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대령에게 편지하지 않다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58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지음, 송병선 옮김 / 민음사 / 2018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분명히 오늘 내게 도착해야만 하는 편지라오.”

대령이 말했다. 우체국장은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분명하고 확실하게 도착하는 유일한 것은 죽음뿐입니다, 대령님.”







대령은 오래전에 일어난 콜롬비아 천일전쟁에서 비민주적이고 탄압적인 보수당 정권에 맞서 자유당 군인으로 싸웠다. 그리고 전쟁이 끝나고 오십육 년이 흐르는 동안, 그는 연금 수급 자격을 알리는 통지서를 받기를 애타게 기다린다. 그 동안 정부는 수차례 바뀌었고, 관료들도 모두 바뀌었다. 하지만 그는 매주 낡은 양복을 차려 입고 군인 연금 자격 통지서를 기다린다. 그러나 아무도 그에게 편지하지 않는다.

⠀⠀⠀

마지막 내전이 끝난 이후 오십육 년 동안 대령은 기다리는 일 이외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편지를 기다렸다. 대령 부부의 희망이었던 재단사 아들 아구스틴은 반정부 활동에 연루되어 투계용 닭 한 마리만 남겨 둔 채 군인에게 죽임을 당했다. 천식으로 고생하는 아내와 쌈닭 외엔 가진 게 없는 대령은 그럼에도 인간적 존엄을 유지하는 삶을 살아가기 위해 분투한다. 대령의 아내는 마을의 부자에게 아들이 남긴 닭을 팔아 생계를 유지하자고 하지만, 대령은 아들과 마을 젊은이들의 희망이자 정치적 자존심의 상징인 닭을 팔고 싶지 않다. 그런 어느 날, 집에 먹을 것은 아무것도 남지 않고, 이제 닭을 파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 과연 그는 어떻게 할 것인가.

⠀⠀⠀

이 작품의 중요한 배경은 콜롬비아의 군사 독재 정권에 있다. 소설 속 묘사되는 밤 11시의 통행금지, 교회의 영화 상영 금지, 경찰의 불시 단속 등 군사정권이 낯설게 느껴지지 않는다. 이러한 상황에서 오십육 년 전 국가가 약속한 군인 연금은 도착하지 않고, 아들은 죽임을 당했으나 그 어떤 저항도 하지 못한다. 입에 먹을 것조차 없는데 자존심과 명예가 왜 중요하냐고 말할 수도 있다.

당장 다음 날 먹을 것이 없는 상황에서 결국 분노한 아내가 대령의 티셔츠 칼라를 움켜쥐고 흔들며 묻는다. 그럼 우리는 도대체 뭘 먹느냐고. 그 순간에도 대령은 "똥." 이라고 대답한다. 그럼에도 팔 수 없는 아들의 수탉과 이에 대한 대령의 고집은 그에게 남은 단 하나의 희망이자, 존엄이다.

⠀⠀⠀

어떠한 이야기가 가깝게 와닿지 않는다면, 공감할 수 있는 상황으로 치환해보면 된다. 625전쟁에 참전하여 군대를 지휘했던 대령, 국가를 위해 싸웠던 그를 위해 국가는 군인 연금을 약속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정부는 바뀌고, 군사 독재 정부가 세워졌다. 전쟁으로 인한 후유증과 가난은 그의 몫, 전쟁으로 정권에 아부하던 사람들(친일파?)은 모두 부자가 되어 호위호식하고 있다. 그에게 남은 것은 오직 죽은 아들이 남긴 닭 한 마리. 전쟁에 참여했던 공로를 주장하지도, 아들을 죽인 국가에 대항하지도 못하지만 당장 먹고살기 위해 마지막 남은 희망을 포기할 수 있을까. 그 자존심을 포기하고 구걸하여 당장 입에 풀칠을 했다고 하더라도 달라지는 것은 무엇일까?

산다는 건 이렇게 생동하게 비참하고, 억울한 것.

그래서 대령의 마지막 한 마디에 쓴웃음을 짓는 수밖에.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사하맨션
조남주 지음 / 민음사 / 2019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우리는 누굴까. 본국 사람도 아니고 타운 사람도 아닌 우리는 누굴까. 우리가 이렇게 열심히 성실히 하루하루를 살아가면 뭐가 달라지지? 누가 알지? 누가, 나를, 용서해 주지?


종이배 접는 것을 금지하는 법안이 제정되었다고 했다. 한 유치원에서 색종이로 배를 접어 바다 그림이 그려진 교실 벽에 붙이는 수업을 했다가 담당 교사와 원장이 벌금형을 받았다고 알려졌다. 교사는 수업 의도를 해명해야 했다. 경찰 조사는 강업적이었고 모욕감을 느낀 교사가 자살 기도를 했다가 한 종합병원에 입원했단다. 병원 이름도 떠돌았다. 모두 사실이 아니었다. 종이배 금지법 같은 것은 생기지 않았다는 사실이 아니라 종이배 금지법이라든지, 유치원 교사의 벌금형 같은 소문이 그럴듯하게 받아들여졌다는 사실이다.


나비 폭동이 희미해질 즈음이 되자 원주민이던 L2보다 그 2세와 3세들의 비율이 더 높아졌다. 애초에 L2로 태어난 아이들에게는 의문도 저항도 없었다. 당위나 의무라는 말은 정확하지 않고 운명이라기에는 너무 거창하다. 원래 그런 삶이다. 각자에게 주어진 일을 해서 돈을 벌고, 함께 자란 아이들의 진로를 궁금해하지 않고, 2년마다 체류권을 갱신하며 살다가 비슷한 사람을 만나고 사랑하고 병원에 아기를 낳고 나오는 삶.

 


 

 

 

나는 드라마를 보면서 유독 불편한 장면이 있는데, 나이 지긋한 운전 기사가 자신의 보스에게 허리를 반이나 접어가며 인사를 하면서 차 문을 열어주는 장면이다. 그 때 그 보스는 손 하나 까딱하지 않고 차량 뒷자석에 타서 명령을 내린다. 때론 극단적인 장면이지만, 자신의 부하 직원에게 위험하고 부도덕적인 일을 지시하게 하기도 하지만 대체로 드라마 상에는 그 임무를 받은 그 누구의 도덕적 갈등이 드러나지 않는다. 그런데 대체로 우리는 그런 장면을 불편해하지 않는다. 나는 그것을 내면화된 자발적 복종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그 드라마 속 장면을 하루에도 수차례 목격하게 되니까. 그게 '돈'이 가진 힘이라고 받아들이고, '돈을 자긴 자'를 향하여 등허리를 굽힌다.

 
멍에를 지고 태어나 노예 상태에서 성장하고 교육받은 사람들은 전 세대가 어떤 삶을 누렸는지 알지 못하고 그들이 태어난 대로 사는 것에 만족한다. 그들은 자신들이 어떤 재산, 어떤 권리를 가질 수 있는지에 대해선 더 이상 생각도 하지 않고 출생 당시부터 주어진 삶의 조건을 자연스러운 상태로 여기게 된다. - 엔티엔 드 라 보에시 『자발적 복종』 중에서

 

이 작품 속 세계관인 '타운'에는 세 가지 계급이 존재한다. 돈과 기술을 가진 주민, 일할 노동력을 지닌 L2, 그 외 '사하'라 불리는 사람들. 이 비유는 현실에서 따온 듯하다. 이 계급 사회적 구조 속에서 '인적 자원'이라는 명칭으로 국가는 우리를 이렇게 분류하기도 하고, 기업의 구조 속에서 정규직, 계약직, 임시직이라는 명칭으로 불리기도 한다.


개인적으로 내가 조남주 작가의 탁월함이라고 생각하는 부분은 사람들의 인식을 파고들지 못하는 아주 세밀하고 일상적인 순간을 포착해내는 능력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82년생 김지영』을 처음 읽었을 때의 충격과 비슷했다. 너무나 일상적이고 누구나 겪어왔던 아주 평범한 이야기인데 그것이 '부당한 일'이라고 여겨보지 않은, 당연하게 받아들였던 이야기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받은 충격은 '왜 나는 이게 부당하다고 생각하지 못했지?'에서 오는 충격이었다. 그리고 『사하맨션』을 읽었을 때도 동일하게 생각했다. '사하'들을 향해 세상이 던지는 부당함은 그들의 잘못 때문이 아니다. 가난한 부모에게 태어나서, 주민이 아닌 부모에게 태어나서.

 

지금 우리에게 세상이 던지는, 사회 구조와 자본 권력이 우리에게 던지고 있는 '부당함'을 우리도 무어라 설명할 수 없었다. 그래서 우리는 사라처럼, 진경처럼, 우미처럼 의문도 저항도 없이 받아들였다. 우리가 내면의 억울함을 풀어내는 방법은 고작 스스로의 부모를 흙수저라 부른 것 아닌가.

 

과거에는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말이 사실이었을지 모른다. 이 말에 성공은 당연히 '부'를 의미했고, 그 '부'는 가난했던 시절 가족들을 배불리 먹이고 보호할 수 있는 정도를 의미했다. 그래서 많은 '성공'이 존재했다. 모두가 가난하던 시절, 열심히 노력하고 고생하면 내 가족 배불리 먹이고 보호할 수 있게 성공할 수 있었으니까.

 

그런데 지금 시대의 '성공'과 '행복'의 기준은 예전과 많이 다르다. 우리가 왜 같은 것을 가져도 행복하지 못하고, 노력하면 성공한다는 말에 자조적인 웃음을 짓는 이유는 모두가 같은 '출발선'에서 시작한다고 생각되지 않기 때문이다. 대가가 보장되지 않는 단순한 일을 기계처럼 반복하는 삶은 뒷걸음질 같았다. 두렵고 더디고 힘들게 도착하고 보면 늘 더 못한 자리.(p.74) 사하들이 느꼈던 노동의 부당함.

 

'사하'들이 원하는 것은 무엇이었을까?

나는 '존중'이라고 생각한다. 세상에 없는 사람처럼, 세상에 필요없는 사람처럼 외면하지 않고 그들은 그냥 '사람'으로 봐주고, 이웃으로 여겨주는 것. 당신들과 다르다고 여기지 않는 것. 나도 그렇다. 우리가 보스에게 등허리를 굽히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다르다고 여기지 않고 이웃으로 여겨주는 마음가짐이 중요하지 않았을까. (내가 너무 이상적인가)

 

 

사람들은 말한다, 우리는 언제나 복종하는 백성이었다고. 조상들도 그렇게 살아왔으며 그 고통을 참고 견디도록 운명이 정해져 있고, 이대로 자손을 낳으며 살아야 한다고. 그들은 심지어 복종 상태가 지속된 시간의 길이를 통해 그들 위에 군림하는 폭군의 지배를 정당화하기도 한다. 하지만 세월은 결코 악을 정당화하지 못한다. - 엔티엔 드 라 보에시 『자발적 복종』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가 이러한 부당함에 대해 '인식'으로 변화해가고 '변화'를 갈망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 변화가 비록 아주 더딜지라도, 내 세대에서 이뤄지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믿는 것. 누군가는 『사하맨션』의 마지막에 대해 답답함을 호소할 수 있지만, 나는 '사하'들의 인식이 변화되고 사회적 변화가 일어났다면 오히려 '판타지'라고 생각했을 것 같다. 현실은 그렇게 가볍지 않으니까.

 

이 작품의 마지막 진경의 선택은 사실 답답하리만큼 더디고 눈에 보이지 않는 아주 작은 나아감이다. 그 나아감이 결코 작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세상에는 단 한 걸음도 스스로 내딛지 못하고 끝나는 인생들도 많으니까. 그 한 걸음을 후회하지 않았길. (p.316)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네루다의 우편배달부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04
안토니오 스카르메타 지음, 우석균 옮김 / 민음사 / 2004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그 검은 물이야말로 생명의 근원이고, 나무뿌리를 장식하고 있던 거무스름한 수공예품이자, 결실의 밤을 일궈낸 내밀한 금은 세공품이며, 만물의 모태가 대지라는 확고한 신념까지 준 바 있다. 또 모든 언어가 찾아 헤매고, 고대하고, 적합한 이름으로 명명하지 못해 주변만 맴돌거나 침묵함으로써 명명하던 것이 바로 그 검은 물이었다. _p.158

 

 

 

 

응급차가 네루다를 산티아고로 싣고 갔다. 도중에 여러 차례 경찰 바리케이드를 통과하고 군 검문을 거쳐야 했다. 1973년 9월 23일 네루다는 산타마리아 병원에서 최후를 맞았다. 사경을 헤매는 동안 산크리스토발 언덕 기슭에 있는 네루다의 산티아고 집은 약탈당하고 유리창이란 유리창은 죄다 박살이 나고, 수도꼭지를 틀어놓아 집이 잠겼다. 조문객들은 그 난장판 속에 네루다의 시신을 안치해 놓고 밤을 지새웠다. _p.159

 

 

 

BOOK. 《네루다의 우편배달부》

 

 


 

십여 년 전에 어떤 유명 작가의 집을 방문한 적이 있다. 그 때 갑작스런 비로 며칠 동안 그 곳에 갇혀 지내게 되었는데, 그 때 만났던 한 가족이 있었다. 수년 전에 사업이 망했다고 호탕하게 말하는 부부에게는 딸이 하나 있었는데, 이 아이의 입에 나오는 모든 말이 신기하게도 '시'였다. 그 부부는 아이에게 아직 '단어'를 가르치지 않았다고 말했다. 세상 만물을 보며 이름을 지어주던 아담이 이런 기분이었을까, 아이는 단어를 몰랐지만 눈에는 아름다운 것들이 가득했다. 같은 공간에서 내가 바라본 그 때의 광경은 '폭우'와  단어였다면, 그 아이가 바라보는 산과 계곡, 내리는 비는 모두 아름다운 이미지였다. 그 아이는 '명명한 이름'을 몰랐기 때문에 보이는 것을 그대로 표현했을 뿐인데, 나는 아이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것이 아름다웠다.

 

 

 

선생님은 온 세상이 다 무엇인가의 메타포라고 생각하시는 건가요?

 

《네루다의 우편배달부》는 70년대 초 칠레의 작은 어촌 마을 이슬라 네그라를 배경으로 시인 '파블로 네루다'에게 우편물을 전달하는 우체부 마리오 히메네스와의 우정을 그린 작품이다. 마리오는 어부로서의 삶에 적응하지 못하다 네루다의 우편물만 배달하는 우체부로 채용되었다. 처음에 마리오는 우편물을 배달하며 유명 시인인 네루다와 친해져 그의 시집에 특별한 헌사를 받고 싶어했다. 그러기 위해 마리오는 네루다의 시집을 구매하여 읽게 되었고, 네루다와의 대화를 통하여 '시'라는 것, '메타포'라는 것에 대해 알아가게 된다. 마리오는 내가 만났던 아이처럼 네루다를 통해 '단어'가 아닌 '말'을 배워가고 있었다.

 

왜냐하면 이름은 사물의 단순함이나 복잡함과는 아무 상관없거든. 자네의 이론대로라면 날아다니는 작은 것은 마리포사(나비)처럼 긴 이름을 가지면 안 되겠네. 엘레판테(코끼리)는 마리포사와 글자 수가 같은데 훨씬 더 크고 날지도 못하잖아. (p.28)

 


작중에 네루다가 메타포의 뜻을 가르쳐주려고 비를 하늘이 우는 것이라고 비유해서 설명하고 바다를 관찰하면 메타포를 떠올릴 수 있을 것이라고 하자, 마리오는 '온 세상이 다 무엇인가의 메타포라고 생각'하느냐 질문한다. 네루다의 시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따분한 일상 혹은 평범한 삶을 시적으로 볼 수도 있다는 표현을 통해 그가 진정한 시인임을 느낄 수 있다.

 

 

 

《네루다의 우편배달부》에 등장하는 파블로 네루다는 남미 사람이라면 지금도 누구나 그의 시를 한 두 편 읊을 수 있다고 할 정도의 국민 시인이다. 우리나라로 생각하면 윤동주나 김소월 정도의 시인이 아닐까. 이 작품에서도  당시 마리오나 과부 같은 무지한 민초의 입에서도 자연스럽게 네루다의 시가 흘러나올 정도로 국민적인 사랑받는 시인의 모습이 그려진다. 사람을 좋아했던 파블로 네루다는 실제 이슬라 네그라 집에 방문객을 위한 바를 따로 만들고 사람들에게 친근하게 칵테일을 만들어 줄 정도로 인간미를 지닌 사람이었다고 한다. 작품 속 마리오가 소녀들에게 폼을 재려고 네루다 시집을 사서 헌사를 부탁하는 모습이 만들어진 모습만은 아닌 것이다.


하지만 남미에서 처음 선거에 의해 합법적으로 세워잔 '사회주의 정부'는 군사 쿠데타에 의하여 전복되다. 당시 대통령이었던 살바도르 아옌데는 대통령 궁을 지키다 사망하고, 파리 지사로 있던 파블로 네루다는 이슬라 네그라에 돌아왔으나 쿠데타 2주만에 병세가 악화되어 사망했다. (군사 쿠데타 이후 칠레에는 피노체트를 의장으로 하는 칠레 군사평의회가 설치되어 17년 동안 군사 독재가 시행되었는데, 정치적 이유로 목숨을 잃은 이들이 모두 3197명에 이를 정도로 칠레 국민들은 군사독재정치로 극심한 고통을 받았다.)


평생 시를 쓰며 살아왔고, 노벨문학상 수상으로 칠레의 정치 상황을 국제에 알렸던 파블로 네루다는 국민적인 사랑을 받는 시인이었지만, 쿠데타 직후 우익 과격파들이 집으로 난입해, 가구들을 부수고 물을 틀어놓아 온통 아수라장으로 만들어놓았다. 아내 마틸데는 평생 시만 쓰고 사회 정의를 부르짖으며 살아 온 시인의 마지막 가는 길이 얼마나 참담했는지 알아달라고 호소했다고 한다.


이 책을 읽고 한 가지 이미지가 머릿속에 남았다. 파리지사로 갔던 파블로 네루다가 마리오에게 녹음을 부탁했던 이슬라 네그라의 소리, 바람에 울리는 종소리와 물이 떠밀려가는 파도소리, 시장에서 사람들이 욕지거리하며 떠드는 소리, 그에게는 지나가는 모든 것이 '시'였을 것이다. 모든 것에 귀기울이고 그리워했던 네루다를 통해 '시'가 무엇인지 생각해보게 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레몬 - 권여선 장편소설
권여선 지음 / 창비 / 2019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그의 삶의 갈피갈피에도 의미 같은 것이 있었을까. 아니, 없었겠지. 없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어떤 삶에도 특별한 의미 같은 건 없다고 생각한다. 그의 삶에도, 언니의 삶에도, 내 삶에도. 아무리 찾으려 해도, 지어내려 해도 없는 건 없는 거라고. 무턱대고 시작되었다 무턱대고 끝나는 게 삶이라고. _p.12

 

나는 궁금하다. 우리 삶에는 정말 아무런 의미도 없는걸까. 아무리 찾으려 해도, 지어내려 해도, 없는 건 없는 걸까. 그저 한만 남기는 세상인가. 혹시라도 살아 있다는 것, 희열과 공포가 교차하고 평온과 위험이 뒤섞이는 생명 속에 있다는 것, 그것 자체가 의미일 수는 없을까. _p.198

 

BOOK. 《레몬》 

 

 


 

 

때론 예기치 못한 사건 하나가 우리의 인생을 뒤흔들기도 한다. 이 작품은 2002년 여름, 열아홉살이던 해언이 공원에서 살해된 채 발견된 사건을 중심으로 주변 인물들이 겪게되는 삶을 담고있다. 이 사건은 '해언'의 죽음이 모두를 나머지 존재로 만들어버리며 각자의 삶을 주변부로 만들어버린다.

누가봐도 한 눈에 매혹될 만큼 아름다웠던 '해언'이 죽자, 동생 다운은 '언니'의 사진을 들고 성형을 반복한다. 다언은 언니와 닮지는 않았지만 “언덕길을 굴러 내려가는 자전거의 종처럼 당당당당 웃던 아이”였다. 그러나 점점 표정을 잃고 매일 밤 언니를 죽인 용의자를 취조하는 모습을 상상한다. 사건 당시 유력한 용의자였던 한만우는 태림과 함께 해언의 마지막 모습을 목격하고 수사를 받았다. 한만우가 증언하는 해언의 옷차림이 실제 살해 당시와 달라 경찰의 추궁을 받지만 증거가 발견되지 않았고, 해언이 마지막으로 목격됐을 당시 타고 있던 자동차의 운전자 신정준. 하지만 신정준에게는 확실한 알리바이가 있었다. 그렇게 사건은 미제로 남지만 그 비극에 얽힌 사람들의 삶은 송두리째 달라진다.

 

뉴스를 통해 어떠한 사건이 보도될 때 나는 대체로 그 주변의 인물에 대해 상상한다. 이를테면 저 가해자에게 딸이 있다면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혹은 저 피해자에게 남겨진 가족들은 앞으로 어떤 삶을 살아가게 될까? 하는 식이다. 아마 그들은 꽤 오랜시간 자신의 삶으로 돌아오지 못할 것이다. 아니 어쩌면 죽는 순간까지 자신의 삶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의미를 잃어버릴지도 모른다. 이렇게 극단적인 사건이 아니더라도 자신에게 꽤 충격적인 트라우마를 남긴 사건이나 말, 혹은 누군가의 눈빛만으로도 우리의 삶은 흔들릴 수 있다. 매우 취약하고 위험한 존재인 것이다.

 

이러한 위험앞에 살아가는 우리에게 이해할 수 없는 사건들이 일어난다고해서 우리의 삶이 정말 아무런 의미가 없는걸까? 작가는 꽤나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돌이켜보니 나도 지난 3년 정도의 시간동안 '어떠한 사건'에 메여 있었다. 그로인해 아무리 찾으려 해도 '의미'라는 것을 찾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정말 이렇게 매일매일 살아가는 게 삶의 의미일까? 정말 이게 전부일까? 그래서 작가가 말하는 '희열과 공포가 교차하고 평온과 위험이 뒤섞이는 생명 속에 있다는 것, 그것 자체가 의미일 수'있다는 말을 곱씹어보게 된다. 다언처럼 결코 이해할 수 없지만 언니의 죽음을 애도할 수 있게 됨으로 갑자기 찾아온 삶의 부당함을 받아들이는 것처럼.

 

당신에게 벗어나지 못한 '어떤 기억'이 있다면, 그래서 그 순간으로부터 아직 벗어나지 못했다면 이 이야기가 조금의 위로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무턱대고 시작한 인생이지만, 이 위태로움 속에서 무언가를 발견하게 될지도 모르니.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호호브로 탐라생활
한민경 지음, 구자선 그림 / 판미동 / 2019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길에서 들개에 물릴 뻔한 호이를 지켜 주는 호삼이의 용맹함에서, 호이가 혼날 때 눈치껏 말을 잘 듣는 호삼이의 성격에서, 호이가 잘못하면 나와 호이 사이에 끼어들어 말리는 호삼이의 행동에서 장난치고 싶으면 호이의 다리를 무는 장난기 가득한 호삼이의 얼굴에서 나는 오늘도 호삼이의 집이 되어 주길 잘했다, 호삼이의 견주가 되길 잘했다 생각한다. _p.195

 

모든 관계에는 노력이 따른다. 상대에 대한 사랑과 애정이 많을수록 나는 상대를 향한 노력 또한 동반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봤을 때 호이와 호삼이는 사람의 말을 알아들으려 애쓰고 저렇게 아는 단어가 많은데, 나는 너무 노력을 하지 않는 것은 아닌가 싶다. 그 후로 나는 개들의 언어인 카밍 시그널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호이와 호삼이는 눈빛으로, 소리로, 몸짓으로 나에게 계속 말을 걸어오고 있다. 그들이 우리의 명령어를 잘 알아들어 주듯 우리도 관찰과 애정으로 개들을 보면 분명 많은 것들을 아아들을 수 있다고 생각환다. 그럼 어느 날은 나란히 앉아 서로의 하루를 이야기하는 날도 오지 않을까? _p.189

 

BOOK. 《호호브로 탐라생활》

 


 

어느 날, 친한 편집자가 무는 개, 주운 개, 죽다 살아난 개에 대한 원고를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요즘은 귀엽고 사랑스러운 반려견 동영상이 많으니까 나는 당연히 그런 포토북이 아닐까 생각했다. 그런데 강아지도 아닌 개, 심지어 무는 개라니 충격적이었다. 마케터로서 독자들이 이런 '개'이야기를 좋아할까? 관심 가져줄까? 근심도 되었다.

 

나는 사실 지금껏 반려동물을 키워 본 적이 없어서 사람과 반려동물이 서로에게 느끼는 '어떠한' 감정에 대해서 정확히 모르지만, 때때로 그 감정이 부러웠던 적은 있었다. 친구와 동네 공원에서 산책을 했을 때 만났던 호빵이는 겁이 엄청 많은 아이였다. 다른 강아지들을 보면 무서워서 도망치는 주제에 지나가는 개가 내 친구를 향해 다가올 때는 그 누구보다 용맹하게 짖어대고, 잠시 자리를 비웠을 때는 시선 한 번 떼지 않고 기다리고 있는 모습을 보며 나도 호빵이 같은 친구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는 그동안 내 친구와 호빵이가 서로 마음을 주고 받으며 긴 시간 서로를 알아가고, 노력하던 까마득했을 시간은 보지 전혀 모르지.

 

어릴 때는 '마음'이라는 것이 그릇에 담긴 물처럼 누군가에게 주고 나면 남지 않는 것인 줄 알았다. 그래서 마음을 쓸 거라면 동물이 아닌 다른 사람에게 손을 내미는 것이 더 좋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마음이라는 것은 쓸수록 줄 수 있는 것이 늘어난다는 것을. 주변을 돌아보면 예민하거나 공격적인 사람도, 소심하고 쉽게 상처받는 사람도 살아온 환경에 따라 만들어진 각자의 성격대로 살아가지만, 가족이란 이름으로 친구란 이름으로 서로 끌어당기고 안아주며 살아가야 하는 것처럼 작가는 동물인 호이와 호삼이 김신이 물기도 하고, 버려져 떠돌기도 하고, 아프기도 하지만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끌어당기고 안아주며 살아간다.

 

사람과의 관계에서 상대의 외모나 건강 상태, 그가 살아온 환경이 중요한 것이 아니듯 작가에게는 무는 개 호이, 주운 개 호삼이, 죽다 살아난 개 김신의 상태는 중요하지 않았을 것이다. 단지 서로 쌓아온 많은 기억들과 서로를 알아가고 이해하려고 했던 노력, 그리고 마음을 주려고 애썼던 시간들이 그들에게 가장 중요하지 않았을까. 사람이건 동물이건 중요하지 않다. 어떠한 부족한 점도 타고난 결함도 지니게 된 상처도 결국은 사랑이 아니면, 누군가의 마음이 아니면 그 무엇도 바꿀 수 없으니까. 사람을 물던 호이의 마음을, 주인도 무는 개를 향해 주었던 작가의 마음을 짐작해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