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 우주를 알아야 할 시간
이광식 지음 / 메이트북스 / 2020년 1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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랑스러운 책

열한 살인 첫째 아이가 잠들기 전 이렇게 물어 볼 때가 있다.

"아빠. 아빠는 절 얼만큼 사랑해요?"

한때 시를 쓰던 사람으로서 나는 즐거운 마음으로 이렇게 대답한다.

"기다려봐 OO야. 지금 아빠의 마음 속에 시가 떠오르고 있어."

이 책에 대한 소감을 적고 있는 지금 나는 위와 같은 심정이다. 이 책의 사랑스러움을 뭐라고 표현하면 좋을까. 먼저 떠오른 것은 사진이다. 책에도 소개되어 있는 <허블 익스트림 딥 필드>

- 허블 우주망원경이 촬영한 132억 광년 거리에 있는 우주의 풍경.



이 사진을 보여주며, 아이에게 대답했다.

"OO야. 네 얼굴을 보고 있으면 아빠 마음에 사랑이 가득 차. 그 사랑은 점점 자라서 우주만큼 커져. 그런데 그 우주는 이렇게 아름다운 별들로 가득 차 있단다."

아이는 이 대답을 무척 마음에 들어했다.


저자가 우주와 인연을 맺게 된 사연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나의 경우 '우주'를 처음으로 어렴풋 느끼고 생각하게 된 것은 9세 무렵이었다.
대도시 변두리의 판자촌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초등 1년까지 다니다가 근교 시골로 이사를 갔다. 좁은 골목 안에서만 살다 보니 들판과 강도 있고 산도 있는 시골은 그야말로 별세계처럼 여겨졌다.

(...) 대입을 앞둔 큰형이 쏟아질 듯한 밤하늘 별들을 가리키며 이렇게 말했다. "너희들, 저 별들 보이지? 그런데 저 별들이 지금은 저기 없을지도 몰라."
다들 뜨아한 얼굴로 큰형을 쳐다봤다. 도무지 알 수 없는 얘기였던 것이다. 큰형이 다시 말했다. "왜냐하면 저 별까지의 거리가 너무나 멀어서 별빛이 여기까지 오는 데 시간이 엄청 걸리거든. 그러니까 우리가 보는 저 별은 지금의 모습이 아니라 아주 과거의 모습인 거야. 지금 저 별이 그대로 있는지는 아무도 모르지." 그러곤 이렇게 덧붙였다. "그런데 만약 우리가 빛만큼 빠른 로켓을 타고 저 별에 다녀온다면 지구는 몇 백 년이 흘러가버렸을 수도 있단다."
참으로 낯선 얘기였다. 어린 나이에도 내가 살아온 세계와는 너무나 다른 이야기에 나는 충격과 감동을 받았다. 그 얘기는 오래 여운을 남겨 별의 세계, 우주의 느낌을 내 속 깊이 심어 놓았다.
큰형은 얼마 후 서울로 올라가 문학을 공부했고, 대학교 1학년 겨울방학 때 신춘문예에 당선되어 소설가가 되었다. 그리고 어린 시절 형으로부터 별 이야기를 들은 나는 이렇게 천문학 작가가 되었다.

이런 경험에 비추어 보았을 때 어린이에게도 되도록 별과 우주를 많이 보고 읽게 하는 것이 정서적으로나 교육적으로 참으로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머리와 가슴에 별을 담고 사는 사람과 그렇지 않는 사람은 분명 삶의 길이 다를 것이다. (18-19p)

천직 비슷한 출판사를 접은 것도 따지고 보면 우주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어느 날 야근을 하고 밤늦게 귀가하는데, 아파트 단지 입구에 들어서자 어느 고층집 베란다에 누런 조등 하나가 걸려 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그 순간 무언가가 내 머리 속을 딱 때렸다. '아, 정신없이 살다가 아파트 안방에서 죽으면 저렇게 베란다에 조등 하나 걸고 끝나겠구나.'
밥벌이에 파묻혀 바쁘게 살다가 어느 날 갑자기 아파트 안방에서 죽는다면, 그보다 억울한 일이 어디 있을까. (...) 나는 우주로 사라지기 전에 내가 어쩌다 우연히 태어나 살게 된 이 우주란 동네를 좀더 알아보고 싶었다. (21p)


저자가 책을 쓰게 된 사연

1) 책에서 발췌
교사는 모름지기 자기 수업이 재미있도록 머리를 쥐어짜고 열정을 쏟아 연구하지 않으면 안 된다. 한국에 '수포자'가 많은 것은 아이들 머리가 나빠서가 아니라, 수학을 재미없게 가르치는 수학 교사들의 무능 탓이라 생각한다. (24p)

2) 유튜브 작가 인터뷰에서 발췌 (https://www.youtube.com/watch?v=79iJWTSeNco)
Q) 작가님이 천문학 책을 쉽게 쓰시게 된 이유는?

A) 천문학 책이란 게 사실 지식만을 나열해 논 천문학 책을 읽다보면 상당히 딱딱하고 어렵고 재미가 없어요. 그래서 사람들은 잠 안 올 때 읽으면 좋은 책이라고, 5분 만에 잠이 온다고 이런 우스개도 하는데. 역시 저도 천문학 책을 100권 이상 읽다 보니까 천문학 책이 이래서는 많은 사람들이 읽기 힘들겠다. 그래서 이걸 좀 더 인문학적으로 그리고 융합적으로, 일반 대중에게 다가갈 수 있는 그런 천문학 책이 필요하지 않나,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좀 더 재밌는 천문학 책을 써 보자. 그래서 시작하게 된 것이 "천문학 콘서트"였는데, 그 책은요 시골 할머니들도 읽어요.
저는 늘 책을 쓰거나 강의를 하거나 할 때 늘 재미라는 것이 제 화두입니다. 어떻게 재밌게 할 것인가. 책이나 강의나 이게 재미가 없으면 사람들에게 감동을 줄 수가 없어요. 감동을 못 주면 임팩트가 없어. 임팩트가 없으면 그 사람을 변화시킬 수가 없거든요. 그래서 모든 것은 재미라는 거에 초점이 맞춰져서, 책이든 강의든 우리가 학교 다닐 때 수업이든, 이게 다 재미라는 데 초점을 맞춰서 해야 될 필요가 있다.


책에 대한 이야기

이 책에서 특별히 좋았던 부분을 에버노트에 옮겨 적으려면, 책의 절반 이상을 타이핑 쳐야만 한다. 그리고 나는 기꺼이 그 작업을 시작했다. 우주에 대한 책을 보기 시작한 건, 내가 우주나 밤하늘에 원래 관심이 많았기 때문이 아니다. 나는 명상을 익히기 시작한 명상 초보인데, 명상법 중에 우주를 떠올리면 마음이 편안해진다는 가르침이 있어 왜 그럴까, 하는 호기심에 우주에 대한 책을 읽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왜 사람이 우주에 사로잡혀 일생을 바치는지 분명히 알게 됐다. 우주가 아름답기 때문이다. 경이로울 정도로 아름답기 때문에 우주를 사랑하는 데 다른 이유는 필요하지 않다.

그러면 아름다운 우주를 보면 될 일이데, 굳이 왜 이런 책이 필요한가? 궁금해질 수도 있겠다.
이 책은 아름다운 우주에 대한 기록이면서, 그와 동시에 우주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아름다운 이야기다. 아래 책의 내용을 일부 옮겨 본다. 

별이 반짝이는 이유를 처음 알아낸 베테에게는 이와 관련된 재미있는 얘기가 하나 있다. 32세 노총각인 베테가 애인과 함게 바닷가를 거닐고 있을 때, 여친이 문득 서녘 하늘을 가리키며 말했다. "어머, 저기 저 별 좀 봐. 정말 예쁘지?" 그러자 베테가 으스대면서 한 대꾸가 정말 놀라운 내용이었다. "응, 그런데 저 별이 빛나는 이유를 아는 사람은 세상에 나뿐이지."
얼마나 엄청난 말인가? 마침 그때가 논문을 발표하기 하루 전 날이었다. 베테는 별의 에너지원 발견으로 1967년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다. 논문 발표 후 무려 30년 만에 받은 셈이다. (...)

(...)한스 베테는 2005년, 100세에서 꼭 한 살 빠지는 99세에 우주 속의 별에게로 돌아갔다.
마지막 임종의 자리를 지킨 사람은 그의 아내였다고 하는데(...)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 바닷가 그 여성이 맞다! 이름은 로즈 베테. 이듬해 두 사람은 결혼해서 무려 66년을 같이 살다가 헤어진 것이다. (71-72p)

은하 탄생의 시초로 거슬러 올라가보면 수없이 많은 초신성 폭발의 찌꺼기들이 태양과 행성, 우리 지구를 만들었을 것이다. 우리 은하의 역사를 통틀어, 지금까지 약 2억 개의 초신성 폭발이 있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지구 무게 중 절반을 차지하는 산소를 비롯해, 지구를 이루고 있는 모든 물질은 수소만 빼고는 모두 별과 초신성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말하자면 별은 우주의 주방장인 셈이다. 모든 원소들은 별의 레시피로 만들어진 것이라 할 수 있다.
어쨌든 이런 과정을 거쳐서 우리 몸을 이루고 있는 원소들, 곧 피 속의 철, 뼈 속의 칼슘, 갑상선의 요오드, 머리칼의 탄소 등 원자 알갱이 하나하나가 전부 별 속에서 만들어진 것들이다. 이것은 비유가 아니라 과학이고 실화다.
우리는 별에서 몸을 받아 태어난 별의 자녀라고 할 수 있다. 말하자면 '메이드 인 스타'다. 만약 별의 죽음이 없었다면, 죽으면서 아낌없이 제 몸을 우주로 내놓지 않았다면 여러분이나 나, 그 어떤 인류도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것이 나와 별, 나와 우주의 관계다. (85p)

평생을 함께 밤하늘을 관측하다가 나란히 묻힌 어느 두 여성 별지기의 묘비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새겨져 있다고 한다.
"우리는 별을 너무나 사랑한 나머지 이제는 밤을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다."
We have loved the stars too truly to be fearful of the night (88p)


책에 대한 한 줄 평 : ★

"신비한 것은 세상이 어떠한가가 아니라 세상이 존재한다는 그 자체다." - 비트겐슈타인 (영국 철학자) (33p)

"나는 스피노자의 신을 믿는다. 왜냐하면 이 우주는 너무나 아름답기 때문이다. 굳이 그럴 이유가 없는데도 말이다. 스피노자는 '우주는 자연이자 신이다'라고 말했다." - 아인슈타인 (160p)

아름다운 책이다. 이 책을 별점으로 평가해야 한다면, 부여되는 모든 별이 텅 비어 있지 않고 밝은 빛으로 가득하길 바란다. 그래서 내 평점은 빛나는 별 다섯 개다.
인터넷 서점 알라딘에는 이 책에 대해 총 서른 개의 평점이 달렸다. 그중 스물여덟 개는 별 다섯, 두 개는 별 넷을 부여했다. 내 평점은 스물 여덟 명과 뜻을 함께 한다. 마침 우리 조상들은 매일 달이 있는 위치를 기준으로 스물여덟 개로 나누어 별자리를 정하였는데 그것을 '28수'라 하였다. 반가운 우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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