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몬 - 권여선 장편소설
권여선 지음 / 창비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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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삶의 갈피갈피에도 의미 같은 것이 있었을까. 아니, 없었겠지. 없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어떤 삶에도 특별한 의미 같은 건 없다고 생각한다. 그의 삶에도, 언니의 삶에도, 내 삶에도. 아무리 찾으려 해도, 지어내려 해도 없는 건 없는 거라고. 무턱대고 시작되었다 무턱대고 끝나는 게 삶이라고. _p.12

 

나는 궁금하다. 우리 삶에는 정말 아무런 의미도 없는걸까. 아무리 찾으려 해도, 지어내려 해도, 없는 건 없는 걸까. 그저 한만 남기는 세상인가. 혹시라도 살아 있다는 것, 희열과 공포가 교차하고 평온과 위험이 뒤섞이는 생명 속에 있다는 것, 그것 자체가 의미일 수는 없을까. _p.198

 

BOOK. 《레몬》 

 

 


 

 

때론 예기치 못한 사건 하나가 우리의 인생을 뒤흔들기도 한다. 이 작품은 2002년 여름, 열아홉살이던 해언이 공원에서 살해된 채 발견된 사건을 중심으로 주변 인물들이 겪게되는 삶을 담고있다. 이 사건은 '해언'의 죽음이 모두를 나머지 존재로 만들어버리며 각자의 삶을 주변부로 만들어버린다.

누가봐도 한 눈에 매혹될 만큼 아름다웠던 '해언'이 죽자, 동생 다운은 '언니'의 사진을 들고 성형을 반복한다. 다언은 언니와 닮지는 않았지만 “언덕길을 굴러 내려가는 자전거의 종처럼 당당당당 웃던 아이”였다. 그러나 점점 표정을 잃고 매일 밤 언니를 죽인 용의자를 취조하는 모습을 상상한다. 사건 당시 유력한 용의자였던 한만우는 태림과 함께 해언의 마지막 모습을 목격하고 수사를 받았다. 한만우가 증언하는 해언의 옷차림이 실제 살해 당시와 달라 경찰의 추궁을 받지만 증거가 발견되지 않았고, 해언이 마지막으로 목격됐을 당시 타고 있던 자동차의 운전자 신정준. 하지만 신정준에게는 확실한 알리바이가 있었다. 그렇게 사건은 미제로 남지만 그 비극에 얽힌 사람들의 삶은 송두리째 달라진다.

 

뉴스를 통해 어떠한 사건이 보도될 때 나는 대체로 그 주변의 인물에 대해 상상한다. 이를테면 저 가해자에게 딸이 있다면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혹은 저 피해자에게 남겨진 가족들은 앞으로 어떤 삶을 살아가게 될까? 하는 식이다. 아마 그들은 꽤 오랜시간 자신의 삶으로 돌아오지 못할 것이다. 아니 어쩌면 죽는 순간까지 자신의 삶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의미를 잃어버릴지도 모른다. 이렇게 극단적인 사건이 아니더라도 자신에게 꽤 충격적인 트라우마를 남긴 사건이나 말, 혹은 누군가의 눈빛만으로도 우리의 삶은 흔들릴 수 있다. 매우 취약하고 위험한 존재인 것이다.

 

이러한 위험앞에 살아가는 우리에게 이해할 수 없는 사건들이 일어난다고해서 우리의 삶이 정말 아무런 의미가 없는걸까? 작가는 꽤나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돌이켜보니 나도 지난 3년 정도의 시간동안 '어떠한 사건'에 메여 있었다. 그로인해 아무리 찾으려 해도 '의미'라는 것을 찾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정말 이렇게 매일매일 살아가는 게 삶의 의미일까? 정말 이게 전부일까? 그래서 작가가 말하는 '희열과 공포가 교차하고 평온과 위험이 뒤섞이는 생명 속에 있다는 것, 그것 자체가 의미일 수'있다는 말을 곱씹어보게 된다. 다언처럼 결코 이해할 수 없지만 언니의 죽음을 애도할 수 있게 됨으로 갑자기 찾아온 삶의 부당함을 받아들이는 것처럼.

 

당신에게 벗어나지 못한 '어떤 기억'이 있다면, 그래서 그 순간으로부터 아직 벗어나지 못했다면 이 이야기가 조금의 위로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무턱대고 시작한 인생이지만, 이 위태로움 속에서 무언가를 발견하게 될지도 모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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