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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세계의 소시민에게 몽골이란 푸른 초원이 펼쳐진 머나먼 고원지대에 불과했다. 가끔 어린이 후원단체 같은 곳에서 카탈로그를 보내오면 오늘날 몽골인들은 이렇게 살아가는구나,하며 다 해어진 그들의 옷소매를 통해 삶의 편린을 엿볼 수는 있었지만 그것은 단지 일상을 스쳐가는 무수한 정보의 일부일 뿐, 마지막 커피 한 모금과 함께 덮어버리고 나면 그만인 것이 대개 이런 카탈로그들이 받는 대우였다. 그러던 어느날 몽골이 갑자기 성큼 다가왔다. 바로 사진가 김홍희의 작품들을 통해서였다. 푸른 초원이라는 잘 포장된 모습이 아닌 현실의 몽골, 메마른 땅이 끝없이 펼쳐지고 어두운 구름이 드리워지기도 하는 그곳을 나는 너무도 생생히 보게 된 것이다. 뿐만아니라 사진 속의 몽골인들은 더이상 푸른 초원을 말달리던 칭기즈칸의 후예인척 하지 않았다. 그들은 황량한 사막에 가판대를 설치했고, 대지에 발전소를 심었으며, 점퍼와 츄리닝 차림으로 당구를 치거나 벽에는 포르노 포스터를 붙여놓기도 했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조드>가 광야의 중세를 그리려고 했다는 점은 무모한 도전처럼 보일수 있겠지만 아직은 선량함 남아있는 몽골의 눈망울들에게 커다란 힘이 될 것이라 믿었다. 그리고 그 작가정신이 나로 하여금 <조드>라는 기나긴 여정의 첫머리를 출발하도록 재촉했다. 문명화와 서구화를 동일시하는 이 시대에, 그리고 이제 그에 대한 반성이 일고있는 시점에서, 작가가 칭기즈칸의 몽골을 통해 글로써 유럽중심주의를 극복하겠다는 의지는 상당히 전염성 강한 메시지였던 것이다.

 

 


유럽중심주의를 극복하자고 말하기는 쉽지만 그에 값할 '인류사 상'을 얻기는 어렵다. 낡은 역사관을 대체할 그림이 있어야 새로운 역사관이 들어설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보다 바른 세계사 상(像)'을 찾으려는 노력에 나도 동참하고 싶었다. 소재가 국경을 벗어난 점도, 시대적 배경이 먼 것도 개의치 않았다. 가톨릭과 비(非)가톨릭 정신이 각축하는 성곽의 중세가 아닌, 이동문명과 정착문명, 농경민과 유목민의 충돌을 야기한 광야의 중세를 그리려는 의지는 21세기 정신의 산물이다. 특히 근대적 가치관이 주목하지 못한, 보다 광활한 세계에 부합하는 인간형을 필요로 하는 것은 무엇보다도 바로 지금 우리의 '현실'이다. (작가의 말 中)

 

 

 


광야의 신화
광야의 신화는 하늘에서 떨어진 조그만 연못이 자라 아주 큰 호수가 되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천 개의 물방울이 모여 하나가 되고 그 하나가 다시 천개로 모이는 유기적 창조의 과정은 말씀의 권위로 이레만에 완성된 서구의 천지창조와 대조를 이루며 희미해진 이 땅의 신화를 다시 세우겠다는 의지로 비춰지기도 한다. 우리에게도 익숙할법한 전래동화가 도란도란 피어날 즈음이면 마치 할머니의 무릎에 기대어 졸듯 꿈결같은 옛 이야기로 빠져든다. 그리고 꿈보다 더 달콤한 이야기 속에서 고운 백조와 사냥꾼을 만나고, 늑대족과 사슴족의 사랑을 목격하며, 민담을 갖겠다던 외눈박이의 순박함에 웃음 짓는다. 그래, 그 위대한 칭기스칸은 용이 꿈틀거리고 천지가 개벽하며 나타난 인물이 아니더란 말이지...문득 "유목민인 칭기즈칸의 제국주의는[...]소유하고 점령하는 게 아니라 소통하고 통과해 가는 것이 몽골의 방식이었습니다"라는 작가의 변이 떠오른다. 모든 신화에서 말해주는 것이 사랑이요, 바보와 외눈박이의 어진 마음이니 이후 칭기즈칸이 품은 뜻도 여기서 비롯되었음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뿐만아니라 고운님이라는 뜻의 알랑고아가 달빛과 한 몸이 되어 만들어낸 자식, 강인한 땅의 생명력을 지닌 여인의 몸에서 하늘의 음기를 취해 태어난 자식의 후손이니 태양처럼 군림하는 칭기즈칸이 아니라 극복하고 소통하는 칭기즈칸의 모습이 예상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이처럼 <조드>가 그리는 칭기즈칸의 모습은 우리가 알고 있던 서구적 카리스마의 전형과 다르며, 바로 이 점이 몽골을 비롯한 동방인들에게 재조명되어야 할 과제이기도 할 것이다.

 

 


혈흔을 닦는 시심(詩心)
전율을 할만큼 한바탕의 거친 싸움이 있었다. 바로 자무카의 말 무리를 공격하는 늑대 무리의 보복전이다. 너무도 치밀한 전략이 잔인함을 더 도드라지게 하는 이 싸움은 도저히 동물간의 육박전이라고 할 수 없을 만큼 지혜롭고 영악했으며 때론 비열하기까지 했다. 그리고 말이든 늑대든 우두머리들이 가진 리더십과 자식애에서 훗날 벌어질 유목민들간의 전쟁이 그려지기도 했다. 유목민들도 분명 이들처럼 뼈마디가 바스러지고 내장이 짓밟히는 가운데 자신의 영역과 자식새끼들을 지키려 안간힘을 썻으리라! '흰머리를 풀어헤친 귀신 바람이 불던 날' 설원 위에 펼쳐진 말 무리와 늑대 무리의 육박전은 강렬하다 못해 장렬하기까지한 싸움이었다. 그래서인지 안전지대인 헤를렌 강변에 도착해서도 이 느낌이 쉬 가라앉지 않는다. 흰머리 바람으로도 지울 수 없었던 붉은 혈흔이 비로소 스러지기 시작했던 시점은 바로 자무카의 입에서 시(詩)가 흐르는 순간. 그는 자신이 이끌던 말 무리를 도와준 이가 사라진 의형제 테무진(훗날 칭기즈칸)임을 알고 변함없는 우정을 시(詩)에 담아 노래한다. 헌데, 이 거친 사내의 시(詩) 한 수가 강렬한 싸움의 서사보다 더 커다란 감동으로 다가오는 까닭은 무엇일까? 이유를 분별하려는 세세한 마음에서 뚜렷한 단어를 짚어내긴 어렵지만 단 한가지 확실한 것은 <조드>의 서사가 시심(詩心)에 힘입어 때론 신비한 전설로, 때론 순수한 동심으로, 때론 달관의 지혜로 촉촉하게 다가온다는 점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전투가 휩쓸고간 자리를 위로해주는 나직한 노래가 된다.

 

 


흰뼈와 검은뼈의 우정
가문을 세운 여자 알랑고아의 막내 아들 보돈차르 몽학의 직계 혈통. 사람들은 이들을 황금가문의 흰 뼈라 불렀고, 직계가 아닌 혈통을 검은뼈라 불렀다. 테무진은 흰 뼈 출신이며 자무카는 검은 뼈 출신. 이들의 우정을 다룬다는 것은 아직도 '계급혁명' 외에 별다른 돌파구를 찾지 못한 우리들에게 그 벽을 해체해 보이려는 야심찬 시도로 다가온다. 그래서 서로를 부러움과 동경의 대상으로 바라봤다던 테무진과 자무카의 관계에 주목하게 되는데, 귀족출신으로 평민인 자무카와 의형제를 맺는 테무진은 마음가짐부터 이미 남다르다. 오늘날로 치면 수평적인 네트워크를 더 중요시했던 테무진, 즉 칭기즈칸의 자세는 문득 하늘은 높은 것이 아니라 넓은 것이라는 깨달음을 주며 이후 넓은 하늘이 지나게 될 우정과 갈등의 해법이 어떤 것일지 사뭇 기대를 걸게 된다. 서로 지문을 보여주고 서로의 운명을 엿본 두 사람, '태어나는 곳은 달라도 묻히는 곳이 같기를'맹세하는 두 사람에게서는 신분의 경계를 허물고자하는 인간으로서의 의지가 결연히 흐르기 때문이다. 만일 이 맹세가 이뤄진다면 언젠가는 하늘이 땅 위에 있지 않고 그저 평행으로만 공존하는 새로운 세계를 우리는 희망해도 좋을 것 같다.

 

 


조드와 칭기즈칸의 길
850년전 대자연이 다스리던 몽골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엄격한 세계로 다가온다. 아니, 어쩌면 이것은 겨울의 서식지라고 불러도 좋을만큼 매섭게 몰아치는 혹한 탓인지도 모르겠다. 몽골에서는 그 너른 땅에 어린 추위가 움터 젊은 추위가 되고, 다시 늙은 추위로 이어지기까지 기나긴 겨울이 계속된다. 조드 또한 이 겨울의 출신으로, 한겨울 유라시아 내륙에 몰아닥치는 혹독한 추위를 의미하는데, 조드가 밀어닥치면 초원은 초토화가 되고 목숨이 달린 것들은 제아무리 인간일지라도 죽음의 문턱에서 발버둥치게 된다. 살아남을 길은 오직 서로 뭉치는 것. 이는 거룩한 어머니 알랑고아가 화살 다섯대를 묶어 일러준 교훈이었다. 그리고 어린 테무진이 칭기즈칸으로 성장하기까지의 여정도 신화속에 고이 간직된 어머니 일랑고아의 가르침을 충실히 따르는 길이었을 뿐, 누군가를 정복해 제국을 이루려는 것은 그의 꿈이 아니었다.


"죽음의 땅을 벗어나 다른 장소로 가고 싶은 것, 그걸 가로막는 장애물을 뛰어넘은 게 칭기즈칸의 정복의 이유가 아닐까"


작가의 깊은 시선을 따라가다 보면 테무진을 칭기즈칸으로 키워낸 원동력이 조드라는 신선한 해석을 만날 수 있다. 그는 단지 자연의 순리에 따라 극복할 고난은 뛰어넘고 품어야 할 생명들은 감싸안았으며 함께할 동지들과는 화살대처럼 나란히 힘을 포갰다. 그러는 사이에 칭기즈칸은 하늘과 땅, 인간과 자연을 아우르는 소통자가 되었다. 다시 쓰는 몽골의 역사에서 그는 소유라는 상하의 축이 아닌 소통이라는 백방의 축으로 화(和)한 것이다.

 

 

 

 

서구화의 물결이 침투한 몽골의 사진을 보며 잠시 상상에 젖어본다. 지금도 몽골의 광야에서는 열두 가지 바람의 소리를 듣는 사람이 있을까? 지금도 타인의 불에 예를 갖춰 건드리지 않으며, 모든 가축이 생명의 존엄성을 알고 그것에 경외심을 가진 자의 손에서 죽어야 할까? 그리고 지금도...수분없는 눈보라가 말발굽 아래 부서져 쉬 가라앉지 않는 그 진기한 풍경들을 볼 수 있을까? 물론 나는 정답을 알지 못한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칭기스칸의 몽골이 되살아나야 한다는 것이며, 그것이 왜냐고 묻는다면 푸른하늘이 내린 아이의 마음을 잠시 훔쳐봤던 설렘 때문이라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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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사르 2012-05-09 21: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홍희..찾아봤어요.
김홍희 작품집 먼저 읽고나서 다시 댓글 달아야겠어요.
ㅎㅎ 분홍신님 포스팅은 댓글 예고를 제가 자꾸 하게 되네요. 분홍신님 포스팅 글이 좋아서 그런거 같애염. ^^

탄하 2012-05-13 11:19   좋아요 0 | URL
하하, 댓글 예고편이라..
이거, 달사르님께서 신개념을 만들어 놓고 가셨군요.
김홍희님의 사진이 너무 좋아서겠지요.^^

이분 작품집 볼만 해요.
글까지 쓰신 책도 있는데 매우 감성적이시기도 하구요.
달사르님도 좋아하실 것 같아요.

달사르 2012-05-27 22:33   좋아요 0 | URL
ㅎㅎ 작품집 멋지더이다. 첨에는 뭐이래? 이랬다가 몇 번을 다시 보고 또 보니 점점더 작품집이 좋아지던데요? 작가해도 되겠다, 란 생각이 들 정도로 글도 좋았구요. 분홍신님 덕분에 좋은 책 만났어요. ^^

탄하 2012-05-31 22:59   좋아요 0 | URL
에헤, 덕분은요..^^
이분, 김홍희님, 외모는 꽤 카리스마 있어 보이시지만 글은 참 가슴을 저리게 해요.
제일 처음 읽은 책이 <나는 사진이다>였는데, 작품만 김홍희님꺼고 글은 다른 사람이 쓴 줄 알았다가 나중에 글도 직접 쓰신 걸 알고 깜짝 놀랐었답니다. 그게 아주 오래전인데, 그때는 독서를 잘 안하던 때라 사진작가가 에세이집을 낼 거라곤 상상도 못했거든요.
달사르님도 정붙이셨다니 다행이네요.^^
 

지난 6월 말, 올해 상반기를 되돌아 보면서 깜짝 놀란 것이 하나 있었다. 대체적으로 예술/인문학 도서에 집중하고 있지만 경제, 과학, 문학 등을 골고루 챙겨보는 편인데 올해는 경제 분야의 책을 정말 단 한 권도 읽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부랴부랴 그간 경제서적에 무슨 좋은 책들이 있었을까 둘러보다가 <독식비판>, <경제학의 배신> 같은 책들을 일단 챙겼고, <미국이 파산하는 날>도 샀다가 지인한테 뺏겼으며(ㅠ.ㅠ), 지금은 <자본주의 4.0>에 포스트잇을 꼽아가며 열심히 읽고 있다.

경제 분야 서적의 전반적인 분위기는(나의 관심사에 의하면) 경제위기가 계속되는 가운데 이에 관한 분석들이 꾸준히 줄을 잇고 있으며, 달러제국 미국의 실상을 고발하는 책들, 생활과 밀접한 가격에 대한 책들, 자본주의의 근본과 대책을 탐구하는 책, 그리고 신자유주의에 대한 책 등이 눈에 띄게 늘어났다. 그리고 한결같이 다 흥미롭고 멋진 책으로 보인다(아, 이게 문제다).

그래서 비록 선정에 어려움이 많았지만 이 3권의 책 만큼은 놓치고 싶지 않다.





<그림자 시장>

먼저 가장 최신작인 <그림자 시장>이다. 이 책은 일단 이리유카바 최의 <그림자 정부> 시리즈를 생각나게 한다. 그래서 '음모론일까?'라는 생각도 들지만 중동의 산유국, 싱가포르, 노르웨이 같은 수퍼리치 국가들에 대해 잘 모르기도 하고, 그들이 어떻게 부를 이용해 세계에서 권력을 얻었는지 궁금해 꼭 읽어보고 싶다. 그동안 미국과 중국에 대한 책들은 많았지만 이렇게 여러 국가들의 비밀스런 이야기를 들어볼 기회는 흔치 않았다. 그래서 이 책을 통해 세계 경제의 배후, 혹은 예측할 수 있는 배후에 대해 알고 싶다. 만일 이 책의 주장처럼 글로벌 경제의 위기를 기회로 이용하는 나라들이 있다면 앞으로 미래는 어떻게 될까? 정말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달러 제국의 몰락>

다음은 <달러제국의 몰락>이다. 이것 역시 필수적으로 짚고 넘어가야 할 이슈이다. 그동안 미국의 몰락이나 미국의 퇴조에 대해 이야기하는 책들이 많았지만 이 책은 통화라는 관점에서 서술해 나갔기에 한 나라의 미래가 어떻게 되는가를 너머 전체적인 통화재편에 대해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을 것 같다. 게다가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에서 추천한 이달의 읽을만한 책에 선정되었고, 벌써 많은 사람들이 읽어본데다 평도 좋다. 통화의 미래에 대한 책을 읽어본다면 단연 이 책을 꼽고 싶다.







<미국이 파산하는 날>

마지막 책은 <미국이 파산하는 날>이다. 이 책은 10페이지도 채 못 읽고 '너무 읽고 싶다'는 지인의 간절함에 선물로 줘버린 책인데, 나도 이제 나머지 309페이지를 읽고 싶다. 처음에는 니얼 퍼거슨의 제자 담비사 모요의 저서라는 점에서 주목했지만 미국의 미래에 대해 여러가지 시나리오로 결론을 내린 점에서 무척 마음에 들었다. 정답은 어떤 것이 될지 모르겠지만 각 시나리오에 담긴 날카로운 분석을 살펴보고 싶다. 행운으로 회수했으면...^^







이밖에도 궁금한 책들은 너무 많지만 오늘은 여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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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첨자 발표] [도미노 서평단] 논장 <학교 가는 길> 15분께 드립니다!

이보나 흐미엘레프스카.

이름이 길어서 외우느라 힘들었지만 제가 참 좋아하는 동화작가입니다. 조카의 책을 한 두 권씩 사주다가 알게 되었는데 개성이 강해 자꾸 눈길을 끌더라구요. 흐미엘레프스카의 매력은 뭐랄까...시적(詩的)인 상상력에 있는 것 같습니다. 상상력에도 '톡톡 튀는' 상상력, '천진한' 상상력, '웅대한' 상상력 등 여러가지가 있지만 이미지에 이야기와 디테일을 더해가는 방식이 살폿한게 잔잔한 동시를 떠올리게 됩니다. 이러한 흐미엘레프스카의 감성은 비록 줄거리는 없지만 아이들에게 글자를 익히는데 도움이 되는 <생각하는 ㄱㄴㄷ>과 <생각하는 ABC>에도 고스란히 나타나 있습니다. 지금부터 제가 선택했던 그녀의 책 몇 권을 소개해 볼께요.


1. <생각하는 ㄱㄴㄷ>
처음엔 외국인인 흐미엘레프스카가 한글책을 지었다는 사실에 깜짝 놀랐습니다. 볼로냐 라가찌 대상 수상작인 <마음의 집>에서 우리나라의 김희경 작가와 작업(일러스트 담당)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보다 오래 전부터 한국과 한글에 대해 관심이 있었는 줄은 몰랐네요. 그녀는 한글의 형태가 무척 흥미롭고 아름다와 이 책을 만들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아름다운 한글의 형태는 역시 그만큼이나 아름다운 다양한 이미지들을 통해 ㄱㄴㄷ을 만들어 갑니다(물론 맨 마지막 글자인 'ㅎ'까지 말입니다). 또한 학습 효과를 위해 각 자음에 맞는 글(ex>다람쥐가 도토리를 먹으려는데...)이 쓰여져 있고, 자음을 표현한 이미지의 명칭도 적혀있어(가운데 박스를 보면 작은 글씨지만 도서관, 다리미, 당근 등의 낱말을 볼 수 있음) 이미지와 글자를 짝짓기해 볼 수도 있어요.





 


2. <생각하는 ABC>
이번엔 한글이 아니라 알파벳을 역시 같은 방식으로 익힐 수 있는 책입니다. ㄱ에서 ㅎ보다는 A에서 Z까지가 더 많은 글자가 있어 책이 생각보다 두툼해요. 마치 알파벳 이미지 사전같네요. 게다가 <생각하는 ㄱㄴㄷ>에서 한 페이지에 담겨있던 9개의 작은 그림과 글씨들을 각 페이지로 풀어 놓아 더 책이 두꺼워졌나 봅니다. 하지만 이미지가 한 페이지에 꽉 차니 그림도, 글씨도 시원시원하고, 오히려 집중해서 바라볼 수 있어 더 좋은 것 같습니다.







  
3. <문제가 생겼어요>
처음엔 노랑 표지에 둥그스름한 삼각형이 있어 뭔가 했습니다. 그런데 읽어보니 주인공 꼬마가 다림질을 하다 엄마가 아끼는 식탁보를 누리는(살짝 태우는) 바람에 야단 맞을까 걱정하는 이야기였어요. 꼬마가 '아무리 힘이 센 사람이라도 이런 얼룩에는 맞설 수 없어요'라고 생각하면 다리미 자국에선 힘 센 사람의 모습이 나타나고,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다고 생각하면 쥐의 모습이, 땅 속에 숨고 싶다면 삽의 모습이 나타납니다. 그리고 '내 잘못이라는 게 너무나 명백해요'하니까 다리미 자국에서 반짝이는 전구의 모습이 떠오르네요. 아이는 이런 저런 걱정과 변명거리와 방법을 궁리하다 결국 솔직하게 말하기로 합니다. 그랬더니 엄마는 아주 멋진 해결책을 내 놓으셨는데요, 그것을 밝혀 버리면 책을 읽을 때 재미가 없을까마 마지막 장면 직전까지만 보여드릴께요. 아무튼, 잘못을 저지르고 걱정하는 아이의 마음과 그것을 현명하게 마무리 짓는 엄마의 사랑이 한껏 돋보이는 책입니다. 물론, 상상력두요. 
 
 

4. 그밖에도...
흐미엘레프스카의 그림은 <문제가 생겼어요>나 <학교 가는 길>과 같이 간결하고 재치있는 스타일이 있는가 하면, <마음의 집>이나 <반이나 차 있을까 반밖에 없을까?>, <생각>처럼 신비하고 조금은 음습한 느낌을 가진 스타일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풍으로 그린 책들에는 심오한 철학적 사고와 마음에 대한 통찰력이 담겨 있어 밝고 명랑한 그림은 아니더라도 여전히 매력적으로 다가오고, 조카가 좀 더 자라면 한 번 읽어보게 해주고 싶네요. *** <마음의 집>에서 흐미엘레스카는 일러트스만 담당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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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Q84>가 몰고 온 바람 탓인지 잊고 있었던 하루키와 문학의 추억이 오랜만에 되살아났다.
오래전엔 내 나이에 맞지도 않는 소설들을 기웃거리며 이문열, 이청준, 조정래의 책들을 읽곤 했는데 지금은 우선순위인 책들이 가로막고 있는지라 탐하고 싶어도 바라보기로 만족해야하는 현실. 그래서 작년에 가지고 있던 책들을 정리하고 올해 초부터 약 70권 남짓되는 책들을 읽었음에도 그 중 문학은 다섯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다.(게다가 딱 한권을 제외하곤 모두 집에 있던 책들이다.)

하지만 <1Q84>의 등장은 간과할 수 없는 큰 유혹이었다. 이것은 하루키가 처음 한국에 소개되었을 때, 갑자기 쏟아진 그의 작품 중 무엇을 먼저 읽어야할지 고민하며 상기되었던 느낌과 흡사하다. 그때 나는 우연히도 (일본 번역가로서 최고인지 혹은 최고가 될 것인지 알지 못한 채) 김난주 번역의 <노르웨이의 숲>을 골랐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큰 행운이 아니었나 싶다. 그런데 이 책은 20대 내 배낭 속 한켠을 차지하며 공허와 갈증을 각인시켜주다가 이렇게 모서리에 큰 흠집이 가버려 대단히 안타깝다.

이후 하루키는 <고독한 자유>를 통해 감동으로 다시 만나게 되었다. 다른 작품에 비해 크게 알려지지 않은 단편집이지만 나는 유독 이 책이 마음에 남는다. 모진 세파에도 담담히 살아가는 이들을 그린 '치즈케이크 같은 나의 가난', 그리고 서른 다섯을 인생의 반환점이라 정한 것이 퍽이나 인상깊었던 (그때는 삼십대가 너무 멀리 있었기에) '풀 사이드'가 이 책을 사랑하게 된 이유다. <슬픈 외국어>는 하루키를 좋아한다는 나의 이야기를 듣고 절친한 친구가 선물로 준 책인데 그의 엉뚱, 소탈한 모습으로 잔잔히 웃으며 읽었던 기억이 난다. 


서두가 너무 길었다. 하지만 <1Q84>를 읽고싶은 이유를 간단히 설명할 방법이 도저히 생각나지 않는걸 어쩌나...이전부터 내게 특별했던 작가, 지금은 아련히 먼 곳에 있는 것 같지만 자꾸 훔쳐보면서 떠올리는 작가. 그래서 난 <1Q84>를 첫번째로 선택해야겠다. <1Q84>의 1권을 조금 색다르게 받게 된다면 또다른 하루키와의 추억이 더 즐거워지지 않을까?
 

 

두번째 책은 <세한도>이다. 키워드 한국문화 시리즈 첫번째 도서! 이 책은 한창 오주석님의 책을 읽고 한국화에 대한 책들을 찾아볼 때 여기저기 서평이 눈에 띄어 알게 된 책이다. 책 한 권을 온통 세한도에 초점 맞춰 쓴 것이라 무척 기대하며 위시리스트에 넣었는데, 우연히 이 시리즈에 대한 브로슈어까지 보게되어 더욱 읽고픈 마음을 부채질한다. 그리고 한국화에 대해서는 조예 깊기로 이름난 몇몇 저자들만 알고있는 상황에서 이 책을 통해 새로운 저자의 새로운 시각을 한 번 만나보고 싶다.



세번째는 <예술과 다중>. <제국>의 저자인 네그리의 책이다. 이 책은 정치학자인 줄 알았던 그가 갑자기 '예술'을 들고나와 주목하게 되었다. 그동안 (사실 아직까지는) 예술은 미학적인 관점에 대해서만 관심을 두었는데 종종 정치와 관련된 책들이 예술을 논하고 있어 매우 궁금해지는 책이다. 먼저 구입해 가지고 있는 랑시에르의 <감성의 분할>과 같이 읽어보고 싶다.




마지막으로 선택한 책은 바디우의 <철학을 위한 선언>이다. 바다우 철학의 길잡이 같은 책이라 눈여겨보고 있었는데, 절판되었다가 올해 개정판으로 출간되어 너무 기쁘다. 더욱이 그의 지도로 박사 학위를 받은 분의 번역이라니! 눈에 번쩍 띄인다. 현대 철학에 대해서는 하는 일과 약간 관련있는 들뢰즈와 데리다만 대략 알고 그밖에는 문외한이라 이런 종류의 책은 반갑기 그지없다.




여기까지 고른 4권의 책은 <1Q84>를 제외하곤 모두 공부하기 위한 책들이다. 공부라는게 딱히 학교 공부는 아니지만, 올해 어느정도 책장 정리를 마무리하고 서평단의 책들도 맛봤으니 내년부터는 본격적으로 읽고 싶은 책들로 달마다 테마를 정하고 공부를 시작해보고 싶다. 얼마간은 인문학 책들을 위주로 읽으려 작정했기에 문학동네 어귀에서 기웃거리는 처지지만 언젠가 그 안에 정착할 날이 올 것을 믿으며...

1Q84(1권)          : 13,320 원
세한도               :  9,900 원
예술과 다중        : 13,500 원
철학을 위한 선언 : 13,500 원
-------------------------------
합   계               : 50,220 원


(헉! 시간이 벌써 이렇게 됐구나 빨리 자야하는데...ㅠ.ㅠ) 

-----------------     이벤트 종료 후     ---------------------- 

오늘 문학동네 장바구니 이벤트 발표가 있었다.
그리고 나는 너무나 감사하게도 열 손가락 안에 꼽히는 '당첨자'가 되었다.

로그인을 하고 서재에 들어왔더니, 방문자 수가 늘어있다.   



오늘, 이 행운이 내 품에 들어온 것을 기념하여 천사가 다녀갔는가?

1004 방문...
이 행운과 딱 어울리는 유쾌한 우연마저 감사하다.^^
* 문학동네, 감사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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