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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반 데니소비치, 수용소의 하루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3
알렉산드르 솔제니친 지음, 이영의 옮김 / 민음사 / 1998년 9월
평점 :

슈호프는 아주 흡족한 마음으로 잠이 든다. 오늘 하루는 그에게 아주 운이 좋은 날이었다. 영창에 들어가지도 않았고, <사회주의 생활단지>로 작업을 나가지도 않았으며, 점심 때는 죽 한 그릇을 속여 더 먹었다. 그리고 반장이 작업량 조정을 잘해서 오후에는 즐거운 마음으로 벽돌쌓기도 했다. 줄칼 조각도 검사에 걸리지 않고 무사히 가지고 들어왔다. 저녁에는 체자리 대신 순번을 맡아주고 많은 벌이를 했으며, 잎담배도 사지 않았는가. 그리고 찌뿌드드하던 몸도 이젠 씻은 듯이 다 나았다.
눈 앞이 캄캄한 그런 날이 아니었고, 거의 행복하다고 할 수 있는 그런 날이었다.
이렇게 슈호프는 그의 형기가 시작되어 끝나는 날까지 무려 십 년을, 그러니까 날수로 계산하면 삼천육백십삼 일을 보냈다. 사흘을 더 수용소에서 보낸 것은 그 사이에 윤년이 들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반 데니소비치, 수용소의 하루》 중
당신의 하루는 어땠나요?
'슈호프'는 그가 보낸 수용소의 오늘 하루가 아주 운이 좋은 날, 거의 행복하다고 할 수 있는 날이라고 말한다. 이 작품은 작가 솔제니친이 직접 경험했던 노동 수용소의 경험을 토대로 '이반 데니소비치 슈호프'이라는 한 인물의 하루를 보여준다. 슈호프는 평범한 인물이었지만 급변하는 소련 사회의 지배권력에 의하여 죄없이 노동수용소에 끌려와 십 년을 복역하게 된다. 함께 수감생활을 하는 사람들도 마찬가지로 끌려와 극한의 추위 속에서 제대로 먹지 못한채 수감생활을 이어간다.
빈대가 들끓는 쉰 개의 침대에서 이백 명이 잠을 자는 수용소, 영하 삼십 도가 넘는 날씨에서 야외에서 벽돌을 쌓는 작업을 배정받아 저녁까지 노동을 하게 된다. 유일하게 쉴 수 있는 저녁 시간에는 노동 중 사라진 한 명을 찾느라 추위에 떨게되고, 돌아온 수감소에서 저녁은 빵과 멀건 야채국이 전부이다. 하지만 슈호프는 그 하루가 '아주 운이 좋은 날', '거의 행복하다고 할 수 있는 날'이라고 말한다.
슈호프에게 '행복'은 무엇이었을까? 슈호프에게 '행복'은 삶 전체에 평안함과 어떠한 성취가 아님은 분명하다. 그저 주어진 하루 안에서 자신만의 '작은 행복'을 찾아내고, 그것을 흡족하게 즐길 줄 아는 능력을 가진 것이다. 우리의 삶은 다를까?
나의 하루를 돌아보면, 출근 길 버스정류장에 도착하자마자 타야할 버스가 도착해서 바로 탈 수 있었고 사람이 많은 7호선 지하철에서도 앉아서 올 수 있었다. 덕분에 목요일의 피로감을 조금 덜 수 있었고, 출근하니 주문해두었던 책이 도착해있었다.(꺄악!) 그리고 좋아하는 사람과 점심 약속이 되어있고, 며칠 괴롭히던 감기도 거의 다 나아간다. 사실 슈호프의 시선으로 보면 나는 '거의 행복하다고 할 수 있는 날'을 보냈다. 더구나 나는 억울하게 갇히지도 억지로 노동을 해야하지도 않다. 그렇지만 나는 이런 나의 하루 속에서 얼마나 '행복'을 발견하고 흡족해했던가.
이 작품은 한 개인이 사회의 부조리의 부당함으로부터 얼마나 비극적인 운명을 맞이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고발 소설이자, 한 개인의 일기인 것이다. 그 간극이 얼마나 대조적인지. 이 작품에서 가장 좋았던 점은 작가의 어떠한 생각이나 판단도 드러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슈호프가 겪는 하루의 일들이 아주 세밀하게 묘사되어 각 상황과 배경을 구체적으로 상상해낼 수 있었고, 과거의 사건들을 끌고와 들려주기보다는 현재 처한 상황만으로 독자는 충분히 슈호프의 하루를 짐작하고 공감할 수 있어서 매우 뛰어난 문체로 쓰여졌다고 느껴졌다.
슈호프처럼 극단적으로 노동 수용소에 끌려갈 일은 아마도 없겠지만, 우리도 살아가면서 꽤 억울하다고 생각되는 상황에 놓이는 날들이 있다. 꽤 많은 날들은 '내뜻대로 되지 않는 하루'를 살기도 하고, 현실에 맞춰 포기해야할 것들도 참 많다. 하지만 그 상황 안에서 우리는 어떤 하루를 보내고 있는가?
슈호프의 삶을 들여다보고 나니 '작은 행복'들을 발견하는 하루들이 모여 '인생'이 되는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에게는 '오늘'이라는 수많은 하루들이 모여 삶을 이루니까.
그래서 당신의 하루는, 당신의 삶은 행복한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