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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롱뇽과의 전쟁
카렐 차페크 지음, 김선형 옮김 / 열린책들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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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U.B』로 대표되는 카렐 차페크의 이미지가 얼마나 지엽적인 것인지 부터 타파하는 것이 『도롱뇽과의 전쟁』을 읽는 내내 선결되어야할 과제였을 것은 분명하다. 오히려 이 체코 출신의 세계적인 문호와의 뒤늦은 만남에서 무언가에 영향 받는 일조차 없이 이렇게 폭풍처럼 휘말리다 소름이 돋고, 그 모든 과정을 즐길 수 있었던 시간이 축복으로 다가오기도 했으니, 내 무지에 경배를……까지는 아니라 해도, 어험! 공상과학이라는 용어조차 확립되기 전, '로봇'의 아버지 가운데 한 사람(다른 한 사람은 차페크의 형이다)이기도 한 체코의 거장은 올해 가장 마지막으로 만났지만 가장 커다란 족적을 아로새겼음을 선언하는 바이다!


데블베이라는 의심쩍은 지명이 말해주는 것처럼 원주민들이 극히 꺼려하는 태평양의 심해에는 형용하기 힘든 생물체가 출현한다. 진주 잡이 배의 선장인 반 토흐만이 이 괴생물체의 존재가치를 '악마'가 아닌 것으로 접근하는데, 바다 밑에 득실거리는 진주를 건져다주는 착한 도롱뇽으로써 인간사회에 소개하게 된다. 두 다리로 걷고, 인간의 언어를 따라할 수 있으며, 도구를 사용할 수 있는 이 해양 도롱뇽들은 진화에 역행하는 이단적인 존재이지만, 성실한 노동력을 제공하고 자기방어조차 하지 않는 순박한 생물이었기에 반 토흐 선장 사후 그 쓰임새는 인류 문명 전반에 걸쳐 새로운 전환점이 된다.


데블베이의 악마가 아니라 전 세계 해안으로 실어 날아진 도롱뇽들은 새로운 해안선을 구축하며 인간의 활동영역을 심해로 확장시키는데 선봉이 된다. 인간이 제공하는 곡물과 다이너마이트, 상어총 등과 교환된 도롱뇽의 노동력은 해양건설의 영역이 아닌 다양한 분야에서도 각광받는데, 각국의 비공식적인 예비 군비가 되어 인류 역사상 가장 뜨거운 감자로 부상하게 한다. 도롱뇽의 권익을 어디까지 보호해야하는지, 도롱뇽의 무장을 과연 허용해야하는지, 도롱뇽과 인간 사회의 유착은 과연 이대로 안전할 것인지에 대한 각계의 논의보다 앞서는 것은 물론 도롱뇽이 창출하는 극대화된 이문으로, 도롱뇽의 극단적인 양적 팽창이 가져오는 불안함을 감지하는 일각의 우려는 도롱뇽이 가져다주는 경제적 특권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닌 것으로 치부된다.


도롱뇽이 어떻게 인간 사회와 유착되는지를 다룬 1부 '안드리아스 스케우크제리', 그들이 문명에 끼치고 있는 다각적인 영향을 다룬 2부 '문명의 사다리를 오르다'에 이어 3부 '도롱뇽과의 전쟁'은 전 세계의 바다를 장악한 도롱뇽의 인류 문명에 대한 역공을 다루고 있는데, 이미 예고된 불안이었다고 해도 그 충격과 경악의 강도는 결코 희석시킬 수가 없다. 도롱뇽이 인간을 위해 건설하던 새로운 영토가 아니라, 도롱뇽에게 새로운 해안선과 모래톱을 제공하기 위해 '구 대륙'들을 심해로 가라앉히는 모습을 목도해야하는 심정은 실로 편치가 않다. 도롱뇽의 극단적인 팽창을 재산과 군비의 확충으로 인식해오던 인간들이 도롱뇽의 생존을 위해 도태되어야하는 종으로 전락하는 과정이 어찌나 자연스럽게 전개되는지, 그것이 또 다른 충격의 일환으로 다가오는 것은 물론이다.


차페크가 오랫동안 노벨상 후보에 머무르다 번번이 수상을 실패한 이유로 한림원이 제기한 '문학이 아닌 저널리즘이다' 또는 '정치색이 너무 강하다'는 견해를 코웃음으로 받아칠 수 있었던 장르의 경계를 초탈해버린 차페크의 문학적 깊이는 이 한 권으로 따라잡을 수 없는 마의 영역이기는 하나, 가늠해볼 수 있는 무척 귀중한 '사료'이기도 하다. 소설 안의 학술적, 미학적, 분석적인 주석 하나하나를 모조리 창조해내는 무한한 능력에 잠식되지 않을 수 있는 최대의 무기는 단연 위트의 힘이다. 인간의 문명을 답습해서 도롱뇽의 문명을 창출하는 역습의 과정 내내 인간들이 보여주는 현실인식의 한계와 작태에서 빚어지는 해프닝 속에서 들여다보이는 촌철살인이 도롱뇽의 번식력 이상으로 극대화되고 있는 것이다.


지구에게 있어서 인류는 진화의 선봉에 선 최우선적으로 보호하고, 살아남아야할 종이기보다는 자신들의 터전을 스스로 파괴하는 생태계 교란의 전범일 것이다. 전쟁을 위한 전쟁에 힘쓰는 파시즘의 노예들을 한 순간도 주저 없이 꾸짖었던 양심적 언론인이기도 했던 차페크의 현실인식은 인간에 대한 탄식과 사형선고에만 힘을 쏟고 있는 것은 아니다. 도롱뇽에게 잠식당한 인류의 적은 도롱뇽이 아니라 인간이면서, 인간의 멸종을 앞두고 그것을 반성하는 것도 인간이다. 반 토흐 선장과 도롱뇽 산업을 연결해준 커넥션의 중심에 자신이 존재한다고 믿었던 부호의 문지기 포본드라 씨에 대한 작가의 살가운 시선은 경악할만한 반전 속에서도 빛을 잃지 않는다. 인류 문명의 총화는 어디까지나 인간성을 포기하지 않을 때에만 재한다는 지극히 인간미 넘치는 시대를 초월한 경고가 각인되어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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