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아 열차
크리스티나 베이커 클라인 지음, 이은선 옮김 / 문학동네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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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우리 삶이 또다시 무너질까 두려워서 가장 겁이 나는 부분들을 애써 모르는 척했다. 사는 나라가 달라졌어도 술에 대한 사랑은 달라지지 않은 아빠, 화를 내고 우울해하는 엄마, 계속되는 아빠와 엄마의 싸움. 나는 모든 게 잘 되길 바랐다. 그래서 메이지를 품에 안고 귀에 대고 속삭이며 달랬다. 어떤 새도 나의 노래하는 새, 너만큼 달콤하게 노래를 부르지는 못해. 메이지가 울음을 그쳤을 때 나는 그저 안도했다. 메이지는 광산에서 위험을 경고하는 카나리아와 같았는데, 그걸 알아차렸을 때는 이미 늦은 뒤였다.

- 크리스티나 베이커 클라인 <고아 열차> 45p

나의 글은 늘 지극히 사적인 글이 될 것이라고 공공연히 말해왔고, 모든 이야기들은 그들의 사적인 이야기에서 시작되어 결국 우리들에게까지 이어지게 하며 공공연하게 우리의 감정에까지 들어오게 하는 것을 안다. 하지만 나의 감정으로 그들을 들이기 전에 늘 나는 긴장감을 유지하려 노력한다. 끝내 그 노력이 소용없을 것을 알면서도 그들의 아픔과 슬픔 앞에 거리를 두고 싶고 초연해지고 싶은 마음인 거다. 결국은 나의 몸과 온 신경이 이야기 속으로 빨려 들어갈 듯 될 것을 안다.

표지 속 아이의 뒷모습이 고아 열차에 몸이 실린 채 어딘지도 모를 곳으로 이동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대변할 수 있을까. 책을 덮고도 이 생각은 한참 동안이나 계속되었다.

이 소설에서 어린 시절 가족과 함께 아일랜드에서 뉴욕으로 불확실하지만 어쩌면 더 나은 삶이 기다리고 있을 거라고 믿으며 건너온 비비언 데일리의 삶과 열일곱 살 소녀 몰리 에이어의 아무도 믿지 않기로 하였던 삶이 교차되며 그려진다.

실제로 미국에서는 1854년부터 1929년까지 이른바 '고아 열차'라고 불리는 부모를 잃은 아이들을 태운 기차가 동부 도시에서 중서부의 농촌까지 운행되었다. 아이들은 어딘지 모를 역에 열차가 멈춰 서면 나란히 서서 어떤 어른들이 자신을 데려갈지 모를 운명에 자신을 내맡길 수밖에 없었다. 온화하고 다정한 가족의 품으로 들어갈지, 그저 노동이 필요한 가정에 들어가 노예나 다름없는 취급을 받으며 살아갈지는 아무도 몰랐다. 큰 저택에서 여유롭게 살아가는 노년의 비비언은 그 고아 열차에 몸을 실었던 한 소녀였고, 자신의 운명이 어디로 갈지 모르지만 할머니가 남겨주셨던 작은 목걸이에 의지하기며 차디찬 복도 위 매트리스에서 겨우 잠을 청하기도 하고, 차라리 추운 거리를 맨발로 뛰쳐나올 정도로 잔인한 삶을 마주하였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녀를 다정하게 안아주고 그녀의 삶을 지켜주려 한 사람들이 있었고, 칼날과도 같은 환희(71p)를 느꼈던 찰나의 순간을 오랫동안 기억으로 품어왔기에 지쳐 쓰러지거나 자신의 삶을 포기하지 않을 수 있었을 거다.

시간은 줄어들기도 하고 넓게 퍼지기도 해. 무게가 일정하지 않아. 어떤 순간은 머릿속에 머물고 다른 순간들은 사라져버리지. 태어나서 스물세 살 때까지의 세월이 나라는 인간을 만들었는데, 그 뒤로 거의 칠십 년을 살고 있다니 참 말도 안 되지. 그 칠십 년은 네가 한 질문들과 전혀 상관이 없는 시간인데 말이다.

- 크리스티나 베이커 클라인 <고아 열차> 256p

외부로부터 자신을 굳게 걸어 잠그려던 소녀와 오래된 짐을 정리하던 그녀가 들려주는 이야기들이 테이프를 다 감을 정도로 오래 지속되어 올수록 몰리는 알지 못할 안도감을 느낀다.

더치가 피아노로 내게 말을 걸고 있고, 나는 꿈이라도 꾸는 듯 그의 말을 알아듣고 있는데, 나는 과거와 단절된 채 외로움이 사무치는 여행을 하고 있다. 아무리 애를 써도 낯선 이방인이 된 듯한 느낌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그런데 이제 말을 하지 않아도 내 심정을 아는, 나와 똑같은 아웃사이더를 우연히 만난 것이다.

- 크리스티나 베이커 클라인 <고아 열차> 331p

비비언과 몰리의 주위에는 어른이 있었고, 그들의 존재 자체로 괜찮다고 말해주는 다정한 이들이 있었다. 하지만 그것보다도 자신의 생각을 계속 들여다보려고, 그리고 그것에서 시작된 노력들은 의지로 변환되어 갔다. 이방인의 삶이었고, 아웃사이더라고 지칭하던 삶이었던 그들의 삶이 만나 서로를 다정하게 연결하기 시작하였다. 그 다정함이 따뜻하고 단단해서 고아 열차라는 역사에서 실제로 존재하던 것과 그 그늘에서 이방인으로서 살아가야만 했던 수많은 삶을 만나는 것이 가슴 아플지라도 '희망'이라는 이름으로 '의지'라는 단단함을 쥐어 잡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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