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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토 랩소디
애덤 셸 지음, 문영혜 옮김 / 문예중앙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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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벅터벅 나귀의 느린 걸음에 실려 지나치기만 해도 취기가 올라올 것 같은 포도가 주렁주렁 매달린 토스카나 지방의 건강한 태양빛 아래, 과실과 채소가 영글고, 로맨스와 음모 또한 무르익어간다. 중세 이탈리아 토스카나를 배경으로 삼아 로맨스에 양념을 더해줄 역경은 종교와 민족적인 대치 속에는, 유대교 청년과 가톨릭 처녀의 고난을 잠식시켜줄 맛깔난 레시피들이 즐비한 탓인지, 동정을 보내기 이전에 군침이 도는 것도 어쩔 수 없다. 포도밭, 올리브 나무 사이로 보이는 금기의 열매였던 '사랑의 사과' 토마토의 농익은 매력은 어쩌면 금기의 사랑만큼이나 특별한 입지를 자랑하는 탓에 이 책의 주인공은 선남선녀이자 비옥한 토스카나 지방의 농작물이기도 하니, 읽다보면 허기가 지는 단점만 제한다면 입맛을 돋우는 참신한 이야기가 되어줄 것을 확신하다. 『토마토 랩소디』안의 복작복작한 토스카나 주민들의 삶의 레시피 속으로 들어가기로 하자 단, 당신이 공복상태가 아니라면.


올리브 농장의 건실한 주인이었던 아버지의 의문사 이후, 재산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뜨내기 부랑자와 결혼한 어머니는 반신불수이며, 새 아버지란 작자는 의붓딸의 노동력을 착취해 배를 불리며 지참금마저 아까워하는 위인이었으니, 우리의 처녀 마리에게는 포도주와 올리브 절임을 빚는 시간만이 위안이 되어줄 뿐이다. 시장에서 마주친 그 청년을 만나기 전까지.


크리스토포로 콜롬보의 '신대륙' 발견을 함께하기도 했으며 이사벨라 여왕의 재정담당관이었던 논노는, 종교재판의 광풍을 피해 은닉한 재산으로 토스카나에 정착해 손자 다비도와 토스카나에 유대 공동체를 정착시키고자 애쓴다. 유대인과 토마토는 둘 다 터부의 존재이기도 하니, 다비도가 재배하는 풍만한 토마토가 암시하는 것은 자못 의미심장하기도 한다. 함께 농장을 꾸려갈 매력적인 발목을 가진 생기 넘치는 배우자를 꿈꾸는 다비도가 그 처녀, 마리를 발견한 것은 벼락같은 로맨스의 시작이기도 하며, 토마토 소스로 버물린 파스타와 피자의 기원이 되어주기도 한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야밤의 공복 상태의 당신이라면 허기를 느끼지 않을 수 없는.


메디치 가문을 고스란히 카피한 '메두치 가'를 등장시켜 희비극의 요소를 충만히 하고, 탐욕과 아집에 물든 토스카나 주민들 사이사이에 아프리카에서 주술사에 의해 보랏빛 '가지' 피부를 갖게 된 선량한 신부 굿 파드레와 마리의 혐오스러운 의붓아버지 주세페, 주세페의 하수인이자 비루먹은 베니토 등의 인물군상은 끊임없는 방해공작과 의외의 도움을 엮어나가며 다비도와 마리의 앞날에 먹구름을 드리우기도 하고, 작가가 컨트롤할 수 없는 정력적인 생명력 탓인지 이야기를 장황하게 만드는 비대해진 곁가지 노릇을 하기도 한다. 자로 잰 듯 정확하고, 촌각을 다투는 타이밍에, 거두절미하게 털어놓는 이탈리아 극이 있을 수 없듯, 토스카나의 광활한 옥토 속에서 펼쳐지는 촌극의 이면에는 돌발적인 변수가 너무도 많아 의외의 레시피를 발견할 수 있는 기회의 장이 되어주기도 한다.


다비도의 토마토는 마리의 포도주 비법과 만나 가마솥 안에서 나누는 육체적 사랑과 더불어 전설적인 토마토 소스의 신기원이 되고, 먹다 남은 빵에 발라 소스를 발라 적당히 구워내면 피자로 승화된다. 금기란 무섭고 병적인 요소가 아닌, 기존 질서 유지자들의 질시와 모함의 이면이 강한 것처럼 다비도와 마리의 결합은 토스카나 촌락을 울고, 웃게 만들며 더욱 건강한 에너지를 발생시킨다. 애정과 애증과 탐욕과 관용이 한데 어우러지며 한층 복잡해지는 것이 아니라 단순한 인생의 법칙으로 수렴되는 모습은 마치, 남아있는 재료를 이것저것 집어넣고 뚝딱 만들어낸 별미와도 같다. 로맨스와 음모가 양립하지 않으면 이야기가, 인생이 곧 밋밋해지고 마는 것처럼.


황토이랑 사이사이의 탐스럽게 익어가는 토마토의 붉은빛, 두 번 짜낸 올리브유의 황금빛, 이성을 마비시키는 독버섯으로 증류된 비밀스러운 포도주 빛, 굿 파드레의 불가해한 퍼짓듯한 가짓빛 피부 등등. 토스카나의 어지러운 태양 아래 발효되고 농축되어가는 삶을 힘겹게도, 향기롭게도 만드는 생명력 넘치는 에너지로 가득 채워진 진탕 먹고, 놀고, 울고, 웃는 이야기의 향연이 초래한 군침과 공복의 사투 속에서 더욱 더 인상 깊은 이야기가 무르익어 감을 허기와 함께 내려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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