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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녀 이야기 (리커버 일반판, 무선) ㅣ 시녀 이야기
마거릿 애트우드 지음, 김선형 옮김 / 황금가지 / 2018년 4월
평점 :
오랜 세월 동안 성 권력에 정당성을 부여해 온 것은 '성경'의 해석일 것이다. 『시녀 이야기』에서 중요한 모티브로 차용되는 이 성경 구절은 태초의 아담과 하와의 원죄로 거슬러 올라간다. "여자는 일체 순종함으로 조용히 배우라. 여자가 가르치는 것과 남자를 주관하는 것을 허락하지 아니하노니 오직 조용할지니라. 이는 아담이 먼저 지음을 받고 하와가 그 후며. 아담이 속은 것이 아니고 여자가 속아 죄에 빠졌음이라. 그러나 여자들이 만일 정숙함으로써 믿음과 사랑과 거룩함에 거하면 그의 해산함으로 구원을 얻으리라." (딤전 2:12-15)
『시녀 이야기』는 전지구적인 전쟁과 환경 오염으로 출생률이 급격하게 감소하면서 성경의 가부장제를 근본으로한 전체주의 국가의 출현으로 시작된다. 길었던 전쟁 후 국가의 통제로 여성들은 직업을 모두 잃고, 소유의 재산이 모두 남편에게 귀속되며 남성의 소유물로 전락하게 된다. 여성들은 하녀와 시녀, 아내 등 여러 계급으로 분류되었고 오직 종족 번식을 위해 자궁이라는 생식 기관을 가진 도구로 보았다. 그렇기 때문에 아내가 임신을 하지 못할 경우, 절차에 따라 시녀를 배급받고 시녀를 통해 아이를 얻었고, 이러한 해산의 과정을 구원을 얻는 거룩한 행위라 규정하며 정당성을 부여하였다.
"내 빨간 치마는 허리께까지 걷어올려지지만, 더 이상은 올라가지 않는다. 그 밑에서 사령관이 오입질을 하고 있다. 그가 범하고 있는 건 내 아랫도리다. 정사라고는 말할 수 없다. 성교라는 말도 적절하다고 할 수 없다. (중략) 이제 발기와 오르가즘은 성교의 필수 조건이라고 여기지는 않는다. 오히려 그건 경박한 마음을 나타내는 징후일 뿐이다. 지금 이 일은 절대 오락이 아니다. 사령관에게조차 오락은 아니다. 이 일은 진지한 과업이다 사령관 역시 자신의 의무를 행하고 있다. 이 일이 누구한테 더 끔찍할까? 그녀일까? 나일까?(p.167)
인류에게 가장 중요하고 가치있는 목표는 무엇이었을까? 많은 사람들은 동물적인 '번식'이라고 보았다. 인류를 유지하고 종족을 번식하는 것이 가장 본능적이고 중요한 가치였다고. 그렇게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작품을 보면 '번식'의 무용함을 깨닫게 된다. 대체 무엇을 위하여 종족을 유지하고 번식한다는 말인가?
『시녀 이야기』의 길리어드에서는 '시녀'의 존재를 창세기의 근거하였다. "아브람의 아내 사래는 출산하지 못하였고 그에게 한 여종이 있으니 애굽 사람이요 이름은 하갈이라. 사래가 아브람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내 출산을 허락하지 아니하셨으니 원하건대 내 여종에게 들어가라 내가 혹 그로 말미암아 자녀를 얻을까 하노라 하매 아브람이 사래의 말을 들으니라." (창16:1-2) 하지만 실제 성경의 이 구절은 사래에게 자녀를 주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지 못함'으로 일어난 불순종의 사건이었다. 이처럼 인류는 성경의 일부분을 제멋대로 해석하고, 권력에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한 근거로 이용되었다. 그것을 근거로 오랜 세월 여성은 남성에게 복종해야 하는 종속된 소유가 되었고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없었다.
하지만 실제 성경은 이렇게 말한다.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그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주심 같이 하라. 그러나 너희도 각각 자기의 아내 사랑하기를 자신 같이 하고 아내도 자기 남편을 존경하라" (엡5:22,25,33)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그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주심같이' 라는 말에는 세상 그 무엇보다 큰 사랑이 담겨있다. 남성과 여성 사이에 어떠한 권력도, 억압도 존재할 수 없다. 남성과 여성 사이에 균형이 깨지고 '사랑'이 사라지면 어떻게 되는가? 우리는 죽어간다. "섹스를 못해서 죽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우리는 사랑의 결핍으로 죽어간다." (p.180) 인류가 존재해 온 가치는 '사랑'에 근거하기 때문에.
실제 이 작품은 성 권력의 작동으로 목소리를 낼 수 없었던 여성의 삶을 드러낸 페미니즘 소설이라고 볼 수 있지만, 나는 남/녀 역할에서 균일한 균형이 깨어졌을 때 우리가 잃게 되는 것들에 대해 주목하고 싶다. 『시녀 이야기』에 등장하는 어떤 인물도 '감정'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 누구도 행복할 수 없다. 그 권력과 억압 아래에서. "이번에는 누가 빨래를 정리할 차례인지, 변기 청소 당번은 누구인지, 그렇게 사소하고 일상적인 문제를 놓고 싸우고 싶다. 뭐가 중요한지, 뭐가 하찮은 문제인지 따위를 놓고. 얼마나 기막힌 호강일까. (p.345) 완벽한 균형은 존재할 수 없지만, 서로 존중하고 사랑하고 이해하려는 줄다리기 속에서 우리는 얼마나 행복했는가. 그 균형은 '그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주심 같'이 사랑함으로 유지된다. 오브프레드와 닉은 서로 '사랑한다'는 말을 입 밖에 꺼낸 적이 없다. 그것은 너무도 위험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닉은 자신이 목이 매인 채 장벽에 매달릴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위험에 처한 오브프레드를 구해내고자 한다.
생동하는 감정들은 살아있음을 증명한다. 감정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살아있지 않다는 의미이기도하다. 그래서 성 권력이 작동되어 남/녀의 균형이 깨지면 우리는 행복할 수 없다. 인간은 그렇게 지음받지 않았다. 무모하고 이해할 수 없을지라도 사랑하고, 위험을 자처하고 손해를 감수하는 것. 우리는 그렇게 살아왔다. 그리고 앞으로도 이 균형을 위해 우리는 다투어가며 노력해나갈 것이다. 종족 번식은 결코 인류의 목표가 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