 세운 기념 조형물들은 광장의 지하, 광고판, 버스 정류장, 기차 승강장,
보도블록 등 역사의 기억을 품은 것들을 일상의 풍경과 단절되지 않도록 제작해왔다.
나에게 가장
인상적이었던 기념 조형물은 베벨 광장 지하에 설치된 '텅 빈 도서관'이었다. 1933년 5월 10일, 수많은 학생들이 베벨 광장 중앙에서 2만
권이 넘는 책들을 불태웠다. 수많은 유대인 작가들과 학자들, 그리고 나치를 비판한 사람들의 책까지 모조리 불태워졌다. 야만적인 책들의 화형식
직후 250명 이상의 작가와 학자, 예술가들이 시민권을 박탈당했다. 나치가 벌인 만행이었다.
베벨 광장의 '텅 빈
도서관'은 사라진 책들을 기억하기 위해 책들의 화형식이 벌어졌던 바로 그 장소의 지하에 설치되어있다. 사격형 투명 유리창 아래로 보이는 밀폐된
공간의 모든 벽은 콘크리트로 만들어진 하얀 책장들이 설치되어 있다. 하지만 모든 책장은 비어 있다. 이 공허한 공간은 2만여 권의 책들이 불타서
사라졌음을 암시한다. 이 곳의 동판에는 하인리히 하이네가 1820년에 쓴 다음과 같은 글귀가 있다.
그것은 단지 서막에
불과하다
책을 불태우는
곳에서는
결국 사람도 불태우게
된다
베를린의 기억을
품고있는 기념 조형물 10가지에는 많은 이들이 '잊지 않기위해', 망각에 맞서 공공미술을 설치해왔음을 알 수 있다. 광화문 광장에, 목포항에, 광주에, 제주도에 우리가 옳다고 믿는 가치들을 지키기 위해 지나온 역사들,
그 순간의 감정, 그 순간의 후회들을 담아서, 그리고 우리가 잊지 말아야할 것들을 새기며 망각에 맞서는 우리나라의 공공미술을 고민할 때라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