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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롭게 도서관에 갈 수 있지만 책을 읽지 않는 영웅이, 애완견이라고 문전박대 당하지만 읽고 싶은 책을 찾아 도서관으로 돌진하는 몽몽이의 대조가 참 인상적이다. 게임에 푹 빠져 독서를 잊고 사는 아이들에게 즐거운 방식으로 교훈을 준다. 그러니까, 책을 안 읽고 게임만 하면 몽몽이(개)만도 못한 인간인거죠?^^

 
 
 

 

 

 

 

 

 

 


#1. 달달한


마쉬멜로우를 먹고있다. 맙소사, 평소 그 흔한 껌도 잘 안 씹는 내가 마쉬멜로우를, 봉지째 먹고 있단 말이다.ㅠ.ㅠ 사실 이건 내가 먹으려고 산 것이 아니다. 지난 달 조카네집에 갈 때, 고녀석에게 폭신폭신하고 하얀 오리지널 마쉬멜로우를 주려 했는데 한 봉지가 거의 포대자루 수준이다보니 분량이 적은 이걸 사게 됐다. 게다가 색소가 들어간 음식은 절.대. 안된다는 동생의 엄포에 때문에 때아닌 공작놀이까지 하면서. 여기서 공작놀이란, 꽈배기처럼 꼬인 마쉬멜로우에서 흰색 부분만 발라내는 섬세한 수작업을 의미하는데, 그냥 칼로 쑹덩 써는 게 아니라 가위(식가위)로 일단 반을 자른 다음 꽈배기 사선을 따라 가위 끝으로 쵹쵹 따내는 성가신 작업이었다(이래야 색깔 부분이 뭍어나지 않는다). 하지만 문제는 쥐뜯어먹다 남긴 것 같은 초췌한 모양새...ㅠ.ㅠ 다행히도 조카는 먹거리의 모양새에 별로 신경을 쓰지 않는 듯 했으나 쬐끄만 조각을 깔짝깔짝 먹는 것이 감질났는지(조카는 늘 '크게 먹자'를 주장한다) 반쯤 먹다가 남은 것을 다른 사람들의 입에 넣어주기 시작했다(이거 요즘 드문 일인데). 여하간 싹뚝거렸던 7~8개 가량의 마쉬엘로우를 제외하고 나머지는 모두 이모의 몫. 덕분에 3월 초반부터 성실히 달달한 나날들을 보내고 있다. 그리고 드디어, 이제, 끝이 보인다. 조금만 더 힘내자!(라고, 지난 4월 말 여기까지 쓴 후 지금은 다 먹었다. 야호!)

 


#2. 씁쓸한


내가 어릴 적에 케**이라는 파스가 새로 나왔다. 그게 어찌나 인기가 있던지 애들은 입을 모아 '우리 할머니도', '우리 할아버지도', 하며 무척 효과가 좋다고까지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이들이 파스를 가지고 떠들어댔다는 것이 참 우습지만 당시 나는 아이들의 입심에 힘입어 할머니께도 그걸 사드리겠다는 기특한 결심을 했다. 그런데 정작 우리 할머니는 류머티스 관절염은 커녕 튼튼한 두 다리로 여행만 쌩생이 잘 다니셨고 파스를 선물할 기회는 좀처럼 오지 않았다. 그때 맺힌 한(?)을 원없이 풀라는 뜻일까? 지금 내 손목에는 그 파스가 붙어있다. 할머니 나이도 아닌, 아직 창창한 내가...할머니께 사드려했던 그 파스를 붙이고 있는 것이다.ㅠ.ㅠ 3주전쯤 하루 종일 책꽂이 정리를 했더니 밤중에 갑자기 팔힘이 탁 풀리면서 뼛속부터 쑤시는 통증이 시작됐다. 다음날 아침 통증은 사라졌지만 좀 꺼림칙해 병원에 가봤더니 인대가 늘어난 상태로 손목을 너무 많이 써 그렇단다. 의사는 내가 좋아하는 엑스레이 사진(나는 엑스레이 보는 것을 작품사진 보는 것만큼 좋아한다)을 보여주며 내 손목뼈가 어떻게 글러먹었는지 역학적으로 설명을 해 주었고, 덧붙이길, 나이가 들면 근육의 탄력이 떨어져서 뼈의 구조가 취약한 경우 금방 무리가 간다며 앞으로 주의하라고 했다. 푸쉬업같은 것도 하지 말라면서. 하여, 의사가 처방해 준 케** 포장을 뜯는데 왜 그리 씁쓸한 것인지...

 


#3. 다시, 달달한

 

 

 책을 읽을 때 나는, 한 권을 다 읽고 그 다음 책을 읽는 것이 대부분이지만 가끔 너무너무 궁금한 책이 생길 경우 읽던 책을 집어던지고 다른 책을 잡기도 한다. 근데, 몰래하는 사랑이 더 달콤하다고...흘깃거리는 책도 못지않게 달달했다. 이렇게 해서 읽은 것이 <너 없는 그 자리>와 <제4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너 없는 그 자리>는 '이혜경이 6년만에 낸 신작'이라는 문구에 끌려 호감을 갖게 되었다. 이혜경? 처음 보는 작가다. 하지만 저력이 든든한 작가 같아 기억하고 싶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6년만'이라는 사실이 나를 설레게 했다. 다작하는 작가보다는 더디더라도 많은 시간과 할 말이 모여 책을 낸 작가를 더 좋아하기 때문이다. 아마 이 작가도 6년동안 좋은 글을 쓰기 위해 고군분투했으리라. 그런 결실이니 독자는 반가이 읽어야 하지 않을까? 이런 마음에 책을 챙겨뒀지만 좀처럼 읽을 기회를 잡지 못했다. 그러다가 서재 이웃분의 글에서 이 책을 맛보기로 보고 먼저 읽던 책을 잠시 내려놓았다. 당장 그 글에 언급된 <금빛 날개>가 궁금해 견딜 수 없었기 때문이다. <금빛 날개>를 읽고 내친김에 표제작인 <너 없는 그 자리>를 이어 읽었다. 달랑 단편 두 개만 읽고 이 책은 이렇더라,고 결론지을 순 없지만 적어도 읽은 범위 내에서 인간들은 일그러진 몽상을 쫓고 있었다. 어이없을 정도로 무기력한 가족을 떠나 부단히 계층사다리를 오르려는 남자(<금빛 날개>)나 짝사랑임을 외면하고 집요하게 상대방의 애인인 척하는 여자(<너 없는 그 자리>)는 아슬아슬한 꿈결을 살아가는 이들이다. 그러다가 섬찟한 반전, 혹은 사건의 등장. 더불어 이어지는 결말. 그들이 현실로 돌아왔을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글을 읽은 독자들은 몽상과 현실의 경계에서 많은 생각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제4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에서는 유독 이름만 익숙하고 작품은 접해보지 못한 작가들이 대부분이었다. 황정은을 제외한 이장욱, 김미월, 손보미, 박솔뫼가 그런 작가들이었고, 정용준과 김종옥은 생소했다. 그런데 대상을 수상한 작가가 바로 '생소한' 그룹에 속하는 김종옥이었으므로 역시 궁금함에 못이겨 흘깃 맛보기를 시도했다. 주제는 '왕따'. 솔직히 식상하다. 청소년 이야기, 하면 너나할 것 없이 '왕따', '학교폭력', '결손가정'을 들고 나오는 것에 질렸다. 그런데 김종옥의 <거리의 마술사>는 그 식상한 주제를 정말 대단하게 풀어냈다. 진정 작가가 마술사 같았다. 이 이야기는 왕따의 문제를 너머 한 사람의 존재감이라는 것, 이기적이고 개인적인 사회에서 순간적으로 하나가 된다는 것을 깊이있게 포착하며 여기에 '마술'이 열어놓는 가능성이 얽혀 신비롭게 희망을 말하고 있다. 다음으로 관심이 가는 작품은 특이한 형식을 가진 손보미의 <과학자의 사랑>과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황정은의 <上行>인데, 앞으로 틈틈이, 책읽기의 달달한 외도에 빠지고 싶을 때 들춰봐야겠다.

 

 

 

 

#4. 그리고 또 씁쓸한

 

 

지금까지 세 개의 페이퍼를, 앞머리만 쓰다가 말았다. 그 중 하나를 보면 "3월말까지 27권의 책을 읽었다. 평소 나의 독서량에 비하면 두 배나 많은 결과이다.(...)그리고 내 손에는 28번째 책이 들려있다."라고 적혀 있는데, 문제는 28번째 책 한 권을 읽는데 거의 한달 가량 걸렸다는 것이다. 도대체 이 책은 펼치기만 하면 어찌나 잠이 오던지...범인인 책은 <나는 무엇을 원하는가>이다. 저자는 취리히 융 연구소에서 10년간이나 소장직을 맡았던 사람으로, 내용을 어렵거나 재미없게 쓰진 않았는데 자꾸 반신반의하게 만드는 요소들이 있었다. 내 경우 이런 상황이 벌어지면 먼저 집중력이 떨어진다. 그리고 맥락을 놓쳐 읽었던 부분을 또 읽다가 결국엔 잠에 빠지고 만다. 이 책은 그런 악순환 가운데, 그래도 완독해낸 책이다.

 

하지만 시작은 좋았다. 발췌문으로 이뤄진 서문도 호기심을 불러 일으켰고, 낭만파의 전통을 회복시키고 싶다는 저자의 결의도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당신을 비롯해 우리 모두는 유전자와 환경이라는 명제를 이용해 논쟁할 수 있다. 그러나 그보다 더한 무엇인가가 존재한다고 주장할 수도 있다. 만약 이 무언가의 형태를 시각적으로 표현하려 한다면, 아마 이 무언가는 확실히 자기를 드러내겠지만, 노력만으로는 눈에 보이도록 표현할 수 없음을 알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유전자나 환경 안에 없는 어떤 힘이 우리가 그것을 인지하려 할 때마다 물리적 실재를 벗어나 버리기 때문이다.

- 로버트 라이트, <도덕적 동물>

 

나는 진화하지 않는다. 그냥 나로 존재한다. - 파블로 피카소

 

 ...이상, 서문에서

 

 

고양된 상상력을 육화한 이 화신은 영혼 속에서 곧장 불타오른다. 그들은 상상력을 가장 잘 알려주는 교사와 같은 역할을 한다. 그 형태는 영웅과 영웅 숭배뿐 아니라 비극적 인물, 희극적 인물, 미녀와 마녀, 잘생긴 지도자 등 다양하다. 비범한 사람들이 보이는 인물의 특성이 연극처럼 과장된 낭만파의 전통은 평등주의로 말미암아 축소되고, 학계의 냉소주의로 말미암아 무너지고, 혹은 정신분석적 진단으로 말미암아 허풍스러운 과장이라는 꼬리표를 달게 되었다. 그러자 이후 [낭만주의]문화 속의 빈 공간에 팝스타, 가짜 귀족, 배트맨 등 인조 영웅들이 들어오면서 [낭만파의 함의가 빠져버린 채] 겉만 번지르르한 유명인들이 문화를 구성하는 얄팍한 문명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이런 이유로 나는 이 책을 통해 심리학을 200년 전 낭만파의 열정이 이성의 시대를 무너뜨렸던 시절로 되돌려놓고 싶다. 개인적 입장에서 심리학이 그 기반을 통계수치와 진단 처방이 아니라 인간의 상상력에 두기를 바란다. 다시 말해 시적 상상력을 개인사 연구에 적용시켜서 개인사를 있는 그대로 읽어내길 바란다. 즉 개인사[개인병력]를 과학적 보고서가 아니라 현태적 형태의 소설로 읽어내길 원한다는 뜻이다.(p.65)

 

여기서 '이 화신'이란 바로 도토리. 이 책의 핵심도 '도토리 이론'이다. 도토리는 다이몬, 게니우스라는 명칭으로도 많이 불리며 다른 말로 하면 수호천사, 운명 등등이 될 수 있고, 이는 한 사람의 인생을 인도하는 '비-인간적 안내자'라고 저자는 설명한다.

 

도토리도 좋고, 다이몬도 좋다. '평등주의와 이성에 의해 축소된 낭만파의 전통'에도 수긍할 수 있다. 그런데 책을 읽다보면 도토리란 특출한 재능을 가진 소수의 유명인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모차르트, 카뮈, 아인슈타인처럼 대대적으로 회자되는 인물은 아닐지라도 바이올린을 보자마자 푹 빠지는 음악신동, 작가, 디자이너의 일대기란 평범한 사람들의 그것과는 동떨어져 보인다. 저자는 도토리란 어떤 재능이라기보다는 성격이라고, 몇몇 사람들의 예를 들어가며 설명해 주었지만 뛰어난 재능으로 두각을 나타낸 이들의 이야기에 비해 그리 밀도있지 않았다. 비록 평범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며 평범과 비범의 차이를 '성공' 여부로 가르는 것이 계몽주의의 폐단이라 지적하는 몇 문장이 있다해도, 문학이라면 일종의 반전으로 여길 수 있겠으나 인문학에선 미흡한 근거에 지나지 않는 것 같다.

 

운명의 은밀한 윙크를 포착하는 것은 일종의 자기성찰적인 행동이다. 즉 일종의 사유하는 행위다. 반면 운명론은일종의 감정상태로 깊이 있는 사고, 관련 세부사항, 신중한 추론을 포기하는 태도다. 즉 사물을 꿰뚫어보고 생각하는 대신 운명의 필연성이라는 더 큰 의도에 빠져버리는 것이다. (p.339)

운명론(fatalism)은 내 삶에서 일어나는 일이 막연히 머나먼 목적을 위해 의도한 것이라는 느낌을 준다. 무언가가 나를 위해 '이미 예정되었다'는 느낌 말이다. (p.342)

하지만 한 사람의 인생에서 작용하는 운명의 힘을 간과할 수는 없다. 또한 저자가 말하는 '운명'에 대해서 많은 부분 동의한다. 우리는 우리의 삶을 자신의 의지와 의도대로만 진행되게 할 순 없다. 애초부터 재능, 기질, 환경 등이 주어지는 것라는 점을 생각하면 거기서부터가 운명의 시작이다. 어떤 이는 교육에서의 환경을 강조하며 빌 게이츠가 우리나라에서 태어났다면 컴퓨터 회사 영업사원에 그치고 말았을 것이라 했지만 나는 그가 우리나라에 태어났도 여전히 걸출한 인물로 성장했을거라 생각한다. 교육이 모든 걸 좌우한다면 그 옛날 정주영은 어떻게 국졸로 오늘날의 신화를 남길 수 있었을까? 이건, 그의 운명이다. 한편, 운명은 운명론과 구분해야 한다. 예정된 미래에 막연히 의지하는 '운명론'은 도토리의 안내를 받아 자기성찰적인 삶을 사는 태도가 아니다. 이 책은 그 점을 분명히 해준 점이 마음에 들었다.

 

 

 

작고도 얇고 빨간 책, <자유의지는 없다>를 두 번이나 읽었다. 저자가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지 전혀 납득이 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일단 그가 말하는 '자유의지'의 정의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만일 내가 목이 말라 물을 마셨다고 하자. 목이 마른 상태와 목이 마르다는 생각은 내가 만들어 낸 것이 아니라 신체의 요구로부터 생겨나 내 머릿속에 떠올랐으며 난 물을 마신거다. 이에 대해 저자는 이렇게 묻는다. 여기에 무슨 자유가 있느냐고. 저자의 반론을 듣고 있으면 그럴법도 하다. 물을 마시고 싶은 생각은 내 의식에 그저 떠오른 것이지 만들어낸 것이 아니므로 마치 자유의지가 없는 것처럼 생각될 수 있다. 하지만, '춥다', '덥다', '갈증이 난다'와 같은 자각들을 '자유의지가 없음'의 사례로 내세우는 것이 마땅할까? 심지어 저자는 심장이 뛰는 것을 우리 스스로 멈출 수 없다고 하여 자유의지가 없단다. 이게 말이 되는 소리인가? 좀 더 격앙되어 따지기 전에 이 이야기부터 하자. 저자는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자유의지'이며 그렇게 규정한 것에 어떤 타당성이 있는지 먼저 밝혔어야 했다. 그렇지 않고서는 빨간색을 앞에 두고 적록색맹인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 대화하는 것과 마찬가지의 결과가 된다. 위에서 '운명'을 언급할 때도 말했지만 인간에게 전적으로 무한한 자유가 주어진 것은 아니다. 하지만 '자유의지'라고 부를만한 영역은 여전히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이밖에도 내가 반박하고 싶은 내용은 더 있지만, 그것은 리뷰를 통해 말하기로 하고 씁쓸한 이야기는 여기서 맺는다.

 

 

#5. 씁쓸한 뒷맛을 가시게 하는


처음부터 씁쓸한 얘기를 꺼내기 싫어 달달한 얘기부터 썼더니 씁쓸한 얘기로 맺는 꼴이 되어버렸다(그것도 아주 길게). 그래서 이번엔 좀 신나는 이야기를 해보자. 예를 들면 책 사기 같은...^^

 

 

 

 

 

 

 

 

 

 

 

 

 

 

<구관조 씻기기>는 정말, 이런말 하기 쑥스럽지만, 작가의 얼굴을 보고 샀다. 작가가 너무 잘 생겨서 그런 것이 아니라 너무 젊어서, 진짜 젊어서 샀다. 한달 전 쯤이었나? '젊은 시인'을 소개하는 글을 보았는데, 거기 실린 시인의 사진이 새파랗다도 부족할 정도로 젊디 젊었다. 도대체 이 고등학생같이 생긴 남자가 어떤 시를 썼을까? <구관조 씻기기>의 첫 시를 읽어본다. '있'과 '다' 사이에서 줄바꿈이 된 것은 무슨 이유일까? 아무리 궁리해도 읽을 때 운율을 위한 것이 아닐까, 라는 것 외에는 생각나지 않는다(나중에 다시 보니 이건 그냥 마진상의 문제로, '다'가 줄바꿈을 할 수 밖에 없는 문장길이였다. 우연히 '다'가 연이어 다음줄로 바뀌었을 뿐...괜히 설레발쳤네. ㅎㅎㅎ)


말린 과일에서 향기가 난다 책상 아래에 말린 과일이 있
다 책상 아래서 향기가 난다

나는 말린 과일을 주워 든다 말린 과일은 살찐 과일보
다 가볍군 말린 과일은 미래의 과일이다

- '건조과' 中에서(<구관조 씻기기>, 민음사)

 

오래 전 진은영의 <훔쳐가는 노래>를 산 후 로쟈님의 서재에서 이와 최종 경합을 벌였다던 한 시집에 대해 읽은 적이 있다. 그런데 막상 사려고 하니 제목이 도통 생각나지 않는 거다. 그렇다고 한 주만 지나도 페이퍼가 수두룩하게 쌓이는 로쟈님의 서재를 막무가내로 탐색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포기한 채로 한참 시간이 지났는데, 누군가 구원의 페이퍼를 올려주었다. 그 글에서 이 책을 소개해준 것이다. 확인사살을 위해 알라딘 검색창에서 <에듀케이션>을 치고 로쟈님의 페이퍼(사실 리스트였다)가 있는지 찾아봤다. 맞다! 이 책이다..이렇게 기쁠수가!

 

세 권의 시집이 모두 기대받는 젊은 시인들의 작품이라면 다음 두 권은 관록있는 노장들의 시집이다.


<래여애반다라>. 이게 대체 무슨 소린가! 래(來), 여(如)까지는 확실한 것 같은데 '애'는 '愛'인지, '哀'인지 애매하기만 하다. 그래서 책 소개를 찾아봤더니, 다음과 같이 쓰여 있었다.

"이곳에 와서(來), 같아지려 하다가(如), 슬픔을 보고(哀), 맞서 대들다가(反), 많은 일을 겪고(多), 비단처럼 펼쳐지고야 마는 것(羅)"이 바로 우리들 삶임을, 탯줄을 끊고 세상에 나온 누구나 예외 없이 생(生)-사(死)-성(性)-식(食)의 기록에서 벗어날 수 없음을, 하여 우리는 절망과 서러움으로 점철된 생(詩/言語/文學)의 '불가능성'을 거듭 되씹는 운명의 수레바퀴를 굴리고 있노라 말하는 시인의 목소리는 시종 담담하고 또 허허롭다.

 

마치, 우리의 삶을 위한 염불처럼 들린다.


<그러니 그대 사라지지 말아라>는 승효상의 에세이 <오래된 것들은 다 아름답다>에서 서시(서문대신 쓰인 시)로 실린 박노해 시인의 시를 보고 순식간에 반해 찾게 되었다(원래 이 책에 수록된 시다). 박노해 시인하면 민주화항쟁이 떠오르기에 적어도 90년대에 출간된 시집인 줄 알았는데, 의외로 2010년도 출간. 헉, 12년만에 낸 시집이라고 한다. 하여 기쁜 마음으로 날잡아 책을 사야겠다 벼르던 어느 날, 이 책이 중고샵에 떳다. 이게 웬 횡재냐 싶어 얼른 장바구니에 챙겨넣고 약 30분가량 함께 주문할 책들을 물색. 모든 것을 마치고 장바구니에 가 본 순간, 이게 웬일이냐..그새 누군가가 사가고 없다. 옛 시인이고 구간 도서인데 누가 탐낼까 싶었지만 내 예상은 기대를 비껴갔다.ㅠ.ㅠ 그래도 이번만큼은 그다지 아쉽지 않다. 아직도 이분께서 시를 쓰고 계시다는 것과 그와 같은 생각을 가지고 꾸준히 관심을 가지고 있는 독자들이 여전하다는 사실, 그 하나만으로 흐믓하니까. 책이야 뭐, 제값주고 사면 그만이지..그러니 그대, 사라지지 말아라.

 

...오랜 시간을 순명하며 살아나온 것/시류를 거슬러 정직하게 낡아진 것/낡아짐으로 꾸준히 새로워지는 것//오래된 것들은 다 아름답다...자기 시대의 풍상을 온몸에 새겨가며/옳은 길을 오래오래 걸어나가는 사람/숱한 시련과 고군분투를 통해/걷다가 쓰러져 새로운 꿈이 되는 사람//오래된 것들은 다 아름답다...

 

'오래된 것들은 다 아름답다' 中에서(<그러니 그대 사라지지 말아라>, 느린걸음>

 

 

소개하고픈 책이 몇 권 더 있는데 글이 너무 길어지는 바람에 포기해야겠다.
그래도 자랑하고픈 것 한 가지..^^
작년 언젠가 페이퍼에 <내면기행>이 반값으로 나왔으면 좋겠다고 썼는데, 이게 이 달의 반값도서에 올랐다.
알라딘에는 진정 지니가 살고 있는 것일까? 비록 '즉각'은 아니지만 내 소원이 이뤄졌다. 신기하다.
이 책은 <나는 어떤 사람인가>를 읽고 좋아서 이 책과 짝이되는 <내면기행>까지 챙겨읽고 싶어쓴데 정말 잘 됐다.


 

 

 

 

 

 

 

 

 

 

 

 

 

 

 

마지막으로 지금 읽고 있는 책.

<하버드 교양강의>는 단순히 궁금했다. 그 학교 애들은 교양으로 뭘 배우나..하는. 그런데 책의 구성을 보니 자연/과학분야가 거의 절반을 차지한다. 물론 우수한 강의를 선별해 엮은 것이지만 한 분야로 좀 치우치지 않았나 하는 아쉬움이 있다. 현재 2번째 강의를 읽는 중이고 지금까지는 무리없이 잘 나가고 있는데, 단 한가지...'사진1'을 찾느라 무척 애를 먹었다는 것. 스티븐 핑커의 강의를 보면 '사진1'을 참조하라고 했는데 '그림1'밖에 찾을 수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사진1'의 설명이 '그림1'에 해당되는 것도 아니었다. 한참 책을 뒤적여가며 책의 앞, 뒤를 꼼꼼히 찾아봤고, 핑커의 강의와 참고문헌 사이를 방황해봐도 절대 나오지 않는다. 결국 제본할 때 빼먹은 것이라 생각하고 날잡아 출판사에 문의해볼까 했는데 다다음날 책의 한 가운데에서 '사진1'을 비롯한 모든 사진목록이 발견되었다. 달랑 두 페이지짜리 사진목록을 이렇게 가운데 끼어 넣으면 어쩌란 말인가! 게다가 이 책은 간지가 회색이라 눈에 잘 띄지도 않는다. 에휴, 앞에 좀 실어주지..참 독득한 친절을 발휘하는구나..

 

개인적으론 <하버드 교양강의>보다 우리나라에서 나온 <한 평생의 지식>이 더 마음에 든다. 이 책은 대학생이 아니라 일반인을 대상으로, 삶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지식들을 모아 놓은 책이다. 물론 단편적인 지식은 아니고, 하버드 강의처럼 강의와 비슷한 짧은 에세이들인데, 살아가는데 밀접하지만 잘 느끼지 못하는 과학, 첨단기술에서부터 늘 접하는 일, 돈, 문학, 죽음 등등 다양한 분야를 다룬다. 하지만 산만하지 않고, 글쓴이들의 정성도 상당하고, 누구나 부담없이 읽을 수 있다는 점에서 참 좋다. 이 책에서 언급하는 각 분야에 대해 이미 독서를 많이 한 사람이 아니라면 오늘날 지식의 현주소를 한 눈에 들여다 볼 수 있는 꽤 쏠쏠한 책이다.


글을 다 쓰고 문득 책이 쌓여있는 벤치로 시선이 간다.
여기서 다 읽은 책은 단 한 권이라지?
저게 언제 다 사라지나...

 

 

 

 

 



 
 
소이진 2013-05-07 21:20   댓글달기 | URL
청소년 문학 캠프에 황인찬 작가님이 오셨더랬죠. 저는 직접 가진 않고 사진으로만 보았는데 젊긴 젊더라구요. 그런데 사실 황인찬 작가보다는 이이체 작가가 더 어릴걸요. 시도 좀 더 깊이가 있고 정통적일 거예요. 잘생기기도 더욱 잘생겼지요. 황인찬 작가가 노는 오빠처럼 생겼다면 이이체 작가는 시 쓰는 오빠처럼 생겼지요. 이혜경의 소설집은 몇 편은 좋았고 몇 편은 별로였어요. 제가 피곤할 때 읽어서인지 뒤로 갈수록 집중력이 달려서인지는 몰라도 후반부가 썩 좋진 않았어요. 검은 강구였나, 그 작품은 읽다 말까 생각도 했구요. 하지만 이 작가가 대단하다는 건 앞의 두 작품만 읽어도 알 수 있지요. 특히 표제작은 감동스럽습니다. 저는 진은영 시집과 젊은작가상 수상집을 읽어야겠어요.

분홍신 2013-05-08 09:00   URL
오오..진짜 잘 생기셨네요. 근데 저는 왜 프로게이머같다는 느낌이 드는걸까요?
아마 제가 본 사진(네이버 인물소개 사진)의 헤어스타일이 게임 캐릭터처럼 치솟아 있어 그런가봐요.^^
이이체님의 작품은 좀 전에 잠깐, 몇몇 페이퍼로 읽어봤어요. 소이진님 페이퍼도 있더군요.
저도 이 분의 시집을 사봐야겠어요. 맘에 쏙 들었거든요. 좋은 작가를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이혜경님의 표제작은 정말 평범할 수도 있는 이야기인데 섬찟하고 감쪽같이 엮어나갔죠?
다른 작품들하고 완성도에서 격차가 있는 것 같은데, 저도 나중에 유념해서 읽어보겠습니다.

정말 문학을 두루두루 많이 읽으시나봐요. 모르는 작가가 없으신 듯...
문학을 공부하시는 학생? 청소년 문학 캠프..라면, 고등학생? (대학생도 갈 수 있는건지 모르겠지만)
여하튼 문학에 대한 애정과 열정이 대단하신 듯 해요. 짧은 댓글이지만 그런 게 느껴지네요.

달사르 2013-05-10 14:36   댓글달기 | URL
어허~ 이건 반칙!
도대체 페이퍼 몇 개짜리를 합쳐놓은 거야요. ㅎㅎ
손목에 파스까지 붙이신 상태로 올리신 페이퍼라 살짝 실눈 감아드림. ㅎㅎㅎ
대신 담에는 하나의 주제로 기~~~이일게!

마쉬멜로우는 보기만 봐도 귀가 쫑긋거려져요. 제가 단 걸 잘 안 먹어서 입안에 단맛이 감도니 귀가 간질간질.
ㅋㅋ 조카사랑은 역쉬 이모지요. 이모라면, 평소에 먹지 않던 음식도 조카를 위해서 얼마든지 먹어줄 수 있지요. 암요 암. ^^

분홍신 2013-05-11 00:06   URL
으아앙..반칙?

예전에 페이퍼를 세 번이나, 앞대가리만 써 놓고 미뤄뒀거든요..ㅠ.ㅠ
그래서 이거저거 빼고 간추린 게 이거예요. 그나마 파스가 살려주는군요.^^
담에는, 담에는...헉헉....

조카가 12개월 쫌 넘었을땐가?
요 녀석이 고 조막만한 손으로 강남콩을 날름날름 주워먹는 거예요.
맛나게 먹는 모습이 너무 예뻐서 흐믓하게 바라보고 있는데,
갑자기 아주 선심을 쓰면서 제가 싫어하는 강남콩을...제 입에 덥썩~!
한 번도 아니고 연달아 두 번씩이나 덥썩~!
바로 전에 수박 달라고 할 때는 안 주더니..ㅋㅋㅋ
할 수 없이 아주 맛있는 척!하면서 먹었죠, 뭐...^^

달사르 2013-05-10 15:05   댓글달기 | URL
손보미와 황정은은 자꾸 눈이 가는 작가에요.
읽고 나서 돌아서서 또 읽고 몇 번이고 반복해서 보고픈 그런 느낌까지는 아니고, 가끔씩 여러번 반복하고픈..그러니까 텀을 둬서 읽고픈 그런..

책이 쌓인 벤치. ㅋㅋㅋ. 벤치를 아주 높다랗게 만들 자신은 있는데 벤치를 낯출 자신은 없네요. 하하하.

분홍신 2013-05-11 00:11   URL
손보미, 황정은 작품까지 다 읽었어요.
스타일은 전혀 다르지만 역시...제 기대에 어긋나지 않았네요.
달사르님도 이미 찜해놓고 좋아하셨구나...^^
저는 손보미는 처음인데, 앞으로도 꾸준히 관심을 가져보고 싶어요.

사실, 저 벤지 반대편에도 저 만큼 쌓여있습니다.
모릅지기 긴 것은 양쪽에서 지긋이 눌러줘야 균형이 맞는지라...
정말 낮출 자신이 없어요.ㅡ.ㅡ;
 

겨울이 가기 전 해묵은 보관함을 정리하면서 총 230여권의 도서목록 중 100권을 덜어내기로 했다. 처음엔 눈 딱 감고, 뒤도 안 돌아보고 삭제하리라 결심했지만 포기할 수 없는 좋은 책들은 너무 많았고, 시간은 자꾸 흘렀고, 삭제버튼 누르기는 점점 더뎌졌다. 그러다가 내가 도서목록을 만들던 초기 시절의 폴더에 이르렀는데, 여기 담긴 책들은 워낙 명작들이라 대략난감...난 완전 멘붕상태에 빠져든다. 사실 이 폴더에 있던 책들을 그냥 묵혀만 뒀던 것은 아니다. 벌써 수많은 책들을 구입했고, 남은 것이 약 20여권인데 그간 장바구니에만 들락거리다가 결국은 그 자리에 남은 것이다. 이 중에서 상당수를 차지하는 것이 바로 고전문학! 누구 말대로 '너무도 유명하지만 아무도 안 읽는 책'이라더니, 유명세에 담아두긴 했으나 나 역시 '안 읽는' 무리 축에 속하고 있었다.

 

고전문학에 대한 나의 태도를 바꿔놓은 것은 바로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와 카뮈의 <이방인>(일러스트판)이었다. 어릴 적 읽어놓고는 까맣게 잊고 있다가 요즘 들어 다시 보니 이건 고전문학에 실례를 범했어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도대체 이런 감동을 왜 그땐 느끼지 못했을까? 너무 일찍 읽어서 그랬을까, 아님 나만 유독 뭐가 모자랐던 것일까? 하긴, 이제 와서 이유를 밝혀봤자 무슨 소용인가! 지금은 그저 고전문학을 읽을 시간일 뿐. 

 

 


1. 내 보관함의 오래된 책들


보관함에서 오래되기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책들과 옛날엔 빌려 읽었기에 내 것으로 다시 읽고 싶은 책들이다.

 

 

 

 

 

 

 

 

 

 

 

 

 

 

 

 

 

<백년 동안의 고독>은 중남미문학의 대표작이자 '마술적 리얼리즘'의 정수로 알려져 있다. 또한 마르케스에게 노벨문학상의 영광을 안겨 준 작품이기도 하다. 여러 가지 책 소개를 살펴보면 대략 '라틴아메리카의 사회구조가 신화적 구성을 통해 펼쳐진다'와 '과거와 현재의 공존을 매개하는 마술적 리얼리즘'에 솔깃해지는데, 사실 더 매력적인 것은 책 속에 등장하는 '클라비코드'의 은유이다. 예전에 나의 이웃님께서 이 책을 읽으시고 클라비코드의 연주 동영상을 올려주셨는데, 애잔하고도 신비로운 음색, 기타인 것 같으면서도 피아노인 듯한 독특한 소리에 매료돼 독서욕이 팍팍 자극되었다. 책을 읽게 되면 아마도 그 음색을 많이 떠올릴 듯하다.

 

<달과 6펜스>는 인상파 화가인 고갱을 모델로 쓰여졌다는 점에서 내 시선을 사로잡았다. 미술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좀 더 친숙하게 읽을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이 책은 첫 대면, 그러니까 제목에서부터 호기심을 자아낸다. '달'이랑 '6펜스'. 참 묘한 조합이다. 보관함에 담으면서 찾아보니 제목의 '달'은 상상의 세계를, '6펜스'는 돈과 물질의 세계를 상징한다고 한다(오..그런 뜻이!). 한 마디로 자유분방한 예술혼을 불사르는 한 개인의 이야기가 아니라 세상의 물질문명과 욕망에 대한 비판인 것이다. 그리고 이 시대를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에 대한 답을 제시해줄 것 같다.

 

<그리스인 조르바>는 읽으면서 참으로 후끈했던 책이다. 조르바의 행동들은 기이하면서도 이상한 힘이 있었다. 이 책은 좀 더 늦게 만났다면 좋았겠지만 너무 일찍 읽어 버렸다. '20대라면 조르바를 읽어라'고 하는데 10대 초반에 읽어버렸기 때문이다. 그래서 당시에는 조르바가 참 재미있는 사람이라고 밖에 생각하지 못했다. 그런데 잠시 책 소개를 읽어보니 조르바에게서 찾아야 할 형상들은 그 이상인 것 같다. 추천의 글에서 방송작가 최영미의 한 마디가 생각난다. '조르바처럼 '꼴리는 대로'살기 위해 틈틈이 마음을 열어본다. 그리고 묻는다. 네가 진정 원하는 게 뭐니?' 이 책을 읽고 나서 다시 내게 묻고 싶다.

 

<데미안> '누구나 한 번쯤 데미안을 만나고, 누구나 한 번쯤 데미안이 된다!!' 서점에서 뒤적이던 <데미안>의 뒤 표지에 쓰인 문구이다. 누가 쓴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참 가슴을 설레게 한다. 그래서일까? 요즘 <데미안>이 무척이나 다시 읽고 싶어졌다. 이 책 역시 조르바와 비슷해서 너무 일찍 읽어버렸고, 되돌려주었기에 내겐 없다. 데미안은 조르바와 좀 다르지만 역시 자기 주관이 뚜렷하고 자유분방하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느낀다. 게다가 온화한 듯하지만 열정적이고 신비스럽기까지 하다. 그리 길지도 않아 단숨에 읽어버리고 싶은 책! 다시 한 번 '알'과 '아프락사스'의 의미를 되새겨보고 싶다.

 

 

 

2. '고전 강사'의 로드맵에서 고른 책들

 

얼마 전 로쟈님의 <아주 사적인 독서>라는 책을 읽었다. 위에서 말한 '너무도 유명하지만 아무도 안 읽는 책'이라는 글귀도 이 책에서 발견한 것이다. 대체적으로 로쟈님은 내게 '인문학 강사'로의 이미지가 강하지만 이번에는 '고전 강사'를 자처하시며 고전문학을 쉽게 읽어주셨기에 관심을 가지고 읽어 보았다. 그런데 역시나, 고전을 통해 자기 자신을 발견한다는 지극히 평범한 말에도 명료하고 속 깊은 이유가 담겨있었다.

 

이런 작품들을 읽으면서 우리는 각자가 자기 안의 햄릿과 돈키호테와 파우스트와 돈 후안을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어쩌면 그 배합비율까지도 예민하게 의식할 수 있게 될지도 모릅니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이 주인공들이 바로 근대인의 전형적인 초상입니다. 사정이 그렇다면 이 작품들은 남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나의 고뇌와 욕망과 광기와 탄식의 이야기입니다. 저는 그것이 고전의 현재성이라고 생각합니다.(p.7-8)

 

 

 

무슨 이유에서인지 모르겠지만 '나'를 '근대인의 한 개인'이라는 거시적인 관점으로 다루는 저 부분은 내게 무척 커다란 의미로 다가왔다. 구체적인 단어로는 표현하기 힘들지만 그냥 어떤 테두리가 더 확장된 느낌이랄까? 그래서 이 책에 소개된 고전들을 중 관심가는 몇 편을 읽으며 저자가 살펴갔던 부분들을 좀 더 음미하며 읽고싶어 졌다. 아래는 그 대상이 되는 세 권의 책이다.

 

 

 

 

 

 

 

 

 

 

 

 

 

 

<주홍글자>, 하면 내겐 청소년 도서의 이미지가 있다. 아마도 내가 중학교 1학년 언저리쯤 아이들 사이에서 많이 읽히던 책이라 그런 것 같다. 애들이 책을 돌려가며 읽기에 다 읽은 친구에게 무슨 내용이냐고 물었더니 어떤 외도를 한 여인이 'A'자 낙인을 받는 이야기라고 했다. 난 낙인을 주는 형벌, 하면 아주 고리짝 시절 이야기일거라 (짐짓) 생각했고, 여성의 외도 같은 소재는 끝이 뻔할거라 (또 짐짓) 결론 내렸기에 이 책은 단 한 페이지도 펼쳐보지 않았다. 하지만 <아주 사적인 독서>를 보니 내 추측은 정말 헛다리를 짚은 거였다.

 

헤스터 프린은 광장에서 일정 시간 동안 서 있는 형벌을 받습니다. "나는 죄인입니다"라고 드러내는 거죠...(중략)...헌데 너무 당당하게 서 있습니다. 죄수에게 수치를 주려고 처형대 위에 세워놓았는데, '만약 이 청교도 무리 속에 카톨릭 신자가 있었다면 바로 이 여인네의 모습에서 성모마리아를 떠올렸을 것'이라고 할 정도니 형벌의 원래 의도와 맞지 않죠.(p.56)

 

난 주인공 헤스터 프린이 이렇게 당당한 여성인 줄 몰랐다. 말할 수 없는 비밀과 아이까지 품은 채 세상의 이목에도 굴하지 않고 꿋꿋이 인내하는 여성인지도, 역시 몰랐다. 책 속에 드러난 주인공의 캐릭터를 보니 <주홍글자>가 무척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더불어 가슴에 찍힌 'A'자에 대한 중의적인 의미도 책을 읽어나가며 하나씩 발견하고 싶다.


<채털리 부인의 연인>에 관해서 로쟈님은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극작가 버나드 쇼는 <채털리 부인의 연인>을 가리켜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대학 도서관에는 반드시 있어야 하는 책이다. 만약에 여학생이 이 책을 읽지 않았다면 결혼허가서를 떼 주지 말아야 한다."(p.92)

 

이 작품이 단순한 성애문학의 차원을 넘어서는 이유 중의 하나는 작품을 구성하는 요소들이 시대적 상징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가령 남편 클리퍼드는 전쟁에서 부상을 당하고 반신불구가 되지만 재활 치료를 받아서 회복하는 인물입니다. 하지만 온전하게 낫지는 못해서 하반신 불구가 되고 생식능력도 상실하죠. 여기서 클리퍼드는 불구의 몸, 나아가 서양 문명 자체의 불구성을 상징합니다. 반면 나중에 등장하는 산지기 멜러즈는 회복되어야 하는 자연을 상징합니다.(P.92) 

 

이 책에 대한 추천사는 아마도 버나드 쇼의 것이 가장 최고가 아닌가 싶다. 그리고 단순한 성애문학에 가깝다고 보았던 나의 편견을 지우고 보다 큰 그림 속에서 윤곽을 잡아 나간 상징성을 음미하며 천천히 읽어봐야겠다. 어쨌든, 못 말리는 쇼의 재치 덕에 한껏 웃으며 유쾌하게 선택한다.


<파우스트>는 유명한 고전문학 중에서도 대작으로 인정받음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읽어보지 못했다. 하지만 이 책이 청소년 권장도서, 심지어는 이십 대 권장도서로는 맞지 않다는 로쟈님의 의견에 다소 안심을 하며 이번 기회에 반드시 읽어보리라 결심해 보았다.

 

독일의 대문호 괴테의 대표작 <파우스트>는 중년을 위한 작품집입니다. 놀기만 하기엔 너무 늙었고, 소망 없이 살기엔 너무 젊은 나이가 중년이라면요...(중략)...이대로 늙기엔 뭔가 억울하고 다시 새로운 인생을 살기엔 좀 늦은 듯싶은 나이가 <파우스트>를 읽기에 딱 좋은 나이입니다.(p.198)

 

게다가 <파우스트>를 통해 세 가지 인간의 욕망을 들여다 볼 수 있다고 하는데, 그 첫 번째가 바로 지식에 대한 욕망이다. 책 읽기 좋아하고 많은 지식을 추구하는 나로서는 뜨끔한 일이다. 파우스트가 이 욕망을 추구하면서 어떤 갈등을 겪는지, 그리고 결국엔 어떤 결론을 얻게 되는지 확인하고 싶다. 그것은 반면교사일까? 아니면 순응해야 할 진리일까? 궁금하다.

 

인간에게서 무한한 욕망이라고 하면 어떤 것을 꼽을 수 있을까요. 먼저 지식에 대한 욕망, 곧 지식욕을 꼽아볼 수 있습니다. 처음에 파우스트는 지식에 대한 욕망, 앎에 대한 욕망의 화신으로 등장합니다. 이것이 학자 파우스트의 비극입니다. (p.199)

 

 


3. 새롭게 진가를 발견하게 된 책들

마지막으로 리스트에 올리는 책들은 <죄와 벌>만큼 많이 읽히는 것은 아니지만 고전 반열에 오른 책들이고 개정판으로 출간될 때마다 개인적으로 관심을 가졌던 책들이다.

 

 

 

 

 

 

 

 

 

 

 

 

 

 

 

<모비딕>은 제목만 익숙했다가 어느 디자이너 작품을 통해 '고래'에 관한 이야기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 호기심이 생겼다(난 그냥 바다, 고래가 나오는 책들을 좋아한다). 또한 아직까지 고딕문학을 읽어본 경험도 없고, 고래를 통한 '한 인간의 투쟁과 파멸'이라는 점에서 <노인과 바다>와 대조될 것 같아 읽어보고 싶다. 특히 허먼 벨밀은 '바틀비' 같은 독특한 캐릭터를 창조해 낸 작가이기에 그의 대표작인 <모비딕>을 그냥 지나칠 수 없다. 개정판으로 출간된 지가 엊그제 같은데 오늘 다시 보니 이미 구간이 되었다. 그래도 <모비딕>에 한 표!

 
<폭풍의 언덕>은 영화로도 몇 번이나 제작되었던 만큼 흥미와 작품성 면에서 보장(?)할 수 있는 고전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이 책을 선택한 이유가 '영화로도 유명하기 때문'은 아니지만 나름대로 기대감을 더한 것만은 분명하다. <폭풍의 언덕>을 선택한 이유는 첫째, 이 책이 에밀리 브론테의 단 하나의 작품이라는 사실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머싯 몸이 선정한 '세계 10대 소설' 중 하나이며, 셰익스피어의 <리어 왕>, 멜빌의 <모비 딕>과 더불어 영문학 3대 비극'으로 꼽힐 만큼 대단한 이야기를 썼다. 얼마나 열정을 다했기에 이런 소설이 나왔는지 눈으로 확인해 보고 싶다. 그리고 둘째, 캐서린과 히스클리프가 엮어가는 사랑에서 '낭만적 로맨스'를 넘어서는 그 무언가를 찾아보고 싶다.


<좁은 문>은 이성복 시인이 번역해 새로 출간되면서 주목하게 되었다(와, 지드와 이성복이라니!) 어릴 때는 막연하게 프랑스 소설, 하면 난해함으로 귀결되던 탓에 손도 대지 않고 있다가 얼마 전부터 비교적 짧으면서도(200페이지 남짓한 분량) 강렬한 여운을 남기는 고전문학 몇 편을 읽고 이렇게 짧은 고전문학에 눈독을 들이게 되었다. 사회에 대한 풍자와 비판, 그리고 종교적 윤리에 대한 정당성을 다루는 이야기라 하는데, 이루지 못한 사랑 이외에 더 많은 사유의 재료들을 얻을 수 있을 것 같다. 또한 문장도 아름답다니, 매우 기대된다.

 

 


이렇게 읽고 싶은 고전들을 고르다 보니, 세상에는 정말 주옥 같은 고전이 수없이 많다는 것을 새삼 깨닫는다. 가급적 아주 오래된 고전, 그리고 인구에 회자되는 유명한 고전들만 고르려 했는데도 아직 못 다 한 책들이 있으니 갈 길은 무척 멀어 보인다. 하지만 로쟈님처럼 '나는 햄릿이다', '나는 보봐리다'라고 생각하며 나만의 사적인 독서를 쌓아가다 보면 그 길이 그리 힘겹고 지루하지는 않을 것 같다.



 
 
Forgettable. 2013-03-15 01:19   댓글달기 | URL
1번의 두권의 책은....... 제가 손에 꼽는 가장 좋아하는 책이네요. ㅠㅠ 꼭 읽어주세요. 싫어하셔도 괜찮으니까요!!!!

분홍신 2013-03-15 12:49   URL
1번의 두 권이라함은 왼쪽에서부터 두 권인가요?
사실 아무래도 좋습니다. 1번은 제가 열렬히 원하는 책들이니까요.
'손에 꼽는' 가장 좋아하는 책이시라니 읽고 싶은 마음이 더 동하네요.

네, 꼭 읽을께요. 싫어할 확률도 거의 없을 것같아요.^^

마립간 2013-03-15 13:12   댓글달기 | URL
저는 보관함에서 4000권을 넣었다가 비우고 다시 채우기 시작한 것이 600권이 넘었습니다. 저는 토요일 book section을 읽을 때마다 몇 권씩 집어 넣으니...^^ 제에게 문학은 가까이 하기에 너무 분야라 어렵지만 분홍신님 따라 저도 시도해보겠습니다.

분홍신 2013-03-15 20:15   URL
사아천권이나요?@.@
이거, 알라딘에서는 '책 많이 읽었다'부터 '책 많이 샀다', 그리고 이젠 '보관함에 책 많다'까지 어디 명함 하나 내밀데가 없네요. 와..4천권에 완전 쓰러졌습니다.
어쩌면 문학에 취미를 붙이지 못하신다 해도 고전은 좀 다르지 않을까, 기대해 봅니다.
음..그러니까, 전에 유명한 책들은 다 별로라고 하시고, 추리소설 시도도 별로였잖아요?
남은 것은 고전, 그리고 안돼면? 시(詩)! (하하..제 멋대로였습니다.^^)

마립간 2013-03-16 08:55   URL
예전에 신문에서 스크랩할때는 (구입을 고려한 책을 의미하는) 보관함이 서서이 늘었는데, 블로그를 사용하면서 보관함을 채우는 속도가 급속히 늘었지요. 그 중에는 절판된 책도 많습니다. 알라딘 서재 초기부터 한 것이니, 기간도 한 8년에 걸친 것이고요.
문학 중 시詩분야는 (한시를 포함해서) 꽤 친숙합니다. (시나리오/희곡, 평론은 아예 읽지 않아 모르겠고,) 가끔 읽으면서도 거리감이 있는 분야가 소설입니다. 고전으로 여겨지는 소설은 비소설분야가 우선적으로 읽히면서 상대적으로 손이 잘 안 가게되네요. 분홍신님께서 읽고 글을 올려주시면 한 번 따라 읽는 것으로 시도해보겠습니다. (압박이라기보다 격려로.^^)

분홍신 2013-03-16 19:44   URL
서재생활 하신지가 정말 오래되셨군요.
저는 8년전쯤 '어? 서재가 있네, 나중에 여기다 글 써야지..'까지만 생각했죠.^^
정말 블로그 보관함이 있으면 순식간에 불어요.
제 경우는 옛날에 북섹션을 참고할만큼 늘 책에 관심을 갖는 것은 아니었지만
1~2개월에 한 번쯤 대형서점에 가서 실물을 보고 직접 사오곤 했어요.
그땐 정말 구입과 완독이 깔끔하게 끝났는데...

시(詩)와 친숙하시다면 소설이 별로라고 해서 그리 걱정할 건 아니네요.
어떤 방법으로든 문학을 섭취하고 계시잖아요...^^
하지만 마립간님의 독서취향(?혹은 유형?)은 어쨋든 좀 특이하신 편이예요.ㅋㅋ

에..그럼, 많은 분들의 격려에 힘입어 일단 1번에 있는 책들 중 하나를 '필히' 읽겠습니다.

달사르 2013-03-24 23:07   댓글달기 | URL
이히히. 백 년동안의 고독. 반가운 책이네욧.

일 년 안에 읽게 되믄, 저와 저 책 이야기 도란도란 해봐요.
아니닷. 내년도 괜찮아요. 저, 내년에도 이 책 한 번 더 읽을 거거든요.
천천히, 시간을 내서 읽어보시어용~

분홍신 2013-03-25 12:51   URL
올해 꼭 읽을 거예요. 가급적 ASAP로...
달사르님 서재에서 이 책을 본 순간부터 마구마구 읽고픈 마음이 솟구쳐 올랐다구요.
 

한동안 꽤 뜸했다.
<미의 기원>을 다 읽으면 다른 책들도 내리 읽고 한꺼번에 글 쓴다고 벼르다가 그만 감기에 걸리고 만 것이다.

 

감기를 앓은지가 얼마나 됐더라?
보통 감기는 빠르면 1년 반, 대체적으로 2년 주기로 한번쯤 걸리는데
이번에는 3년 전 신종플루를 앓고 난 이후 처음이다.
(흑, 아직도 생생하다. 온 몸이 뻣뻣해지고 고열이 나면서 정신을 차릴 수 없었던 기억.
그리고 식구들과 격리돼 내 방에서 작은 상을 펴 놓고 혼자 밥먹었던 기억.
것두, 크리스마스에...ㅠ.ㅠ)


감기가 온다 싶을 땐 냉큼 오렌지 쥬스를 한 병을 마신다.
물론, 여기서 한 병이란 200ml가 아니고 1.5리터다.ㅡ.ㅡ;
예전에 이렇게 해서 감기를 초기에 잡은 이후 무슨 비법처럼 꼭 이렇게 한다.
헌데 이번에는 별로 소용도 없고, 결국 닷새동안 매일 1병, 총 5병을 마신 기록만 남겼다.

 

 

 

 

 

 

 

 

 

 

 

 

 

 

이번엔 5권의 책 이야기를 하자. 그동안 읽었던 책 중에서 가장 좋았던 것은 <미의 기원>이다. 처음에는 새들의 짝짓기 방식과 몸무게, 깃털의 성분까지 등장해 이 이야기가 대체 어디까지 갈까 걱정스럽기도 했지만 후반부의 '미의 해석'이후부터는 점점 내용이 흥미로워지더니 마지막에는 개체의 존엄성, 환경으로부터의 자유, 변형의 의미까지 이어지면서 과학적 분석을 인문학적 사유로 확장해 매우 훌륭한 마무리를 보여주었다. 그 다음에 읽은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은 해외 입양아의 이야기를 한 치의 진부함도 없이, '심연'과 '날개'로 풀어나갔다. 다만 읽는 내내 인칭의 변화가 좀 불편했는데, 이건 1인칭의 '나'가 교체됨으로 인한 혼동때문이 아니라 작가의 의도가 너무 명확해서, 너무 환해서 그랬다. 좀 더 은근하거나 모호하거나 독자가 예측하지 못한 변화가 있었다면 더 큰 감동을 받았을 듯하다. 그리고 요즘 베스트셀러로 떠오른 <천 번을 흔들려야 어른이 된다>도 이전작인 <아프니까 청춘이다>를 읽었으므로 후속이 궁금해 펼쳤는데, '위로와 격려'를 표방하는 책들이 넘쳐나는 것이 문제지 딱히 이 책이 별로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누구의 책이든 인생의 조언을 담고 있는 책들은 결과적으로 마찬가지 아닐까? 다 각자에게 맞는 조언이 있고, 실천과 어떻게 이어지는가의 문제이지 조언 자체가 반드시 문제를 해결해주는 절대 정답은 아닐 것이다.

 

감기가 들면서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고독을 잃어버린 시간>을 읽었다. 특히 이 중에서 <고독을 읽어버린 시간>은 감기가 가장 극성을 부릴 때 읽은 책인데, 곧 죽어도 책을 읽어야 한다는 일념 때문이 아니라 침대에 누워 할 수 있는 것이 책 읽는 것 밖에 없어 그랬다. 그런데 이 두 권의 책 모두 (주제는 다르지만)느낌이 비슷하다. 우리가 익히 아는 이야기인데 학문적으로 분석했다고 해야하나? 도덕이 마비된 시장경제(<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나 SNS를 포함, 유행과 외형에 몰두하는 신세대(<고독을 잃어버린 시간>) 모두 현상에 대한 서술과 비판은 있는데 특별한 결론이 없다. 물론 <고독을 잃어버린 시간>은 읽다가 지루해져서 중간에 덮은 책이라 섣불리 '결론'이란 말하기 곤란하지만 각 편지마다 구체적인 매듭이 없어 보이니 그렇게 느껴진다. 감기약땜에 땀을 뻘뻘 흘리며 몽롱한 상태에서 읽어 그럴 수도 있으니까 일단 나중에 다 읽을 때까지 보류. 하지만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에 소개된 내용들은 무척 충격적이었고, <고독을 잃어버린 시간>에서 현상을 거대한 이론의 틀 안에서 해석하는 바우만의 지성은 놀라웠다.

 

 

 


 

 

 

 

 

 

 

 

 

 

바우만의 책을 중간에 덮으면서 다른 책을 뒤적여 봤다.
뭘 먼저 읽을까 고민하다가 세 권을 훑어 보았는데, 이런...다 맘에 든다.
정말 뭘 먼저 읽어야할지 본격적으로 고민되네.

 

먼저 <나의 행복한 물리학 특강>은 푸른 하늘 한 조각과 구름을 만드는 내용에서부터 내 맘을 쏙 빼앗아 갔다. 그냥 '하늘은 왜 파랄까?'에 대해 간단히 과학적으로 답해도 다 이해할 수 있는 내용인데, 이렇게 훌륭한 아이디어로 과학을 실제 경험하도록 해주니 매혹되지 않을 수 없다.

 

내가 좋아하는 시범 가운데 하나는 교실에서 한 조각의 '파란 하늘'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이를 위해 전등을 모두 끄고 칠판 가까운 천장에서 아주 밝은 백열등 하나만 비추도록 한다. 이 빛은 너무 넓게 퍼지지 않도록 잘 차단해야 한다. 그런 다음 이 빛 속에서 담배 몇 개비를 피운다. 담배 연기 입자들은 레일리산란을 일으킬 정도로 미세하며 따라서 파란 빛이 가장 많이 산란되므로 학생들은 파란 연기를 보게 된다. 이어서 나는 한 단계 더 나아간다...(이하략)...(p.21)

한 단계 더 나아가면 하얀 구름을 만드는 이야기가 나온다. 그리고 어째서 같은 연기가 하얀 구름이 될 수 있는지 설명해 준다.
결국, 푸른하늘과 흰 구름의 과학적 설명은 이 두 실험의 대조로 깔끔하게 정리된다. 정말 멋지지 않은가?
(궁금하신 분들을 위해 힌트, 입담배와 속담배)

 

장 그르니에가 카뮈에게 권했다는 소설 <고통>은 분량이 길지 않아 빨리 읽어볼까 하던 참이었다. 그런데 앞부분을 읽다보니 몇 군데 문장에서 매료되며 책 고르기에 갈등만 더해준다. 물론, 상을 당하고 아들밖에 남지 않은 그녀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지 궁금하기도 했지만.

 

또 다른 책은 그동안 참 궁금했던 <너무 다른 사람들>이다. 사람들의 정서 유형을 6가지로 나누고 이것을 뇌과학의 관점에서 분석하며, 테스트도 있고 어떻게 변화시키는가에 대한 내용도 있다. 게다가 저자가 오랫동안 연구했던 주제이니만큼 내용이 상당히 충실하다. 그런데 이 책과 관련해 몇 가지 더 욕심나는 책이 생겼다. 오늘 이 글을 쓰기 전 잠시 새 책들을 둘러봤더니 스티븐 핑커 등 16명의 석학들이 공저한 <마음의 과학>, 인간에 대해 열정적으로 탐구하는 마이클 가자니가의 <뇌로부터의 자유>가 눈에 띄고 만 것이다. 이 두 권의 책은 당연히, 북카트로...


휴, 그나저나 어떤 책 부터 먼저 읽을지 아직까지 고민이다.
아...모르겠다. 오늘 밤에 그냥 손에 잡히는 것이 1순위다.

 



 
 
 

 

 

 

 

 

 

 

 

 

 

 

 

 

4권의 책을 연달아 달리고 있다. <굿바이, 카뮈>, <명랑철학>, <사물의 언어>, <미의 기원>이 바로 그들이다.
<굿바이, 카뮈>에 대해서는 나중에 따로 글을 올릴 예정이라 패스. <명랑철학>은 좀 급하게 훑어본 책이라 니체의 철학을 명랑과 잘 접목시켰는지 파악하진 못했지만 전반적으로 '인생을 위한 니체의 아홉 가지 키워드' 같은 느낌이었다. <사물의 언어>는 소비주의와 물질만능 시대의 디자인을 되돌아보게 한다. 추천사 중 "...그런데 읽기 쉽지 않은 책이었다. 하도 웃는 바람에 자꾸만 읽던 자리를 놓쳐서."라는 문구가 있는데, 나는 읽던 자리를 놓칠만큼 웃지는 않았지만 능청스런 저자의 유머가 나름대로 즐거웠다.

 

밀라노 디자인 박람회에서 이목을 끈 디자이너들은 표면적으로 봐서는 전혀 디자인이 아닌 것처럼 보이는 일들을 하고 있었다. 그들은 어떤 문제를 해결하는 것과는 아무런 관계도 없는 물건들을 창조하고 있었다. 근본적으로 쓸모없고 수효가 적으면 가격은 어마어마한 물건들을 만들고 있었던 것이다...(중략)...그들의 작업은, 16세기에 밀라노의 한 공방에 섬세하게 금으로 무늬를 새겨넣고 소용돌이무늬와 곡선들로 정교하게 장식한 갑옷 한 벌을 주문했으나 화가 났을 때 그 갑옷을 입을 계획은 전혀 없었던 용병 대장이라면 잘 이해할 만한 의미에서, 상당히 디자인답다.(p.262)

 

 

뿐만아니라 뛰어난 통찰력을 발휘하는 부분들(더불어 독자를 생각하게 만드는 부분)이 있어 매우 흡족하다.

 

이 모든 이야기는 원형들(archetypes)만이 중요하다는 말이 아니다. 원형들의 기능적 속성들은 여전히 유동적이므로, 앞으로도 원형이 만들어질 여지가 있는 여러 다른 물건들의 범주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휴대전화가 그렇게 복잡하면서도 흥미로운 형식인 이유는 바로 끊임없이 한 형태에서 다른 형태로 변하고 잡다할 정도로 갖가지 기능들을 추가하기 때문이다.(p.123)


우리 시대의 호사에서는, 점점 더 소비자들에게 돈을 쓰도록 설득하는 디테일들이 중심을 차지한다. 그러나 앞으로는 호사에 대한, 원래 의미에 더 가까운 또 다른 정의가 점점 더 적절한 것으로 판명될지도 모른다. 그 정의에 따르면 호사란 위협적으로 우리를 압도하는 소유물들의 가차 없는 유입으로부터 잠시 벗어나 쉴 수 있는 느낌을 갖게 해주는 것이다.(p.190)

 

개인적으로 이 책에서는 '원형'과 '사치'에 관한 부분이 가장 맘에 들었다. 디자인이 가진 언어, 예술과 디자인 사이의 미묘한 경계, 소비시대의 디자인을 논하는 책은 많지만 이런 부분(원형과 사치)을 상세히 접할 수 있는 책은 드물었기 때문이다. 또한 소스타인 베블런의 <유한 계급론>을 종종 인용하고 있어 함께 읽으면 좋을 듯하다. 나머지 자세한 것은 리뷰에서...


마지막으로 <미의 기원>은 현재 1/3쯤 읽은 책이다. 이름도 생소한 각종 새들(오리나 공작같은 친숙한 새들도 있지만)과 사슴류가 난무하는 가운데 그들의 짝짓기 방식과 몸무게, 깃털의 성분까지 머릿속에 집어넣으려니 아주 죽을 맛이다. 다윈도 몰랐던 진실에 도전한다기에 분석에서 결말부분을 학수고대하는 중이지만 좀처럼 새와 사슴 얘기는 끝나지 않는다. 하지만 흘깃 보니 책의 절반 이후 드디어 2부, '미의 해석'이 등장한다. 그때까지만 좀 더 참고 읽어보자궁..ㅠ.ㅠ

 

 

 

달리기는 책 읽기에서 뿐만 아니라 책 고르기에서도 진행되었다. 어제와 그제, 양일에 걸쳐 그간 둘러보지 못했던 두 달 반치 신간들을 쭉 살펴봤더니 거의 계주를 마친 느낌. 그러다보니 온갖 책들을 마구 쓸어넣어 정리가(그리고 자제도) 필요할 듯하다.

 

수많은 책들 중에서 '정말 대단하구나'하는 책이 하나 눈에 띈다. 사진집인데 제목은 <한국의 장터>이다. 사진가는 스물 아홉, 신춘문예에 낙선하면서 사람공부가 부족했다 싶어 장터에 나가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러다보니 우리나라 각 지방의 장터 찍기만 수십년, 그 사진들을 모아 무려 480페이지에 달하는 한 권의 사진집으로 묶어냈다. 사진 작가중에 발품팔아 작품하지 않는 사람이 어디있을까만(연출과 스튜디오작업을 위주로 하는 작가 빼고), 이번 경우는 참 특별하고 귀하다. 처음 의도야 어찌됐든 대형마트와 온라인 쇼핑에 익숙한 우리들에게 사람들의 온기를 전해줄 것 같다. 물론, 사라져가는 것들에 대한 아쉬움도 뭍어나겠지만.

 

 

나물 곁에 모여앉으신 할머니들의 표정이 재밌다. 쪼르르 한 줄로 앉아있는 것이 아이들 같기도 하고. 이 사진은 저자의 홈페이지에서 가져온 것이라 책 속에 실려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이 책은  정말 무슨무슨 대도록보다 훨씬 멋지다...

 

 

 

 

 



 
 
transient-guest 2012-09-19 02:35   댓글달기 | URL
사라져가는 모습을 담은 사진자료는 참 귀한 것 같아요. 이런 모습들이 계속 이어졌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어릴 때 다니던 시장의 참맛이 마트에 의해 잠식되고, 동네슈퍼도 편의점으로 바뀌어가는 것이 별로라서요.

분홍신 2012-09-19 23:06   URL
저도 어릴적 엄마 손잡고 갔던 시장이 그리워요. 아직 그 시장이 남아있긴 하지만 좀 더 시장의 활기를 더해주는 생선가게며, 양계장(이건 제가 무서워했던..^^;)이 사라지고, 정육점대신 목우촌이 들어서고, 유기농가게가 생기면서 반쯤 그 모습을 잃었거든요. 혹시 이 사진작가님, 우리동네 시장 사진 안 찍어 주시려나..안되면 저라도 찍어놔야 하나..생각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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