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영화.


또 하나의 범죄영화다이번에는 석유를 실어 나르는 파이프라인의 기름을 훔쳐 내 파는 도유업자라는 새로운 개념이 등장한다주인공 핀돌이(서인국)’는 여기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천공기술자로자칫 실수를 하면 유증기로 인한 폭발로 큰 사고가 날 수 있는 석유 파이프라인에 구멍을 내는 기술을 가진 인물이다다만 그 성경은 좀 전형적인데자기 기술에 대한 자신감으로 인해 다른 사람들을 무시하는 듯한 태도지만또 동료들에 대한 정은 깊다는 설정.


여기에 큰삽(태영호)’이라는 별명을 가진 채굴기술자용접공 접새(음문석)’, 땅 속을 꿰고 있는 공무원 나과장(유승목)’, 감시역의 카운터(배다빈)’ 등이 한 팀이 되어 공사를 진행한다는 이야기여기에 이들에게 일을 맡긴 인물이 비열한 계획을 세우고 있는 정유회사 사장 아들이 끼어들면서단순히 범죄에 성공하기만 하면 되는 게 아니라(이럴 경우 관객은 자연스럽게 범죄를 응원하게 된다), 진짜 나쁜 놈에게 맞서 싸워야 하는 이중미션을 안게 된다.






감독은 이 범죄자들의 행동에 당위를 부여하기 위해 각자가 가지고 있는 피치 못할 사연을 우겨넣지만 썩 설득력이 있지는 않다아내가 아프고아이가 병이 있으면 도둑질을 할 수도 있다는 식의 느슨한 도덕관은그나마 별 이유가 없거나 쉽게 큰돈을 벌어보겠다는 부도덕함 보다는 조금 나아보일지 모르지만사실 이 둘 사이에 무슨 큰 차이가 있을까.


자신이나 가족의 원수를 갚기 위한 행위처럼 옳고 그름의 경계선에 있는 미묘한 문제도 아니고이런 식의 행동을 미화하는 느낌은 썩 공감되지 않는다더구나 범죄+오락영화라는 장르를 표방한다면 더더욱.(범죄가 오락이 되는 세상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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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나오는 대중가요의 주제는 하나같이 사랑’(사랑이 잘 돼서 좋다사랑이 안 돼서 슬프다)인 것처럼요즘 나오는 많은 영화나 드라마의 주제는 에 맞춰져 있는 것 같다좋고 나쁜 이야기에 등장하는 사람들이 어떤 행동을 하는 원인은 늘 경제적인 목적으로 묘사된다물론 이 영화의 말미처럼 잠시 인간다움을 강조하는 장면도 보이긴 하지만.


하지만 이런 빈약한 서사에서는 딱히 나올 게 없다오직 물질을 더 얻기 위해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사람들이나 밀림의 야생동물들이 뛰어다니는 것이나 딱히 다를 게 없는데다가(사실 초원 쪽이 좀 더 흥미진진하다), 아주 새로운 이야기를 하는 것도 아니니 말이다오히려 돈을 가지고 자기들끼리 투덕거리다가 화해하고배신과 위장을 몇 번 반복하다가 억지 감동으로 끝내는 이런 이야기들은 살짝 지루하기까지 하다.

 

영화는 그런 수많은 특별하지 않은 작업물 목록에 또 한 가지를 더했을 뿐이다사실 이런 영화는 보고 나서 금방 잊히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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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할 수 있는 힘.


영화는 어느 평범한 날 아침 두 아이를 학교에 데려다주고 출근하려는 한 은행원(성규조우진)에게 걸려온 전화로 시작된다전화 속 목소리는 지금 타고 있는 차에 폭탄이 설치되어 있고자신의 말에 따라 움직이지 않으면 터뜨리겠다는 위협을 하고 있다차에서 내리기만 해도 터진다는 위협에 두 아이의 목숨을 건 도박을 하기 어려웠던 성규는 결국 지시대로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때문에 영화의 이야기는 대부분 성규의 자동차라는 좁은 공간을 중심으로 전개된다이 콱 막힌 상황을 풀어주는 장치는 아이러니하게도 성규가 받고 있는 협박 전화였다협박범은 영화 상영시간 내내 끊임없이 성규와의 대화를 시도하고 있고이건 단순히 돈을 뺏어가겠다는 일반적인 범죄자들과는 다른 모습이었다.






결국 협박범은 대화를 원했던 건 아닐까 싶기도 하다물론 그 방식은 부적절했지만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자신의 말 따위는 들어주지 않을 상대라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던 것사실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하고 싶을 때하고 싶은 상대에게 할 수 있는 건 이다그 힘을 갖지 못한 사람들의 목소리는 대부분 묻혀버리기 일쑤.


그러다 보니 영화 속 협박범처럼 누군가(종종 이 누군가는 자기 자신이 되기도 한다)의 목숨을 거는 절박한 사람들도 나오곤 한다조금 더 일찍 그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주었다면 상황은 조금 달라졌을까.

 





양복 입은 범죄자.


신약성경의 야고보서에는 재미있는 표현이 등장한다우리는 가난한 사람들을 업신여기곤 하지만정작 우리를 억압하고 법정으로 끌고 가는 건 부자들이라는 말이다(약 2:6). 영화 속 성규의 직업은 은행원이었다바닷가가 보이는 호화로운 집에비싼 자동차를 몰고 다닐 정도로 그는 성공한 사람으로 보였다.


하지만 그의 성공과 재산은 누군가의 눈물 위에 쌓은 것이었다강도나 도둑이 몇 사람에게서 빼앗은 수 백 만원의 불법적인 수입은양복 입은 사기꾼과 지능범죄자들이 수백수천 명에게서 뽑아낸 그보다 몇 배는 더 많은 악한 재물에 비해 새발의 피 정도에 불과할 때가 많다.(하지만 대개 이쪽은 훨씬 낮은 수준의 처벌로 넘어가곤 한다그나마 사면으로 일찍 풀려나기 일쑤고)






작은 범죄에 엄격하고큰 범죄에 관대한정신 나간 법문화는 결국 사회를 말라죽게 만든다역사를 봐도 한 공동체나 국가가 망할 때는 항상 법집행의 문란함이 손을 댈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해지는 모습이 등장하곤 한다결국 누구도 공동체를 위해 나서지 않게 되고그런 공동체는 작은 위협에도 크게 흔들릴 수밖에 없다.


값비싼 양복이라는 겉모습에 휘둘리지 않는 정의로운 사법행정은 꿈만 같은 일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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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더 더 스킨
조나단 글레이저 감독, 스칼렛 요한슨 외 출연 / 비디오여행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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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


이제는 마블의 블랙 위도우로 잘 알려진 스칼렛 요한슨이 맡은 역할은 지구로 보내진 외계인인 듯하다그는 마치 옷을 갈아입듯 사람의 모습을 입는데’, 처음엔 남성의 모습을 하고 있던 그는 곧 로라라는 이름의 젊은 여성의 모습으로 스코틀랜드의 거리를 운전하며 돌아다닌다.


그녀가 지구에서 하는 일이 정확히 무엇인지는 모르겠다영화 소개 페이지에는 식량이 될 수 있는 것들을 찾아 왔다고 하는데그렇다면 그 식량의 존재는 인간인 것 같다그녀는 여러 남자들과 대화를 시도하고그녀의 미모를 본 남자들은 곧 그녀와의 관계를 위해 따라 나선다앞서서 옷을 한 장씩 벗으며 걸어가는 그녀를 따라 옷을 모두 벗고 걷다보면남자들은 어느새 이상한 액체 속으로 빠져들어 사라진다(‘식량이 되었나보다).


흥미로운 부분은 이 과정에서 그녀와 남자들 사이에 대화가 별로 없다는 점이다별 의미 없는 한담을 몇 번 주고받긴 하지만남자들은 쉽게 처음 본 그녀를 따라 나선다남자들은 그녀의 외모에만 집중할 뿐 그 살갗 아래(영화의 제목이기도 한 언더 더 스킨’) 무엇이 들어있는 지에는 신경도 쓰지 않는다(물론 영화니까 외계인인데’ 하는 생각이 들지일상에서 그런 의심을 할 리는 없긴 하다). 온통 보이는 것만 따라 사는 현대인들의 모습을 그렸던 걸까이런 사람들에게 대화는 더 이상 필요가 없는 행위일지도 모른다.

 





탐색.


영화 외계인은 초반 지구로 보내지기 위해 뭔가를 배우고 있는 듯한 모습이다발음과 철자가 유사하거나 같은 영어 단어들을 반복하면서 습득하는 중인데그 탐색은 지구에 도착해서도 계속 이어진다앞서 언급한 적은 대화’ 속에서 그녀는 계속해서 뭔가를 물으며 대화를 이어가려 하지만 대화는 쉽게 이어지지 않는다.

 

그렇게 대부분의 상대는 하룻밤을 넘기기 못하고 모두 식량이 되어버리지만유독 한 남자만이 이 단계에 들어가지 않는다그는 로라를 하룻밤을 보낼 상대로 여기지 않았고그렇게 로라는 인간과 그들의 감정을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얻는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서 서로를 알아가는 일도 쉽지 않은 일인데하물며 종이 다른 존재들이 서로를 이해하고 알아가는 데는 얼마나 많은 난점이 존재할까대부분 이 탐색의 단계는 제대로 수행되지 못하고 온갖 종류의 오해와 곡해그리고 자연스럽게 적대감이 흘러나온다로라의 만을 생각하는 이들은 결국 마치 자신들의 욕망에 빠져 질식하는 것처럼 액체 속으로 가라앉아버린다.


서로가 서로를 믿을 수 있는 존재인지 확인하는 일 자체가 그만큼 어려운 일이라는 건오늘날에도 좀처럼 그치지 않는 다양한 규모의(개인들 사이만이 아니라 국가 단위로도 벌어지는분쟁들을 보면 알 수 있다영화 속 대부분의 사람들특히 마지막에 로라가 만난 벌목기사의 모습을 보면 탐색과 신뢰이해에 대한 희망이 점점 사라지는 듯하다사람은사람을 이해할 수 있을까.




 


분위기.


영화 포스터 하단에 그녀가 벗는다라는 홍보문구가 불쾌하다물론 영화 속에 노출장면이 등장하는 건 사실이지만전체적으로 어둡고 몽환적인 필름의 분위기에딱히 성애적인 부분을 강조하고 있지 않다어쩌면 이런 문구를 떠올린 사람은 이 벗음을 옷가지만이 아니라 인간의 피부 아래쪽의 진짜 모습을 드러내는 것도 포함하는 중의적 의미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르지만정말 그랬다면 더 멍청한 생각이었고안 그래도 많은 설명이 부족한 영화에 이런 식의 문구를 붙이면 어쩌겠다는 건지홍보능력으로서는 꽝이다.


많은 대사가 나오지도 않고그렇다고 돌아가는 상황에 대한 충분한 설명도 부족하다여기에 영화의 분위기도 오래된 필름의 느낌을 주고덕분에 보는 사람이 이런저런 생각을 하게 만들지만이런 부분이 불친절하게 느껴질 수도 있을 듯하다영화가 호불호가 갈리는 이유 중 하나일 듯.


흥미로운 소재였지만흥행을 위해서는 조금 더 친절했더라면 좋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그저 스타일리쉬한 영상과 분위기만으로 영화가 되는 건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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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드웨이
롤랜드 에머리히 감독, 에드 스크레인 외 출연 / 디온(The On)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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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피지기.


영화 미드웨이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과 일제 사이에서 벌어졌던 해전을 소재로 제작된 영화다일제의 기습적인 진주만 공격으로 미국은 큰 타격을 받았고이는 그제까지 명목상 중립을 지키고 있던 미국이 전격적으로 전쟁에 참여하는 계기가 되었다.


지도를 보면 알 수 있지만진주만이나 이 영화의 배경이 되는 미드웨이나 모두 태평양 한 가운데 있는 섬들이다미국이 왜 그렇게 진주만에서 엄청난 타격을 입었는지에 관해서는 여러 설명들이 있지만이 넓은 바다에서 적들이 어디로 움직이고 있는지 정확히 알 수 없었다는 데 가장 큰 이유가 있지 않았을까 싶다그리고 이 점은 결국 일제가 미드웨이 해전에서 미국에 패하게 된 결정적인 이유이기도 했다.


오늘날처럼 고성능의 인공위성과 레이더 등을 통한 감시도 빠져나갈 구멍이 얼마든지 있는 상황에서, 60년 전이야 적의 동태를 파악하는 일이 얼마나 어려웠을까영화 속에서도 나오듯 정찰기를 수차례 날려 보내서 육안으로 파악되는 결과를 모으는 게 가장 큰 정보자산 중 하나인데그 넓은 바다를 정찰기로 감시한다는 건 처음부터 한계가 많았다.


옛 병법에 지피지기 백전불퇴라는 개념이 있다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 번 싸워 물러서지 않을 수 있다는 의미인데그만큼 정확한 정보와 상황인식이 중요하다는 걸 강조하는 말이다문득 오늘날 일어나는 많은 문제들이 지피지기에 문제가 있기 때문은 아닌가 싶다상대도나도 정확히 파악하지 못한 채그저 자신의 좁은 시야에 보이는 것이 전부인 양 날뛰는 사람들을 보면 위험해 보이기까지 하다그게 그저 자기 한 몸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의 삶에 영향을 끼치는 사람이라면.... 끔찍한 일이 아닌가.

 





희생.


희생이라는 가치는 이 즈음 그리 선호되는 덕목은 아니다다분히 개인주의에 물들어 있는 사회 속에서 살면서우리는 의 가치를 무엇보다 중요하게 여기게 되었다하지만 영화 속 세상에서는 조금 달랐다전쟁이라는 것이 언제 어디서 죽을 지도 모르는 비참한 이벤트이지만그 안에서 실제 전투를 수행하는 군인들은 묵묵히 자신이 해야 할 일을 감당할 뿐이다뭐 대단한 대가가 따라오는 것도 아니지만군인으로서 맡은 사명을 감당한다전쟁의 승리는그리고 국가와 같은 공동체는 이런 희생 위에 이루어지는 결과다.


당장에 무기를 없애고군대를 없애면 평화가 찾아올 것이라는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인류 역사상 단 한 번도 실현된 적이 없는 그림이 당장에라도 이뤄질 것처럼 생각하는 용기는 어디서 나오는 걸까이런 과격한혹은 극단적인 평화주의에서는 군대와 군인들에 관한 비난과 공격이 일어나기도 한다.(평화주의는 자신들의 행동에는 해당이 안 되나 보다. “우리는 평화운동가이니 우리가 하는 행위는 폭력일 수 없다는 걸까)


C. S. 루이스는 전쟁의 정당성과 그 안에서 실제 전투행위를 하는 군인들의 용기를 분리해서 볼 것을 제안한다국가는 때로 정당하지 않은 무력분쟁을 일으키기도 한다하지만 그것이 국제법상 규정된 전쟁의 요건을 갖추고 있다면그 안에서 명령에 따라 용기를 바탕으로 의무를 수행하는 군인들을 비난할 수는 없다는 말이다.(물론 이들이 미얀마나 홍콩에서 벌어지는 식의 민간인에 대한 탄압과 학살에 참여하고 있다면 이야기가 다르겠지만)


제복을 입은 이들의 희생과 용기는 공동체로부터 인정받아야 한다단순한 물질적 보상을 넘어 합당한 명예가 주어지는 것이 옳다애써 영웅을 만들 필요는 없지만자신이 맡은 자리에서 공동체의 요구에 따라 최선을 다한 이들은 그럴 대우를 받을 자격이 있다.

 





전쟁영화.


역사를 배경으로 제작되는 영화는 어느 정도 고증이라는 문제를 마주치게 된다특히아 이런 전쟁을 주제로 하고 있는 영화는 소위 밀덕들의 집중 분석의 대상이 된다다만 나처럼 그저 관심을 가진 애호가 수준이라면 이 영화는 충분히 즐길 수 있는 요소들이 많다일단 전쟁이라는 것이 그 자체로 엄청난 긴장감을 주는 데다서로의 사정을 파악하려는 첩보전과 동료를 위한 희생영웅적인 용기를 보여주는 캐릭터들이 더해지면 오락영화로서는 기본은 할 수 있으니까.


바다 한 가운데서 벌어지는 전쟁이다 보니자칫 밋밋하게 보일 수도 있었지만항공모함과 함재기들을 통해 다양한 그림들을 그려낸다급강하폭격기들의 시선을 따라 적의 항모를 향해 떨어져 가기도 하고반대로 항모의 승조원이 되어 공격을 막기 위해 애쓰기도 하는 등그림도 다양하다.


다만 전쟁을 지나치게 오락의 차원에서만 접근해서는 문제가 될 수 있는데특히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런 영화의 경우 더더욱 그럴 수 있다하지만 감독은 영화의 분위기를 어느 정도 묵직하게 이끌어 가면서단순한 오락꺼리로 전쟁을 보려는 시선을 차단한다영화 속 인물들이 제대로 웃을 수 있는 건전투가 끝난 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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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러움.


     영화는 조선일보와 동아일보의 친일전력을 파헤치는 것으로 시작한다. 1985뜬금없이 서로 민족 정론지를 자처하며 상대를 친일 언론으로 비난하는 모습은 가관이다하지만 감독이 추적해 본 결과일제강점기 두 신문은 누가 더 추하다고 할 것도 없이일왕 내외의 사진을 1면에 실으며 충성을 보여주고일제가 일으킨 동아시아 전쟁에 끌려갈 조선 청년들의 지원을 위해 열성적인 독려를 한다심지어 이름에 조선이 들어간 그 신문은 제호 위에 빨간 색 일장기를 컬러로 인쇄해 박아 넣었을 정도.


     친일 본능은 해방 후 군사정부가 들어서면서 너무나 자연스럽게 이제 친독재 본능으로 색깔을 바꾼다오늘날 북한의 기관지에서나 볼 수 있을 것 같은 지도자 찬양 기사들로 지면은 가득 채워졌고이에 반발하며 언론의 자유를 외쳤던 기자들은 모두 해직되었다당시 조선일보 사장이 직원들에게 경고하는 유치한 선전포고문은 이 조직의 수장에게 애초부터 언론이라는 의식 자체가 없었다는 걸 보여준다.


     더 어이가 없는 건이런 역사가 뻔히 남아있음에도 불구하고국회에서 열린 청문회에 출석한 두 신문사 관계자들은 뻔뻔스럽게 자신들의 친일전력을 부인하면서 마치 대단한 언론자유의 투사인 양 행세했다는 점이다이쯤 되면 부끄러움은 우리 몫이라는 말이 어울리는 상황.

 





혼맥.


     영화 중반부감독들은 이 두 신문사와 관련된 인물들이 결혼으로 형성한 혼맥을 시각화해서 보여준다마치 나무의 뿌리처럼 정계와 재계를 막론하고 어지럽게 얽혀 있는 관계도를 좇다 보면언론개혁이 왜 이렇게 지지부진한지를 금세 깨달을 수 있다.


     이들이 이런 복잡한 관계를 만든 이유는 역시 권력을 얻기 위해서이다언론의 본연은 권력을 견제하고 감시하는 일이지만이들은 스스로 권력이 되기로 작정했던 것이다이들에게서는 제대로 된 생각이나 목소리를 찾는 것이 어려워진 것은 당연한 결과다철저하게 정파성을 지닌 의견나아가 앞서 사장들이 국회에 나와서 자기들이 했던 행적을 뻔뻔하게 부인했던 것처럼몇 달 사이에 손바닥 뒤집듯 바뀐 논조들을 보는 것도 드물지 않으니...


     사회 곳곳에 뿌리내린 언론 권력은 여전히 기세를 떨치고 있다작은 문제를 부풀려 엄청난 일로 만들거나자기들과 한 편인 이들의 문제는 애써 덮어 버린다애초에 일관된 논리 따위는 필요도 없으니 생각할 것도 없이 공장식으로 기사들을 쏟아서 진실을 가린다그리고 그 최종적인 목표는 자신이 가진 권력을 더 키우는 것이고마치 암세포처럼 주변의 세포로 갈 영양소를 빨아들여 혼자만 커지는 것 같달까.


     물론 이 두 신문사들의 모든 기사가 다 엉망인 건 아니다분명 읽어볼 만한 내용도 있고꽤 전문성을 보이는 분야도 존재한다다만 전체적 논조가 그 괜찮은 부분까지 삼켜버릴 정도로 큰 영향을 끼친다는 게 문제.

 





폐지수출과 기레기.


     최근 이 신문사들이 ABC협회에 조작된 발행부수를 보고해 광고비를 과다수령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그리고 곧 엄청나게 찍어낸 신문들은 실제 유료구독자들에게 전달되지 않고포장도 뜯지 않은 채 폐지로 수출되기도 한다는 후속 보도도 이어졌고언론사로서 부끄러운 내용들이지만여전히 부끄러움을 모르는 이들은 뻔뻔하게 목소리를 높인다.


     하지만 뭐 이들이 큰 타격을 입지 않을 것 같은 건처음부터 구독자들로부터 받은 구독료가 아니라부동산 투기나 광고비로 유지되고 있기 때문일 지도 모르겠다별 의미도 없는 기사뭉치를 그토록 열심히 써댈 수 있었던 것도애초에 좋은 기사를 써서 구독자를 늘려야한다는 생각이 없었기 때문일지도...


     ‘기레기라는 멸칭이 흔하게 들리는 상황은 사회 전체로 볼 때 결코 건강한 모습은 아니다언론이 그 기능을 제대로 하지 못할 때 피해를 입는 건 시민들이니까사회를 다양한 관점으로 바라보는 언론들이 다수 존재하는 건 그래서 중요하다가장 좋은 건 이들이 조작과 선동을 중단하고 자신들의 가치관에 따라(정파성 자체가 문제는 아니다사안을 최대한 객관적으로 분석해 보도하게 되는 일이겠지만그런 날이 오기는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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