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치투자자와 트레이더의 관계는 부부관계와 비슷해 보인다. 대체로 니가 옳으냐 내가 옳으냐 다투지만 사실은 서로가 서로를 필요로 한다. 가치투자가 있기에 주식 트레이딩은 도박이 아니라 투자 활동으로 분류될 수 있다. 그리고 트레이더가 있기에 호재와 호실적이 주가에 즉각 반영되어 가치투자자는 인내의 열매를 얻을 수 있다.
가치투자자이고 싶은 나에게 트레이더를 이해하는 일은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 스타크래프트에서 프로토스 유저가 저그나 테란 유저를 이해하는 일과 유사하다. 우리는 근본이 다른 테크트리를 사용하지만 같은 게임에 참여하는 플레이어이기 때문에, 게임에 임하는 자세와 게임 안에서 일어나는 특정 사건을 어떻게 해석할지에 대해 서로 배울 점이 많다.
이 책은 트레이딩 계의 거장 알렉산더 엘더 박사의 저서로 트레이딩계에서는 손꼽히는 고전이라 한다. 엘더 박사는 정신과 의학박사로 1950년생이다. 원서인 『Trading for A Living』은 그의 나이 마흔 셋인 1993년에 출간되었고, 그 개정판은 2014년에 『The New Trading for A Living』이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었다. 이 책은 개정판에 대한 국내 번역본으로 2020년 12월에 출간된 따끈따끈한 신작이다. 나는 이벤트에 참여하여 이 책을 이레미디어 출판사로부터 선물받았다.
옮긴이는 '신가을'님으로 『데이비드 드레먼의 역발상』 등 다수의 투자 서적을 번역한 분이다. 책은 의미가 분명하고 읽기 편한 문장으로 잘 번역되어서, 580 페이지에 이르는 분량임에도 부담스럽지 않게 술술 읽을 수 있었다.
책은 크게는 11부, 세부적으로는 59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중 가장 많은 3~10부(17장~56장)는 트레이딩 방법론이다. 해당 부분은 초보 가치투자자가 깊게 탐구할 영역은 아니라고 보아 외국 휴양지의 풍경을 관람하듯 느슨하게 읽었다. 책의 내용 중 특히 집중력을 발휘해서 읽은 부분은 앞의 1장~16장(들어가는 글, 1부 개인심리, 2부 집단심리)로, 아래에서는 이하의 내용을 중점적으로 서평을 작성했다.
들어가는 글
01 마지막 미개척지, 주식시장
아마추어가 돈을 잃는 이유는 딱 세가지다. 게임이 어려워서. 무지해서. 그리고 자제력이 부족해서.
오랫동안 사귄 친구가 있다. 그의 부인은 기품이 있지만 좀 뚱뚱한 편이라 계속 다이어트를 해왔다. 늘 살을 빼고 싶다고 입버릇처럼 말했고, 모임 같은 데서 케이크나 감자에는 입도 대지 않았다. 그런데 그의 집에 놀러 가면 늘 부엌에서 커다란 포크로 케이크를 먹는 부인의 모습이 보였다. 날씬해지고 싶다고 말했지만, 부인이 여전히 뚱뚱했던 데는 다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음식을 먹으면서 지금 당장 느낄 수 있는 쾌락의 유혹이 나중에 체중이 줄었을 때 오는 즐거움과 건강에 대한 욕구보다 더 강했던 것이다. 성공하고 싶다고 말하지만 순간적인 짜릿함을 맛보기 위해 시장에서 도박을 하는 충동적인 투자자 역시 마찬가지 경우다. 사람들은 자신을 속이고 자신을 상대로 게임을 한다. 남을 속이는 것도 나쁘지만 자기 자신을 속이는 건 아예 가망이 없는 일이다. 다이어트에 좋다는 책이 서점에 널려 있건만 과체중으로 고생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 다른 사람들이 참석한 파티에서는 음식을 참고, 집 부엌에서 혼자 포크로 케이크를 먹는 부인의 모습에서 인간미를 느낀다. 그런데 이 장면이 누군가에게 발견되었기에 망정이지, 끝까지 발견되지 않았다면 영원한 미스터리나 위장의 성능이 너무나 뛰어났던 가엾은 부인에 대한 이야기로 남았을 뻔했다.
그러므로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쓸 때, 내가 '인간미' 있는 스토리를 쓰는지 아니면 '가엾은' 스토리를 쓰는지를 살펴보자. 가엾은 스토리라면 자기자신을 속이고 있거나 아니면 자기자신의 비밀을 아직 스스로 찾지 못한 것이다. 역시 정신과 의사의 진단답다.
위험한 스포츠를 즐기려면 안전 규칙을 준수해야 한다. 위험을 줄여야 성취감도 느끼고 게임을 통제할 수 있다. 트레이딩 역시 마찬가지다.
▶ 번지점프, 암벽등반 등 익스트림 스포츠를 즐기는 사람들이 있다. 안전 규칙은 그들에게 무엇보다 중요할 터. 트레이딩이 그런 익스트림 스포츠의 한 종류라면, 왜 어떤 사람들은 트레이딩에 끌리는지 알 것 같다.
트레이딩을 진지한 지적 작업으로 취급해야 성공할 수 있다. 감정적인 트레이딩은 치명타다. 성공을 보장받는 길은 자금을 방어적으로 관리하는 것이다. 마치 전문 스쿠버 다이버가 늘 산소 공급기를 주시하듯 훌륭한 트레이더는 자본을 신중하게 살펴야 한다.
02 문제는 심리다
훌륭한 정신의학과 훌륭한 트레이딩에는 공통되는 한 가지 중요한 원칙이 있다. 현실에 초점을 맞추고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본다는 것이다.
▶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라. 정신을 맑게 하라는 뜻이다. 감정의 빗방울이 차창을 가득 메워서 앞이 잘 안 보일 때는 두 가지 선택지가 있다. 하나는 차를 멈추고 비가 그칠 때까지 기다리는 거다. 다른 하나는 그대로 차를 운행하면서 와이퍼 작동 스위치를 켜는 거다. 나의 경우 오늘의 주식 거래일지를 아내에게 어떻게 브리핑할지 생각하다보면, 아무리 거센 빗방울일지라도 시야를 가리지 못한다. 나의 고성능 와이퍼는 와이프다. (My excellent wiper is my wife)
사실 트레이딩 성공률은 여성이 더 높다. 전반적으로 여성이 남성보다 자제력이 뛰어나고 겸허하기 때문이다.
▶ 공감된다. 분명 알렉산더 엘더 박사도 자신의 책을 아내가 볼 것이라 짐작했으리라. 뛰어난 위기감지 능력이다. 역시 명불허전 트레이더.
03 미리 알아두어야 할 몇 가지 걸림돌
성공은 돈으로 살 수 없다. 성공은 노력해야 얻을 수 있다.
▶ '성공은 돈으로 살 수 없다'는 말이 무척 인상적이다. 헌데 조금만 더 분석적으로 접근하고 싶다. 예전에 '해물찜'을 정말 맛있게 하는 가게가 있었는데, 그 가게 사장님이 꽤 큰 돈을 받고 해물찜 비법을 다른 사람에게 전수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 있다.
돈을 내면 비법을 배울 수는 있다. 그러나 비법을 익히는 건 돈으로 할 수 없다. '성공은 배워서 되는 게 아니라 익혀야 얻을 수 있다'로 저 문장을 이해하면 조금 더 실감난다.
제1부 개인심리
04 왜 트레이딩하는가?
트레이딩이 단기간에 큰돈을 벌 수 있는 기회라는 것은 맞는 말이다.
많은 이가 돈이 있으면 자유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막상 자유를 얻으면 뭘 할지 딱히 정한 게 없으면서도 말이다.
▶ 자유시간에는 책을 볼 생각이다. 그런데 자유시간을 만들기-주식 투자 수익을 얻기-위해서는 책을 읽어야 한다. 책을 읽기 위한 시간을 만들기 위해 책을 읽어야 하는 이 순환 오류. 내겐 축복이다.
자아실현의 길에는 걸림돌이 있다. 바로 많은 사람이 자기 파괴적 성향을 갖고 있다는 사실이다.
시장은 자아실현의 기회를 풍성하게 제공하지만 자멸의 기회도 많이 제공한다. 내면의 갈등을 시장에서 분출한다면 혹독한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다.
자기 자신에게 만족하지 못하는 트레이더는 서로 모순된 소망을 시장에서 실현하고자 한다.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길을 간다면 결코 가고 싶지 않았던 곳에 이를 수밖에 없다.
▶ 자아실현이 자기파괴로 이어지는 까닭은 헤르만 헤세가 이미 설명했다.
"새는 알에서 나오기 위해 투쟁한다. 알은 세계이다. 태어나려고 하는 자는 누구든 하나의 세계를 파괴하지 않으면 안된다." 더 넓은 자아가 태어나기 위해서는 기존의 좁은 자아를 파괴하지 않으면 안된다.
자, 위의 얘기는 인문학도의 관점이다. 공학도나 스포츠 과학도는 이게 무슨 외계어인가 할 것이다. 인생과 투자에 대해 다양한 관점이 있다는 건 유명 뷔페에 다양한 음식이 차려진 것과 같은 상황이다. 고르기 어렵게 왜 이렇게 음식이 다양하냐고 불평을 할 게 아니라면 취향 따라 입에 맞는 음식을 골라 먹기로 하자.
05 현실과 환상
자동조종장치에 대한 환상은 일종의 유아 퇴행 현상이다. (...) 시장은 엄마가 아니다.
▶ 강력하다. 공감된다. 나도 결혼을 하면 저절로 행복해질 줄 알았다. 그러나 결혼하고 나서 아내는 엄마가 아니라는 걸 알았다. 마찬가지다. '시장은 엄마가 아니다'
많은 사람이 자유와 독립을 원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는 그냥 입바른 소리일 뿐이다. 일이 좀 꼬이고 힘들어지면 자유고 독립이고 다 포기하고 '강력한 지도자'를 찾아 헤맨다.
시장 지도자들을 둘러싼 갖가지 스캔들에 관한 책으로 윌리엄 갤러처가 쓴 《승자 독식》이 있다. 한번 읽어보라.
▶ 『승자 독식』. 읽고 싶은 책 리스트에 한 권 추가.
06 트레이더 스스로를 망치는 행위
도박은 한마디로 확률에 무언가를 거는 게임이다. 어느 사회에나 도박이 존재하고, 사람은 대개 일생에 몇 번은 도박을 한다. 지그문트 프로이드는 도박이 자위 대체 수단이라서 많은 사람이 도박에 끌리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흥분 상태에서 계속 손을 움직이는 행위, 거부할 수 없는 충동, 멈추려는 결심, 중독성 강한 쾌락, 죄의식. 모든 측면에서 도박은 자위 행위와 비슷하다.
▶ 이윤을 남기기 위해서가 아니라 쾌락을 얻기 위해서 투자자산을 거래한다면 그 이야기의 결말은 정해져 있다.
어린 시절을 짓눌렀던 마음의 짐이 시장에서 성공하는 데 걸림돌이 되기도 한다. 자신의 약점이 무엇인지 찾아내고 변하도록 노력하라. 트레이딩 일지를 기록하라. 트레이딩에 진입하거나 청산할 때마다 이유를 기록하라.
▶ 거래할 때마다 아내에게 오늘의 거래를 어떻게 보고할지 생각하라. 화목한 가정에서 살고 싶은가 아니면 성난 도깨비에게 혼쭐이 나고 싶은가.
07 트레이딩 심리
트레이더로서 성공하느냐 여부는 자신의 감정을 어떻게 제어하느냐에 달려 있다.
"시장이 어떻게 할지 아는 것도 어렵지만 내가 어떻게 할지 모르면 경기에서 질 수밖에 없어."
트레이딩을 배울 때 나는 트레이딩 심리에 관한 책을 가능한 한 모두 구해서 읽었다. 많은 필자들이 일리 있는 조언을 제시했다.
(...) 다 나름대로 일리 있지만, 서로 상반된 주장들이 아닌가?
(...) 어느날 갑자기 깨달음을 얻었다. 나의 트레이딩 방식을 바꾼 발상은 정신의학에서 나왔다.
▶ 상반되는 조언들은 생각하게 만든다. 혼란 속에서 생각을 거듭하다가 마침내 실마리를 찾을 때의 기쁨이란. 앎의 기쁨은 무척 강렬한 것이어서 중독되면 계속 상반되는 조언들을 찾아다니기도 한다. 따라서 이런 부작용도 생긴다.
"여보. 우리 이번 크리스마스에 여행갈까?"
"아내여. 나는 다르게 생각하네."
이 이야기가 주는 교훈은, 현실에 보탬이 될 정도로만 생각하라는 거다. 생각은 쾌락을 위해서가 아니라 현실에 보탬이 되기 위해서 한다.
(어라? 이 이야기 분명 좀 전 도박이야기에서 본 듯...?)
08 알코올중독자들의 모임에서 배운 트레이딩 교훈
손실로 계좌가 깡통이 된 트레이더와 알코올중독자 사이에는 놀라운 공통점이 하나 있다. 알코올중독자가 독한 술 대신 맥주로 바꾸어 문제를 해결하려는 것처럼, 트레이더는 트레이딩 전략만 계속 바꾼다. 패자는 자신이 트레이딩에서 통제력을 상실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 아내가 주짓수를 배운다면 알코올중독자는 술을 끊지 않을까? 이 아이디어 무척 궁금하다. 그렇다고 시험해볼 수도 없고.
09 패자들의 모임
돈을 날리게 만든 문제가 자신에게 있다는 것을 인정하면 새로운 트레이딩 인생을 시작할 수 있다. 그런 다음에야 비로소 승자의 규율과 자제를 체득해 나갈 수 있다.
▶ 만화 『슬램덩크』에서 안 선생님은 말씀하셨다. "풋내기가 상급자로 가는 과정은, 자신의 부족함을 아는 것이 그 첫 번째"라고.
내 친구는 이런 우스갯소리를 했다. "난 아침이면 시황판 앞에 앉아서 이렇게 말하지. '내 이름은 존이야. 네놈의 숨통을 끊어놓을 거야'라고." 이런 생각은 사람을 긴장하게 만들지만, '패자들의 모임'의 사고방식은 사람을 평온하게 만든다. 마음이 평온하고 느긋한 트레이더는 가장 안전한 최선의 매매 기회를 찾는데 집중할 수 있다.
▶ 긴장이 아니라 집중. 그렇다. 엘더 박사님. 말이 잘 통하는데?!
10 승자와 패자
선원은 바다를 통제하지 못한다. 다만 자기 자신을 통제할 수 있을 뿐이다.
원숭이는 나무 등걸에 부딪혀 발을 다치면 화가 머리끝까지 나서 나무를 걷어찬다. 이런 원숭이를 보고 비웃을 수도 있지만, 자신이 원숭이처럼 행동할 때도 이렇게 스스로를 비웃을 것인가?
마크 더글러스는 《훈련된 트레이더》에서 시장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시장에는 시작도 중간도 끝도 없다. 모든 개념은 우리가 머릿속에서 만들어낸 것에 불과하다. 게다가 감정 분출이 전적으로 자유로운 영역, 즉 어떤 외부의 제재나 제한이 없는 영역에서 자신을 통제하는 법을 배우면서 자란 사람은 극히 드물다."
"내가 통제할 수 있는 단 한 가지는 나 자신이다."
"꾸준히 수익을 올리는 트레이더는 '정신 수양'이라는 관점에서 트레이딩에 접근한다."
자금 관리 계획을 세워라. 첫 번째 목표는 오래 살아남는 것이고, 두 번째 목표는 자본을 꾸준히 늘리는 것이며, 그다음 세 번째 목표는 높은 수익을 올리는 것이다. 트레이더들은 대개 세 번째 목표를 처음으로 내세울 뿐, 첫 번째, 두 번째 목표가 있는지도 모른다.
▶ 이 문장은 가치 투자자에게도 그대로 적용된다. 오래 살아남는다. 자본을 꾸준히 늘린다. 그리하면 나머지는 저절로 따라 올 것이다.
제2부 집단심리
황소는 뿔을 위로 치받으며 싸운다. 황소는 매수자로, 상승 쪽에 배팅해 주가가 상승할 때 수익을 거둔다. 곰은 앞발로 내리쳐서 싸운다. 곰은 매도하는 사람, 즉 하락 쪽에 베팅해 주가가 하락하면 수익을 거둔다.
스파이크트레이드닷컴에서 유능한 트레이더 두 사람이 같은 주식을 선택해 한 사람은 롱 포지션, 한 사람은 숏 포지션을 취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를 지켜 보는 것은 언제나 흥미진진하다. 한 주가 끝날 무렵 두 사람 모두 수익을 거두는 일이 종종 있다. 이것만 봐도 어떤 주식, 어떤 포지션을 취하느냐보다 트레이딩을 어떻게 관리하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14 시장의 군중과 나
인간은 중압감에 시달리면 본능적으로 독립성을 포기해버리는 경향이 있다.
시장의 군중을 이끄는 것은 가격이다.
트레이딩에 임할 때는 자기 자신을 살펴 심리 상태의 변화를 잘 감지해야 한다.
▶ 투자 실패 원인 중 중압감이 큰 이유를 차지한다는 건, 달리 말하면 중압감만 극복하면 투자 성공이 꽤 가까워진다는 얘기다. 그러니 가까운 투자자들에게 권해야겠다.
'명상하세요. 명상하세요 다들.'
- 새로운 스타는 새로운 문화의 흐름을 만든다. 명상 래퍼 김하온은 새로운 문화의 선구자가 될 수 있을까?
서평을 마치며
트레이딩 책을 읽고 나니 조금 더 분명해지는 게 있다. 기술적 분석은 내 길이 아니라는 것.
하워드 가너드 교수의 다중지능이론에 의하면 인간의 지능을 아래 8개 유형으로 구분할 수 있다.
① 언어(linguistic),
② 논리 수학(logical-mathematical),
③ 공간(spatial),
④ 신체 운동(bodily-kinesthetic),
⑤ 음악(musical),
⑥ 대인 관계(interpersonal),
⑦ 자기 이해(intrapersonal),
⑧ 자연 탐구(natural) 지능
이를 참고하여 나는 아래와 같은 아이디어를 떠올려 본다.
1. <② 논리 수학>과 <⑧자연 탐구 지능>이 발달한 사람은 트레이딩에 매력을 느낄 확률이 높다.
2. 반면 <① 언어 지능>과 <⑦ 자기 이해 지능>이 발달한 사람은 가치 투자에 매력을 느낄 확률이 높다.
'1.'과 '2.' 중 어느 쪽인지 쉽게 구별하는 방법은 이렇다. 정서가 포함된 글을 읽는 게 즐거운지 아니면 정서가 포함되지 않은 자연과학 글을 읽는 게 더 즐거운지 확인하는 거다. 문학작품이 파브르 곤충기보다 즐겁다면 가치투자자의 소질이 더 있다. 반면 문학작품보다 파르브 곤충기가 더 즐겁다면 트레이딩이 적성에 맞을 확률이 더 높다.
오해를 피하기 위해 다시 강조하자면 위에 적은 이야기는 검증을 해보고 싶은 가설 차원의 아이디어다. 그러나 이런 아이디어는 그 진위 여부를 떠나 우리의 자기이해에 새로운 자극을 준다.
트레이딩도 마찬가지다. 가치투자의 바깥에서 가치투자를 바라보는 것은, 가치투자자에게 새로운 관점에 대한 자극을 준다.
숲에서 벗어나 숲을 바라보는 일은 숲속에서 평생 살리라 결심한 사람에게도 도움이 된다. 숲에 대한 다양한 관점을 익히는 건 숲에 대한 이해를 깊게 하는 일. 아내를 사랑한다는 건 아내 곁에 오래 있는 것뿐만 아니라 아내를 깊게 이해하는 일이기도 하다. 깊게 이해한다는 것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여보. 자기를 깊게 이해하기 위해 이틀 정도 자기 곁을 떠나있겠어."
"다녀와 이틀. 난 일주일이다."
이에는 이. 눈에는 눈. 삶은 어찌 이리 삭막한가.
자, 농담은 이쯤하고 서평의 마무리를 지어보자.
가치투자자가 되고 싶은 나에게 트레이딩에 관한 책을 읽는 건, 마치 아내에 대한 책을 읽는 것처럼 조금은 낯설고 조금은 친숙한 그런 느낌이었다. 다 읽고 나서, 나는 트레이딩과 가치 투자가 어느 지점에서 구분되는지 분명히 알게 되었다.
이 책에는 기업에 대한 이야기가 단 한번도 나오지 않는다. 트레이더들은 '무엇'을 거래하는지 연구하지 않고, 무엇인가를 '상장 시장에서 거래한다는 게' 무엇인지를 연구한다.
나는 역설적이게도 '주식이란 기업의 소유권이고, 우리는 기업의 소유권에 투자한다'는 벤저민 그레이엄의 가르침이 어떤 의미인지를 트레이딩에 대한 이 책을 읽으며 처음으로 체감했다.
워런 버핏도 벤저민 그레이엄을 만나기 전까지는 트레이딩을 했다고 알고 있다. 그래서 버핏이 남긴 이 말이 새롭게 다가온다.
The best thing I did was to choose the right heroes. It all comes from Graham. - Warren Buffett
(내가 한 일 중 가장 훌륭한 것은 올바른 영웅을 선택한 것이었습니다. 모든 것은 그레이엄 교수로부터 나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