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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봄 ㅣ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12
최은미 지음 / 현대문학 / 2019년 3월
평점 :

내가 처음으로 썼던 습작 소설의 제목은 '엄마의 바다'였다. 주인공 '나'의 엄마는 늘그막에 치매에 걸려 종종 기억을 잃고 길을 헤매었고, 또 어떤 날은 다른 집 앞에서 하염없이 누군가를 기다리기도 했다. 엄마가 기억을 잃은 날이면 어김없이 찾는 그곳에서 누구를 기다리는 지 알고 있었다. 홀로 나를 키워오는 동안에도 엄마는 끝내 돌아오지 않는 아버지를 묵묵히 기다려왔으니까. 한 번도 먼저 찾아가는 법이 없이 지속된 엄마의 기다림은 나에게 상처로 남았다. 주인공 '나'는 엄마의 상처와 나의 상처 사이에서 수없이 머뭇거리며 엄마의 삶을 닮아가지만, 당시 엄마와 비슷한 상황에 놓이자 나는 엄마의 삶을 조금이나마 이해하게 되고, 자신은 엄마와 다른 선택을 하며 트라우마에서 벗어나는 내용이었다.
나는 왜 이런 소설을 썼을까? 엄마를 이해하고 싶었을까, 아니면 엄마와 다른 선택을 하고 싶었던 걸까. 이유는 더이상 기억나지 않지만, 많은 아마추어 작가들이 자신의 어머니 혹은 아버지를 넘어서는 내용을 습작에서 많이 쓴다고 했다. 아마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 중 하나이지 않았을까? 나는 그 당시 소설 속 상황과 면모는 전혀 다르지만, 내가 성장하고 어른이 되어 가면서 엄마의 삶을 운명처럼 닮아간다고 느끼고 있었고 절대 이해할 수 없다고 여겼던 엄마의 많은 부분을 어른이 되어가며 이해하고 받아들이게 되었던 것 같다. 그 선택들이 최선이었음을.
『어제는 봄』에는 등단 10년차이지만, 등단 이후 한 번도 청탁을 받거나 작품이 실린 적은 없는 주인공 '나'의 이야기이다. '나'는 오래 전 교생 실습을 위해 부모님이 계시던 양주로 돌아와 한 달을 지내게 되면서 부모님의 불화를 깨닫게 된다. 그러던 어느 날 찾아온 엄마의 지인은 나에게 엄마가 다른 남자와 몸을 섞고 있다며 엄마의 부정不貞을 알린다. 나는 아빠에게 말하지 말라고 부탁하지만, 그후 연쇄적으로 아빠의 자살과 엄마의 부정을 알린 지인의 죽음으로 이 모든 고통이 모두 엄마의 부정에서부터 시작되었다고 여긴다.
그 후 양주에서 일어났던 살인 사건을 소재로 소설로 쓰기 위해 취재하던 중 경진서의 이선우 경사를 알게 되고, 꼬박꼬박 '작가님'이라고 부르며 질문에 정성껏 답해주는 이선우와 친밀해진다. 선우는 어느 날 자신의 어머니의 외도로 힘들었던 과거를 털어놓고, 나 역시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던 엄마의 얘기를 선우에게 건넨다. 양주에서 일어났던 살인 사건을 소설로 쓰기 위해 취재하던 중 경진서의 이선우 경사를 알게 되고, 꼬박꼬박 '작가님' 이라고 부르며 질문에 정성껏 답해주는 이선우와 친밀해진다. 선우는 어느 날 자신의 어머니의 외도로 힘들었던 시기를 털어놓고 나 역시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던 엄마의 얘기를 선우에게 건넨다. 엄마의 트라우마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이해하기 위해 10년 째 소설을 쓰고 있지만, 그럴수록 선우에게 이끌려 그토록 증오하던 엄마와 닮아가는 자신을 발견한다.
이선우는 알고 있었다. 내가 멈추지 않고 자신한티 직진해 갈 것이라는 것을. 그리고 그날 새로 알게 된다. 내가 스스로 행동에 대해 갖게 될 생각이 일반적인 수준의 죄책감을 벗어난 것임을. 선우 자신을 사랑하는 순간 내가 분열되어버릴 것을, 몸을 갈라버릴 수도 있는 혐어와 증오를 안은 채 자폭할 것을, 그래서 자신 또한 같이 찢겨 나갈 것이라는 걸 알아버린다.(p.107)
'나'는 모든 고통의 원인이었던 엄마의 부정과 내 모습이 가까워 질수록 결국 자신이 지닌 혐오와 증오를 모두 안은 채 스스로 분열되어버릴 것을 깨닫는다. 그리고 스물 세살의 딸의 모습을 상상한다. '엄마의 외도와 아빠의 자살과 잘 모르는 누군가에게 난생처음 느꼈던 살인 충동. 그것이 한꺼번에 왔던 스물세 살의 봄을 나는 아이에게 들키고 싶지 않'(p.98)기에 이선우를 떠나기로 결심한다.
나를 극복하고 너에게 가는 길은 이렇게도 멀어서, 나는 여전히 매일매일 1층으로, 엘리베이터 밖으로, 유리문 너머로, 니가 나를 기다리던 곳으로, 힘을 다해 달려 나간다. (p.153)
이 이야기에는 어떠한 결말도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스스로를 옭아매던 트라우마를 극복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어쩌면 이 이야기에서처럼 그 상황이 되어 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것, 그럼에도 나는 다른 선택을 하는 것이 아닐까? 주인공 '나'도 10년 동안 같은 이야기를 소설로 쓰며 엄마를 이해하고자 안간힘을 쓴다. 나도 스무 살 무렵 비슷한 이야기를 썼던 것을 떠올려 보면 당시 나를 옭아매던 트라우마가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결국 누군가를 이해하고 마음 깊이 화해하기 위해서 글을 썼을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