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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위화 지음, 백원담 옮김 / 푸른숲 / 2007년 6월
평점 :
품절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앞두고 책상 앞에 한 장의 문구를 붙여두었다. '살아지는대로 살 것인가, 살아갈 것인가.' 열 여덟 살, 그 나이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치열하게 공부하고, 미래를 꿈꾸는 것이 전부였지만 열심히 공부해서 수능 성적만 잘 나오면 능동적으로 내가 원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 나는 삶을 개척해 나갈거야, 하루하루 정신없이 살다보니 벌써 노년이 되었다는 어른들의 말이 한심하게 여겨지던 나이였다. 지금 생각해봐도 지나치게 비장한 말이지만, 나는 지금도 때때로 저 말을 떠올린다. 나는 지금 삶을 살아 가고 있을까? 살아지는 대로 살고 있을까?
위화의 소설 『인생』은 망나니 같은 부잣집 도련님에서 가난한 농부로 전락한 푸구이라는 인물이 국공내전, 대약진 운동, 문화대혁명 등 급변하는 중국의 역사 속에서 가족과 재산을 모두 잃고 혼자 남아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는 이야기다. 부유한 지주의 외아들이었던 푸구이는 전문 도박꾼 룽얼에게 걸려들어 하룻밤 만에 전 재산을 잃고, 초가집에 사는 농사꾼 신세로 전락한다. 룽얼에게 땅을 빌려 생활하던 중 어머니의 병세로 성안에 의원을 부르러 갔다가 얼떨결에 국민당군에 끌려가 전쟁터를 전전하다 돌아오고, 어려운 살림에 학교를 보낸 아들 유칭은 현장의 부인이 출산 중 과다출혈로 위기에 처하자 스스로 수혈을 자원하는데 도리어 피를 너무 많이 뽑혀 과다 수혈로 인해 사망한다. 문화대혁명이 시작되고 말 못하는 딸 펑샤를 얼시에게 시집보내지만 펑샤의 임신 소식에 기뻐하던 것도 잠시, 아이를 낳던 펑샤는 유칭이 죽은 바로 그 병실에서 죽음을 맞고 곧이어 아내 자전도 세상을 떠난다. 그렇지만 푸구이는 다시 살아갈 힘을 낸다. 착한 사위 얼시와 손자 쿠건에 의지해 괜찮은 일상을 꾸려간다. 그러나 사위 얼시도 운반 일을 하다가 시멘트 판에 끼어 끔찍한 죽음을 맞고, 하나 남은 쿠건마저도 어려운 형편에 갑자기 삶은 콩을 많이 먹어 체해 죽는다.
"내 한평생을 돌이켜보면 역시나 순식간에 지나온 것 같아. 정말 평범하게 살아왔지. 아버지는 내가 가문을 빛내기를 바라셨지만, 당신은 사람을 잘못 보신 게야. 나는 말일세, 바로 이런 운명이었던 거라네. 젊었을 때는 조상님이 물려준 재산으로 거드름을 피우며 살았고, 그 뒤로는 점점 볼품없어졌지. 나는 그런 삶이 오히려 괜찮았다고 생각하네. 내 주변 사람들을 보게나. 룽얼과 춘성, 그들은 한바탕 위세를 떨치기는 했지만 제 명에 못 죽었지 않은가. 사람은 그저 평범하게 사는 게 좋은 거야." (p.279)
죽음을 목전에 두고 인생을 돌아본다면, 나는 내 삶을 뭐라고 회고할 수 있을까? 어떻게 살아야 푸구이처럼 스스로 '괜찮게 살았다'라고 여길 수 있을까? 경제가 급격하게 성장하던 시기에 학창시절을 보낸 나는 알게 모르게 능동적이고, 진취적인 것이 옳은 것, 수동적으로 순응적인 것을 실패한 것으로 간주하는 시선을 가지게 되었다. 그런 시선으로 바라본다면, 푸구이라는 인물은 철저하게 실패한 순응적인 인간이라고 볼 수 있다. 중국의 민족해방운동과 국민당과 공산당의 대내전, 토지개혁과 인민공사, 문화대혁명이라는 거대한 역사 한가운데 있지만 대다수의 평범한 중국 인민의 입장에서 하루하루를 묵묵히 살아내는 한 인물일 뿐이다. 그러나 푸구이는 뜻하지 않는 운명에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음에도 행복하다고 말한다. 비록 참담한 삶이었지만 도리어 '자기 손으로 먼저 가족들을 다 땅을 파고 묻어주었으니 이제 비로소 발을 뻗고 누워도 아무 걱정이 없는 다행스러운 일'(p.278) 이라고.
어떻게 푸구이는 고통스러운 운명의 무게에도 강인하게 견뎌낼 수 있었을까? 푸구이의 인생은 두 가지 큰 축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그것은 숙명처럼 주어진 고된 노동과 가족이다. 『인생』에서는 삶의 어려운 고난과 역경의 순간들을 가족이라는 끈끈한 사랑으로 극복해 나간다. 아내 자전의 힘든 노동을 안쓰러워하는 푸구이의 사랑, 전쟁터에서 돌아온 푸구이를 맞이하며 다시 태어나도 푸궤이의 아내가 되겠다는 자전. 호강 한 번 못시켜주고 평생 고통 속에서 살다가지만 그들에겐 부부간의 서로를 위하는 애정이 있었다. 또한 벙어리 딸 펑샤와 그의 남편 얼시도 대물림처럼 깊은 사랑을 보여준다. 펑샤의 곤한 운명을 성대한 혼례로 벗겨주고, 임신한 아내를 위해 자신이 먼저 모기에게 물린 뒤 아내를 편안하게 잠들게 하는 가난한 남편의 사랑, 아이를 낳다가 사경을 헤맬 때 아내를 먼저 살려달라며 울부짓는 얼시의 모습을 통해 무엇이 그들의 삶을 견디게 했는지 깨닫게 한다.
이 작품은 『인생』이라는 제목으로 국내에 출간되었지만, 원제는 '살아 간다는 것'이다. 위화는 '살아간다는 것'의 힘은 절규나 공격에서 나오는 게 아니라 인내. 즉, 생명이 우리에게 부여한 책임과 현실이 우리에게 준 행복과 고통, 무료함과 평범함을 견뎌내는 데서 나온다.(p.8)고 말한다. 위화는 "곁에서 보는 사람의 눈에는 푸궤이의 인생이 고생스러운 일생이었다. 하지만 푸구이 자신으로 말할 것 같으면 나는 그가 행복을 더 많이 느꼈을 것이라고 믿는다.”고 했다. 살아간다는 것 자체를 위해 살아가지, 그 이외의 어떤 것을 위해 살아가는 것은 아니라는 것.
어쩌면 올 한 해가 누군가에게는 고통스러운 해였을지 모르겠다. 조금 더 적극적이지 못했다고, 무엇도 이룬 게 없어 보이고, 고된 노동에 지친 마음으로 삶을 바라볼 수도 있다. 그렇지만 살아 간다는 것이 생명이 우리에게 부여한 책임과 현실, 행복과 고통, 무료함을 견뎌내는 것이라면 우리는 꽤 잘 살아가고 있는지 모르겠다. 살아지는대로 살면 어떠한가. 그때마다 가족과 친구의 사랑과 위로가 있고, 누구보다 죽을 이유가 많더라도 자신의 생명을 다해 살아가고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