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아직 나를 모른다 - 뇌과학과 임상심리학이 부서진 마음에게 전하는 말
허지원 지음 / 홍익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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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이적의 노래 '다툼' 가사 중에 이런 구절이 있다

 

얼마나 많은 다툼 뒤에 우린 비로소 뉘우칠 수 있을까

얼마나 거친 말들 속에 우린 상처를 숨겨야 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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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친 마음에 딱지가 앉아,

어루만져도 아무 느낌도 들지 않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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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조용히 속으로 묻는다

얼마나 멋진 사람인가, 우린 그렇게 만났던 것 같은데

 


 

당신에게도 숨겨야 할 상처가 있나요?

다친 마음에 딱지가 앉아 아무 느낌도 들지 않을만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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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너 그럴 줄 알았다!"

"당신이 더 노력하지 않은 탓은 아닌가요?"

너무 쉽게 원망하고 탓하는 소리들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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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존감'이라는 단어가 난무하여 때때로 자신이 자존감이 낮다는 것을 방패로 사용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자존감은 결국 나 자신을 얼마나 사랑하느냐고 묻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당신은 자신을 얼마나 사랑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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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글을 인용하자면(p.73) 자존감이 건강한 수준으로 높은 사람은 나의 진심이 타인에게 받아들여지는 일에 그다지 큰 의미를 두지 않는다. 이에 반해 자신감만 높은 사람들은 반드시 진심은 통할 것이라는 어리석은 자기애적 다독임에 빠져 주위 사람들에게 자신을 알아달라고 채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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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모든 진심이 굳이 통해야 할 이유가 있을까?

진심이면 언젠가 통할 것이란 믿음은 타인의 인정이 너무나 중요하다는 말과 다름이 없다. 어차피 나도 다른 사람에게 항상 진심일 수는 없음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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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 책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문장은

'이제 당신이 당신을 지킬 차례'라는 글이었다. 흔히 들어 익숙한 말이지만, 나는 최근에야 나 자신을 지킬 기준들을 세워가고 있다. 당신에게는 스스로를 보호할 기준이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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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간의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무조건 참지 않는 것,

나에게 인격적으로 무례하게 대하면 상대에게 경고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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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웬만한 일에는 웃으면서 넘기는 편이었는데, 인격적으로 무례하게 행동하는 사람을 무조건 참는 것은 나를 다치게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물론 상대에게 '지금 지나치게 무례하다'고 말해주는 것이 내 성격상 어려운 일이지만, 내가 아니면 누가 나를 지킬 수 있을까? 나는 이러한 기준을 세운 것만으로도 마음이 무척 편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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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작정 자기 자신을 사랑하라고 한다고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내현적, 외현적 자존감이란 상태가 DNA처럼 새겨져있는 것도 아니다. 지난 기억에 압도되지 말고 최대한 객관적으로 스스로 물어보면 좋겠다. 나는 얼마나 멋진 사람인가, 얼마나 소중한 사람인가.

⠀⠀⠀⠀⠀⠀⠀⠀⠀⠀⠀⠀⠀⠀⠀⠀⠀

마음이 다친 어느 날,

내가 듣고 싶은 위로를 위해 꺼내보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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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반 데니소비치, 수용소의 하루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3
알렉산드르 솔제니친 지음, 이영의 옮김 / 민음사 / 199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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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호프는 아주 흡족한 마음으로 잠이 든다. 오늘 하루는 그에게 아주 운이 좋은 날이었다. 영창에 들어가지도 않았고, <사회주의 생활단지>로 작업을 나가지도 않았으며, 점심 때는 죽 한 그릇을 속여 더 먹었다. 그리고 반장이 작업량 조정을 잘해서 오후에는 즐거운 마음으로 벽돌쌓기도 했다. 줄칼 조각도 검사에 걸리지 않고 무사히 가지고 들어왔다. 저녁에는 체자리 대신 순번을 맡아주고 많은 벌이를 했으며, 잎담배도 사지 않았는가. 그리고 찌뿌드드하던 몸도 이젠 씻은 듯이 다 나았다.

눈 앞이 캄캄한 그런 날이 아니었고, 거의 행복하다고 할 수 있는 그런 날이었다.

이렇게 슈호프는 그의 형기가 시작되어 끝나는 날까지 무려 십 년을, 그러니까 날수로 계산하면 삼천육백십삼 일을 보냈다. 사흘을 더 수용소에서 보낸 것은 그 사이에 윤년이 들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반 데니소비치, 수용소의 하루》 중

 


 

당신의 하루는 어땠나요?

'슈호프'는 그가 보낸 수용소의 오늘 하루가 아주 운이 좋은 날, 거의 행복하다고 할 수 있는 날이라고 말한다. 이 작품은 작가 솔제니친이 직접 경험했던 노동 수용소의 경험을 토대로 '이반 데니소비치 슈호프'이라는 한 인물의 하루를 보여준다. 슈호프는 평범한 인물이었지만 급변하는 소련 사회의 지배권력에 의하여 죄없이 노동수용소에 끌려와 십 년을 복역하게 된다. 함께 수감생활을 하는 사람들도 마찬가지로 끌려와 극한의 추위 속에서 제대로 먹지 못한채 수감생활을 이어간다.

빈대가 들끓는 쉰 개의 침대에서 이백 명이 잠을 자는 수용소, 영하 삼십 도가 넘는 날씨에서 야외에서 벽돌을 쌓는 작업을 배정받아 저녁까지 노동을 하게 된다. 유일하게 쉴 수 있는 저녁 시간에는 노동 중 사라진 한 명을 찾느라 추위에 떨게되고, 돌아온 수감소에서 저녁은 빵과 멀건 야채국이 전부이다. 하지만 슈호프는 그 하루가 '아주 운이 좋은 날', '거의 행복하다고 할 수 있는 날'이라고 말한다.

슈호프에게 '행복'은 무엇이었을까? 슈호프에게 '행복'은 삶 전체에 평안함과 어떠한 성취가 아님은 분명하다. 그저 주어진 하루 안에서 자신만의 '작은 행복'을 찾아내고, 그것을 흡족하게 즐길 줄 아는 능력을 가진 것이다. 우리의 삶은 다를까?

나의 하루를 돌아보면, 출근 길 버스정류장에 도착하자마자 타야할 버스가 도착해서 바로 탈 수 있었고 사람이 많은 7호선 지하철에서도 앉아서 올 수 있었다. 덕분에 목요일의 피로감을 조금 덜 수 있었고, 출근하니 주문해두었던 책이 도착해있었다.(꺄악!) 그리고 좋아하는 사람과 점심 약속이 되어있고, 며칠 괴롭히던 감기도 거의 다 나아간다. 사실 슈호프의 시선으로 보면 나는 '거의 행복하다고 할 수 있는 날'을 보냈다. 더구나 나는 억울하게 갇히지도 억지로 노동을 해야하지도 않다. 그렇지만 나는 이런 나의 하루 속에서 얼마나 '행복'을 발견하고 흡족해했던가.

이 작품은 한 개인이 사회의 부조리의 부당함으로부터 얼마나 비극적인 운명을 맞이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고발 소설이자, 한 개인의 일기인 것이다. 그 간극이 얼마나 대조적인지. 이 작품에서 가장 좋았던 점은 작가의 어떠한 생각이나 판단도 드러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슈호프가 겪는 하루의 일들이 아주 세밀하게 묘사되어 각 상황과 배경을 구체적으로 상상해낼 수 있었고, 과거의 사건들을 끌고와 들려주기보다는 현재 처한 상황만으로 독자는 충분히 슈호프의 하루를 짐작하고 공감할 수 있어서 매우 뛰어난 문체로 쓰여졌다고 느껴졌다.

슈호프처럼 극단적으로 노동 수용소에 끌려갈 일은 아마도 없겠지만, 우리도 살아가면서 꽤 억울하다고 생각되는 상황에 놓이는 날들이 있다. 꽤 많은 날들은 '내뜻대로 되지 않는 하루'를 살기도 하고, 현실에 맞춰 포기해야할 것들도 참 많다. 하지만 그 상황 안에서 우리는 어떤 하루를 보내고 있는가?

슈호프의 삶을 들여다보고 나니 '작은 행복'들을 발견하는 하루들이 모여 '인생'이 되는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에게는 '오늘'이라는 수많은 하루들이 모여 삶을 이루니까.

그래서 당신의 하루는, 당신의 삶은 행복한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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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이 지나가고 쏜살 문고
고레에다 히로카즈.사노 아키라 지음, 박명진 옮김 / 민음사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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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 나는 어떤 '어른'을 꿈꿨을까?

마음처럼 되지 않는 날, 내가 나인 게 싫은 어떤 날, 그런 날 집으로 터덜터덜 돌아갈 때 나는 허전한 마음에 무언가를 사서 집에 가곤한다. 손에 든 치킨 한 마리로 마음이 달래지는 것은 아니지만 손에 든 치킨의 따뜻한 만큼 도란도란 가족과 나누어 먹으며 마음이 조금 풀리기도 하니까. 때론 라면 한 봉지에 소주 한 병을 들고 집에 귀가하기도 한다. 저녁과 함께 소주 한 잔하고나면 또 잠시 기분이 좋아지고 그렇게 또 하루를 시작해야하니까. 그럴 날, 나는 대체로 아빠 생각을 한다. 치킨 한 마리, 귤 한 봉지를 손에 달랑달랑 들고 집에 돌아오던 아빠, 저녁을 먹으며 소주 한 병씩 마셨던 아빠. 그 때는 이해할 수 없던 그런 모습들이 미워서 '나는 꼭 저러지 말아야지'했던 내가 생각난다. 그리고 지금, 이렇게 아빠와 닮아버린 내 모습을 보게 된다.

어렸을 때는 나는 내가 '다 컸다'고 생각했고, 되게 성숙한 학생인 줄 알았다. 그래서 내가 보는 '어른'들의 모습은 늘 한심했던 것 같다. '왜 저렇게밖에 살지 못하지?', '더 멋지게도 살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렇게 생각하면서 나는 다르게 살아야겠다고 늘 생각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내가 '그 어른'이 되어보니, 내가 한심하다고 여겼던 모습이 사실은 주어진 자리에서 정말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나도 정말 최선을 다하지만, 누군가에게는 한심하게 보일 어른이 되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나 먹일 치킨 한 마디를 살 때, TV를 친구삼아 혼자 소주 한 잔을 마실 때 아빠는 어떤 기분이었을까? 가끔 생각한다. 알 수 없지만, 그런 날은 아빠가 몹시 고단했던 날이었겠구나. 내가 꿈꿔왔던, 아빠가 꿈꿔왔던 '어른'의 삶은 아마 지금같은 모습은 아니었겠지?

<태풍이 지나가고>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11번째 장편 영화와 동명의 소설로 모두가 자신이 바랐던 어른이 되는 건 아니다.”라는, 누구나 살아가면서 한 번쯤 직면하게 되는 삶의 진실을 보여준다. 주인공 료타는 지금은 폐지된 문학상을 수상한 소설가로 등단 이후 15년째 글을 못 쓰고 있다. 새로운 작품을 쓴답시고 제대로 된 직장은커녕 무슨 일이든 진득하게 처리해 내지 못하는 료타는, 현재 소설에 쓸 소재를 조사한다는 구실로 수상한 사람들의 미심쩍은 의뢰만 도맡아 처리하는 탐정 사무소에서 근무하고 있다.

여러모로 절박한 상황인데도 도박과 경마에 빠져 홀어머니 도시코와 맞벌이 주부인 누나 지나쓰에게 손을 벌리기 일쑤이며, 이혼한 아내와 아들에게 양육비조차 제대로 주지 못한다. 결국 '아버지처럼 살지 않겠다'고 생각하며 자란 료타는 아버지와 꼭 닮은 모습으로 자라난 자신을 마주하게 된다. 어디서부터 어긋나 버렸는지 알 수 없지만, 료타는 '태풍이 지나가고' 더 나은 미래를 기대할 수 있을까? 그리고 나는 태풍같은 지금이 지나고나면 더 나은 때를 마주할 수 있을까?

 

노래를 들으면서 료타는 아버지를 생각했다. 도박에 몰두했던 아버지. 그에게 미련이 있었다면 그것은 무엇이었을까, 하고. 그러나 어떤 장면을 떠올려 봐도 아버지는 당신의 속마음을 료타에게 드러낸 적이 없었다.

"아버지 있잖아, 어떻게 하고 싶었던 걸까?"라고 료타가 물었다.

"뭘?"

"자기…… 인생을 말이야."

"글쎄, 마지막까지 통 모르겠더라."

돌아가시기 전날까지, 아버지는 '스크래치'라는 즉석 복권을 했다고 어머니가 말했다. 동전으로 긁어내면 그 자리에서 당락을 바로 알 수 있기에, 제비뽑기이기는 했으나 도박이다. 중독이라고 치부해 버리면 그걸로 그만이겠지만 어쩌면, 이라며 료타는 생각했다. 아버지 나름대로 무언가 찾으려던 것이 있었으리라. 그러나 그것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래서 대체할 무언가를 도박에서 구하려고 했던 것이다. 아마도 지금의 자신처럼. _p.179

 

 

우리는 성장하면서 조금씩 부모님의 삶을 이해하게 되는 것 같다. '엄마가 나를 낳았을 때가 지금 내 나이니까, 엄마도 사실은 아주 어렸구나.' 그렇게 이해해가며, 조금은 투덜대며 나를 답답해 할 자식들을 키워가며 그렇게 닮아가겠지? 사실 너무 소중하지만 때때로 성가시고 짐스러운 서로가 가족이란 이름으로 견뎌가며 가장 친밀하기에 가장 상처를 많이 주며 살아간다.

소설가 따위가 되어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던 아버지가 실은 아들의 작품을 무척 자랑스러워하고 있었다는 것을 뒤늦게 알게 되는 료타처럼. 사실 알고보면 사랑하지 않는 가족이 어디 있겠어. 아마 아버지가 나름대로 찾고 있던 어떤 것은 '가족을 위한 해주고 싶은 어떤 것'이었을 것이다. 그 시절 '사랑'이란 배불리 먹이고 남들보다 많이 주는 것이었으니까. 현실은 마음처럼 해줄 수 없는 자신을 견딜 수 없었던 게 아닐까.

혹시 누군가 자신이 바랐던 어른이 되지 못해 대체할 다른 것들을 찾아 헤매고 있다면 이 책을 보길 권한다. 그것은 누구나 살아가면서 한 번쯤 직면하게 되는 삶의 진실이란 것을. 료타처럼 느끼고 있다면 당신도 성장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줄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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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매주 시체를 보러 간다 - 서울대학교 최고의 ‘죽음’ 강의 서가명강 시리즈 1
유성호 지음 / 21세기북스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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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마지막 여정이 죽음이라는 사실을 담담히 받아들여야만 현재 우리의 삶을 더 온전하게 살 수 있다.

“카르페 디엠(Carpe diem)! - 현재를 즐겨라!”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 키팅 선생이 학생들에게 들려주었던 말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에 앞서 죽음을 생각하며 살아야 한다.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 죽음을 기억하라!” 삶의 마지막 순간에 자신이 어떠한 모습이기를 바라는지 끊임없이 묻고 답하는 과정에서 우리의 삶은 더욱 풍성해지고 깊은 의미를 품는다. _p.266

 

 


10여 년 전에 <버킷리스트>라는 영화가 흥행하면서 '버킷리스트'를 작성하는 것이 유행이 된 적이 있다. 이 영화는 한 평생 앞만 보고 달려온 두 주인공이 자신의 삶을 정리하면서 '죽기 전에 꼭 하고 싶은 것들'을 해나가는 유쾌한 영화였지만, 자신에게 다가오는 '죽음'을 받아들이고, 남은 생을 정리해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이 영화를 본 많은 사람들이 죽기 전에 꼭 하고 싶은 자신만의 삶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평소 <그것이 알고 싶다>를 빼놓지 않고 보는 애청자로서 '유성호' 교수님의 책이 출간된다고 하니 기다려지지 않을 수 없었다. 방송에서 자주 보게 되는 유성호 교수는 '타살'의 흔적이 있는 사건에서 부검을 통해 유의미한 증거를 찾아가는 모습이라 직접 담당했던 사건들에 대한 이야기일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유성호 교수가 이 책을 통해 독자에게 하고 싶은 말은 '죽음'에 관한 이야기였다. 아무래도 그 누구보다 '죽음'을 눈앞에서 많이 본 사람이기 때문에 '죽음'에 대해 많이 고민했으리라.

얼마 전 엄마가 친구의 장례식에 다녀오면서 이런 말을 했다.

 

심폐소생술을 하는데, 자식들이 그만하자고 말해서 친구로서는 조금 서운했다고. 조금만 더 시도해보면 조금 더 살지 않을까'

 

아쉬워서 하는 말이겠지만, 나는 자식으로서 이해가 되었다. 죽어가는 몸을 억지로 살려서 생명을 연장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고통만 더 주는 것이 아닐까 고민했을 것이다. 그래서 엄마는 꼭 심폐소생술을 끝까지 해서 조금이라도 더 살려드리겠다고 약속했다. 물론 엄마는 질색하셨지만.

이 책에는 '죽음'에 관한 많은 이야기가 담겨있다. 물론 법의학자로서 만날 수밖에 없는 범죄의 모습도 있고, '죽을 권리'와 '살릴 의무'에 대한 '존엄사' 이야기, '죽음'을 미리 생각하고 자신의 마지막 모습을 준비해야 한다는 평소 견해를 통해 '죽음'에 관한 메시지를 담았다. 특히 나는 엄마와 이야기 나눈 적이 있는 '연명 치료'와 먼 친척이 오랫동안 '뇌사 상태'로 투병한 것을 봐서 '뇌사'를 죽음으로 봐야 하는지에 관한 내용이 인상적이었다. 상징적이고 추상적으로 죽음을 직시하고 남은 삶을 열심히 살자는 것이 아니라, 정말 '죽음'에 관한 지극히 현실적인 이야기인 것이다.

이제 '죽음'에 이르는 방법은 대체로 암으로 인한 '병사' 혹은 '사고사'일 것이다. (타살은 극히 적으니까) 그 말은 예전처럼 이제 나의 늙음과 가야 할 때를 알고 서서히 생을 정리할 시간이 주어지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죽음'에 대해 생각하고 준비하는 것을 거부한다. 그래서 갑작스럽게 암에 걸리면 내 삶을 어떻게 정리해야 할지 생각조차 하지 못한 채 항암치료를 받다 병원에서 삶을 마감한다. 아마 내가 죽음을 직면하게 될 때는 질병으로 인하여 계속 항암치료를 받다가 병원에서 사망하거나, 사고로 인하여 병원에서 연명 치료를 받다가 사망할 가능성이 높지 않을까. 그런데 나도 문득 나의 마지막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보게 되었다.

나는 장기기증을 서약한 사람으로 뇌사 상태가 될 경우에는 장기를 기증했으면 좋겠고, 암에 걸려 투병하게 된다면 더 이상 살 가망이 없는 시점에서는 항암치료보다는 자연스럽게 삶을 마무리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항암치료를 한다고 고통이 없는 것은 아니니까) 혹은 사고로 인하여 갑작스럽게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면 무의미한 연명치료는 거부하고 싶다. 이러한 생각을 하고 나니 '죽음'을 현실적으로 직시한 만큼 생에 대한 생각도 현실적으로 변화되는 것 같다. 각자 생각하는 자신의 마지막 모습은 다를 수 있으니까.

책 뒷면에 '인문학적 통찰이 더해진 죽음 지침서'라는 말이 이 책을 정확하게 표현한 말이라는 생각이 든다. 법의학자가 던지는 지극히 현실적인 '죽음'에 대한 물음에 당신은 어떤 생각을 하게 될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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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만한 나날
김세희 지음 / 민음사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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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 작품을 처음 읽었을 때, 이 이야기 속의 주인공은 나와 내 또래 '그 누구'의 삶도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구나 설레며 기대하는 '첫'발을 내딛는 20대에 우리는 수많은 결정들을 하고, 그로 인하여 수많은 좌절을 하게 된다. 그 좌절, 사실 알게 모르게 우리도 다 지나왔던 길이다. '현실'이라는 커다란 벽에 처음으로 있는 힘껏 부딪힌 우리는 기대했던 것들을 하나씩 내려놓고, 포기해가며 이만큼 자라왔다.

우리도 알고 있다. 형편에 맞게 살아야 한다는 걸. 그렇지만 우린 대단한 걸 꿈꾼 게 아닌데. 우리가 바란 것 아주 작은 것, 평범해 보이는 것들이었다. 우리가 가장 먼저 내려 놓은 것은 '나 자신', 스스로에 대한 기대를 내려놓는 법을 배우게 되었다. 내가 누릴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 때가 되면 손에 들어올 줄 알았던 것들. (「현기증」 중) 어릴 때부터 보고 배웠던, 교과서와 드라마에서 보여주던 '꿈을 향해 포기하지 않는 도전', '단란하고 화목한 가정'의 이미지와 삶의 방식들을 바랄 수록 불행해질 수 밖에 없었다.

대단한 걸 바라지 않는 지금 우리 세대, 결혼도 출산도, 대단한 것도 바라지 않고 이른바 '소확행'만을 바라는 우리 세대는 어디서부터 좌절되어 왔을까?

「가만한 나날」 작품 속 '경진'은 대학을 졸업하고 첫 직장에 입사를 한다. 경진은 입사한 블로그 마케팅 회사에서 가상의 인물(채털리 부인)로 블로그를 개설하고 운영하며 홍보 요청을 받은 업체의 상품들을 실제로 사용한 척 포스팅을 작성했다. 국문과에 입학했지만, 3학년 때부터 현실에 맞게 취업 준비를 해온 경진은 이 업무가 자신의 적성에 잘 맞는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열심히 일한 만큼 함께 입사한 동기들에 비해 인정도 받아서 일을 잘한다는 말도 곧잘 들으며 안정적으로 사회 생활에 자리를 잡아간다. 그러나 경진이 포스팅했던 가습기 살균제 '뽀송이'를 보고 구매한 한 피해자가 경진(채털리 부인)은 괜찮은지 물어 온다.

경진은 첫 직장에서 맡은 업무를 성실하게 수행했지만, 알고보면 이 업무는 윤리적으로 정당한 일은 아니었다. 실제 '나'가 아닌 인물로, 사용하지 않은 제품을 사용한 것처럼 블로그를 써서 사람들에게 광고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경진에게 왜 스스로 자신의 일이 윤리적으로 옳은 일인지 돌아보지 않았느냐고 비난할 수 없다. 그런 것들을 판단하며 삶을 영위하기에는 먹고 살기가 급급하기 때문에, 나보다 더 삶의 경험이 많은 이로부터 '사회 생활의 스킬'을 배울 수는 있었으나, '삶에 대한 스킬'은 배우지 못했기 때문이다. 나도, 우리도 돌이켜보면 무엇이 옳은건지 잘하는 건지 알지도 못하고 해나가며 잘하고 있다고 우월감에 빠져있던 시절이 있었을 것이다. 그 때는 무언가 서툴어도 내가 아직 나이가 어려 모르는, 그런 게 있을 것 같았다.

'첫 출근을 앞둔 일요일'부터 시작하여 마지막 문장 '나는 그런 사람이 되었다'까지 읽고 나면 마음에 묵직한 것이 내려 앉는다. 나도 첫 직장을 그만두고 '나 자신을 잃어버렸다'고 생각했었다. 내가 사랑하는 나의 모습들은 온대간대 사라지고, 흔히 말하는 눈치껏 시키는 일 잘하는 회사원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러나 가장 실망스러웠던 것은 나를 가르쳤던 '선배'들이었다. 어떤 부당한 일 앞에서도 자신의 밥그릇만 챙기면 되는 당연한 이기심(그러나 이해는 된다)이, 혈기왕성했던 나의 젊은 시절에는 도무지 인정하고 싶지 않은 실망스러운 모습이었다. 적성에 맞는다고 생각하고 열심히 일하던 회사를 그만두고 '이 일'이 정말 내가 원하는 일이었는지, 이렇게 변해 버린 내가 진짜 나인지 고민하는 과정을 겪고 있는 경진의 모습이 꼭 '나의 모습' 같았다.

「그건 정말로 슬픈 일일 거야」 작품 속 연승은 3, 4년 사회생활을 하다 진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찾기 위해 퇴사하고 다큐멘터리 영화감독이 되려고 한다. 연승은 '진아'라는 대학생 시절에 만난 연인이 있었는데, 결혼은 엄두도 못내고 있다가 자신의 꿈에 도움을 줄 법한 대학 선배의 점심 초대를 받고, 진아에게 함께 가 줄 것을 부탁한다. 연승은 꿈을 이뤄가고 있는 선배에게 함께 일할 수 있게 해달라고 부탁할 셈이었다.

 

연승은 다큐멘터리 제작에 관한, 맨땅에서 감독으로 커리어를 쌓아 가는 일에 관한 실제적인 충고를 기대했지만, 소중한의 입에서 그런 말은 나오지 않았다. 이런저런 이유로 이쪽 길을 택했으나 점점 자신의 선택을 세상에 원한을 품는 알리바이로 삼게 된 사람들에 대해.

                                       

"똑같은 시스템 안에 있어. 개인사업자로 등록되어 있고, 세금 신고하고, 돈도 벌어야 하고, 쉽진 않아. 똑같이 다른 사람들 돈을 받는 일이라고 해도, 내가 페이스북에 후원 요청하는 글을 올리면 사람들이 굉장히 불쌍하게 생각하거나, 아니면 아니꼽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어. 지가 좋아하는 일 하면서 왜 남한테 돈을 달래?

 

나도 문예창작과를 졸업하며 많은 동기들이 고민한 것처럼, 이 작품 속 연승이 고민했던 것처럼 계속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끝까지 해볼 것인가, 현실과 타협하고 적당히 사회에 자리를 잡을 것인가의 기로에 서 본 적이 있다. 그땐 가난해도 내가 해보고 싶은 일을 끝까지 밀어붙여 보고 싶었다. 포기하지 않으면 뭐든 될 것 같다고도 생각했다. 그런 생각과 달리 나는 적당히 타협했고, 나름대로 적성에 맞는 일을 찾아 하고 있다. 근데 나도 '끝까지 해볼걸'하는 후회가 들지 않는 것은 아니다. 만약 나도 연승처럼 다 포기하고 꿈을 쫒아갔다면, 많은 감독과 작가들의 인터뷰 내용처럼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으니' 성공하게 되었다고 말할 수 있게 될까? 10년 전에는 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의 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세상에 '열심'만으로 안되는 일이 얼마나 많은데. 끝까지 포기하지 않아도 끝까지 안되는 일도 있다는 것을 아니까.

 

「현기증」 속 ‘원희’와 ‘상률’은 각각 보증금과 월세를 나누어 내며 동거 중인 연인이다. 생활 패턴이 달랐던 상률은 오랜 원룸 생활을 끝내고 이사를 가자고 원희를 설득한다. 상률에게 이끌려 이사를 하는 과정에서 원희에게 커다란 불안으로 다가오는 것은 ‘신혼부부’가 될 수 없는 그들의 현실, 볼품없는 중고가전으로 채워야 하는 어두운 방, 그리고 아직까지 딸의 동거 사실을 모른채 시시각각 딸을 걱정하며 걸어오는 엄마의 전화. 「우리가 물나들이에 갔을때」에서는 신혼부부에게만 제공되는 저금리 대출을 받기 위해 혼인신고를 먼저 한 채 동거 중인 인물이 등장한다. 그리고 혹시 오직 저금리 대출 때문에 했던 혼인 신고때문에 자신과 살고 있는 것은 아닌가 두려워한다.

 

그녀의 머릿속에서 결혼은 이런 게 아니었다. 언젠가 결혼이란 걸 하게 된다면 설레는 마음으로 집을 보러 다니고, 성가시지만 행복한 고심 끝에 가구를 결정하리라고 생각했다. 텔레비전에서 봤던 장면들이 떠올랐다. 웨딩숍의 샹들리에 조명 아래 흰 커튼이 열리는 장면. 드레스를 입은 신부의 환하게 빛을 발하는 얼굴. 그녀는 힘주어 눈을 감았다. 이런 식은 아니었다. 돈도 없고 소속된 직장도 없는 처지에 이런 일을 치를 거라고는, 이렇게 참담한 심정이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난 그런 고물들을 집에 들이는 것 자체가 싫어."

"사람이 분수에 맞게 살아야지. 누구는 새거 사는 게 좋은지 몰라서 이러고 있냐? 나도 돈만 있으면 그렇게 하고 싶어. 네가 원하는 대로 다 해 주고 싶어. 근데 우리 상황이 그렇게 안 되잖아. 이게 지금 우리 한계인 걸 어쩌라고?"

 

 

이 작품 속에는 우리가 흔히 어른들이 말해오고, 드라마 속에 보여왔던 이미지의 가정은 없다. 그러나 이 인물들이 낯설게 느껴지는가? 첫 직장에서 좌절하고 자신의 진로에 대해 여전히 고민하고 있는 경진, 자신의 꿈을 위해 결혼과 직장까지 모든 것을 포기하고 도전했지만 현실이라는 벽에 부딪혀 오도가도 못하는 연승, 결혼은 꿈도 꾸지 못하고 월세를 반씩 내고 중고가전으로 집을 채우는 원희와 상률, 저금리 대출때문에 결혼은 하지 못하고 혼인신고부터 한 부부까지. 모두가 현실이라는 벽 앞에 적당히 타협하고, 적당히 포기해가며 열심히 살아가지만, 그 누구도 만족하고, 행복하지 못한 청년들의 삶. 그리고 그런 현실을 여전히 이해하지 못하는 부모님세대 사이에 우리는 끼어있다. 그런 평범하고 가만한 나날들에 우리의 슬픔이 베어가는 줄 모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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