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대령에게 편지하지 않다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58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지음, 송병선 옮김 / 민음사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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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히 오늘 내게 도착해야만 하는 편지라오.”

대령이 말했다. 우체국장은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분명하고 확실하게 도착하는 유일한 것은 죽음뿐입니다, 대령님.”







대령은 오래전에 일어난 콜롬비아 천일전쟁에서 비민주적이고 탄압적인 보수당 정권에 맞서 자유당 군인으로 싸웠다. 그리고 전쟁이 끝나고 오십육 년이 흐르는 동안, 그는 연금 수급 자격을 알리는 통지서를 받기를 애타게 기다린다. 그 동안 정부는 수차례 바뀌었고, 관료들도 모두 바뀌었다. 하지만 그는 매주 낡은 양복을 차려 입고 군인 연금 자격 통지서를 기다린다. 그러나 아무도 그에게 편지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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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내전이 끝난 이후 오십육 년 동안 대령은 기다리는 일 이외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편지를 기다렸다. 대령 부부의 희망이었던 재단사 아들 아구스틴은 반정부 활동에 연루되어 투계용 닭 한 마리만 남겨 둔 채 군인에게 죽임을 당했다. 천식으로 고생하는 아내와 쌈닭 외엔 가진 게 없는 대령은 그럼에도 인간적 존엄을 유지하는 삶을 살아가기 위해 분투한다. 대령의 아내는 마을의 부자에게 아들이 남긴 닭을 팔아 생계를 유지하자고 하지만, 대령은 아들과 마을 젊은이들의 희망이자 정치적 자존심의 상징인 닭을 팔고 싶지 않다. 그런 어느 날, 집에 먹을 것은 아무것도 남지 않고, 이제 닭을 파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 과연 그는 어떻게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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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의 중요한 배경은 콜롬비아의 군사 독재 정권에 있다. 소설 속 묘사되는 밤 11시의 통행금지, 교회의 영화 상영 금지, 경찰의 불시 단속 등 군사정권이 낯설게 느껴지지 않는다. 이러한 상황에서 오십육 년 전 국가가 약속한 군인 연금은 도착하지 않고, 아들은 죽임을 당했으나 그 어떤 저항도 하지 못한다. 입에 먹을 것조차 없는데 자존심과 명예가 왜 중요하냐고 말할 수도 있다.

당장 다음 날 먹을 것이 없는 상황에서 결국 분노한 아내가 대령의 티셔츠 칼라를 움켜쥐고 흔들며 묻는다. 그럼 우리는 도대체 뭘 먹느냐고. 그 순간에도 대령은 "똥." 이라고 대답한다. 그럼에도 팔 수 없는 아들의 수탉과 이에 대한 대령의 고집은 그에게 남은 단 하나의 희망이자, 존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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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떠한 이야기가 가깝게 와닿지 않는다면, 공감할 수 있는 상황으로 치환해보면 된다. 625전쟁에 참전하여 군대를 지휘했던 대령, 국가를 위해 싸웠던 그를 위해 국가는 군인 연금을 약속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정부는 바뀌고, 군사 독재 정부가 세워졌다. 전쟁으로 인한 후유증과 가난은 그의 몫, 전쟁으로 정권에 아부하던 사람들(친일파?)은 모두 부자가 되어 호위호식하고 있다. 그에게 남은 것은 오직 죽은 아들이 남긴 닭 한 마리. 전쟁에 참여했던 공로를 주장하지도, 아들을 죽인 국가에 대항하지도 못하지만 당장 먹고살기 위해 마지막 남은 희망을 포기할 수 있을까. 그 자존심을 포기하고 구걸하여 당장 입에 풀칠을 했다고 하더라도 달라지는 것은 무엇일까?

산다는 건 이렇게 생동하게 비참하고, 억울한 것.

그래서 대령의 마지막 한 마디에 쓴웃음을 짓는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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