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위대한 예술작품을 보고 놀라운 감동을 받습니다.

천재적인 음악가의 연주를 들으며 환희를 느끼기도 합니다.

그 경험을 과학적으로 증명하거나 반증하지 못한다고 해서

그 경험이 거짓이나 허구가 되는 건 아닙니다.


- 강영안, 우종학, 『대화』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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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알드 달 베스트 단편 1
로알드 달 지음, 정영목 옮김 / 교유서가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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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내 취미 중 하나는 집에 있는 책들을 아무 거나 집어서 읽는 일이었다. 아주 어렸을 때는 어린이용 백과사전을 첫 장부터 마지막 장까지 읽으며 놀았고, 어느 집이나 한 질쯤 있는 동화 전집이나, 조금 커서는 청소년용 학습백과사전을 마찬가지로 첫 장부터 마지막 장까지 읽으며 놀곤 했다.


그러다가 종종 내가 읽으라고 둔 책은 아닌데, 어디선가 알 수 없는 경로로 집에 들어온 녀석들을 발견할 때가 있다. 부모님이 집에서 책을 즐겨 보시는 편이 아니셨으니, 집에 오고 가던 사람 중 누군가가(삼촌이었나?) 놓고 간 것으로 추정된다. 10대에는 그런 책들도 손에 잡히는 대로 읽곤 했다. 그 중에 일명 민담집들이 있었다. 누가, 언제 만들었는지 정확히 알 수 없는, 옛날이야기를 모아놓은 책인데, 유머러스하고, 조금은 야하고(선정적인 건 아니다), 뭐 대단할 건 없는 편한 이야기들이었다. 대체로 재미있게 읽었던 기억이 있다.




오늘 따라 이렇게 옛날이야기를 길게 시작하는 건, (이미 눈치 챘을 수도 있지만) 바로 이 책이 꼭 그런 민담집과 비슷한 느낌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이건 정확히 작가가 누구인지가 밝혀져 있는 이야기라는 차이가 있지만, 전반적으로 상황의 역전에서 오는 해학과 옅은 선정성, 좋은 글솜씨가 적당히 어우러져 있는 재미있는 작품이다.


모두 여덟 편의 짧은 중단편 소설들이 모여 있는데, 각각의 이야기는 독립적이어서 서로 겹치는 부분이 별로 없다. 전체적으로 똑똑한 체 하는 주인공이 나중에 한 방 뒤통수를 맞는다는 플롯이지만, 일종의 인과응보적인 결론은 이런 종류의 이야기에서는 흔히 볼 수 있는 틀이니까. 그건 남자도, 여자도 될 수 있고, 나이가 많을 수도, 적을 수도 있다. 시대적 배경은 비슷하지만, 구체적인 상황은 이야기마다 꽤나 다르다. 어느 시골 마을부터 호화로운 유람선 위, 그리고 도시의 한 구석까지.


여기서 책의 줄거리를 설명하는 건, 뒤에 이 책을 손에 들 사람에게 실례일 듯하다. 어느 정도 예상이 되긴 하지만 그래도 나름의 반전을 보는 게 이 책을 보는 맛일 테니까. 기회가 된다면 편안한 마음으로 읽어볼 만하다. 잠시의 여유를 느끼게 해 줄 수 있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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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20대가 되기 위해서 10대를 살았다.

우리 사회는 지금도 10대를 20대가 되기 위한 번데기처럼 만들고 있다.

초등학교에 들어가는 순간, 아니 태어나는 순간부터

대부분의 한국인은 대학생이 되기 위해서 살아가는 구조에 편입된다.

이런 구조가 얼마나 잘못되었는지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 것이다.

환갑 잔치를 바라보고 사는 50대가 있을까?

단 한 명도 없을 것이다.

그러면서 왜 10대에게는

20대 대학생으로 살기 위한 시간을 강요하는가?


- 우석훈, 『매운 인생, 달달하게 달달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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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시우행 2023-10-02 02: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적극 공감합니다. 내 인생은 나의 것이란 노랫말(가수 민해경)이 떠오르네요.

노란가방 2023-10-02 06: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저도요
 
옹정제 이산의 책 17
미야자키 이치사다 지음, 차혜원 옮김 / 이산 / 200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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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 왕조는 만주족 누르하치가 세운 후금에서 시작되어 300여 년 동안이나 지속된 중국의 마지막 왕조다. 역대 중국 왕조 중 원나라를 포함하는 몽골제국 다음으로 영토가 넓었고, 현대 중국 영토의 기초가 되기도 했던 나라다.


하지만 그 중요성에 비해 우리에겐 그리 익숙하지 않은 나라이기도 하다. 두 차례의 호란과 관련해 우리나라와도 연결이 되긴 하지만, 딱히 그 왕조가 어땠는지에 대해서는 그리 인기 있는 주제는 아닌 듯하다. 이런 상황에서 이 책의 주인공인 ‘옹정제’가 누구인지 한 눈에 들어오지는 않았다. 그나마 다른 중국 황제들과 달리 흔히 부르는 이름이 OO제로 끝나는 세 글자라는 점에서 청나라 황제구나 했을 정도. 이 책은 청나라의 다섯 번째 황제인 옹정제의 일생을 다루고 있다.



책의 내용은 정사 기록에 충실하다. 흥미로운 건 이런 책이라면 왠지 중국의 학자가 썼을 것 같은데, 의외로 일본 학자가 쓴 책이라는 점이다. 사실 일본이 이런 종류의 역사나 인문학 등의 분야에서 상당히 앞서나가고 있는 나라이긴 하니까 뭐 이상할 것까지는 없겠지만.


어쩌면 공산당 독재가 이루어지고 있는 현대 중국에서 왕조 시대의 역사에 대한 실증적이고 비판적인 연구가 제대로 진행되기 어려웠을 수도 있겠다 싶다. 역사마저 현대 공산당 통치의 우월함을 선전하는 도구로 사용하고 있는 게 작금의 중국 학계 현실이니까.


학문적인 책이지만 그 내용이 또 아주 딱딱하지는 않다. 한 사람의 일대기를 이야기 식으로 풀어나가고 있으니 오히려 술술 읽혀 나간다. 몇 개의 주제로 장을 구성하고, 곳곳에 저자의 평가와 설명이 더해지는데 이게 그리 눈에 거슬리지도 않는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행적은 제위 계승 과정이다. 직전 황제인 강희제는 무려 서른다섯 명의 아들이 있었는데 위 계승 과정에서 황태자가 두 번이나 폐위되는 불상사가 발생한다. 이 과정에서 치열한 후계다툼이 벌어졌고, 제위를 이어받은 것이 후궁 출신이었던 옹정제였다.


즉위 후 그는 황권에 경쟁자가 될 것으로 여겨지는 형제들과 공신들을 집요하게 핍박해 죽음으로 몰아가는데, 이 부분만 보면 치졸하기 그지없어 보이기도 하다. 하지만 끝이 좋으면 다 좋다고, 그가 열성적으로 통치하는 중후반 내용을 보면 또 평가가 급히 달라진다. 옹정제는 말 그대로 워커홀릭의 전형이었고, 소수민족 출신의 황제가 대륙 전체를 다스리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늘 고민했던 성실한 인물이었다. 덕분에 그의 치세 동안 부정부패가 줄고, 각종 부당한 일들이 개선되기도 했고.


그런데 이 정도로 넓은 땅을 다스리기에는 황제 한 사람의 탁월함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청대에는 몇 개의 성들을 묶어 총독들을 임명했고, 그 아래에는 다양한 관료들이 층층이 존재했다. 결국 통치는 관료조직을 통해 하는 건데, 이 조직은 나름의 방식과 동기에 따라 움직이고 있기에, 황제 같은 절대군주로서도 이들을 완벽하게 움직인다는 건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저자는 여기에 제법 깊은 고찰을 더하는데, 이 부분이 또 읽어볼 만하다. 민주화된 오늘날에도 대통령 한 명이 바뀐다고 해서 나라가 완전히 바뀌지는 않는다. 물론 겉으로 드러나는 많은 면들에 변화가 생기기는 하겠지만, 결국 나라 운영은 소위 ‘늘공’이라고 불리는 관료들의 손을 통해서 이루어지니까.


독재의 역사에 대한 기억 때문에 중앙집권에 대한 경계가 강해지면서 이런 권한은 더욱 퍼지게 되는데, 그만큼 개혁도 힘들어 지는 면도 있다. 지방의 경우 토호들의 입김이 훨씬 더 강하게 미치곤 하기 때문이다. 그만큼 정치라는 게 어렵다.




분명 옹정제는 대단한 개혁을 이루었지만, 그의 통치는 겨우 10년을 넘겼을 뿐이었다. 기본적으로 너무 많은 일을 해서 과로사 한 게 아닌가 싶지만, 저자는 또 여기에 독특한 해석을 더한다. 개혁이란 기본적으로 이전의 관행과 제도를 바꾸는 일이다. 개혁이 좋고 의미 있다는 걸 안다고 해서, 마음 깊숙한 곳부터 개혁에 동의한다는 뜻은 아니다. 당장은 기세에 눌려 좀 바꾸는 것처럼 할지 모르지만, 그런 게 영원할 수는 없다.


저자는 그의 개혁이 효과를 거둘 수 있는 시간이 10여 년이 아니었겠느냐고 말한다. 그가 죽은 뒤 나라를 이어받은 건륭제는 아버지의 정책 중 상당부분을 이전의 관행으로 되돌린다. 당시 관료사회가 그런 개혁을 오랫동안 참아낼 수 없었다는 것을 보여주면서, 다시 한 번 개혁이라는 게 얼마나 힘든지 보여주는 부분이다. 동서양의 유능한 영웅들이 개혁이 아닌 혁명을 택했던 이유가 여기에 있을 지도 모르겠다.


강력한 전제군주제에서도 힘든 개혁이 오늘날 권력의 파편화를 특징으로 하는 민주사회에서 얼마나 가능할까 회의적이다. 이 어려운 일에 단지 개인적 탐욕이 아닌 이유로 뛰어드는 사람들에게 경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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