닥터 도티의 삶을 바꾸는 마술가게 (리커버 특별판)
제임스 도티 지음, 주민아 옮김 / 판미동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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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마음에 고요와 평화가 찾아올 때, 제가 사랑받는다고 느낄 때, 그리고 사랑받을 만한 소중한 존재라고 느낄 때, 그제야 비로소 세상 모든 사람들이 저마다의 삶 속에서 상처와 고통을 받고 있음을, 그리고 그들 한 사람 한 사람이 모두 사랑받을 만한 가치가 있는 존재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제야 비로소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의 진정한 본질이란, 우리 모두가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임을 깨달았습니다.

우리가 서로 이어져 유대를 맺을 때, 마참내 사랑은 모든 두려움을 이겨 냅니다. 그 안에서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은 '사랑(LOVE)'이라는 강력한 무기를 장착한 '군대(ARMY)의 일원이 됩니다. 부디 이 사랑으로 연민의 세상을 위해 함께 모여 행동하는 아름다운 일원이 되어 주세요. (Be part of the ARMY.)

BOOK. 《닥터 도티의 삶을 바꾸는 마술가게》 중에서





좋은 책이 출간되었다고해서 반드시 많은 독자의 사랑받는 것은 아니다. 머리와 마음을 이해하는 새로운 과학적 관점과 흡인력 있는 스토리로 전세계 20개국에 출간된 『닥터 도티의 삶을 바꾸는 마술가게 (원제: INTO THE MAGIC SHOP)』는 사실 국내에서는 많은 주목을 받지 못한 책 중에 하나였다. The magical time is coming. Come to the Magic Shop. 2017 KBS가요대축제에서 BTS의 'INTO THE MAGIC SHOP' 스포일러 영상이 공개되기 전까지.

그 이후 'Fake Love'의 뮤직 비디오와 '매직샵' 가사의 모티브로 알려지면서 이 책은 세계적인 관심을 받았고, 루스의 매직샵은 많은 이들에게 긍정의 메시지를 전했다. 이 책의 저자인 스탠퍼드 대학의 제임스 도티 교수는 트위터를 통해 “thank you for using my book as inspiration(내 책에서 영감을 얻어 주어서 감사하다.)”이라는 문구를 남겨 감사를 표하기도 했다.

이 책은 방탄소년단이 전하는 ‘러브 유어셀프(LOVE YOURSELF)’와 주제가 맞닿아있다. ‘우리가 삶을 더 나은 방향으로 바꾸는 유일한 방법은 나 자신을 사랑하고 나아가 다른 사람의 삶을 바뀌게 하는 것, 즉 세상에 대한 공감과 연민의 힘을 갖는 것이며, 이러한 타인과의 연결이 각자 마음의 상처뿐 아니라 주변 사람들의 마음까지 치유하는 진정한 마술’이라는 것.

『닥터 도티의 삶을 바꾸는 마술가게』을 모르는 사람은 많지 않겠지만, 지난 한 해 동안 많은 관심을 보내준 ARMY들에게 감사의 메시지를 담은 특별 에디션이 제작되었다. '따뜻한 차 한 잔'과 '은하수'를 연상하게 하는 표지 곳곳에서는 BTS와 연관된 상징들을 발견할 수 있다. 특히 책등에 예쁘게 새겨진 '스메랄도'는 나의 강력한 주장에 요렇게 예쁘게 삽입되었다.🤣🤣

많은 이들의 애정을 담아 오랫동안 준비한 특별판으로 제작 과정을 지켜봐서 그런지 나또한 애정이 많은 책이다. 그래서 나도 소중한 마음을 담아 지인들에게 선물했다. 비록 한정판으로 많은 수량을 제작하지는 않았지만, 지치고 주저앉아있는 누군가에게 힘이 될 수 있는 선물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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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위화 지음, 백원담 옮김 / 푸른숲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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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수학능력시험을 앞두고 책상 앞에 한 장의 문구를 붙여두었다. '살아지는대로 살 것인가, 살아갈 것인가.' 열 여덟 살, 그 나이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치열하게 공부하고, 미래를 꿈꾸는 것이 전부였지만 열심히 공부해서 수능 성적만 잘 나오면 능동적으로 내가 원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 나는 삶을 개척해 나갈거야, 하루하루 정신없이 살다보니 벌써 노년이 되었다는 어른들의 말이 한심하게 여겨지던 나이였다. 지금 생각해봐도 지나치게 비장한 말이지만, 나는 지금도 때때로 저 말을 떠올린다. 나는 지금 삶을 살아 가고 있을까? 살아지는 대로 살고 있을까?



위화의 소설 『인생』은 망나니 같은 부잣집 도련님에서 가난한 농부로 전락한 푸구이라는 인물이 국공내전, 대약진 운동, 문화대혁명 등 급변하는 중국의 역사 속에서 가족과 재산을 모두 잃고 혼자 남아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는 이야기다. 부유한 지주의 외아들이었던 푸구이는 전문 도박꾼 룽얼에게 걸려들어 하룻밤 만에 전 재산을 잃고, 초가집에 사는 농사꾼 신세로 전락한다. 룽얼에게 땅을 빌려 생활하던 중 어머니의 병세로 성안에 의원을 부르러 갔다가 얼떨결에 국민당군에 끌려가 전쟁터를 전전하다 돌아오고, 어려운 살림에 학교를 보낸 아들 유칭은 현장의 부인이 출산 중 과다출혈로 위기에 처하자 스스로 수혈을 자원하는데 도리어 피를 너무 많이 뽑혀 과다 수혈로 인해 사망한다. 문화대혁명이 시작되고 말 못하는 딸 펑샤를 얼시에게 시집보내지만 펑샤의 임신 소식에 기뻐하던 것도 잠시, 아이를 낳던 펑샤는 유칭이 죽은 바로 그 병실에서 죽음을 맞고 곧이어 아내 자전도 세상을 떠난다. 그렇지만 푸구이는 다시 살아갈 힘을 낸다. 착한 사위 얼시와 손자 쿠건에 의지해 괜찮은 일상을 꾸려간다. 그러나 사위 얼시도 운반 일을 하다가 시멘트 판에 끼어 끔찍한 죽음을 맞고, 하나 남은 쿠건마저도 어려운 형편에 갑자기 삶은 콩을 많이 먹어 체해 죽는다.



"내 한평생을 돌이켜보면 역시나 순식간에 지나온 것 같아. 정말 평범하게 살아왔지. 아버지는 내가 가문을 빛내기를 바라셨지만, 당신은 사람을 잘못 보신 게야. 나는 말일세, 바로 이런 운명이었던 거라네. 젊었을 때는 조상님이 물려준 재산으로 거드름을 피우며 살았고, 그 뒤로는 점점 볼품없어졌지. 나는 그런 삶이 오히려 괜찮았다고 생각하네. 내 주변 사람들을 보게나. 룽얼과 춘성, 그들은 한바탕 위세를 떨치기는 했지만 제 명에 못 죽었지 않은가. 사람은 그저 평범하게 사는 게 좋은 거야." (p.279)



죽음을 목전에 두고 인생을 돌아본다면, 나는 내 삶을 뭐라고 회고할 수 있을까? 어떻게 살아야 푸구이처럼 스스로 '괜찮게 살았다'라고 여길 수 있을까? 경제가 급격하게 성장하던 시기에 학창시절을 보낸 나는 알게 모르게 능동적이고, 진취적인 것이 옳은 것, 수동적으로 순응적인 것을 실패한 것으로 간주하는 시선을 가지게 되었다. 그런 시선으로 바라본다면, 푸구이라는 인물은 철저하게 실패한 순응적인 인간이라고 볼 수 있다. 중국의 민족해방운동과 국민당과 공산당의 대내전, 토지개혁과 인민공사, 문화대혁명이라는 거대한 역사 한가운데 있지만 대다수의 평범한 중국 인민의 입장에서 하루하루를 묵묵히 살아내는 한 인물일 뿐이다. 그러나 푸구이는 뜻하지 않는 운명에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음에도 행복하다고 말한다. 비록 참담한 삶이었지만 도리어 '자기 손으로 먼저 가족들을 다 땅을 파고 묻어주었으니 이제 비로소 발을 뻗고 누워도 아무 걱정이 없는 다행스러운 일'(p.278) 이라고.



어떻게 푸구이는 고통스러운 운명의 무게에도 강인하게 견뎌낼 수 있었을까? 푸구이의 인생은 두 가지 큰 축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그것은 숙명처럼 주어진 고된 노동과 가족이다. 『인생』에서는 삶의 어려운 고난과 역경의 순간들을 가족이라는 끈끈한 사랑으로 극복해 나간다. 아내 자전의 힘든 노동을 안쓰러워하는 푸구이의 사랑, 전쟁터에서 돌아온 푸구이를 맞이하며 다시 태어나도 푸궤이의 아내가 되겠다는 자전. 호강 한 번 못시켜주고 평생 고통 속에서 살다가지만 그들에겐 부부간의 서로를 위하는 애정이 있었다. 또한 벙어리 딸 펑샤와 그의 남편 얼시도 대물림처럼 깊은 사랑을 보여준다. 펑샤의 곤한 운명을 성대한 혼례로 벗겨주고, 임신한 아내를 위해 자신이 먼저 모기에게 물린 뒤 아내를 편안하게 잠들게 하는 가난한 남편의 사랑, 아이를 낳다가 사경을 헤맬 때 아내를 먼저 살려달라며 울부짓는 얼시의 모습을 통해 무엇이 그들의 삶을 견디게 했는지 깨닫게 한다. 



이 작품은 『인생』이라는 제목으로 국내에 출간되었지만, 원제는 '살아 간다는 것'이다. 위화는 '살아간다는 것'의 힘은 절규나 공격에서 나오는 게 아니라 인내. 즉, 생명이 우리에게 부여한 책임과 현실이 우리에게 준 행복과 고통, 무료함과 평범함을 견뎌내는 데서 나온다.(p.8)고 말한다. 위화는 "곁에서 보는 사람의 눈에는 푸궤이의 인생이 고생스러운 일생이었다. 하지만 푸구이 자신으로 말할 것 같으면 나는 그가 행복을 더 많이 느꼈을 것이라고 믿는다.”고 했다. 살아간다는 것 자체를 위해 살아가지, 그 이외의 어떤 것을 위해 살아가는 것은 아니라는 것.



어쩌면 올 한 해가 누군가에게는 고통스러운 해였을지 모르겠다. 조금 더 적극적이지 못했다고, 무엇도 이룬 게 없어 보이고, 고된 노동에 지친 마음으로 삶을 바라볼 수도 있다. 그렇지만 살아 간다는 것이 생명이 우리에게 부여한 책임과 현실, 행복과 고통, 무료함을 견뎌내는 것이라면 우리는 꽤 잘 살아가고 있는지 모르겠다. 살아지는대로 살면 어떠한가. 그때마다 가족과 친구의 사랑과 위로가 있고, 누구보다 죽을 이유가 많더라도 자신의 생명을 다해 살아가고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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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녀 이야기 (리커버 일반판, 무선) 시녀 이야기
마거릿 애트우드 지음, 김선형 옮김 / 황금가지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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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세월 동안 성 권력에 정당성을 부여해 온 것은 '성경'의 해석일 것이다. 『시녀 이야기』에서 중요한 모티브로 차용되는 이 성경 구절은 태초의 아담과 하와의 원죄로 거슬러 올라간다. "여자는 일체 순종함으로 조용히 배우라. 여자가 가르치는 것과 남자를 주관하는 것을 허락하지 아니하노니 오직 조용할지니라. 이는 아담이 먼저 지음을 받고 하와가 그 후며. 아담이 속은 것이 아니고 여자가 속아 죄에 빠졌음이라. 그러나 여자들이 만일 정숙함으로써 믿음과 사랑과 거룩함에 거하면 그의 해산함으로 구원을 얻으리라." (딤전 2:12-15)

『시녀 이야기』는 전지구적인 전쟁과 환경 오염으로 출생률이 급격하게 감소하면서 성경의 가부장제를 근본으로한 전체주의 국가의 출현으로 시작된다. 길었던 전쟁 후 국가의 통제로 여성들은 직업을 모두 잃고, 소유의 재산이 모두 남편에게 귀속되며 남성의 소유물로 전락하게 된다. 여성들은 하녀와 시녀, 아내 등 여러 계급으로 분류되었고 오직 종족 번식을 위해 자궁이라는 생식 기관을 가진 도구로 보았다. 그렇기 때문에 아내가 임신을 하지 못할 경우, 절차에 따라 시녀를 배급받고 시녀를 통해 아이를 얻었고, 이러한 해산의 과정을 구원을 얻는 거룩한 행위라 규정하며 정당성을 부여하였다.

"내 빨간 치마는 허리께까지 걷어올려지지만, 더 이상은 올라가지 않는다. 그 밑에서 사령관이 오입질을 하고 있다. 그가 범하고 있는 건 내 아랫도리다. 정사라고는 말할 수 없다. 성교라는 말도 적절하다고 할 수 없다. (중략) 이제 발기와 오르가즘은 성교의 필수 조건이라고 여기지는 않는다. 오히려 그건 경박한 마음을 나타내는 징후일 뿐이다. 지금 이 일은 절대 오락이 아니다. 사령관에게조차 오락은 아니다. 이 일은 진지한 과업이다 사령관 역시 자신의 의무를 행하고 있다. 이 일이 누구한테 더 끔찍할까? 그녀일까? 나일까?(p.167)

인류에게 가장 중요하고 가치있는 목표는 무엇이었을까? 많은 사람들은 동물적인 '번식'이라고 보았다. 인류를 유지하고 종족을 번식하는 것이 가장 본능적이고 중요한 가치였다고. 그렇게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작품을 보면 '번식'의 무용함을 깨닫게 된다. 대체 무엇을 위하여 종족을 유지하고 번식한다는 말인가?

『시녀 이야기』의 길리어드에서는 '시녀'의 존재를 창세기의 근거하였다. "아브람의 아내 사래는 출산하지 못하였고 그에게 한 여종이 있으니 애굽 사람이요 이름은 하갈이라. 사래가 아브람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내 출산을 허락하지 아니하셨으니 원하건대 내 여종에게 들어가라 내가 혹 그로 말미암아 자녀를 얻을까 하노라 하매 아브람이 사래의 말을 들으니라." (창16:1-2) 하지만 실제 성경의 이 구절은 사래에게 자녀를 주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지 못함'으로 일어난 불순종의 사건이었다. 이처럼 인류는 성경의 일부분을 제멋대로 해석하고, 권력에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한 근거로 이용되었다. 그것을 근거로 오랜 세월 여성은 남성에게 복종해야 하는 종속된 소유가 되었고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없었다.

하지만 실제 성경은 이렇게 말한다.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그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주심 같이 하라. 그러나 너희도 각각 자기의 아내 사랑하기를 자신 같이 하고 아내도 자기 남편을 존경하라" (엡5:22,25,33)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그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주심같이' 라는 말에는 세상 그 무엇보다 큰 사랑이 담겨있다. 남성과 여성 사이에 어떠한 권력도, 억압도 존재할 수 없다. 남성과 여성 사이에 균형이 깨지고 '사랑'이 사라지면 어떻게 되는가? 우리는 죽어간다. "섹스를 못해서 죽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우리는 사랑의 결핍으로 죽어간다." (p.180) 인류가 존재해 온 가치는 '사랑'에 근거하기 때문에.

실제 이 작품은 성 권력의 작동으로 목소리를 낼 수 없었던 여성의 삶을 드러낸 페미니즘 소설이라고 볼 수 있지만, 나는 남/녀 역할에서 균일한 균형이 깨어졌을 때 우리가 잃게 되는 것들에 대해 주목하고 싶다. 『시녀 이야기』에 등장하는 어떤 인물도 '감정'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 누구도 행복할 수 없다. 그 권력과 억압 아래에서. "이번에는 누가 빨래를 정리할 차례인지, 변기 청소 당번은 누구인지, 그렇게 사소하고 일상적인 문제를 놓고 싸우고 싶다. 뭐가 중요한지, 뭐가 하찮은 문제인지 따위를 놓고. 얼마나 기막힌 호강일까. (p.345) 완벽한 균형은 존재할 수 없지만, 서로 존중하고 사랑하고 이해하려는 줄다리기 속에서 우리는 얼마나 행복했는가. 그 균형은 '그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주심 같'이 사랑함으로 유지된다. 오브프레드와 닉은 서로 '사랑한다'는 말을 입 밖에 꺼낸 적이 없다. 그것은 너무도 위험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닉은 자신이 목이 매인 채 장벽에 매달릴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위험에 처한 오브프레드를 구해내고자 한다.

생동하는 감정들은 살아있음을 증명한다. 감정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살아있지 않다는 의미이기도하다. 그래서 성 권력이 작동되어 남/녀의 균형이 깨지면 우리는 행복할 수 없다. 인간은 그렇게 지음받지 않았다. 무모하고 이해할 수 없을지라도 사랑하고, 위험을 자처하고 손해를 감수하는 것. 우리는 그렇게 살아왔다. 그리고 앞으로도 이 균형을 위해 우리는 다투어가며 노력해나갈 것이다. 종족 번식은 결코 인류의 목표가 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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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봄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12
최은미 지음 / 현대문학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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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처음으로 썼던 습작 소설의 제목은 '엄마의 바다'였다. 주인공 '나'의 엄마는 늘그막에 치매에 걸려 종종 기억을 잃고 길을 헤매었고, 또 어떤 날은 다른 집 앞에서 하염없이 누군가를 기다리기도 했다. 엄마가 기억을 잃은 날이면 어김없이 찾는 그곳에서 누구를 기다리는 지 알고 있었다. 홀로 나를 키워오는 동안에도 엄마는 끝내 돌아오지 않는 아버지를 묵묵히 기다려왔으니까. 한 번도 먼저 찾아가는 법이 없이 지속된 엄마의 기다림은 나에게 상처로 남았다. 주인공 '나'는 엄마의 상처와 나의 상처 사이에서 수없이 머뭇거리며 엄마의 삶을 닮아가지만, 당시 엄마와 비슷한 상황에 놓이자 나는 엄마의 삶을 조금이나마 이해하게 되고, 자신은 엄마와 다른 선택을 하며 트라우마에서 벗어나는 내용이었다.


나는 왜 이런 소설을 썼을까? 엄마를 이해하고 싶었을까, 아니면 엄마와 다른 선택을 하고 싶었던 걸까. 이유는 더이상 기억나지 않지만, 많은 아마추어 작가들이 자신의 어머니 혹은 아버지를 넘어서는 내용을 습작에서 많이 쓴다고 했다. 아마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 중 하나이지 않았을까? 나는 그 당시 소설 속 상황과 면모는 전혀 다르지만, 내가 성장하고 어른이 되어 가면서 엄마의 삶을 운명처럼 닮아간다고 느끼고 있었고 절대 이해할 수 없다고 여겼던 엄마의 많은 부분을 어른이 되어가며 이해하고 받아들이게 되었던 것 같다. 그 선택들이 최선이었음을.


『어제는 봄』에는 등단 10년차이지만, 등단 이후 한 번도 청탁을 받거나 작품이 실린 적은 없는 주인공 '나'의 이야기이다. '나'는 오래 전 교생 실습을 위해 부모님이 계시던 양주로 돌아와 한 달을 지내게 되면서 부모님의 불화를 깨닫게 된다.  그러던 어느 날 찾아온  엄마의 지인은 나에게 엄마가 다른 남자와 몸을 섞고 있다며 엄마의 부정不貞을 알린다. 나는 아빠에게 말하지 말라고 부탁하지만, 그후 연쇄적으로 아빠의 자살과 엄마의 부정을 알린 지인의 죽음으로 이 모든 고통이 모두 엄마의 부정에서부터 시작되었다고 여긴다.


그 후 양주에서 일어났던 살인 사건을 소재로 소설로 쓰기 위해 취재하던 중 경진서의 이선우 경사를 알게 되고, 꼬박꼬박 '작가님'이라고 부르며 질문에 정성껏 답해주는 이선우와 친밀해진다. 선우는 어느 날 자신의 어머니의 외도로 힘들었던 과거를 털어놓고, 나 역시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던 엄마의 얘기를 선우에게 건넨다. 양주에서 일어났던 살인 사건을 소설로 쓰기 위해 취재하던 중 경진서의 이선우 경사를 알게 되고, 꼬박꼬박 '작가님' 이라고 부르며 질문에 정성껏 답해주는 이선우와 친밀해진다. 선우는 어느 날 자신의 어머니의 외도로 힘들었던 시기를 털어놓고 나 역시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던 엄마의 얘기를 선우에게 건넨다. 엄마의 트라우마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이해하기 위해 10년 째 소설을 쓰고 있지만, 그럴수록 선우에게 이끌려 그토록 증오하던 엄마와 닮아가는 자신을 발견한다.


이선우는 알고 있었다. 내가 멈추지 않고 자신한티 직진해 갈 것이라는 것을. 그리고 그날 새로 알게 된다. 내가 스스로 행동에 대해 갖게 될 생각이 일반적인 수준의 죄책감을 벗어난 것임을. 선우 자신을 사랑하는 순간 내가 분열되어버릴 것을, 몸을 갈라버릴 수도 있는 혐어와 증오를 안은 채 자폭할 것을, 그래서 자신 또한 같이 찢겨 나갈 것이라는 걸 알아버린다.(p.107)


'나'는 모든 고통의 원인이었던 엄마의 부정과 내 모습이 가까워 질수록 결국  자신이 지닌 혐오와 증오를 모두 안은 채 스스로 분열되어버릴 것을 깨닫는다. 그리고 스물 세살의 딸의 모습을 상상한다. '엄마의 외도와 아빠의 자살과 잘 모르는 누군가에게 난생처음 느꼈던 살인 충동. 그것이 한꺼번에 왔던 스물세 살의 봄을 나는 아이에게 들키고 싶지 않'(p.98)기에 이선우를 떠나기로 결심한다.


나를 극복하고 너에게 가는 길은 이렇게도 멀어서, 나는 여전히 매일매일 1층으로, 엘리베이터 밖으로, 유리문 너머로, 니가 나를 기다리던 곳으로, 힘을 다해 달려 나간다. (p.153)


이 이야기에는 어떠한 결말도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스스로를 옭아매던 트라우마를 극복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어쩌면 이 이야기에서처럼 그 상황이 되어 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것, 그럼에도 나는 다른 선택을 하는 것이 아닐까? 주인공 '나'도 10년 동안 같은 이야기를 소설로 쓰며 엄마를 이해하고자 안간힘을 쓴다. 나도 스무 살 무렵 비슷한 이야기를 썼던 것을 떠올려 보면 당시 나를 옭아매던 트라우마가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결국 누군가를 이해하고 마음 깊이 화해하기 위해서 글을 썼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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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봄 인문학 수업 - 인간다움에 대해 아이가 가르쳐준 것들
김희진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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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한 주 동안 잠을 설치는 밤이 많았다. 월요일 저녁 뒤늦게 보게 된 '그것이 알고싶다' 방송과 그 와중에 알게된 구하라의 소식 때문이었다. 지난 주 찾았던 Love Poem 콘서트에서 아이유는 힘겹게 설리에 대한 이야기를 언급했다. 노래를 부르는 중간중간 그 곡을 만들고 가사를 쓰며 함께 나누었던 추억들이 떠오르고, 공연에 찾아와 노래를 들어주던 날들이 문득문득 생각나 울먹였다. 머뭇거리는 침묵 속에 숨겨진 말들을, 감정을 우리는 느낄 수 있었다.


'그것이 알고싶다' 지난 편은 설리의 죽음에 대한 취재였다. 설리를 색다른 방법으로 추모하기 위해 '설리와 사귀는 사이었다.'는 허위사실을 했다는 한 유튜버는 '악플 정도로 힘들어할거라면 연예인하지 말았어야 한다.'고 말했다. 제작진이 찾아간 악플러와 수백 개의 자극적인 기사를 쏟아낸 신문사 그 누구도 자신의 행동이 어떤 결과를 일으킬지 몰랐다고 했다. 누군가는 '이정도는 견딜 줄' 알았다. 욕먹고 싶지 않으면 '그런 행동을 하지 않으면' 된다고. '이 정도'와 '그런 행동'이란 말 사이에서 나는 잠을 이루지 못했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이런 나의 질문에 친구는 문득 '사람들에게 인문학적 성찰이 부족한 게 아닐까?'라는 말을 했다. 우리는 성장하면서 '나는 왜 존재하는가?', '불완전한 사람들이 왜 이 세상에 존재할까?', '인간다움이란 무엇인가'와 같은 인문학적 고민들을 하게된다. '돈'이 있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세상의 목소리 가운데서도 그보다 가치있는 것들을 찾고, 슬픔에 빠진 누군가를 위해 기꺼이 손을 내밀어주며, 스스로 반성하고 후회하며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 고민하는 시간들이 우리에게는 분명 있었는데.


몇 달전 회사 선배가 『돌봄 인문학 수업』을 출간했다. 여러 문학상 수상으로 바빴던 시기라 읽어보지 못하고 책장에 꽂아두었다가 문득 '인문학'이라는 단어를 발견하고 읽게 되었다. 그런데 이 책은 육아에 대한 이야기라기보다 나보다 약한 존재인 아이를 돌보고 양육하면서 스스로 갖고 있던 인문학적 질문들에 대해 답을 찾고 배워가는 과정을 쓴 글이었다. 자신보다 약한 생명을 어떻게 보살펴야 할지, 하나의 주체적인 인격으로 아이를 대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 아이에게 자신과 다른 타인에 어떻게 이해하도록 가르쳐주어야 할지, 세상의 목소리와 달리 살아가는데 정말로 가치있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내 아이가 독특한 그 아이만의 가치로 귀하다고 느끼는 만큼, 나 자신도, 내 가족도, 내 친구들과 동료들도, 또 다른 사람들도 그 고유함으로 귀하다고 진심으로 느끼고 인정하게 되기를 바란다."(p.296)


내가 때때로 누군가를 '인격적'으로 대하지 않는다는 것을 서른이 다 되어서야 깨달았다. 내가 사랑받고 자라서 나의 부모님과 친구들에게 소중하고 귀한 존재인 것처럼, 모든 사람들이 그렇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래서 때때로 이해할 수 없는 상대를 향해서 화를 내기도 하고, 나와 다름을 틀렸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런데 아무리 부족해보이고, 내 기준에 싫은 사람일지라도 누군가에게 너무 귀한 소중한 사람이라는 인식은 중요했다. 그 이후로 나는 왠만한 일에 화를 잘 내지 않게 되었다. '그것이 알고싶다'에서 인터뷰한 한 악플러의 말이 생각난다. 사회적으로 모두 브라를 착용하는데 혼자 그렇지 않으니 욕을 먹는 것은 당연한 것이 아니냐고.


"양육은 가장 궁극적인 차원에서 결국은 타자를 동일화하지 않은 채로 수용하는 것, 타자를 고스란히 타자인 채로 존재하게 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그리고 나는 이제야 뒤늦게, 양육을 통해서, 다른 타자들의 존재와 출현에 대해서도 겸손과 환대를 시도해보는 법을 배우고 있다."(p.237)


인간다움이란 무엇일까, 세상은 때때로 우리에게 못되게 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사랑하며 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것말고는 삶에서 더 가치있는 것을 찾지 못했다. 아직까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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