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이 지나가고 쏜살 문고
고레에다 히로카즈.사노 아키라 지음, 박명진 옮김 / 민음사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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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 나는 어떤 '어른'을 꿈꿨을까?

마음처럼 되지 않는 날, 내가 나인 게 싫은 어떤 날, 그런 날 집으로 터덜터덜 돌아갈 때 나는 허전한 마음에 무언가를 사서 집에 가곤한다. 손에 든 치킨 한 마리로 마음이 달래지는 것은 아니지만 손에 든 치킨의 따뜻한 만큼 도란도란 가족과 나누어 먹으며 마음이 조금 풀리기도 하니까. 때론 라면 한 봉지에 소주 한 병을 들고 집에 귀가하기도 한다. 저녁과 함께 소주 한 잔하고나면 또 잠시 기분이 좋아지고 그렇게 또 하루를 시작해야하니까. 그럴 날, 나는 대체로 아빠 생각을 한다. 치킨 한 마리, 귤 한 봉지를 손에 달랑달랑 들고 집에 돌아오던 아빠, 저녁을 먹으며 소주 한 병씩 마셨던 아빠. 그 때는 이해할 수 없던 그런 모습들이 미워서 '나는 꼭 저러지 말아야지'했던 내가 생각난다. 그리고 지금, 이렇게 아빠와 닮아버린 내 모습을 보게 된다.

어렸을 때는 나는 내가 '다 컸다'고 생각했고, 되게 성숙한 학생인 줄 알았다. 그래서 내가 보는 '어른'들의 모습은 늘 한심했던 것 같다. '왜 저렇게밖에 살지 못하지?', '더 멋지게도 살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렇게 생각하면서 나는 다르게 살아야겠다고 늘 생각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내가 '그 어른'이 되어보니, 내가 한심하다고 여겼던 모습이 사실은 주어진 자리에서 정말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나도 정말 최선을 다하지만, 누군가에게는 한심하게 보일 어른이 되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나 먹일 치킨 한 마디를 살 때, TV를 친구삼아 혼자 소주 한 잔을 마실 때 아빠는 어떤 기분이었을까? 가끔 생각한다. 알 수 없지만, 그런 날은 아빠가 몹시 고단했던 날이었겠구나. 내가 꿈꿔왔던, 아빠가 꿈꿔왔던 '어른'의 삶은 아마 지금같은 모습은 아니었겠지?

<태풍이 지나가고>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11번째 장편 영화와 동명의 소설로 모두가 자신이 바랐던 어른이 되는 건 아니다.”라는, 누구나 살아가면서 한 번쯤 직면하게 되는 삶의 진실을 보여준다. 주인공 료타는 지금은 폐지된 문학상을 수상한 소설가로 등단 이후 15년째 글을 못 쓰고 있다. 새로운 작품을 쓴답시고 제대로 된 직장은커녕 무슨 일이든 진득하게 처리해 내지 못하는 료타는, 현재 소설에 쓸 소재를 조사한다는 구실로 수상한 사람들의 미심쩍은 의뢰만 도맡아 처리하는 탐정 사무소에서 근무하고 있다.

여러모로 절박한 상황인데도 도박과 경마에 빠져 홀어머니 도시코와 맞벌이 주부인 누나 지나쓰에게 손을 벌리기 일쑤이며, 이혼한 아내와 아들에게 양육비조차 제대로 주지 못한다. 결국 '아버지처럼 살지 않겠다'고 생각하며 자란 료타는 아버지와 꼭 닮은 모습으로 자라난 자신을 마주하게 된다. 어디서부터 어긋나 버렸는지 알 수 없지만, 료타는 '태풍이 지나가고' 더 나은 미래를 기대할 수 있을까? 그리고 나는 태풍같은 지금이 지나고나면 더 나은 때를 마주할 수 있을까?

 

노래를 들으면서 료타는 아버지를 생각했다. 도박에 몰두했던 아버지. 그에게 미련이 있었다면 그것은 무엇이었을까, 하고. 그러나 어떤 장면을 떠올려 봐도 아버지는 당신의 속마음을 료타에게 드러낸 적이 없었다.

"아버지 있잖아, 어떻게 하고 싶었던 걸까?"라고 료타가 물었다.

"뭘?"

"자기…… 인생을 말이야."

"글쎄, 마지막까지 통 모르겠더라."

돌아가시기 전날까지, 아버지는 '스크래치'라는 즉석 복권을 했다고 어머니가 말했다. 동전으로 긁어내면 그 자리에서 당락을 바로 알 수 있기에, 제비뽑기이기는 했으나 도박이다. 중독이라고 치부해 버리면 그걸로 그만이겠지만 어쩌면, 이라며 료타는 생각했다. 아버지 나름대로 무언가 찾으려던 것이 있었으리라. 그러나 그것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래서 대체할 무언가를 도박에서 구하려고 했던 것이다. 아마도 지금의 자신처럼. _p.179

 

 

우리는 성장하면서 조금씩 부모님의 삶을 이해하게 되는 것 같다. '엄마가 나를 낳았을 때가 지금 내 나이니까, 엄마도 사실은 아주 어렸구나.' 그렇게 이해해가며, 조금은 투덜대며 나를 답답해 할 자식들을 키워가며 그렇게 닮아가겠지? 사실 너무 소중하지만 때때로 성가시고 짐스러운 서로가 가족이란 이름으로 견뎌가며 가장 친밀하기에 가장 상처를 많이 주며 살아간다.

소설가 따위가 되어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던 아버지가 실은 아들의 작품을 무척 자랑스러워하고 있었다는 것을 뒤늦게 알게 되는 료타처럼. 사실 알고보면 사랑하지 않는 가족이 어디 있겠어. 아마 아버지가 나름대로 찾고 있던 어떤 것은 '가족을 위한 해주고 싶은 어떤 것'이었을 것이다. 그 시절 '사랑'이란 배불리 먹이고 남들보다 많이 주는 것이었으니까. 현실은 마음처럼 해줄 수 없는 자신을 견딜 수 없었던 게 아닐까.

혹시 누군가 자신이 바랐던 어른이 되지 못해 대체할 다른 것들을 찾아 헤매고 있다면 이 책을 보길 권한다. 그것은 누구나 살아가면서 한 번쯤 직면하게 되는 삶의 진실이란 것을. 료타처럼 느끼고 있다면 당신도 성장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줄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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